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호

‘쓰러진 자유’이란 대선 분석기

美 의회조사국 보고서

  • 번역· 김재영│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redfoot@donga.com│

    입력2009-07-30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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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진 자유’이란 대선 분석기

    민병대가 쏜 총에 맞아 숨진 이란여성 네다를 추모하는 장면.

    6월12일 치러진 이란 대통령선거는 이란의 최고 권력자를 뽑는 절차가 아니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도입된 이슬람공화국 헌법상 최고통치권자는 성직자들이 뽑는 ‘최고지도자’다. ‘정교일치(政敎一致)’를 구현하는 최고지도자와 공화정을 실현하는 직선 대통령의 이중 권력구조가 이란 신정(神政)체제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보통 이란 체제를 권위주의라고 하지만 사실 정치권력은 유능하고 안정적이며 상당한 수준의 권력 균형과 대중 참여도 보장된다. 이슬람 혁명 이후 빠짐없이 총선이 치러졌으며 심지어 이라크와의 전쟁 중에도 선거가 중단되지 않았다.

    신정체제, 이중 권력구조

    현재 이란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는 198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 사망 이후 ‘전문가위원회(국가지도자 운영회의)’에 의해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 전문가위원회는 최고지도자의 업무를 감독하며 필요하면 최고지도자를 교체할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의장이다. 최고지도자는 막강한 공적 권한을 갖고 있다. 군통수권자로서 군사령관과 국가안보회의(NSC) 위원을 임명한다. 헌법수호위원회 위원 12인 중 절반과 이란 최고사법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임명권도 갖는다.

    헌법수호위(위원장 아마드 자나티)는 내각의 입법이 이슬람 율법에 적합한지 검토하고 선거 때 적법 후보자를 선정하며 선거 결과를 최종 확정한다. 최고지도자는 최고사법위나 의회가 대통령 해임을 건의할 경우 이를 결정하는 권한도 갖는다. 또 의회와 혁명수호위원회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국정조정위원회(위원장 라프산자니)의 위원도 임명한다.

    대통령은 의회의 인준을 받아 내각을 구성하며 주로 행정과 경제문제를 담당한다. 최고지도자에 종속되는 지위이긴 하지만 상당한 권한을 발휘한다. 실제로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이 1997~2005년 집권하면서 주류 보수파는 시련을 겪었다. 보수파는 차근차근 정권 재탈환 작전의 시동을 걸었다. 2004년 2월 총선에서 혁명수호위가 개혁파 인사 3600여 명의 후보 등록을 불허하는 측면지원 속에 보수파가 51%의 지지율로 290석 중 155석을 차지해 승리했다.



    2005년 6월 대선에서 강경보수파 인물인 아마디네자드의 등장은 보수파에게도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개혁파가 후퇴하면서 보수파의 당선이 점쳐졌고 그중에서도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중앙 정치무대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아마디네자드 당시 테헤란시장이 1차 투표에서 라프산자니 후보(21%)에 이어 19.5%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결선투표에서도 61.8%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아마디네자드의 깜짝 등장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취임 이후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거침없는 언변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2005년 10월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고, 2006년 12월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핵개발 프로그램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과 함께 확고한 반미전선을 형성했다. 이란 내부에서도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이란 중산층과 도시의 고학력 지식인들이 정부에 비판적이었다. 대학생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반(反)아마디네자드 시위를 벌였다.

    경제정책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임금 인상, 서민 대출금리 인하, 농민 부채탕감, 사회보장 및 보조금 확대 등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농민과 도시 서민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이번 재선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석유안정화펀드’가 고갈됐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사상 최초 TV토론

    6월12일 대선을 앞두고 개혁파의 전망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2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개혁파 하타미 전 대통령은 역시 개혁파인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가 출마의사를 밝히자 대권 도전을 철회하고 무사비 전 총리를 지원하기로 했다. 5월 500여 명이 대선 예비후보로 신청했고 혁명수호위는 이 가운데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보수파), 모센 레자이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보수파), 무사비 전 총리(개혁파), 메디 카루비 전 의회 의장(개혁파) 등 4명을 최종 후보로 확정했다.

