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현지 취재

세계 최대 바이오산업 전진기지 CJ 인도네시아

극렬한 주민 저항, 무책임한 종업원, 살인적 풍토병 이겨내고 17년 만에 정상 등극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세계 최대 바이오산업 전진기지 CJ 인도네시아

3/5
세계 최대 바이오산업 전진기지 CJ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현지 직원이 라이신 생산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인니인은 좀처럼 안전사고를 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해서 17년 동안 상처가 없지는 않았다. 의욕적인 출발과 달리 라이신의 시장가격이 급락하면서 운영자금이 부족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CJ의 기술력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지 합작회사 아스트라 그룹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인도네시아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악재가 겹치면서 삼성에선 ‘가장 실패한 투자’로 손꼽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공장의 폐수 때문에 농작물이 죽는다면서 회사 유리창을 부수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폐수는 정화시설을 통해 방류되고 있으며, 환경기준에 적합하다고 설득했지만 성난 주민들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유순한 듯 보여도 집단행동에 쉽게 휩쓸리는 인니인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줬다.

풍토병도 현지에 파견된 CJ 임직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아무리 위생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해도 티푸스(열병의 일종. 한국에선 장티푸스로 알려짐)나 설사병, 말라리아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직원치고 한두 차례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인도네시아 직원들이었다. 1948년 네덜란드에서 독립할 때까지 350년 동안 식민통치를 받은 탓에 그들은 소극적이고, 의존적이었다.

초기 공장 설립 중에 벌어진 일화다.



현지 직원 두 명이 리어카에 흙을 담아 고갯길을 넘어가는데 힘이 부치는지 고개를 넘지 못했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주위에서 300명이 넘는 현지인이 그 광경을 목격했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한국인 직원 하나가 “왜 동료를 도와주지 않냐”고 묻자, 한 직원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심지어 자신이 실수로 컵을 깨뜨려도 직접 치우지 않고, 청소담당 직원을 불렀다. 청소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1989년부터 파수루안 공장에서 근무한 이르잠(IRZAM·42) 부장은 “네덜란드인에게 오랫동안 눌려 살다 보니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안 돼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현지 직원들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인 관리자가 자칫 큰소리라도 쳤다간 다음날 회사에 나오지 않는가 하면, 잘못에 대해 “잊어버렸다”고 변명하기 일쑤였다. 실수는 반복되고, 고쳐지지 않았다. 종교의식도 문제였다. 대부분 회교도인 현지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다섯 번은 손발을 씻고 기도를 올렸다. 작업을 할 만하면 기도하러 가는 통에 작업이 수시로 끊겼다.

‘가난의 추억’은 후진국 진출의 열쇠

소극적인 태도, 회사의 규율을 무시하는 종교 의식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기름값, 전기료 등 생산비용이 급증하자 다국적 기업들은 하나 둘 인도네시아를 떠나고 있다. 이미 소니, 나이키, P&G가 사업을 포기했다. 계산이 빠른 기업들은 미얀마와 캄보디아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인건비와 생산비용이 싸다는 이유로 이곳에 진출하던 시기는 지난 것이다.

그러나 CJ처럼 거대 설비를 들여와 투자한 기업은 거점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어떻게든 현지 상황에 적응하면서 생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장 주력한 부분은 직원들의 가슴속에 잘살아보겠다는 열망을 심어주는 것. 하지만 인도네시아 국민은 무더운 날씨, 현재보다 사후 세계를 동경하는 종교관 때문에 돈을 벌겠다는 욕망이 없었다. 1년에 세 번씩 농사를 짓고, 아시아 최대의 사탕수수 농장이 있으며, 천연가스와 석유를 생산하는 인도네시아는 역설적으로 풍부한 자원 때문에 일하려는 욕심이 없다. 이런 성향의 현지인에게 한국이 과거 경험한 ‘새마을운동’ 같은 불길이 타오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다.

파수루안 공장의 송석원 상무는 우선 회사의 매출이 늘면 모든 직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도록 했다. 생산목표를 세우고, 달성한 팀원들에게 치약, 세제, 비누 같은 생필품이나 닭고기를 선물로 줬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회교도들에게 닭고기는 거의 유일하게 섭취할 수 있는 고기다. 이 때문에 아버지가 닭고기를 사들고 집에 가는 날이면 가족은 환호성을 지른다고 한다. 송 상무는 “우리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고기 한 근 사가지고 오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며 “가난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현지인의 신뢰를 얻고 일하고픈 욕구를 심어주는 방법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3/5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목록 닫기

세계 최대 바이오산업 전진기지 CJ 인도네시아

댓글 창 닫기

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