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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소설|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의 최후

동토의 붉은 별 바렌츠해에 지다

  • 진병관·김경진·신재호·전쟁소설 데프콘, 동해 및 남북 공동저자

동토의 붉은 별 바렌츠해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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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령실, 소나실입니다. 표적 3은 방위 0-1-0으로 이동중입니다. 가속중입니다.

“놈이 꽁무니를 빼고 있습니다.”

소나실의 보고에 두드코 중령이 만면에 희색을 띠며 소리쳤다. 미국 잠수함 한 척이 깜짝 놀라 황급히 도망치고 있었다. 이쪽에 위치가 발각된 상태에서 계속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미국 잠수함에 불리했다. 만약 쿠르스크가 사령부로 통신만 보내면 육상기지에서 대잠초계기를 출격시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액티브 음파였다. 그러나 쿠르스크는 표적 3을 상대로 최대출력의 음파를 쏘아보냈던 것이다. 만약 교전중이었다면 음파 대신 어뢰를 먹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격침을 의미했다.

“하지만 뜻밖이오. 이 해역에 미국 잠수함 두 척에 영국 잠수함 한 척까지 몰려올 줄은 몰랐소. 앞으로 초계활동을 더욱 강화하도록 보고해야겠소.”



“맞습니다. 전대장님. 우리 공격원잠들이 먼바다로 나갈 때까지 수상전투함 호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놈들의 초계구역을 바깥쪽으로 밀어내야만 합니다.”

랴친 대령도 이제는 분개할 수 있었다. 그는 어쨌든 불만만 늘어놓는 함장이 아님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미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한 척은 매복지역으로 끌어들여 쫓아냈지만 또다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나실, 표적 1과 2는 재탐지하지 못했는가?”

- 탐지하지 못했습니다. 최종위치에서 더 이상 음향을 포착할 수 없었습니다.

표적 2는 영국 해군의 트라팔가급 잠수함이었다. 만약 두 시간 전에 쿠르스크가 속도를 줄인 채 표류하며 뒤쪽을 체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계속 꽁무니에 붙어서 따라왔을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이쪽 위치를 발견하고 트라팔가급이 혼비백산해서 침로를 바꾸지 않았으면 자칫 충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양키들은 크레이지 이반이라고 부른다지?’

두드코 중령이 미소를 지었다. 일정한 시간마다 잠수함 침로를 바꾸다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비상정지를 하고 침묵에 들어가면 종종 서방측 잠수함들은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는 함정에 빠지곤 했다. 충돌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양키들은 이런 행동을 하는 러시아 잠수함들을 미친 이반이라고 부른다. 이반은 엉클 샘과 같이 러시아인을 지칭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함장, 좋은 전술이었소. 하지만 잠수함 지휘소에 직접 안전보고를 하지 않은 것은 자칫 문책받을 수도 있소.”

제7 전대장이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미국 잠수함과 공방전을 벌이는 과정에 랴친 대령은 잠망경 심도로 부상해야 하는 직접교신 대신 통신부이를 사용해서 응급보고만 했던 것이다. 통신 부이가 간혹 작동하지 않는 경우를 감안하면 랴친 대령은 무모한 행동을 한 셈이었다.

“알겠습니다. 전대장님. 만약 문책이 있다면 달갑게 받겠습니다.”

랴친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상황을 옆에서 계속 지켜본 전대장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전시상황이라고 가정할 때는 충분히 유효한 조처였기 때문이다. 상부에서 아무리 강요하더라도 적 잠수함을 옆에 두고 부상해서 직접 교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함장. 계획된 어뢰발사 훈련은 어떻게 하겠소?”

“지금 실시하겠습니다. 이곳은 계획된 훈련구역입니다.”

전대장은 랴친 대령의 의견이 뜻밖이라고 생각했는지 잠시 주저했다. 구소련 시절, 만약 지금과 같은 경우라면 북해함대는 망설임 없이 훈련을 실시했을 것이다. 소련이 선포한 작전해역에 미국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미국의 잘못이라고 여겨졌다. 심지어 방공군은 영공을 침범한 외국 민항기도 주저 없이 격추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추락한 그 민항기는 대한항공 소속이었고, 또 다른 KAL기는 러시아 상공에서 구 소련 전투기로부터 기관포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 표적 1과 2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오. 우리가 어뢰 사격을 실탄으로 한다면 자칫 교전상황으로 비화할지도 모르니 신중해야 합니다.”

