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호

한미 FTA 몰아붙이는 미국의 노림수

한국을 美 동아시아 전략 전초기지로?

  • 성기영 在英 자유기고가 sung.kiyoung@gmail.com

    입력2006-03-28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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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 몰아붙이는 미국의 노림수
    “자유무역협정(FTA)은 국제사회에서 강자보다는 약자가 추진해온 정책이다. 약소국들은 강대국들과 무역협정을 맺음으로써 더욱 넓은 시장을 확보하고 국가안보상 이익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왜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을 들고 나오는가.”

    “FTA는 결국 정치적 산물 아닌가. 대통령이나 총리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건 동남아 브루나이의 골프장에서건 협정에 서명하고 사진 찍는 것을 즐기겠지만, 그러는 사이 FTA로 상대적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나라들의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2003년 5월. ‘자유무역협정과 미국의 무역정책’을 주제로 한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토론회에서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FTA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의 변심엔 이유가 있다

    레나토 루지에로 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 무역담당 편집자인 가이 드 존키에로 등이 패널로 참여한 이 토론회에서는 1995년 WTO가 출범할 때까지 모두 69건의 FTA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통보됐지만 그중 정작 GATT의 승인을 받은 것은 6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런 주장을 펼친 사람은 IIE의 자문위원장 리처드 쿠퍼 교수였다. 쿠퍼 교수에 따르면 현존하는 대부분의 양자간 FTA가 GATT로 상징되는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지 못한 미숙아 신세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의 근거를 알아보려면 GATT의 출범 배경에 대해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WTO 출범 당시까지 세계 무역질서의 ‘헌장’으로 여겨진 GATT는 조약 체결국에 대한 ‘무차별 원칙’을 제1의 운영원리로 삼는다. GATT 협정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결국에 특별대우나 차별대우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FTA와 같은 이른바 특혜무역협정은 조약 체결 상대국에 대해서는 관세 감면과 같은 혜택을 주지만 그렇지 못한 제3의 무역 파트너들에게는 오히려 시장 접근을 어렵게 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다시는 국가간 무한경쟁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자간 무역체제라는 안전장치를 만들자며 국가간 공조를 중요시했다.

    하지만 오늘날 국제교역의 현실을 살펴보면 이런 정신은 사라지고 FTA와 같은 특혜무역협정과 지역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결국 이는 국제 경제 질서에서 다자간 합의를 통한 명분보다는 양국간 경제적 이해와 같은 현실적 요인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다자주의의 수호자였다. 1948년 GATT의 출범을 주도한 것도 미국이고, 유럽연합(EU)이 지역주의에 불을 댕길 때 케네디라운드나 도쿄라운드와 같은 다자간 무역협상을 통해 GATT 체제를 보완하는 데 앞장선 것 또한 미국이었다.

    이렇게 다자주의를 확고히 지지해오던 미국이 원칙을 저버리고 양자주의 또는 지역주의로 후퇴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GATT 각료회의에 실패한 뒤부터다. 미국은 당시 도쿄라운드(1974∼79)의 후속 협상을 개최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할 목적으로 각료회담 개최를 요구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반대로 벽에 부닥치자 GATT 체제를 통한 다자간 무역자유화 방식에 깊은 회의를 품게 된다.

    부시 정권 이후 FTA 가속화

    각료회담 개최가 장기간 표류하면서 미국 경제는 증가하는 무역적자로 수렁에 빠졌다. 또 일본의 눈부신 성장이 미국 경제의 영광을 빛바랜 것으로 만들 조짐이 보이자 미국 내 일각에서 GATT 체제를 불신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미국이 다자주의에서 FTA와 같은 양자간 특혜무역협정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효시다. 이때부터 미국은 악명 높은 ‘슈퍼 301조’를 동원해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문제 삼아 일방적 압력을 행사는 한편 캐나다, 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설립을 후원하는 등 지역주의 흐름을 주도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미국의 행보 이면에는 당초 4년으로 예정된 협상 기한을 훌쩍 넘기고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EU의 양보와 협상 조기 종결을 촉구하려는 정치적 카드가 숨겨져 있었다. 다시 말해 UR 협상이 지지부진할 경우 미국은 언제든지 압도적인 협상력을 바탕으로 NAFTA와 APEC 같은 지역협정을 통해 ‘딴살림’을 차리겠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 이미 미국의 FTA 정책이 본격화하기 전인 1980년대 후반에 미 경제연구소들이 내놓은 보고서들은 미국 주도의 FTA가 갖는 ‘위협용 카드’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그후 FTA를 미국 무역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은 것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1년 발표한 ‘무역정책 어젠더’에서 FTA가 미국의 무역정책을 범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핵심적 수단이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이듬해 미 의회는 대통령의 무역협상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무역촉진 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 TPA)’ 법안을 승인함으로써 부시 행정부에 힘을 실어줬다.