    선거운동 기간 중 테헤란에서는 정치사회적 제한이 일시 완화되면서 활기가 넘쳤다. 이전 대선 때보다 훨씬 뜨거운 선거전이 펼쳐졌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대선 후보 간 TV토론이 열려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6월3일 아마디네자드 후보와 무사비 후보의 ‘빅2’ 맞대결이 백미였다. 무사비 후보 부인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나오는 등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고 4000만~5000만명이 시청했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6월9일 “아마디네자드 후보의 상대 후보 모욕과 의혹 제기, 거짓말에 대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란에서 고위지도자가 최고지도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 서한은 이번 선거운동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쓰러진 자유’이란 대선 분석기

    대선 결과에 불복해 반정부 투쟁을 선언한 미르 후세인 무사비 후보(가운데 두 팔 벌린 인물)가 집회에서 지지자들의 열띤 성원에 답하고 있다.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무사비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 전날인 6월11일 밤 무사비 후보 지지자들은 테헤란 주요 도로에서 인간 띠를 형성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마디네자드 후보의 재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경제위기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실업 등으로 농민과 도시 빈민들의 지지가 이탈하고 있다는 분석도 등장했다. 선거운동 막판에 무사비 후보를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자 이란 정권이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하마드 자파리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벨벳 혁명을 노리는 어떤 시도도 분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거 결과에 대해 아마디네자드 후보와 무사비 후보 사이에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이며 과반득표자 없이 결선투표로 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투표율이 높으면 무사비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과거 선거에서 개혁 성향 이란인들이 보수 일색의 후보들에게 실망해 투표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의외의 결과와 부정선거 의혹

    6월12일 투표가 시작되면서 기록적인 참여율을 보이자 ‘녹색혁명’을 낙관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3900만명이 참여해 투표율이 85%에 달했다. 하지만 투표가 종료되면서 무사비 후보의 승리 전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경찰과 바시즈 민병대가 테헤란 전역에 배치됐고 개표가 진행 중이던 내무부 청사는 봉쇄됐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도 불통됐다. 투표 완료 3시간이 채 못 돼 내무부는 아마디네자드 후보가 62.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무사비 후보는 33.75%를 얻는 데 그쳤다. 이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아마디네자드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선거를 지켜본 많은 사람은 즉각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3900만 표가 수작업으로 개표됐다는 것에 의문을 보였다. 개표 전에 내무부 관리들에 의해 투표함이 옮겨졌다는 보고도 있었다. 파장이 커지자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혁명수호위가 의혹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라면서 법적 통로를 통해 불만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명수호위는 650여 건의 부정 사례를 접수했다. 무사비 후보 측은 △야당 개표 참관인의 활동 방해 △시라즈, 타브리즈 등에서의 투표용지 무배포 논란 △아마디네자드 후보에 대한 TV 선거광고 추가 허용 △언론의 편파적 선거보도 △아마디네자드 선거운동 진영에 바시즈 민병대 개입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6월20일 헌법수호위는 낙선한 대선후보들을 불러 선거 결과와 부정 의혹에 대해 논의했고, 22일 부분 재검표 결과를 발표했다. 헌법수호위는 “최소 50개 지역에서 유권자 수보다 많은 표가 나오는 등 일부 부정사례가 있었지만 대선 결과를 번복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헌법수호의의 조사가 선거과정의 적법성을 검토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시간벌기였다고 분석했다. 무사비 후보 측은 선거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이 정치체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독립적인 국제 선거감시단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광범위한 선거부정이 있었다는 관측이 많다. 이란 정권이 선거 결과에 개입할 만한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예전 선거에 불참했던 유권자들을 개혁파가 성공적으로 동원하면서 이란 정부가 상당한 위협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 결과를 놓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박빙의 승부를 피하기 위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아마디네자드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입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핵 프로그램의 추진과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적 태도 등 이란의 정책방향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미국 등에 보낸 것일 수도 있다. 하메네이가 국민 여론을 잘못 읽었거나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이란 정권을 교체하려 한다는 편집증적인 의심 때문에 하메네이가 악수를 뒀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현실적이며 유효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대대적인 선거부정은 저지르기도 어렵고 은폐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란에서 젊은 층과 개혁 성향 유권자가 상대적으로 적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농촌과 도시 서민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독실한 신앙심과 반부패 메시지, 국가안보 이슈에서 강경한 민족주의적 입장은 이란인 다수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관측도 많다. 박빙 승부를 예측했던 여론조사도 도시 중산층이 과다 대표돼 믿을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이제는 실제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이란 정권과 무사비 지지세력 사이의 교착상태가 어떻게 해결될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6월12일 대선 결과는 1979년 이란 혁명 이래 전례 없는 수준의 대중시위를 촉발시켰다. 결과가 나오자 무사비 지지자들은 테헤란 등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재선거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직후 이란 내부무는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집회를 금지했지만 시위는 테헤란은 물론 마시하드, 타브리즈, 시라즈, 이스파한 등 주요 도시에서 계속됐다. 외국 언론인 입국 제한과 통신수단의 통제로 정확한 시위 참가 규모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대체로 테헤란에서 벌어진 시위 참가자는 수십만 명 규모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맞불시위도 전개됐지만 시위 규모는 대개 1만명 이하에 불과했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도 무사비의 도전을 돕겠다고 선언했다. 아야톨라 유수프 사네이 등 고위 성직자들도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게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라고 압박했다. 국제사회는 이제 현재의 교착상태가 어떤 식으로 해결될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 상황을 30년 전 이란 이슬람 혁명 또는 20년 전 중국의 톈안먼(天安門) 유혈사태와 비교하기도 한다.

