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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과 한일경제협력

新한일협력 시대 ‘박태준 정신’이 필요한 이유

“물건 훔치면 도둑이지만, 마음 훔치면 원하는 것 다 얻는다”

  • 허남정│㈜에스포유 회장 前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njhuh1211@hanmail.net

新한일협력 시대 ‘박태준 정신’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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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경제협력의 심벌, 포항제철과 박태준

필자는 일본 경제가 절정을 구가하던 1982년 12월 와세다대에서 1년간 연구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모 일간지 칼럼을 통해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현 포스코 명예회장)을 처음 만났다. 제철보국에 대한 그의 신념과 애국심, 그리고 공사(公私)를 분명히 하는 그의 청렴한 기업경영방식에 감명 받고 그가 회장을 맡고 있던 (사)한일경제협회에 입사했다.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일경제협력의 현장을 뛰어다니며 청춘을 보냈다. 헤아려보니 일본 출장 횟수만 200회가 넘는다.

나는 한일 경제협력 현장의 소중한 경험을 정리해 이를 후배들에게 전하고자하는 마음으로 2009년 여름 공직에서 물러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일본학 박사과정에서 젊은이들과 어울려 일본을 다시 공부하며 오랜만에 캠퍼스 생활을 즐기고 있다. 주 두세 차례 학교에 가 주경주독하고 있다. 한일 신협력 시대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협력 경험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한일 경제협력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 중심에 포항제철(2002년 포스코로 사명 변경)을 만든 박태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한민국 산업화와 공업화의 시동을 건 기업이 포항제철이며, 포항제철은 일본과의 경제협력 성공 모델이기도 하다. 한일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신뢰관계 구축이 우선되어야 하며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경 그리고 도움에 대한 감사를 느끼며 이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함을 실감한다.

박태준이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1960년대 산업 황무지 한국 땅에서 일관종합제철소인 포항제철을 세운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이것은 대통령 박정희의 비전과 결단, 박태준의 신념 그리고 일본의 전폭적인 협력이라는 삼위일체가 조화를 이루었기에 가능했다.



포항제철의 탄생과 발전에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격려가 있었지만, 박태준은 일본의 주자학 양명학의 대가인 야스오카 세이도쿠(安岡正篤)와 신일본제철의 회장과 ‘경단련’ 회장을 지낸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1987년 작고)의 은혜는 평생 잊을 수 없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술회했다.

야스오카는 박태준이 일본 와세다대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존경하던 학자로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도 일본의 재계와 정계에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공교롭게도 박태준의 포항제철 탄생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의 일관제철소 건설은 1950년대 자유당 정부 시절부터 다섯 차례나 시도됐지만 번번이 무산되었고, 국내외 전문가와 언론들도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가 중 박태준이 가장 존경하며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도 한국에서 제철소는 안 된다고 했다. 제철소를 짓기에는 한국의 경제기반이 취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1967년 장기영(한국일보 사주·1977년 작고)이 부총리로 있을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지시로 포항제철 건설사(史)가 시작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미국 코퍼스(Koppers)사를 간사로 한 대한국제차관단(KISA)이 구성되기는 했으나 자본과 기술 공여 문제에 진척이 없었다. 세계은행과 미국 수출입은행이 자금 확보가 어렵다고 결론 내리는 바람에 박태준은 결국 KISA의 멤버가 아닌 일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1969년 세계은행(IBRD)이 내놓은 보고서의 결론은 ‘한국의 종합제철소 사업은 경제적인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17년 후 박태준이 런던 출장길에 당시 IBRD 보고서를 쓴 J. 지퍼 박사를 찾아가 만났다. “그 보고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박태준의 질문에 그는 “지금 보고서를 쓰더라도 결론은 같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박태준이라는 변수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잘못된 보고서가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태준이 마음을 훔쳤던 철강 기업 CEO들

“일본과 손잡으면 대일청구권 자금을 포항제철 건설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박태준의 건의를 박정희가 전폭 지지하자, 박태준은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야하타 제철의 이나야마 사장과 신일본제철의 나가노 시게오(永野重雄) 사장(훗날 일본상공회의소 회장 역임), 일본강관의 아카사카 다케시(赤坂武) 사장 등 일본철강연맹 주력사 사장들을 두루 방문해 교섭을 벌였다. 이때 야스오카는 일본 재계의 실력자들에게 박태준을 도와줄 것을 권유했을 뿐 아니라 제자들을 동원해 관계(官界) 대신들을 만날 수 있게 일정을 잡아주었다.

이러한 노력이 주효해 박태준은 일본철강연맹으로부터 한국에 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으며 자본과 기술지원을 하겠다는 약정서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약정서가 1969년 8월27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경제각료회담에 제출돼 양국 정부 차원에서도 한국이 제철소를 짓는 데 일본이 지원한다는 원칙에 합의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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