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록펠러 재단의 기금을 지원받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비디오아티스트 고 백남준(위쪽). 최근 ‘기부 서약’운동에 참가한 블룸버그 뉴욕시장(왼쪽 아래)과 오라클 래리 엘리슨 회장.
한 사례로 ‘크리에이티브 캐피털/워홀 재단 미술작가기금’을 보자. 이것은 현대미술에 관한 책, 논문, 미디어물의 출판을 지원하는 기금인데, 운영은 ‘크리에이티브 캐피털’이라는 예술지원단체가, 경제적 지원은 ‘앤디워홀 재단’이 맡는다. 1960년대 미국의 팝아트를 선도한 앤디 워홀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예술정신 계승을 목표로 하는 이 재단은, 워홀이 남긴 유작의 판매와 라이선싱으로 벌어들인 돈을 미국 미술계에 환원한다.
워홀 재단은 아티스트 개인보다는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미술단체를 주로 돕는데, 크리에이티브 캐피털은 이 재단이 지원하는 미술단체 중 하나다. 앤디워홀 재단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이들은 미국의 미술사, 미술이론 영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현대미술 출판물을 제안한 학자 및 아티스트를 선별해 지원한다.
특히 올해는 크리에이티브 캐피털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앤디워홀 재단이 1500만달러의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를 수여한다. 매칭 그랜트는 최근 한국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형식으로, 크리에이티브 캐피털이 조성한 기부금만큼 앤디워홀 재단이 또 지원하는 기부 방식이다. 이러한 지원금 제도나 기부활동은 베스트셀러를 내기 어려운 현대미술 책들이 미국에서 계속 출판되고 있는 중요한 이유다.
소시민의 저력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동부 지역을 대상으로 클래식 음악을 방송하는 라디오 방송국 WCPE의 자금운영은 미국의 기부문화가 어떻게 순수예술의 대중화를 선도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WCPE의 슬로건은 ‘청취자가 지원하는 방송국’이다. 정부기관이나 학교 등 교육기관의 지원을 받지 않고, 개인 및 기업 차원의 기부금으로만 운영된다. 이를 위해 매년 두 번 기부금 조성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벌어진다. ‘에인절 챌린지(Angel Challenge)’라는 위트 있고 귀여운 이름의 캠페인이다. 또한 200여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의 적극적 참여로 클래식 음악이 24시간 동안 방송된다.
30여 년 역사를 지닌 이 클래식 음악 방송국의 기부금 조성 활동은 청취자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여를 유도한다. 기부자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내가 돈이 있으니 지역 방송국에 기부금을 낸다’는 자세라기보다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을 변함없이 계속 듣기 위해 정성을 보탠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매칭 그랜트는 그 지역 유지들의 기부금 액수 책정에 자주 활용되는데, 그들은 방송국이 기부자를 많이 모으면 모으는 만큼 더 많이 기부하게 된다. 즉 ‘마음에서 우러나 기부하는 지역주민이 얼마나 많은가’가 전체 기부액을 좌우한다. 다만 한도액을 미리 정해놓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