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현대판 세계 각지 식물이 다 모인 ‘노아의 방주’

영국 환경산업의 상징 에덴프로젝트

  • 성기영│해외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

    입력2009-12-07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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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판 세계 각지 식물이 다 모인 ‘노아의 방주’
    수백 년 전부터 영국의 대표적 여름 휴양지로 알려진 콘월 지방의 세인트 오스텔(St. Austell). 좁다란 지방도를 꼬불꼬불 돌아 에덴프로젝트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축구장 서너 개 크기는 족히 넘을 듯한 거대한 비닐하우스다. 언뜻 크고 작은 벌집처럼 보이기도 하고 초대형 비누거품처럼 보이기도 하는 8개 돔이 어깨를 서로 기대고 길게 이어진 모양을 내려다보면 우선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에덴프로젝트는 2000년 영국 정부가 기획한 밀레니엄 프로젝트 중 하나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비닐하우스 같지만 실제로 이 초대형 식물원의 지붕을 이루는 건축자재는 흔히 불소수지필름(ETFE)이라 하는 플라스틱 신소재다. 에덴프로젝트는 ‘비옴(biome·동식물군)’으로 불리는 이 초대형 식물원을 중심으로 펼쳐진 대규모 생태학습장을 일컫는다.

    커다란 산골짜기 하나를 통째로 식물원으로 바꿔놓은 것 같은 이 생태공원에는 영국 환경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꺼번에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이 환경 프로젝트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환경과 산업을 유기적으로 결합했다는 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환경보전이라는 메시지를 눈으로 보고 지나가는 전시시설이 아니라 정교한 교육 콘텐츠로 만들어 내놓았다는 데에 다른 나라의 환경 프로젝트가 따라잡지 못하는 독창성과 우수성이 있다.

    현대판 세계 각지 식물이 다 모인 ‘노아의 방주’

    거대한 비닐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에덴프로젝트 전경.

    ‘전세계에서 가장 큰 온실’을 자랑하는 에덴프로젝트를 방문한 관람객을 위한 안내 책자에는 전체를 돌아보는 데에 적어도 4시간 걸릴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영어가 서툰 외국인이 이런저런 안내문을 읽어가며 돌아보려면 한나절도 모자라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열대우림관. 야자수, 코코넛나무 등 열대우림에서만 볼 수 있는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이 전시관은 기후 조건이 전혀 다른 섬나라에 살고 있는 영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전시관 중 하나다.



    하루에 1m씩 자라는 나무

    영국의 여름 날씨는 서늘하고 건조하다. 최고 기온이 대략 25℃를 넘어서면 폭염주의보가 내리고 건조한 날씨 탓에 ‘찌는 듯한’ 무더위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이런 영국에 살면서 열대우림 기후를 실제 경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온실 내 평균 습도는 늘 90%, 평균 온도는 24℃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탓에 전시관 입구에는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처럼 두꺼운 겉옷을 보관해주는 별도의 보관실이 있고 돔 안에는 관람객들이 무더운 실내 분위기 때문에 고통을 호소할 것에 대비해 별도의 냉방실까지 갖춰져 있다.

    들고 다니는 카메라 렌즈에는 늘 김이 서려 있게 마련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글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절반쯤 가다보면 ‘앞으로 몇 분 더 가야 하니 실내 습도와 온도를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여기서 발걸음을 돌리라’는 친절한 안내문까지 붙어 있다.

    특히 열대우림관을 꼼꼼히 둘러보다 보면 평소 TV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어쩌다 볼 수 있는 진기한 동식물을 어렵지 않게 만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보유한 수종만 1100종에 달한다. 그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씨앗을 가진 식물도 있고 하루에 1m씩 자라는 키다리 나무도 있다.