    당시 민주당은 노동 및 환경 기준의 악화를 우려해 이 법안 승인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하원의 과반수를 차지한 공화당은 무역 촉진을 통한 경기 활성화와 국가 위상 제고와 같은 명분을 내세워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 여기에 2000년 하반기부터 침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와 2001년 9·11 테러 이후 ‘강한 미국’에 대한 요구가 부시 대통령의 FTA 적극 추진 방침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줬다.

    행정부의 FTA 중시 정책과 의회의 협력으로 부시 정권은 집권 1기(2001∼2005)에만 10건의 FTA를 새로 체결했다. 미국 행정부가 1985∼2000년 15년 동안 FTA를 체결한 나라가 NAFTA 상대국인 캐나다와 멕시코 외에는 3개국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전개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익 앞에선 ‘적과의 동침’도 불사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기준으로 FTA 상대국을 골랐을까. WTO 회원국은 지난해 말 현재 149개.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과 FTA 체결에 성공한 나라는 12개국에 불과하다.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들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 최근 미국과 FTA를 체결했거나 협상 중인 나라들을 살펴보자. 미국의 무역정책, 나아가 외교정책에서 FTA가 갖는 함의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UR 협상이 개시되기도 전인 1985년 체결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FTA는 미국의 무역정책이 국가안보 논리에 따라 전개된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과 맺은 FTA가 이보다 앞서 1975년 유럽공동체(EC)와 이스라엘이 맺은 FTA에 대한 대응수단의 성격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맺은 FTA가 미국의 대(對)중동 전략, 특히 안보전략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미 FTA 몰아붙이는 미국의 노림수

    협상 개시! 김종훈 한국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가 3월6일 한미FTA 1차 예비협의를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특히 조약 발효 후 10년 안에 양국간 무역 관세를 철폐한다는 양국 FTA의 핵심조항이 실제 미국의 경제이익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놓고 미국 내에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당시 이스라엘은 미국의 일반특혜관세(GSP) 대상국으로서 저율(低率) 관세로 미국시장에 물건을 내다팔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미국과 이스라엘의 FTA는 이스라엘이 그동안 향유하고 있던 관세 특혜를 연장한다는 의미 이상을 갖기 어려웠다. 심지어 미국측 전문가들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FTA가 갖는 경제효과가 과장돼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당시 미국은 중동권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아랍권의 보이코트로 경제난을 겪고 있던 이스라엘과 협력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해소할 수출시장을 비(非)아랍권에서 찾아야 했다. 이런 양국의 이해관계가 FTA를 성사시킨 주요인이다. 게다가 양자간 무역협정 비준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던 미 행정부와 의회는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에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는 팀워크를 발휘했다.

