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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한국혼 ⑧

6년 학력의 대문호 김달수 上

넝마주이 망태 속에 피워낸 민족문학의 꽃

  •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6년 학력의 대문호 김달수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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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이던 성수는 일본에서 도항증명서를 끊어 귀향한 터였다. 그러나 성수는 동생 달수의 도항증은 생각조차 안했던 모양이다. 열 살 소년이 도항증명서 없이는 연락선을 탈 수 없을 줄이야. 그래서 마산을 떠나 부산에 도착한 형제는 경찰의 제지로 배조차 탈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 달수 몫의 도항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다. 도항증이 나오자 이번에는 여비가 떨어졌다. 형제는 도쿄의 어머니에게 돈을 부쳐달라고 전보를 쳤다. 며칠이 걸렸는지 모른다. 가난한 어머니가 도쿄서 보내 준 여비는 딱 연락선 승선료와 교통비 정도였다.

도쿄로 가는 이틀 동안 형 성수는 달수에게 도시락 한 개를 사주고 자신은 밀감 한 개로 여섯 끼니를 때웠다. 그래도 달수는 어머니를 만난다는 기대, 낯선 이국의 화려한 도시 도쿄로 간다는 기분에 들떠 배고픈 줄도 몰랐다. 그러는 사이에 도쿄의 시나가와(品川) 역에 도착했다. 배로 하루, 기차로 하루 해서 이틀이 걸린 고단한 여정이었다.

어머니의 하얀 치마저고리

“아이고, 달수야!”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그를 맞았다. 참으로 사연 많은 이별의 세월이었다. 헤어져 있던 5년 사이 아버지도 죽고, 작은형 양수도 죽었다. 모자는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가 사는 도쿄 집은 비좁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성수, 달수, 면수 세 자녀의 생계를 하숙 치는 수입으로 꾸려갔다. 하숙생은 네 명이나 되고 모두 한국에서 온 기층민이었다. 하숙생들은 토끼장 같은 다락 공간에서 기식했다.

어머니는 처음, 그러니까 5년 전 도쿄에 도착해서는 친척 연줄로 나가노(長野)현의 제사(製絲)공장에서 여공으로 일했다. 여공이라고는 해도 말이 안 통해 그는 그저 잡역부 일을 하고 급료도 형편없이 적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유흥으로 지새던 젊은 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이역 땅 일본에서 토목공사 인부가 되어 일했다. 그러나 해보지 않은 일이라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루 일하면 이삼일을 쉬는 룸펜 노동자일 수밖에 없었다. 큰형 성수도 건전지공장에 견습공으로 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도쿄로 옮겨온 뒤, 그렇게 하숙으로 끼니를 이어갔다.

‘동포’ 하숙생 중 두 사람은 넝마주이였다. 망태를 짊어지고 길거리를 배회하며 고철, 빈 병, 종이 같은 폐품을 수집해 파는 ‘거지’가 직업이었다. 또 한 사람은 세탁물 수거원. 항상 하얀 와이셔츠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다니지만, 세탁물을 내놓으라고 외치고 그 수거량만큼 보수를 받는 이른바 ‘세탁소 외판원’이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낫토(納豆·일본식 청국장. 메주를 띄운 발효식품)를 파는 행상이었다.

1929년 미국을 휩쓴 경제공황은 일본 경제에도 큰 타격을 안겼다. 실업자가 속출하고 ‘후케키(不景氣)’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억척으로 일했다. 하숙생에게 식사를 대기 위해 시나가와 일대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싼 음식재료를 모으고 멀리 근교까지 걸어가서 야채를 사왔다.

어머니는 한국 습관대로 하얀 치마와 저고리만 입고 다녔다. 그렇게 눈에 띄는 차림으로 장을 보러 다니면서, 꼭 달수를 데리고 갔다. 일본 사회에서 어색하기만 한 차림새 때문에 달수는 놀림 받기 일쑤였다.

“조∼센진! 어이, 조센진∼.”

달수 또래의 아이들이 그와 어머니에게 손가락질하며 야유하는 것이다. 달수는 일본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어머니는 “괜찮다, 괜찮아” 하고 아들을 달래며 묵묵히 걷기만 했다. 그러면 일본 아이들은 원숭이처럼 볼을 우그리고 혀를 내밀며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마치 동물원의 애완동물을 놀리듯 했다. 어떤 녀석은 돌을 던지기도 했다.

“이놈의 자식들아!”

어머니는 날라온 돌을 주워 되던지며 아이들을 쫓았다.

한참 가다가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달수에게 말했다.

“달수야, 이런 일 있어도 너만은 도망치지 말고 내 곁에 있어다오. 네 형놈은 길에서 날 보면 모르는 사람 보는 듯한 낯빛으로 쳐다본다. 그러곤 도망치지. 너마저 그러면 난 더 못살아!”

불쌍한 어머니. 당시 성수는 열여섯으로 철이 들 만한 나이였다. 달수는 먼 훗날 작가가 되어 어머니의 가슴 미어지는 슬픔도, 형의 도망치는 심정도 모두 이해되는 것이라며 이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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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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