    영국 중부 버밍엄에서 휴가차 이곳을 찾았다는 앤드루 클라우트(57) 부부는 왕실이나 고궁 경내처럼 조화롭게 정비된 고급 정원이 주로 인기를 누리는 영국에서 이런 정글 같은 식물원을 접할 수 있다니 놀랍다고 말했다. 클라우트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여러 번 여행해봤지만 이런 열대 식물원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시간이 부족해 열대우림관을 다 돌아보지도 못하고 내려오는 길에 야자수 아래 비스듬하게 놓여 있는 서핑보드가 눈에 띈다. 그냥 바닷가 분위기라도 내려는 장식품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열대우림관에서 실제로 자란 발사(balsa)나무를 잘라 만든 서핑보드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가볍고 단단해 모형 항공기나 뗏목 제작에 주로 쓰이는 발사나무로 제작한 합판에 천연 염색을 해 만든 서핑보드다. 주로 유리섬유(fibreglass)를 이용해 만드는 일반 서핑보드와 달리 이 발사나무 보드는 100% 천연 분해되는 재질이어서 사용 후에도 지구상에 쓰레기 공해를 전혀 유발하지 않는다.

    에덴프로젝트가 내세우고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이 서핑보드의 예가 단적으로 보여주듯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한마디 모토에 함축되어 있다. 스스로 생산하고 수확해 사용한 후 폐기물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대우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어진 바로 옆 전시관은 지중해관이다. 지중해성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을 소개하고 있다고 해서 단순히 스페인, 그리스 등 우리에게 익숙한 지중해 연안 유럽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중해관에서는 멀리 남아프리카와 캘리포니아 연안 등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서 가져온 진기한 씨앗들을 뿌려 10년 넘게 가꿔온 결과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중해성 기후로 분류되는 지역은 땅 면적으로만 따지면 지구 표면의 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자라는 식물의 종류는 지구상 전체 식물의 20%나 된다. 그만큼 식물에 관한 한 다양성의 보고라는 말이다.

    “식물원이 아니라 도서관 같다”

    겨울에도 7~8℃ 이상을 유지하고 여름에도 25도를 넘지 않는 기온과 건조한 날씨 덕분에 이런 기후에서만 자랄 수 있는 지중해성 작물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작물들은 올리브나 와인용 포도, 게다가 와인 병마개를 만드는 코르크나무처럼 유럽인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중해관에서 만난 콜롬비아 출신의 안드레아 듀케이(43)씨는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치게 마련인 식물 종자들을 하나하나 자녀들에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수백 종류의 과일나무와 열매들을 그냥 보기 좋게 전시했다기보다는 각 종자가 나름대로 이야기를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요. 식물원이라기보다는 도서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중해관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는 화학섬유를 이용해 촘촘하게 짠 그물을 전시한 것이 눈에 띈다. 겉보기에는 무슨 설치미술 작품 같은데 덧붙여놓은 설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수백 년 전 칠레의 한 마을에서 안개를 이용해 물을 생산하던 일종의 집수시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벽 공기를 타고 촘촘한 그물에 안개가 맺혀 물방울이 되면 이를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파이프로 연결해 농업용수로 사용했던 것이다. 물이 귀한 고산지역에서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고안해낸 아이디어인 셈이다.

    이러한 19세기적 생존 방식은 오늘날 21세기적 형태의, 이른바 ‘안개 타워’ 아이디어로 재창조됐다. 최근 녹색 디자인 공모전에서 선을 보인 안개 타워는 칠레 서쪽 해안가에 세워질 400m 높이의 나선형 타워를 말한다. 이 타워를 통해 400m 상공에서 취수한 물을 지상으로 가져온 후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인 칠레 농업지역에서 관개용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중해관에서는 이렇게 지중해 기후에 적합한 식물뿐 아니라 건조한 지중해 기후에 적응하는 삶의 방식의 과거와 현재를 스토리 텔링 기법을 동원해 관람객에게 전해준다. 식물원보다는 도서관 같다는 느낌은 바로 이런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같은 시각, 지중해관 한복판에 마련된 간이극장에서는 실제로 어린이와 부모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전문 이야기 강사의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린이들은 식물도감에 밑줄을 쳐가며 읽는 것 같은 지루함이 아니라 동화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판타지와 흥미를 느끼며 ‘비옴’을 탐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식물원의 규모와 다양한 식물군에 입이 벌어진 관람객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은 에덴프로젝트 주변에 흩어진 대형 야외정원이다. 연면적 13ha, 축구장 30개를 합쳐놓은 넓이에 해당하는 이 야외정원은 이 프로젝트 전체 면적의 4분의 3을 차지한다는 것이 에덴 측의 설명이다.

