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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유학생의 영국 일기 ⑧

춥고 불편한 ‘진짜 영국 집’에서 새록새록 추억 만들기 시작!

  • 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춥고 불편한 ‘진짜 영국 집’에서 새록새록 추억 만들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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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군의 유혹’ 앞에 무너지다

춥고 불편한 ‘진짜 영국 집’에서 새록새록 추억 만들기 시작!

정원 숲 사이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희찬이와 희원이.

그런데 마침 일이 풀리려는지, 베어스덴에 맞춤한 가격의 2층집이 하나 나왔다. 알고 지내던 교수님 부부가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하면서 당신들의 집을 시중 가격보다 싸게 빌려주겠다고 제안하셨다. 아이 둘 데리고 좁은 플랫에서 쩔쩔매며 사는 내 사정이 영 딱해 보인 모양이다. 사실 이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많이 망설였다. 교수님 댁은 지은 지 60년쯤 된 전형적인 2층 하우스인데, 플랫에 비하면 집이 꽤 추웠다.

영국 집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늘 춥다는 것이다. 단열이란 개념이 아예 없는 건지, 아니면 영국 사람들이 원래 추위를 안 타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겨울에 영국 하우스에 들어가보면 추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손이 시려 장갑을 벗을 수 없을 정도다. 겨울에도 늘 후끈후끈한 아파트에서 살던 우리 체질로서는 도저히 버티기 어려운 게 영국 집이다.

그러니 베어스덴의 집으로 이사 가는 게 맞는 결정인지 쉽사리 확신할 수 없었다. 썰렁한 하우스에서 1년에 9개월이 겨울인 스코틀랜드의 으슬으슬한 추위를 고스란히 감당할 걸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러나 나와 달리 아이들은 처음 가봤을 때부터 이 집을 좋아했다. 아이들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계단도 있고, 정원도 있고, 다락방도 있는 무지무지 좋은 집’이자 ‘집 안에서 숨바꼭질도 할 수 있는 진짜 멋진 집’이라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말을 들으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열다섯 살 무렵이었나, 그때의 우리 집도 서울 강북의 평범한 단독주택이었다. 마당에는 장미나무와 잔디, 잡초가 뒤섞여 자라고, 어두컴컴한 지하실에는 연탄이 여러 층으로 쌓여 있는 그런 집 말이다. 겨울이면 난방비를 아끼느라 온 가족이 안방에 이불 펴고 잠을 잤다. 연합고사를 치르고 고1이 되기 전, 석 달간의 긴 겨울방학 동안 마루의 연탄난로 앞에 앉아 폼 잡으며 ‘여자의 일생’이나 ‘적과 흑’ 같은 고전들을 끙끙거리며 읽곤 했다. 마당에서 키우던 잡종 진돗개가 잔디밭을 온통 파헤쳐놓아 엄마가 짜증을 내시던, 마당 한 구석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 가끔 큰 쥐가 튀어나오던 그 춥고 오래된 집….



그러나 이제 내 기억에는 추운 겨울과 무서운 쥐보다는 온 가족이 안방에 이불 펴고 자던, 그리고 연탄난로에 밤을 구워 먹던 따스한 추억만 남아 있다. 이왕 오래된 나라 영국에 와서 사는 마당에, 내 아이들에게도 그런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힘든 결정적인 이유도 있었다. 바로 ‘학군’이었다. 베어스덴은 글래스고 전체에서 가장 학군이 좋기로 소문난 동네였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아줌마’인지라 학군 좋은 동네라는 말이 주는 유혹은 영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베어스덴에 있는 초등학교를 가보니 시설이나 방과 후 활동 등 모든 면에서 글래스고 시내의 학교들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예를 들면, 이 학교에서는 4학년(한국식으로 따지면 2학년 2학기)부터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악기 레슨을 받을 수 있다. 방과 후 활동도 축구 배드민턴 테니스 원예 미술 과학 합창 체스 등등 한국 학원에 있는 종목들은 다 망라돼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이사를 결정하고 6월 중순, 작은 정원이 있는 베어스덴의 2층집으로 과감하게 이사를 했다.

안방에 요강이라도 들여놔?

워낙 인건비가 비싼 나라가 영국인지라 ‘포장이사’ 같은 건 상상도 못하고 모든 이사를 교수님 댁 도움을 받아가며 혼자서 했다. 일단 이사하기 한 달 전쯤 가스와 전기, 전화 회사에 전화해 이사를 통보해야 했다. 뭐든 굼벵이처럼 느린 영국에서는 최소 7일 전까지 이사를 통보하지 않으면 전기나 가스 고지서가 이사하는 날짜에 맞춰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 회선은 이사하기 한 달 전에 전화를 해서 새로 인터넷 회선을 연결할 날짜를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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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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