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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전문기자의 중국 미래권력 심층해부 ④

빛바랜 ‘사대천왕’의 꿈 … 두 남자는 그래도 칼을 간다

리위안차오 공산당 중앙조직부장 | 보시라이 충칭시 당 서기

  • 하종대│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빛바랜 ‘사대천왕’의 꿈 … 두 남자는 그래도 칼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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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사대천왕’의 꿈 … 두 남자는 그래도 칼을 간다
하지만 후 주석과의 인연을 계기로 승승장구한 리커창과 달리 리 부장은 중앙서기처 서기를 마친 뒤 중앙대외선전소조 1국장, 중앙대외선전소조 부조장, 중앙대외선전판공실 부주임, 국무원 신문판공실 부주임, 문화부 부부장 등 약 10년간 한직을 떠돌았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때 공청단 일부 간부들이 학생시위를 지지한 것과 관련해 류옌둥과 함께 문책을 당한 것. 당시 리커창은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에게 “학교로 돌아가라”며 여러 차례 권고해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로 인해 그는 리커창에 뒤처졌고 공청단의 5세대 1인자에서 2인자로 전락했다.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은 장쑤성 서기로 임명된 2002년부터다. 경제성장 방식의 전환 필요성에 대해 일찍이 후 주석과 교감을 나눈 그는 다른 지방 지도자들이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과학발전관’과 ‘조화사회론’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과 달리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장쑤성 서기로 취임하자마자 종전의 구호인 ‘강성부민(强省富民)’을 ‘부민강성(富民强省)’으로 바꿨다. 앞뒤 글자만 바꿔놓은 것 같지만, 전자는 물질을 우선시하고 후자는 인간을 본위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장쑤성의 발전계획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만 중시하는 방식에서 성내 전 지역이 골고루 잘사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과거 장쑤성은 경제가 매우 발달한 창장(長江) 유역의 쑤난(蘇南) 경제권, 쑤난보다는 못해도 그런대로 살 만한 쑤중(蘇中) 경제권, 역사 및 지리적 원인으로 인해 경제가 매우 낙후된 쑤베이(蘇北)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같은 성에 제1세계부터 제3세계까지가 동시에 존재했던 것.

골고루 잘사는 省으로!

그는 지역 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해 2005년 3월 ‘쑤베이 진흥을 위한 산업건설 전략’을 세우고 산업과 재정, 과학기술, 노동이 쑤난에서 쑤베이로 흐르도록 ‘4개 전이(轉移)’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 2006년 처음으로 고정자산 투자와 재정수입, 외자도입, 수출액 등 각종 경제지표에서 처음으로 쑤베이가 쑤난의 성장속도를 추월했다.



나아가 ‘조화사회’가 단순한 정치 구호에 머물지 않도록 4개 분야, 25개 항목으로 된 ‘조화사회 표준지표’를 처음 고안했다. 1인당 GDP는 물론 도시의 가처분 소득, 실업률, 엥겔계수, 녹지비율, 분배구조, 촌민 자치율까지 넣어 만든 종합지표다. 이처럼 노력한 결과 장쑤성은 최근 1만명당 살인사건 발생률이 1.02명으로 일본보다 치안상태가 더 좋은, 안전하고도 살기 좋은 지역으로 변모했다.

그는 제17차 당 대회에서 당장(黨章)에 지도이념으로 올라간 ‘과학발전관’도 적극 추진했다. 2004년 4월 장쑤성의 민영 철강회사인 톄번(鐵本)이 서우두(首都)강철의 2배 크기로 불법 확장하려 하자 이를 과잉투자로 규정해 아예 톄번의 문을 닫아버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000여 개의 과잉투자 항목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덕분에 장쑤성의 과잉투자는 확실하게 바로잡혔다. 원 총리가 이를 거시조정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았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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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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