    에덴프로젝트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내부 전시물, 그러니까 소프트웨어만 돌아보고 감탄하고 돌아서기 쉽다. 그러나 야외 구조와 하드웨어까지 꼼꼼히 둘러보면 남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까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에덴프로젝트는 환경과 교육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크리에이티브(creative) 산업’을 주도하는 영국이 자랑하는 대표적 현대 건축물이라는 점에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이나 런던 아이(London Eye)만큼 관광객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건축학적인 맥락에서 따지면 이들 시설에 못지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현대 건축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첨단 플라스틱과 첨단 금속의 결합

    에덴프로젝트의 책임 디자인을 맡은 건축가는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가인 니콜라스 그림쇼(Nicholas Grimshaw)다. 니콜라스 그림쇼는 유럽 대륙과 영국을 잇는 도버해협 횡단열차의 런던 기착역인 워털루의 설계를 맡았던 주인공이다. 400m가 넘는 역사(驛舍)에 기하학적 모양의 유리 지붕을 입혀 건축계의 찬사를 받은 경력이 에덴프로젝트에도 그를 끌어들인 것이다.

    당초 설계를 맡은 디자이너들에게 떨어진 임무는 딱 두 가지였다. 최소 면적에 최대의 식물군을 담을 것, 그리고 최소한의 철골 구조를 사용해 최고로 튼튼한 구조물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동시에 인공식물원이니만큼 채광이나 온도, 습도 등 기후 조건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것이 현재 벌집 모양의 8개 돔 구조로 이뤄진 ‘비옴’이다. 벌집 모양의 육각형 구조가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견고한 기하학적 모형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이에 따라 외부에는 비중이 가벼운 특수 철골을 이용해 수백 개의 육각형으로 골격을 만들었다. 가장 큰 육각형 골조는 지름이 무려 11m에 달한다. 그리고 그 위에 탄력성 좋은 첨단 투명 플라스틱인 불소수지필름(ETFE)을 씌워 햇볕이 충분히 공급되도록 했다.

    현대판 세계 각지 식물이 다 모인 ‘노아의 방주’

    전 세계의 모든 나무가 집합한 에덴프로젝트. 보유한 수종만 1100개에 이른다.

    특히 ETFE는 유리 이상의 강도와 유연성을 동시에 갖춰 에덴프로젝트와 같은 대형 식물원을 짓는 데 최적의 자재로 꼽히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화제를 모았던 수영장 워터큐브나 주경기장 냐오차오에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TFE는 유리 무게의 100분의 1도 안 되지만 유리보다 더 많은 빛을 통과시켜 온실을 만드는 데 최적의 재질로 꼽힌다. 또 화학적으로는 정전기가 없어 먼지와 새들의 분비물이 빗물에 쉽게 씻겨나가는 자정(自淨)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각각의 패널에는 세 겹으로 붙인 ETFE가 설치되어 공기베개 모양을 이루기 때문에 이중창보다 양호한 보온효과를 내는 것도 장점이다.

