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 꺼풀 벗겨본 미국 2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빈곤할수록 살찌는 미국 식탁 아이러니

  •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2/4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미국에서는 빈곤할수록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패스트푸드와 같은 저가 음식은 열량만 높고 영양가는 부실하고, 건강식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업계는 불필요한 소송의 남발을 막는다는 명목 아래 강력한 로비를 통해 ‘음식소비행위에서 개인의 책임 법안’(일명 ‘치즈버거 법안’)을 두 번이나 하원에서 통과시켰지만, 상원에서 번번이 기각되는 해프닝도 낳았다.

미국처럼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조차 비만은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굴레인 것일까. 미 질병통제예방센터가 2004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3%가 비만으로 드러났으며 과체중 인구까지 합하면 66%나 된다. 1980년 비만인구가 15%에 불과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비만인구에 있어 단연 세계 1위다.

‘프리건族’의 등장

비만의 책임을 업체에 돌리는 시각은 한국인에겐 아직 낯설다. 비슷한 사례로 담배소송이 자주 거론되는데, 2007년 한국의 1심 재판부는 흡연이 소비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해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미 대법원은 피해 환자에게 승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비만의 책임 소재를 놓고 치열한 법적공방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 사회에서는 쓰레기를 뒤져 먹고 사는 신인류 ‘프리건족(freegan族)’이 등장했다. 거지를 상상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들은 대량생산·대량소비를 주축으로 하는 미국의 물질문명에 반기를 내걸고, 환경을 걱정하며 쓰레기를 뒤지는 ‘의식 있는 거지’들이다.



‘프리건’은 자유(혹은 공짜)를 뜻하는 ‘free’와 채식주의자의 일종인 ‘vegan’의 합성어로 1990년대 환경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의 지류로 시작됐다. 이들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제품의 구매를 거부하고, 버려지는 물건의 재활용 원칙을 고수한다. 프리건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주로 대학교육을 받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다.

‘LA타임스’에 보도된 넬슨씨 사례를 보자. 연봉이 수억원에 달하던 그는 몇 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건이 됐다. 그는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끼니 때마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그러나 누가 봐도 멀쩡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매년 생활비로 10만달러(약 1억원) 이상을 지출했지만, 이제는 2만5000달러(약 2500만원)로 줄었다.

애리조나 주립대의 한 연구팀이 미 농무부(USDA)의 의뢰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식량 및 식품의 40~50%가 소비되기 전에 버려진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만 연간 430억달러(약 43조원)어치에 달한다고 하니 쓰레기를 뒤져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한 기자는 한 달 동안 프리건들을 동행취재하며 스스로 프리건 체험을 했다. 제과점에서 버려진 쓰레기 봉지 안에서 신선한 베이글이 쏟아져 나왔다. 프리건 운동단체인 ‘미국의 두 번째 수확(America´s Second Harvest)’은 이렇게 수거한 음식으로 1년에 250만명의 굶주린 사람을 먹인다고 한다.

누군가는 배불리 먹고 누군가는 쓰레기를 뒤지는 현실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부자가 배불리 먹고 빈자가 쓰레기를 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비만은 오히려 가난을 통해 대물림된다.

굶주림과 비만의 패러독스

미 농무부가 2002년 실시한 조사에서 빈곤선 이하 계층에 속한 가정일수록 비만아동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으며 소득이 증가할수록 그 비율은 떨어졌다. 미 비만협회(American Obesity Association)에 따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과 같이 백인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소수인종의 비만도가 훨씬 높다.

미국에서는 이를 ‘굶주림과 비만의 패러독스(hunger-obesity paradox)’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돈이 없으면 충분한 음식 섭취를 할 수 없으므로 비만의 가능성이 줄어들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더 굶주린 자가 비만이 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패스트푸드와 같이 열량은 높고 영양가는 부실한 음식일수록 값이 싸고, 과일이나 야채와 같은 건강식품은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워싱턴 주립대 공공보건센터가 2004년 미국 임상영양학회지(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비만을 단지 식습관의 ‘선택’ 문제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빈곤층은 경제적 비용 때문에 건강한 식단을 선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달리 말해, 절약이 비만을 부른다는 것이다.

2/4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목록 닫기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댓글 창 닫기

2021/05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