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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한국혼 ⑩

와카야마 유학의 비조(鼻祖) 이진영 父子

야만의 왜인들에 사람의 도리 가르치다

  •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와카야마 유학의 비조(鼻祖) 이진영 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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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야마 유학의 비조(鼻祖) 이진영 父子

해선사 주지의 부인 다무라 노리코씨가 이진영의 묘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미리 취재와 인터뷰 예약을 해둘 걸’ 하고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물러설 길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내 한자 이름을 적어내자 분향대금(焚香代金)을 내라고 한다. 엉겁결이라 액수를 물을 처지도 못 되었다. 5000엔권 한 장을 내밀었다. 접수부에서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내 키만한 각목(너비 10㎝이니 널빤지에 가깝다)을 내민다. 붓글씨가 적혀 있다. ‘김가 선조대대 일체 오봉 공추(金家 先祖代代 一切 お盆供追).’ 아마도 나의 집안 선조 대대로 기원의 효험이 전해지라는 의미려니 싶다. 5000엔의 거금을 들여 일본 땅에서 불공을 드리면, 한국 땅의 조상에게 위무가 미칠 것인가. 돈이 아깝다고 생각됐으나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각목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니, 기원 무대에는 머리도 깎지 않은 젊은 스님 대여섯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 스님이 각목을 받아가더니, 이름을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보아하니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신도 20여 명이 내 앞 서열인 듯하고, 순서가 돌아오면 단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일단 각목을 제단에 놓고, 향 연기를 쏘여가면서 스님의 간절한 기원을 들은 뒤에 각목을 돌려받아 나오면 된다. 그 ‘영험의 각목’을 선조의 무덤 옆에 꽂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라고 한다.

내 차례가 되자, 스님은 절절한 목소리로 뭔가를 빌어주었다. 스님이 나무아미타불을 후렴처럼 외치지만, 중간중간에 ‘삼계만령(三界萬靈)’ ‘수륙(水陸)’ 어쩌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완전한 불교식 공양은 아니다. 일본의 토속 기복(祈福)신앙에 불교가 뒤섞인 행사이려니 싶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난 다음 난처한 일이 벌어졌다. 각목을 꽂을 묘소가 없는 나로서는 그 거추장스러운 것을 절에 되돌려줘야 했다. 이런 상황을 행사 보조원에게 알리자 놀라더니, “절에서 되돌려받을 수 없으니, 윗분에게 물어보고 오겠다”며 사라졌다. 일본인은 매뉴얼에 없는 상황이 닥치면 임기응변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묻거나 규정집을 꺼내들어 확인한다. 빈틈없는 신중한 일처리 같으면서도, 어떤 때는 책임회피나 융통성이 없다고 느껴져 짜증스럽기도 하다.



보조원이 돌아와서는 나를 기품이 엿보이는 어느 중년 부인에게 안내했다.

“주지의 처입니다. 한국에서 오셨습니까?”

“네, 신문기자입니다. 취재차 왔습니다”

“아,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이진영을 취재하러 오셨군요. 저희 주지 다무라 간코(田村歡弘)가 마침 저쪽에 가 있어서, 제가 안내하지요”

‘波臣의 눈물’ ‘웃는 얼굴’

그녀는 이진영의 아들 매계의 글 ‘부모장’이 적힌 부채를 기념품이라며 내밀었다. 이어 이진영 부자 일대기를 소개한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의 저서 ‘파신(波臣)의 눈물’(일어판)과 ‘웃는 얼굴’이라는 초등학교 5, 6학년용 일본어 교과서를 가져다 보여주었다.

‘부모장’ 부채는 이진영 부자가 이 절의 세일즈 포인트가 되어 공짜로 주는 것이라고 했다. ‘웃는 얼굴’에는 이진영 부자의, 소설보다 기구한 운명과 ‘와카야마의 스승’이 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잠시 후 주지 다무라 간코씨가 다가왔다. 훤칠하게 잘생긴 얼굴이다. 결혼도 하고 돈도 버는 일본의 대처(帶妻) 불교에는 이런 스님이 적잖을 것이다. 고행의 길을 걷는 수도승이라기보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 같았다. 절에서 돈벌이가 잘되는 것도 부처님 은덕일까.

문득 유명한 교토의 금각사(金閣寺)가 생각났다. 금각사 방문 코스의 마지막은 매점이다. 거기서 50엔짜리 부적을 파는데, 부적에 적힌 ‘효험’이 실소를 자아낸다. ‘취직성취 학업성취 진학성취 가내안전 교통안전 상매(商賣)번창 연애성취 인연연결 무병식재(無病息災) 스트레스 제거 암 방지…’ 부적으로 만병을 통치하고 재액을 막는 등 그 어떤 소원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속(巫俗) 기복(祈福)과 섞인 일본 불교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의 불교는 세상에서 가장 세속화된, 좋게 말하면 대중에 가장 깊게 뿌리내린 종교일 듯싶다.

명함을 내밀자 다무라 주지가 ‘동아일보’와의 인연을 얘기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해 이진영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현해탄에 핀 매화꽃’을 서울에서 ‘동아일보’ 후원으로 공연했지요. 저도 서울에 가서 보았는데 정말 성공적인 공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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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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