    이렇게 유리보다 훨씬 가벼운 첨단 플라스틱과 첨단 금속을 이용한 설계 공법을 결합해 조립식 완구 모양의 첨단온실을 만들어냈다. 이 온실은 실내에 기둥 하나 세우지 않고도 최고 100m 높이까지 돔을 지탱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초현대식 건축기법이 동원된 대형 프로젝트가 이 산골짜기에 들어선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에덴프로젝트가 위치한 세인트 오스텔은 대도시와 거리가 멀어 일반 관광객을 유치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주변 지형이래야 거친 바위산이 전부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런 첨단 환경 프로젝트와는 애당초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10여 년 전 에덴프로젝트가 들어선 이 지역은 이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무 쓸데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당초 이 지역은 도자기용 점토를 캐내던 광산 지역으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 도자기산업의 발전과 함께 급성장하면서 160년간이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 지역은 도자기산업이 쇠퇴하면서 버려진 폐광으로 전락한다. 지역 경제 역시 걷잡을 수 없는 침체 국면으로 빠져든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50만명의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었지만 인구의 23%가 연금생활자였고 1인당 GDP도 영국 평균의 6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 후 이 지역은 영국 4대 빈곤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폐광지역이다보니 지질과 지층이 모두 불안정해 변변한 건물을 짓기도 힘들었다. 토양과 배수시설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도무지 해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밀레니엄 씨앗은행’

    바로 인근에서 대규모 조경공사를 벌이던 한 기업가가 이 버려진 땅에서 새로운 기회를 엿본 것도 이 무렵이었다. 현재 에덴프로젝트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네덜란드 태생의 팀 스미트가 이 대역사에 처음으로 팔을 걷어붙인 주인공이다.

    그는 토양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폐광에서 나온 폐기물과 음식 쓰레기 등 유기물을 합성해 인공 토양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이렇게 8만3000t이나 되는 인공 토양을 만드는 동시에 바위산을 깎아내는 안정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경사진 산 중턱을 깎고 다져 식물원을 만드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비누거품 모양의 온실이었다. 거품처럼 유연한 구조물을 만들어내면 지면의 불안정성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무렵 에덴프로젝트는 영국 정부가 야심만만하게 추진해온 새천년 프로젝트의 하나로 채택됨으로써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겨우 부지가 결정되었을 무렵인 1997년 말부터 에덴프로젝트에 필요한 식물을 모으고 기르기 위한 대역사가‘밀레니엄 씨앗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5000종이 넘는 세계 각지의 식물이 이곳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전체 식물 중 반 이상은 씨앗으로 뿌려져 에덴의 온상에서 자라기 시작했고 묘목으로 건너온 종자들도 10년이 넘는 기간 수십m 높이로 자라났다. 당초 이 프로젝트를 현대판 ‘노아의 방주’로 불렀던 것도 이런 일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현대판 ‘노아의 방주’는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만큼이나 인류에 재앙을 몰고 올지도 모를 지구 온난화와 환경 파괴를 경고하는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와 비정부기구(NGO)를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수만 개에 달하는 환경단체가 수십만 건의 이벤트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유독 에덴프로젝트가 미래형 환경 사업으로 각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에덴프로젝트가 보고 듣고 실험하는 것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연령과 세대를 넘어 환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네트워크화해 끊임없이 일거리를 벌여나간다는 데에 있다.

    단순히 식물원이나 환경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에덴프로젝트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기업형 조직 시스템을 갖추고 온갖 프로젝트를 생산해 이를 시장과 소비자에게 내다 판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수입을 기초로 공적 기능을 갖는 또 다른 환경 프로젝트를 생산해 사회에, 특히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직원 수 450명의 혁신적 중소기업이 환경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는 것이다.

    환경과 교육의 결합

    현대판 세계 각지 식물이 다 모인 ‘노아의 방주’

    2001년 개장 이후 1000만명 이상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에덴프로젝트. 환경생태공원이자 거대한 자연학습장으로서 다음 세대의 환경인력을 양성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이 프로젝트가, 자연파괴가 가져올 공포와 두려움을 강조하는 대부분의 환경 캠페인과 달리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애정을 일깨우도록 함으로써 다음 세대의 환경인력을 양성한다는 데에 있다.