    미국이 중동에서 두 번째로 선택한 FTA 대상국 역시 전통적 우방이자 대표적 친미(親美) 국가인 요르단이다. 요르단과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임기 말인 2000년에 FTA를 체결했다. 이는 지금까지 미국이 다른 중동국가와 FTA 협상을 전개할 때 중요한 모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요르단이나 이스라엘 등 중동 국가들은 미국과의 교역 규모나 상대적 경제 규모로 볼 때 FTA를 통해 상호 이익을 기대하기에는 ‘체급’부터 맞지 않았다. 2000년 현재 요르단의 경제 규모는 미국의 1000분의 1, 이스라엘의 경제 규모는 미국의 86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당시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수출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39%와 15%나 되는 데 비해 미국의 수출시장에서 두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와 0.1%였다. 미국 두 나라와 FTA를 추진해야 할 경제적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FTA라는 특혜무역협정을 내세운,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러브콜은 그후에도 계속됐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이어 바레인, 오만, 아랍에미레이트(UAE) 등으로 FTA 대상국을 넓혀갔고, 부시 대통령은 한걸음 나아가 2003년에 아예 중동 전역과의 자유무역협정, 이른바 중동자유무역지대(MEFTA) 건설을 주창했다.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이 그동안 양자간 FTA를 맺었거나 협상이 진행 중인 중동 국가와의 FTA는 중동자유무역지대 내 하위협정으로 자리잡고, 이라크와 레바논 등을 제외한 중동 전역에 특혜무역지대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특히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의 FTA 정책이 부시 대통령이 선언한 ‘테러와의 전쟁’과 맞물리면서 안보전략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9·11테러가 발생하자 당시 로버트 죌릭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WTO 체제를 토대로 하는 다자무역 규범을 강화하는 것만이 테러집단이 오판하지 못하도록 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도하개발어젠더(DDA) 협상과 같은 다자간 무역 라운드를 조속히 타결하는 것이 테러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범세계적으로 천명하는 동시에 국제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는 반(反)테러 분위기를 도하라운드 타결의 촉매제로 삼으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개적 선언과는 달리 실제로는 9·11 이후에도 미국의 무역정책은 DDA 협상의 조속한 타결보다는 FTA 등 특혜무역협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지역무역협정이 늘어날수록 다자간 자유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차이

    이러한 과정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부시 행정부가 무역정책과 안보 이슈와의 연계, 즉 무역정책을 통한 안보동맹의 공고화라는 정책 목표를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의 무역정책이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적성국(敵性國)과의 군사적 대치 상황과 연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냉전 붕괴 이후 경제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양자간 외교관계 아래서 정치적 고려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동맹국인 파키스탄의 섬유나 의류에 대해 얼마든지 관세를 낮춰줄 수 있다. 또한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는 자국 유권자들을 의식해 동맹국인 영국이나 한국과의 외교 마찰을 각오하고 철강 수입에 대해 대대적인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를 발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안보와 무역의 연계 움직임이 9·11테러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무역정책과 안보정책의 연계전략은 부시 대통령에게 무역촉진 권한을 새롭게 부여한 ‘2002년 무역법’에도 나타나 있다. 이 무역법은 ‘오늘날 무역협정은 냉전시대의 안보 조약과 동일한 목적을 수행한다’고 선언하고 ‘국제무역에서 미국의 지도력이 세계적으로 열린 시장,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를 조장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로버트 죌릭 무역대표부 대표는 9·11테러 직후 IIE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의 무역정책이 대(對)테러 전쟁의 일부라는 점을 역설했다.

    미국이 내세운 무역과 안보의 강력한 연계전략이 실제로 9·11 이후 미국의 무역정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미국의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사례가 미국이 호주 및 뉴질랜드와 각각 추진해온 FTA이다.

    미국은 양고기나 낙농제품 등 민감한 품목 때문에 미국측 농업 생산자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음에도 호주와의 FTA를 강력히 추진했지만, 비슷한 여건임에도 미국 농업에 미칠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뉴질랜드와의 FTA에는 오히려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뉴질랜드가 이라크전쟁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인 반면 호주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중동 국가 중 첫 번째 FTA 상대국으로 선택된 모로코가 9·11 이후 테러집단의 행위를 누구보다 먼저 비난하고 나선 점 또한 미국 무역대표부 관계자들을 고무한 사건이었다. 로버트 죌릭 무역대표부 대표는 미 의회나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FTA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러한 사례를 강조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도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FTA를 추진하는 부시 행정부에 명분을 실어줬다.