전대장은 함장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하지는 않았다. 다만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어뢰 발사가 미국과 영국 해군에게 강력한 경고를 의미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함장도 전대장의 뜻을 깨달았는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어뢰발사훈련을 계획대로 실시하겠습니다.”

“허가합니다.”

전대장 바그리안체프 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함장이 곧 두드코 중령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제부터 부함장 두드코 중령은 공격사관으로서 어뢰공격을 맡은 것이다. 두드코가 어뢰실과 연결된 인터폰을 집어들었다.

“어뢰실! 사령실이다. 지금부터 어뢰 실탄 사격훈련에 들어간다. 1번과 2번 발사관을 할당한다. 1번 발사관은 가상표적 A, 2번 발사관은 가상표적 B에 할당한다.”

- 어뢰실입니다. 명령 확인합니다. 1번 발사관 가상표적 A! 2번 발사관 가상표적 B에 할당!

“발사관 외부해치를 개방한다!”

- 1번, 2번 발사관 외부해치 개방!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두드코 중령이 마지막 순간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제 발사는 사령실에서 직접 할 수 있었다. 케이블이 발사관에 연결된 UGST 신형 어뢰는 목표지점까지 유선유도로 제어된다. 그리고 최종 순간에 액티브 탐색모드로 전환되어 표적으로 돌진한다. 사령실의 주공격시스템에 어뢰 두 발이 링크돼 있음을 알려주는 녹색등이 깜빡였다.

“발사준비 완료됐습니다, 함장님.”

두드코 중령이 가슴에 힘을 주며 큰 소리로 보고했다.

“좋아! 발사한다! 발사는 1번, 2번 순서로!”

공격 아퍼레이터가 버튼을 누르고 압축공기가 분출하는 소리와 함께 첫 번째 어뢰가 쿠르스크를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거센 충격이 사령실을 뒤흔들었다.

눈앞에서 푸른빛이 번쩍하는 느낌이었다. 사령실에 서 있던 함장과 부함장, 그리고 7전대장과 예하 참모들이 일제히 바닥을 뒹굴었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엄청난 굉음이 잠수함을 뒤덮은 것 같기도 했다.

“하강한다! 하강한다! 전방 밸러스트 배수하라!”

두드코 중령이 고개를 흔들며 일어서는데 함장은 어느새 일어서서 잠항관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선체가 앞쪽으로 급격히 기울면서 두드코 중령이 다시 앞으로 넘어졌다.

“전방 밸러스트 탱크가 반응하지 않습니다! 트림탱크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좌현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잠항관이 잠수함의 부력을 조정하는 밸러스트 탱크를 이리저리 조작하려 했지만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전방 밸러스트 탱크가 손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부함장! 안 되겠다. 원자로를 비상정지한다. 직접 지휘하라! 서둘러. 시간이 없어!”

함장 랴친 대령이 소리질렀다. 어뢰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두드코 중령은 사령실 뒤쪽 통로를 통해서 원자로와 터빈실이 있는 후방구획으로 허둥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선체가 앞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마치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후방 구획의 승무원들은 난데없는 충격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원자로실에 뛰어든 두드코 중령이 비상정지를 지시하려는 순간 다시 강한 충격이 쿠르스크를 진동시켰다. 이번 충격은 아까보다 훨씬 강력했다.

“부함장님! 부함장님!”

두드코 중령이 눈을 뜨자 원자로실 부서장 무라체프 소령이 그를 흔들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원자로를 비상정지시켜야…”

두드코 중령이 헐떡였다.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어서 후방구역으로 피하십시오!”

선체 위쪽으로 복잡하게 얽힌 배관 파이프 곳곳이 찢기며 뜨거운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원자로를 비상정지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2차 회로인 보일러와 스팀 터빈으로 유입되는 고압 증기를 어떻게 해야만 했다. 내압 선체도 손상받은 상태였다. 군데군데 찢긴 틈에서 거센 물줄기가 솟구쳤다.

“시간이 없습니다. 모두 이곳에 남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서!”

무라체프 소령이 손짓하자 젊은 수병 하나가 달려왔다. 그리고 두드코 중령을 어깨로 일으켜 세워 7구획을 빠져나갔다. 잠수함의 진동은 계속됐고, 어쩐지 복도가 옆으로 기울어진 듯했다.

“안돼! 원자로를!”