    에덴프로젝트는 열대우림 보존을 호소하기 위해 아마존 강 유역 훼손이 인류에 가져올 재앙을 추상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설탕, 커피, 콜라, 초콜릿 등 이 지역에서 나는 수목군에 우리가 얼마나 의지한 채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열대우림에서 우리가 누리는 혜택을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임무다.

    이렇게 되면 4초 만에 축구장 하나 크기 꼴로 파괴되어가는 열대우림 지역을 보존해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는 것이 에덴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환경 지킴이들의 믿음이다. 이런 믿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코어(core)’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에덴프로젝트 내의 교육센터다. 환경과 교육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유기적으로 결합해놓은‘코어’는 상당히 기이하고 독특한 외양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벼락 맞은 우주선 같기도 하고 다른 편에서 보면 폭격 맞은 잠실야구장 모양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해바라기 속에 들어있는 씨앗 배치 구조를 본떠 지붕 모양을 만들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늦가을 이맘때쯤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를 들여다보면 독특한 규칙성을 가진 부드러운 나선형 구조를 볼 수 있다.

    흔히 피보나치 나선형으로 불리는 구조로, 해바라기 씨앗뿐 아니라 달팽이 껍데기나 솔방울 같은 자연물에서 보이는 독특한 디자인을 건물 지붕에 정교한 형태로 재현해놓은 것이다. 이 복잡한 거미줄 같은 지붕을 만들어내는 데는 목재 골조와 구리가 쓰였다.

    여기에 들어간 자재 역시 조달 과정에서부터 지속가능성을 고려했음은 물론이다. 목재는 스위스의 침엽수림에서 가져온 붉은 가문비나무를 특수공법으로 가공해 낭비되는 자투리를 없앴고 구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친환경적인 광산으로 알려진 미국 유타주의 빙험 캐니언 광산에서 공급받았다.

    건축 과정뿐 아니라 에덴프로젝트가 이 건물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왜 ‘코어’를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건물’ 중 하나로 자랑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건물 설계 과정에서부터 지붕에는 태양열 시설을 설치하고 건물 내벽에는 폐신문지를 재활용해 만든 단열재를 사용해 열 손실을 최소화했다. 지붕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모아 건물 내 화장실에서 100% 재활용하고 흘러내리는 빗물은 석회암을 통과해 여과되도록 설계해 지붕 골조에 포함된 구리 성분의 토양 침투를 막도록 해놓았다.

    건물 내부 중앙 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지름 3~4m의 투명 유리공 모양 안에 들어있는 이름 모를 식물들이다. 그리고 그 유리공 위에서 뻗어 나온 문어다리 모양의 주름관으로 연결된 또 다른 작은 시험관들.

    수입의 80%가 관광객 입장료

    공상과학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 기이한 구조물에는 ‘식물 엔진’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무릎 높이의 풀포기들이 발생시키는 산소가 어떻게 에너지로 바뀌어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시설이다. 투명 유리공 안의 식물들이 움직일 때마다 주름관 끝에 연결된 시험관 안에서는 나무 인형들이 까닥거리기도 하고 줄에 걸린 나비인형이 춤을 추기도 한다.

    아무런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순수하게 식물이 내뿜는 산소만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이 실험시설을 보고 있노라면 ‘풀이 숨을 쉰다’라는 말이 어떤 시 구절이나 광고 카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레토릭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8살과 6살짜리 두 아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은 엘리엇 슨(38)씨는 “다른 과학박물관도 가봤지만 에덴프로젝트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이 대단히 독특하고 창의적”이라며 “두 시간 넘게 차를 타고 달려 온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숨 쉬는 풀’은 ‘코어’가 가진 교육적 기능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수십 가지의 독창적 전시물들이 그득한 이 환경천국에서 어린이들은 때로는 그림을 그리고 때로는 과학실험에 참가하면서 기후 변화나 생물학적 다양성 같은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들에 대한 감수성을 하나하나 익혀나간다.