    신붓감 고르는 기준

    IIE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FTA 파트너를 고르는 데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조건은 국내 정치적 요소, 경제적 요인, 상대국의 경제개혁 의지 및 WTO에서의 협력 여부, 외교정책적 고려 등 대략 네 가지로 나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국이 FTA 상대국을 선정할 때 의회는 물론이거니와 미국 내 기업인 그룹, 농업 생산자 단체와 같은 이해 관계자 그룹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이다. GDP 상승효과와 같은 총량적 국익(國益)을 강조하기보다는 의회 비준 여부를 판가름할 국내 유권자의 지지를 가장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들이 하나같이 향후 WTO 협상에서 미국의 잠재적 동맹세력으로 간주되는 점도 눈에 띈다. 이는 최근 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간의 연대와 공조가 날로 힘을 얻는 상황에서 미국이 개도국들과 개별적 FTA를 통해 무엇을 노리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FTA를 맺은 국가를 지역 내 전초기지(outpost)화함으로써 다자간 무역자유화로 가는 디딤돌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별기준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이 FTA 정책과 관련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중동의 경우를 보자. 바레인은 미국이 의도하는 중동평화에 적극 협조했을 뿐 아니라 미국이 요구하는 각종 규제완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반면 이집트는 미국식 경제 개혁조치를 받아들이는 데 상대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보인 데다 WTO 협상에서도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과 관련해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냄으로써 불편한 관계를 초래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바레인은 2004년 미국과 FTA를 체결했고 얼마 전 미국 상원에서 비준 절차가 마무리됐다. 반면 이집트는 이미 주변 30여 개국과 FTA를 체결한 ‘FTA 선진국’이지만 대미(對美) FTA에서만큼은 아직 후보 리스트에 올라 있을 뿐이다. 미국의 싸늘한 반응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처럼 미국이 FTA 상대국을 고르는 데 적용하는 기준을 놓고 보면 한미 FTA를 추진하는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동기가 어떠한 것인지, 나아가 이 협상이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도 짐작할 수 있다. 한미 FTA에 따른 산업분야별 득실이나 협상 전략 등의 문제는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차치하고서라도 이 중차대한 협상이 동아시아의 지역주의와 한국의 무역자유화 협상에 시사점을 짚어보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기로 하자.

    우선 한미 FTA는 최근 동아시아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지역주의 흐름에 대단히 민감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동아시아는 그동안 유럽 국가들이 경제통합을 넘어 정치통합에 박차를 가하고 WTO 출범 이후 오히려 지역무역협정이 급증하는 지역주의의 범세계적 확산이라는 추세에서 유일하게 벗어나 있었다.

    한국과 경제동맹, 일본과 군사동맹

    심지어 동아시아 국가들과 비슷한 저발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중남미 국가들이 1960년대부터 중미(中美) 공동시장이나 안데스 조약 등을 통해 국제질서의 지역화 물결에 동참한 것을 보면 동아시아의 경우는 세계적 추세로 보더라도 분명 예외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후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무역자유화를 내세운 지역주의 움직임은 APEC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후원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APEC이 당초 구상대로 무역자유화 일정을 추진하지 못한 채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자 미국은 최근 들어 다자간 경제협력기구를 통한 동아시아의 헤게모니 구축에 흥미를 잃은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동아시아 지역주의와 관련해 가장 관심을 모았던 움직임이 ASEAN+3(ASEAN+한·중·일)과 지난해 출범한 동아시아정상회의(EAS)다. ASEAN+3은 동아시아에서 잠재적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 모두 참여한 지역협력체다. 동아시아정상회의는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던 동아시아연구그룹(EASG)이 내놓은 구상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게다가 두 지역협력체가 아시아 각국이 너나없이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사실상 방관자로 일관한 APEC 등 미국 주도의 경제협력체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감히 미국 없는 지역주의를 거론해?

    한미 FTA는 이렇듯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지역주의 흐름과 긴장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을 전망이다. 미국은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전 총리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무산시키고 동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일본이 내놓은 아시아통화기금(AMF) 구상마저 좌절시킨 바 있다. 미국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대항마로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 개별적으로 FTA를 추진하고 있으며, 바로 한미 FTA가 이러한 흐름에 분수령을 이룰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 싱가포르, 한국 등과 각각 FTA를 맺는 것이 ASEAN을 놓고 벌이는 중국과 일본의 지역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적절히 견제하고, 최근 APEC을 대체할 가능성마저 보이는 동아시아의 지역주의 흐름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0년 싱가포르와 FTA 추진에 합의해 2003년 이를 성사시켰으나 일본만큼은 FTA 대상에서 배제했다. 1980년대 주일 미국대사나 미국 상무부 관계자들 중 일본과의 FTA 가능성을 언급하는 정책 담당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때마다 일본의 농업문제가 갖는 정치적 민감성과 미일 경제적 밀월이 EU 등 외부 세계로부터 불러올 정치적 파장 등에 대한 우려가 이런 논의를 막았다.