    제2의 이란 혁명?

    선거 결과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이란 정부는 강하게 대응했다. 6월14일 100명 이상의 개혁파 인사가 체포됐다. 무사비 전 총리도 가택연금됐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그는 15일 테헤란 혁명광장 시위현장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시위를 독려했다. 이날 시위는 평화롭게 시작됐지만 시위 이후 일부 시위대와 바시즈 민병대원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바시즈 민병대가 발포하면서 최소 7명이 숨지는 유혈참사가 발생했다. 15일 테헤란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돌과 벽돌을 경찰에게 던지고 차량에 불을 질렀다. 경찰은 최루가스 등으로 응사했고 야간에는 두 차례 대학 기숙사를 급습했다. 16일 밤이 되자 테헤란 가가호호의 지붕에서 ‘알라 우 악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의 시위방식이 30년 만에 재현된 것이다. 18일에는 시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다른 개혁파 지도자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하타미 전 대통령이 이끄는 온건 성직자 그룹인 ‘전투적 성직자 연합(ACC)’은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란 정치체제의 공화주의적 측면이 무너질 수 있으며 정체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타미 전 대통령은 또 “국민들의 표를 지켜내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쓰러진 자유’이란 대선 분석기

    부정선거 논란으로 궁지에 몰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19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금요예배 연설에서 시위 중단을 촉구하고 “시위가 계속될 경우 상응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시사했다. 그는 선거부정 의혹을 일축하며 “(1위와 2위의) 득표 차가 1100만 표에 이르는데 1100만 표를 어떻게 바꿔치기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우리의 적들은 명확한 승리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슬람 혁명에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서방국가들을 비난했다.