    초대형 첨단 식물원뿐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자족성’을 내세운 이러한 시설을 동시에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에덴프로젝트 조성에 쏟아 부은 예산만 해도 1억3000만파운드(약 2500억원)에 달한다. 프로젝트 조성 예산의 절반 이상을 복권기금이나 지역개발기금과 같은 공적자금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완공 이후 사정은 확 달라졌다. 연간 수입 2200만파운드 중 관람객 입장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0%에 달한다. 외부 기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독자적 사업을 벌여나갈 수 있는 자족적 기반을 갖춘 것이다.

    에덴프로젝트의 성인 한 명 입장료는 16파운드, 대략 3만원이 넘는 돈이니까 결코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은 일반에 무료 공개한다는 대원칙을 유지하는 영국의 문화정책에 비춰보면 에덴프로젝트처럼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시설에서 이처럼 높은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비싼 입장료에도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디즈니랜드처럼 먹고 놀고, 그리고 탈것이 없는 순수한 환경교육 단지에 영국인들이 쏟는 관심은 놀랄 만하다. 2001년 개장 후 지금까지 줄잡아 1000만명 이상이 에덴프로젝트를 찾은 것으로 집계된다. 매년 100만명 이상이 몰려든다는 이야기다.

    방학이나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비옴’ 안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어깨를 부딪치며 다녀야 할 정도로 늘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이제 10년을 바라보는 수천 그루의 나무가 앞으로 더욱 우거질수록 관람객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교육적이기는 하지만 언뜻 딱딱해 보이는 에덴프로젝트를 비싼 돈 내고 찾는 영국인들은 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어가는 원천이다.

    에덴프로젝트가 스스로를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라 일컫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도대체 에덴프로젝트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에덴 측은 두 가지의 정형화된 답을 내놓는다. 하나는 ‘교육자선단체(educational charity)’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다 간단치 않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개념이지만 이 프로젝트가 벌어들인 수십억원의 돈을 어떻게 쓰는지 들여다보면 이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다. 2007~08 회계연도의 경우 에덴프로젝트를 통한 전체 수입의 80% 정도를 환경 및 교육 관련 자선사업에 지출했다. 운영 및 유지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은 다 합쳐도 수입의 20%를 넘지 않는다.

    학습장애 학생들에게 탁월한 효과

    에덴프로젝트는 이렇게 번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적’ 기업 활동을 벌인다. 우선 다음 세대 지구의 주인인 어린이들에게 이 병들어가는 땅을 되살리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발가락 사이에 진흙을 묻히자’는 슬로건을 내건 이벤트는 컴퓨터, 텔레비전 등 온갖 종류의 스크린에 빠진 채 살아가는 어린이들을 다시 자연으로 불러내기 위한 캠페인이다. 진흙, 풀, 그루터기 등 자연이 남겨놓은 천연 놀이시설에 혁신적 아이디어를 결합해 새로운 놀이터를 만들어내고 어린이들이 이러한 놀이를 통해 스스로 창조적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도록 돕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도덕적 질서에서 발 디디고 설 땅을 찾지 못한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들에게 환경 보전과 관련한 다양한 직업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일자리를 알선해주기도 한다.

    에덴프로젝트는 이렇게 지역사회의 불우 청소년들을 환경 프로그램에 끌어들여 다양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이들이 갖고 있던 소외감과 반항의식을 긍정적 성취감으로 바꿔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에덴프로젝트의 ‘사회적’ 기업 활동은 영국 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쟁의 상처로 아직까지 신음하는 코소보에 가서는 나무를 심고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는 케냐와 인도에 가서는 어린이들을 모아 쌀과 옥수수를 기르게 한다. 지금까지 이런 ‘농사짓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어린이만도 전세계 40개 학교 2만5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지구 반대편에 사는 피부색이 다른 어린이들과 같은 종류의 먹을거리를 심고 보살피면서 핵 실험과 유혈 테러로 얼룩진 지구촌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에 흙을 묻혀 함께 일구고 가꿔나가는 지구촌을 배워나간다. 이러한 실험은 이미 여러 곳에서 열매를 맺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영국 엑스터 대학이 내놓은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프로젝트는 참가 아동들의 공동체 정신을 높이는 한편 특히 학습장애를 겪는 어린이들에게 탁월한 학습 능력 향상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에덴프로젝트의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각종 공연, 스포츠 행사들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가을밤 재즈 콘서트나 마라톤 대회 등도 연중 이벤트 캘린더에서 빠지지 않는 행사들이다. 이러한 각종 행사들이 콘월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효과도 엄청나다.