    그러나 미일 관계는 이미 이러한 무역자유화 구상에 기대지 않고도 사상 유례없는 밀월관계를 과시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미국의 마지막 남은 목표는 결국 한국이다. 게다가 최근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방법을 둘러싸고 빚어진 이견 때문에 한미동맹의 재구조화(reconfiguration)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이것이 부시 대통령의 무역촉진권한(TPA) 종료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이라는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 정부가 FTA 카드를 꺼내든 배경이다.

    이는 결국 미국의 후원 아래 작동한 APEC이라는 품을 떠난 동아시아의 지역주의를 용인하는 대신 (중국을 제외하고) 한국 및 일본과는 각각 FTA를 통한 경제협력의 공고화 및 군사동맹 강화를 통한 정치적 밀월관계 형성을 통해 양자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미국의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동북아시아의 전통적 동맹국가인 한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한층 공고히 다짐으로써 동아시아 질서를 관리해 나가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한미 FTA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미 FTA 몰아붙이는 미국의 노림수

    지난 2월 한미 FTA 공청회가 농민단체의 시위로 중단됐다.

    그뿐만 아니라 한미 FTA는 앞으로 WTO 무대에서 벌어질 다자간 무역협상과도 연계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FTA를 다자간 무역협상을 촉진하는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부시 행정부 무역정책의 기조가 그대로 살아 있는 데다 이미 1988년 체결한 미-캐나다 FTA의 서비스 교역 관련 협정문 조항을 UR협상에서 십분 활용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FTA는 FTA고, WTO는 WTO’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미국과의 FTA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개방 품목과 개방 폭은 다가올 DDA협상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측이 한미 FTA의 조기 타결을 위해 민감한 분야인 농산물을 제외하자고 제안한다면 미국은 농산물의 예외를 인정해줄 경우 DDA협상에서 보호주의적 농업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EU를 설득할 근거가 없어진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는 실제로 미국-캐나다 FTA협상에서 양국간 합의에 따라 중요 농산물과 축산물 등을 제외한 전례가 있음에도 한미 FTA에서 농업분야의 민감 품목을 제외하는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농업 분야에서는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기존 DDA협상 전략이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 얼마나 심도 있게 사전 검토됐는지는 알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 농업이 다자간 협상과 양자간 협상을 통해 이중적으로 개방 파고(波高)에 직면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

    촉박한 시간표 때문에…

    한미 양국이 이미 협상 개시를 선언한 현 단계에서 한미 FTA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때늦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칠레나 한-싱가포르 FTA와 달리 한미 FTA가 동아시아 전체의 정치경제에서 갖는 의미를 입체적으로 이해함으로써 한미 FTA를 단순히 양국간의 문제가 아닌 한중, 한일 문제,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정치경제적 위상과 관련된 문제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장 한미 FTA는 한국을 주요 수출시장으로 삼아온 중국과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선을 미국으로 전환하는 효과를 냄으로써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견제와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한일 FTA가 과거사 문제에서 불거진 민족감정이라는 장애물을 만나 사실상 좌초 상태에 빠져 있고, 김대중 정부 당시 우리가 제안했던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구상 또한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미 FTA가 ‘1년 내 타결’이라는, 누가 보더라도 촉박한 시간표 아래 추진된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사실 한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어떠한 경제협력 구상도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이나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중일 패권 경쟁 등 한반도 주변의 정치적 어젠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9·11테러 이후 더욱 두드러지는 미국의 무역정책과 안보정책의 전략적 연계는 이런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한미 FTA에 담겨 있는 지정학적 의미는 도외시한 채 스크린쿼터 축소나 농업시장 개방 등을 내세운 일방적 반대 목소리나 GDP 상승효과 등 계량경제학적 분석을 기초로 한 당위적 찬성 주장만이 난무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한미 FTA가 가져올 효과의 일부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협상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총체적 재구조화에 끼칠 영향에 비하면 지엽적이거나 적어도 부분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한미 FTA 몰아붙이는 미국의 노림수
    成耆英
    ● 1968년 서울 출생
    ●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서강대 석사(국제경제학)
    ● 시사저널·주간동아·신동아 기자
    ● 現 영국 워릭대 석사과정(국제정치경제학)


    결국 한미 FTA가 어떤 형태로 체결되든 한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전략의 전초기지가 될 수밖에 없는 구도 아래 놓인 형편이다. 물론 이 전초기지를 누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양국 정부, 아니 한국 정부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 FTA 협상 못지않게 ‘한미 FTA 이후’에 대한 중장기적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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