    무사비 지지 세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0일에도 시위를 계속했다. 정부는 최루탄, 물대포, 공포탄 등을 쏘며 초강경 진압으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정부의 입장이 강경해지고 혁명수비대까지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21일 이후 시위가 잦아들었다. (※주 : 한동안 잠잠하던 시위는 7월9일 수천 명이 거리로 나오면서 재개됐다.) 이제 정권이 대중의 불만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지, 개혁파 세력은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얼마나 탄압을 견뎌낼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사회도 이란 사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서유럽 등 여러 곳에서 선거 결과에 항의하고 시위대에 대한 무력 사용을 비난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해외에 거주하는 이란인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이라크 하마스 터키 인도네시아 등의 일부 지도자와 친이란 분파는 아마디네자드 후보의 당선을 축하했지만 유럽 지도자들은 선거 결과, 특히 시위대에 대한 폭력 사용에 비판적이었다. 19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연설에서 선거개입의 배후로 지목받은 영국은 특히 불쾌함을 표시했다.

    오바마의 딜레마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반응은 조심스러웠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사태와 선거부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또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핵문제 해결을 위해 이란과 접촉하겠다고 밝혔다. 이란 상황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딜레마를 안겨준 것 같다. 그는 이란에 대한 내정 불간섭과 인권 및 자유라는 미국적 가치를 강조할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싶은 듯하다.

    미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미국이 이란 문제에 간섭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정부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켜 시위대의 생명을 더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인들의 민족주의적 성향, 미국과 열강의 내정간섭을 받아온 역사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의 대응이 너무 유화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특히 시위대에 대한 무력 사용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6월16일 오바마 대통령은 CNBC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국가안보 관점에서 누가 당선되든 역사적으로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과 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 상황을 핵 문제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6월19일 미 하원은 이란 시민들을 지지하고 “이란 정부와 친정부 민병대의 시위대 강경 진압 및 인터넷 등 통신수단 폐쇄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같은 날 상원도 결의안을 통해 이란의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의회의 강경한 태도와 안팎의 비판에 따라 미국 행정부의 대응도 이후 다소 날카로워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이란은 자국민에 대한 폭력과 불공정한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람공화국의 종언?

    이란의 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이란 정치사회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반면 정치체제의 근본 속성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녹색혁명’이 임박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계속되는 시위 상황을 보면서 정권의 정통성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고 분석한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군부 내 동조자들에 의한 친위 쿠데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들은 현재의 상황이 ‘이슬람공화국’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한편 대중시위가 이슬람공화국 자체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이란 선거체계의 적법성이 훼손됐다는 불만일 뿐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들은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결국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행동과 성명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최고지도자 지위를 떠받치는 이슬람법학자통치론(Velayet e faqih·정부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후견하는 체제)이 이란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 테러 지원, 그리고 다른 국가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란과 계속 접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의 교착상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미국의 대(對)이란 정책의 방향이 복잡해질 수 있다. 민주화의 관점에서 현 상황을 낙관하는 사람들은 시위 물결을 지켜보면서 이란 국민이 더 이상 현존 사회협약에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핵개발과 테러 지원,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한 자세 등으로 자초한 국제적 고립을 이란 국민이 더 이상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정부가 이 여론을 단기적으로는 억압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대중 불만과 정통성 상실로 현 정치체제가 유지될 수 없을 것으로 인식한다.

    반면 회의주의자들의 인식은 다르다. 이번 선거 결과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이란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지 않는 신호라는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유화적 제스처를 취해봐야 ‘미국이 이란의 현 정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진짜 속셈을 감추고 있다’는 이란 정권 핵심층의 의심은 해소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6월19일 연설에서 하메네이가 시위 중단을 요청하고 강경 진압을 경고한 것은 이란 정부가 현 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모종의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민주화의 분출이든 강경 진압의 파국이든 이란과 협상하려는 미국의 접근 방향은 근본적인 전환을 피할 수 없다.

    한편 이란 정부가 협상이라는 해결책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만약 시위의 불길이 계속 타오른다면 하메네이와 그의 정부 내 추종자들이 현 정치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아 파벌을 재편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권정치체제는 유지되고 정치와 시민 사이의 균형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미국의 대이란 정책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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