    에덴프로젝트의 500명이 넘는 직원 중 85%가 이 지역 출신이다. 숫자로 따지자면 에덴프로젝트가 2001년 개장 이래 콘월 지역에 가져다준 경제효과만도 2조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집계된다. 폐광 위기에 놓인 버려진 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뀐 것이다.

    에덴프로젝트는 최근 또 다른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지난 9월 노동당 전당대회 연설을 통해 정부-민간 협력을 통해 1만개의 녹색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고 공약하면서 이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의 민간 파트너로 에덴프로젝트를 직접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영국 총리의 이러한 언급은 기후 변화 이슈를 둘러싼 외교무대에서 각종 국제협력 어젠다를 주도하는 영국 정부가 에덴프로젝트가 갖는 환경정책적 함의뿐 아니라 국내 경제효과까지 보증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단순히 에덴프로젝트가 환경보전센터 같은 소극적 의미를 넘어 기후 변화가 몰고 올 새로운 경제환경에서 새롭게 등장할 중요한 행위자의 모델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갖는다.

    산업혁명에 이은 기후혁명

    에덴프로젝트는 이미 수많은 중소기업은 물론 교육시설 등과도 협력 시스템을 갖추고 취업 기회를 얻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각종 환경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줌으로써 녹색 일자리를 제공하는 가교 노릇을 해왔다.

    에덴프로젝트의 관리 담당 책임자인 게이너 콜리는 지난 여름 이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그린 탤런트(Green Talent)’프로젝트를 주최해 미래 세대들과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공유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정부의 이번 제안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에덴프로젝트는 현재 영국 정부의 제안을 어떻게 구체적 사업으로 만들어낼 것인지를 놓고 사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게이너 콜리는 향후 민관 협력 환경사업의 방향과 관련해서도 이미 유사한 프로젝트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문제를 던져준 만큼 이제 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변화의 주역으로 나서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가 청사진을 내놓은 ‘녹색 일자리 만 개 창출 프로젝트’에는 에덴프로젝트뿐 아니라 지난 2007년 찰스 황태자의 제안으로 기후 변화 이슈에 공감하는 1000여 개의 기업이 공동참여해 만든 ‘긴급구조 네트워크(Mayday Network)’ 같은 단체도 참여한다. 한마디로 정부와 기업, 교육기관이 녹색경제를 이끌어가는 삼두마차 노릇을 하는 이상적인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에덴프로젝트가 내세우는 궁극적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향후 수십 년간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어놓을 기후변화를 둘러싼 새로운 도전에 앞장설 행동대원들을 길러내겠다는 것이다.

    에덴프로젝트와 영국 정부는 기후 변화로 인한 글로벌 경제 여건의 변화는 그야말로 혁명적 신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데에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산업혁명에 맞먹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에도 동의한다.

    250년 전 산업혁명에 불을 붙였던 영국이 이번에는 기후 혁명에 앞장서겠다며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이러한 혁명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협력 시스템 안에 바로 에덴프로젝트가 위치해 있다. 에덴프로젝트를 통해 기후 혁명을 주도할 보병 부대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15년 전 에덴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창안해 현재도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는 팀 스미트는 “이제 산업혁명 당시처럼 기계에 투자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기후 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오직 사람에게 투자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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