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형항공기 국산화 최고책임자

중국 정부가 자본금 190억위안(약 2조8500억원)을 들여 설립한 이 기업은 앞으로 이륙중량 100t, 승객 150명 이상의 대형항공기를 2020년까지 세계시장에 출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미국의 보잉사와 유럽의 에어버스사가 양분하고 있는 세계 대형항공기 시장을 중국의 자주 기술로 뚫어보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이다.
중국 정부가 이런 막중한 임무를 장 전 주임에게 맡긴 것은 그가 중국이 자랑하는 ‘항공 우주 분야의 젊은 1인자’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운반로켓 핵심 기술을 장악하지 못해 위성발사에 계속 실패할 때 이를 극복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그였고, 유인우주선의 성공발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그였다. ‘중화민족 천년의 꿈을 실현시킨 주역’으로 불리는 이유다.
조적은 허베이(河北)성 라오팅(樂亭) 현이지만 지린성 지린시에서 태어나 장시(江西)성에서 자랐다(한자 ‘樂’은 보통 ‘러’나 ‘웨’로 읽지만 이곳의 지명은 ‘라오’로 발음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많았다. 중국의 전통악기 얼후(二胡)를 잘 연주했고 피리도 곧잘 불어 학교 악대에서 활동했다.
학교 성적 또한 매우 뛰어났지만 문화대혁명 이후 처음으로 1977년 12월 실시된 대학입학 시험에서 뜻밖에 낙방했다. 1년을 더 공부해 이듬해 시안에 위치한 시베이(西北)공업대에 합격했다. 석사까지 마치고 1988년 4월 항공항천(航空航天)공업부 1원1부11실 공정조에서 항공 설계 및 우주개발 업무에 종사하기 시작한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중국 우주항공 개발사나 마찬가지다.
1996년 2월과 8월 발사한 운반로켓이 도중에 추락하거나 싣고 올라간 위성이 목표 궤도에 도달하지 못해 실의에 빠졌을 때, 그는 중국운반로켓기술연구원 부원장을 맡아 이듬해 5월 결국 성공시켰다. 2002년 12월에는 마흔 살의 젊은 나이에 중국우주항공과기집단공사의 총경리 겸 당조(黨組)서기를 맡아 2002년 3월 무인우주선 선저우3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하지만 항공우주 산업과 대형항공기 산업은 크게 다르다. 게다가 대형항공기 제작은 현재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단 6개국만이 가능할 정도로 첨단기술을 필요로 한다. 지난해 겨우 70~90석 규모의 중형 비행기 국산화에 성공한 중국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주공간에 우주선을 쏘아 올려 ‘중국 천년의 꿈’을 실현한 그가 대형항공기 국산화라는 또 다른 꿈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 중국은 물론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