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식의 사회화가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 금융 문제 해결을 위해 역내 회의가 빈번하게 열리는 상황에서 태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이를 통해 공동 운명체 의식이 조용히 자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화 자체가 결정력을 갖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화란 굉장히 점진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거부 반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폭제가 필요하다.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나 오늘날의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같은 예기치 못한 어려움은 사회화의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국제관계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위기가 지닌 긍정적인 역할의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여러 학자는 ‘웨이지(危機)’, 즉 위험과 기회라는 의미의 두 글자로 이루어진 이 단어에 주목했다(여기서 ‘지(機)’는 보통 ‘결정적 분기점’의 의미로 더 많이 해석된다). 위기가 발생하면 적어도 잠시 동안은 협력이 주목을 받게 되고, 따라서 치앙마이 경우처럼 그동안의 구상들은 제도화된다. 이러한 구상들은 광범위한 안보 문제가 설정한 한계선을 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협력이 제도화되면,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를 관통해 흐르던 의심은 약화되고 추가적인 금융 정책들이 양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위기가 가져다주는 혜택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와 같은 역학관계가 동아시아에서 지속되는 듯하다. 10년 전, 금융 지역주의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데 있어 위기는 그 몫을 톡톡히 해냈다. 마찬가지로, 2007~08년에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충격이 2010년에 CMIM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했다. 두 예를 통해 보다시피, 금융위기로 인해 감지된 위협 요인은 각국 정부들이 행동을 취하게 할 만큼 강력했다.
이러한 패턴이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일어나는 과정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예컨대, 이러한 과정은 어떠한 사건들의 반복에 의존하지만, 그 사건들의 발생 빈도와 시기는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위기가 진행되는 중에도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새로운 금융협약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위협이 상존하는 세계에서 한 국가의 안보 문제는 언제나 최우선적 고려 사항이기 때문이다.
사회화 효과를 통해 CMI, CMIM 등의 구상이 향후 협력 강화를 막는 장애물을 없애는 데 일조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아주 단편적이면서도 극도로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동아시아 정치에 있어 진정성이 깃든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지역 금융을 통해 축적한 성과들은 미래에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영어 원문은 http://www.globalasia.org/V6N2_Summer_2011/Benjamin_J_Cohen.html 참조)
*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