두드코가 고개를 돌려 무라체프를 부르는 순간 그가 빠져나온 7격실 해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리고 해치 잠금용 회전바퀴가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원자로가 위치한 곳은 5구획이지만 무라체프 소령은 7구획까지 침수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잠근 것이다. 고압터빈이 6구역과 7구역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두드코 중령이 정신을 차리고서 8구역에 몰려 있는 승무원들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두가 얼이 빠진 채로 7구역으로 이어진 방수해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적인 판단과 책임감으로 7구역과 그 안쪽에 남은 승무원들은 이제 고압증기와 불어나는 물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남은 승무원들과 원자로를 정지시키기 위해 주저 없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두드코 중령이 힘없이 고개를 꺾었다.

8월 13일 04:35 러시아 해군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Pyotr Belikiy)

- 피잉!

날카로운 고주파음이 해저면을 훑었다. 초속 1,500미터의 빠른 속도로 바닥에 부딪힌 후 되돌아온 음파는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의 소나로 되돌아왔고 소나 담당자는 그 데이터를 해저지형과 비교했다.

이곳 해역의 해저지형은 모래와 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해류와 조수에 따라 자주 변한다. 잠수함 쿠르스크는 길이가 155미터에 이르고 배수량도 1만 8000톤이나 되는 거함이지만 이런 바닷 속에서 그 존재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또 다른 소나 오퍼레이터는 열심히 헤드폰으로 잠수함 내에서 발생하는 내부음향을 추적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아주 급박한 상황이지만 작업은 무척 단순하고 지루할 정도였다.

표트르 벨리키, 피터 대제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 전제군주의 이름이 붙은 이 순양함 역시 핵추진 함정이다. 함대함 미사일 20발, 그리고 함대공 미사일을 200여 발 넘게 탑재한 표트르 벨리키는 러시아 해군 최대의 순양함이다. 만재배수량 2만 4,300톤으로, 항공모함을 제외하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수상전투함이기도 했다.

표트르 벨리키를 비롯해서 우달로이(Udaloy)급 구축함, 그리고 크리박(Krivak)급 프리깃들이 계속 해저면을 향해 음파를 쏘아가며 잠수함 쿠르스크를 찾고 있었다. 이 전투함들은 적 잠수함을 탐색하고 공격하는 것이 주임무인 함정들이다. 도합 20여 척이 넘는 구조선과 전투함들이 이번 수색작전에 투입되어 있었다.

포포프 대장과 모차크 중장, 그리고 비디아예보 잠수함 기지 사령관인 쿠즈네소프 소장과 참모진은 함교에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바람이 계속 거세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천후는 잠수함 찾는 작업을 어렵게 만든다. 해면에 일고 있는 거친 풍랑이 서로 부딪히며 잡음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거함 표트르 벨리키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초속 20미터를 넘나드는 강풍에 구조선들은 몹시 흔들리는 것이 낮게 뜬 희미한 태양을 배경으로 보였다. 구조잠수정이 활동하는 데도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 분명했다.

- 사령실, 소나실입니다. 쿠르스크를 찾은 것 같습니다. 곧 다른 함정에서 교차 확인에 들어갑니다.

포포프 대장이 눈을 치떴다. 함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함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이크를 쥐는 함장의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위치가 확인되는 대로 구조선들에 통보하라.”

- 알겠습니다. 함장님.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소나 담당자의 목소리는 약간 들떠 있었다.

- 패시브 탐색반에서 구난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선체를 두들기는 것 같은 신호입니다. 내부에 생존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야? 어떤 신호인가?”

함장이 큰 소리로 반색하는 동안 옆자리에서 통신 내용에 귀기울이고 있던 포포프 제독과 일행도 긴장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패시브 탐색반이 신호를 해석중입니다. 모스(Morse) 신호인 것 같습니다. 아! 신호를 해석했습니다. 신호는 S-O-S 신호입니다.

“사령관님! 승무원들이 생존해 있습니다!”

함장이 북해함대 사령관 포포프에게 잔뜩 쉰 목소리로 보고했다. 쿠르스크가 침몰했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그래도 승무원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들 기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들려온 소나실 장교의 말은 무척 다급했다.

- 사령실! 계속 반복되는 신호내용입니다. S-O-S, B-O-D-A입니다.

“맙소사!”

포포프 제독의 시선이 함장과 마주쳤다. 러시아어로 Boda는 영어로 Water를 뜻한다. 쿠르스크가 지금 침수중이라는 뜻이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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