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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당신도 글을 잘 쓸 수 있다

‘개성파 글쟁이’ 7인의 글쓰기 노하우

‘개성파 글쟁이’ 7인의 글쓰기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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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글이든 탈고하려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열댓 번을 뜯어고친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과학을 시로 쓰리라 꿈꾼다.

최재천(동물학자)

나는 어려서부터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의 고백치곤 좀 어쭙잖겠지만 아홉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학교 교지에 몇 편 실은 것을 빼고는 어디 변변하게 시다운 시 한 편 발표한 것도 아닌 주제에 감히 어려서부터 시를 썼노라고 떠들 수 있으랴만, 단 몇 줄의 시를 쓰기 위해 며칠씩 가슴을 졸인 경험 정도는 있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한 동안은 조각에 푹 빠져 한때 미대에 가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문과를 가려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과에 배치된 이 불행한 소년에게 그래도 가장 문과 냄새가 나는 자연과학 분야는 생물학이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여 학교는 결국 서울에서 다녔지만 방학이란 방학은 거의 깡그리 고향 할아버지 댁에서 보낸 나에게 동물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위안이었다.



문학도의 꿈을 접은 지 여러 해가 지난 오늘 나는 동물행동학자가 되어 돌아와 어느 문인 못지않게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쓰는 글은 거의 모두 생명이 그 주제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생명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온 것 같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하려 했고, 생명의 모습을 깎아보려 하다가 이제는 아예 그 속을 헤집고 있다.

나는 내가 자연과학을 하게 된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과학자치고 제법 글 흉내를 낸다고 생각해주는 덕에 여기저기 겁없이 글을 뿌리며 산다. 또 자연과학, 그중에서도 동물행동학을 공부한 덕에 그냥 글만 써온 이들에 비해 소재가 풍부한 편이다. 저 광활한 자연에서 퍼오는 내 글의 소재는 쉽게 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내 글에 준 가장 큰 선물은 뭐니뭐니 해도 정확성이다. 과학논문의 글이란 문학적 수려함보다 내용의 정확한 전달이 더 중요한 법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죄로 나는 과학논문을 영어로 연습했다. 영어에 비하면 우리말은 아름답긴 해도 그리 정확한 언어는 못된다. 많은 경우 주어가 없어도 그만이고 여러모로 느슨한 구조를 지녔다. 영어로 배운 글쓰기가 내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쉽고 정확하게 쓰라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에도 그의 책들이 번역되어 잘 알려진 하버드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크고 화려한 붓을 휘두른다. 그러나 가끔 서평가들로부터 그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듣는다. 자신의 박식함을 알리는 데 급급한 나머지 때로 글을 쓰는 본분을 잊는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하버드 대학의 내 스승 윌슨은 어느 서평가로부터 다음과 같은 평을 얻었다. “윌슨의 글을 읽은 후 ‘그래서 그가 무슨 얘길 하려 했느냐’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몇 년 전 결코 짧지 않았던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여 처음으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 흉내내던 문학적인 글쓰기와 영어로 배운 과학적 글쓰기가 내 안에서 서로 뒤엉켜 싸움질만 할 뿐 도무지 게워지질 않았다.

컴퓨터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그 전쟁에 휘말려 헤어나질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일단 이 술 저 술 실컷 들이키곤 컴퓨터에 모든 걸 왈칵 토해버렸다. 그러고 나서 차근차근 주워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산고를 겪으며 그렇게 끄집어낸 내 글은 어릴 대의 문학적 감성은 조금 잃었을지 모르나 대신 간결함과 명확함을 얻었다.

아직도 우리 문인들 중 상당수는 컴퓨터가 두려워 원고지에 글을 토하고 있다 들었다. 나로서는 상상이 가질 않는 일이다. 컴퓨터는 내가 미처 잊기 전에 마구 쏟아놓은 낱말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자르고, 옮기고, 붙이고, 꿰매준다.

나는 무슨 글이든 탈고하려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적어도 열댓 번은 뜯어고친다. 그래도 아직 한번도 컴퓨터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보지 않았다. 한 문장 한 문장 소리 내어 읽으며 글이 내 귀에 음악이 되어 구르는가 점검하는가 하면 주어, 동사, 형용사, 관사가 제가끔 틀림없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확인한다. 남의 글을 읽을 때 문장이 정확하지 않으면 글맛이 딱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과학을 시로 쓰리라 꿈꾼다.



문체와 사고에 대한 몇 가지 단상

글의 설득력은 곧 그 인격의 설득력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쉼표 하나에도 개성을 담는 게 가능해진다.

정은숙(시인)

1. 말은 잘 하는데 글은 못 쓴다

디지털 시대, 하이퍼텍스트 시대가 되기 전부터 직업적으로 타인의 글을 읽어온 사람이 보기엔 현재 너무 많은 글이 난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흡사 봇물이 터진 것처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글로 적어 출판사로 투고하고 있다. 이제 출판사들은 투고 원고만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야 할 상황이다. 디지털 혁명이 글쓰기 혁명을 불러온 형국인데 문제는 타인의 글을 읽고 나면 내 자신이 먼저 착잡해진다는 것이다(보내온 원고의 내용들도 착잡한 경우가 많다).

무슨 채팅방이나 게시판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도처에 설익은 말을 글로 바꿔놓은 숱한 문자들(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함량미달이라는 뜻에서)을 만나게 되는데, 그 순간 연옥이 따로 없구나 하는 감상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남 앞에 나서려면 어느 정도 공력을 쌓은 후라야 한다. 언제까지 문화가 ‘어린 것들’의 재롱을 보는 것과 같은 날것 취향에 빠져 있어야 하는가.

그것도 십대에 한정되는 듯하지만 글을 쓰거나 매만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 말은 잘하는데 글을 못 쓴다는 느낌이 든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 만한 유명인사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브라운관에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때와는 너무 딴판인 글쓰기 앞에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것은 글쓰기보다는 말하기를 더 큰 가치로 두는 작금의 상황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2. 사는 만큼 쓴다

기능적인 글쓰기에 대한 나 자신의 혐오는 글쓰기란 결국 삶 쓰기이고 사는 만큼 쓴다는 고전적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능적인 글쓰기, 단지 의사전달 위주의 말을 대신하는 글쓰기가 위세를 드높이다 보니 쓴 것은 많은데 그 어디에도 그 사람의 생각이 들어 있지 않은 경우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흡사 누군가 머리 속에서 불러주는 것을 저 19세기 말 초기 다다이즘의 초현실주의적 자동기술법으로 받아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다다이스트의 언어는 기능적인 언어가 아니라 예술적인 언어였잖은가.

따라서 글쓰기는 결국 독창성, 사고력에 바탕을 둔 삶 쓰기이고, 글의 설득력은 곧 그 인격의 설득력으로 맥락지어진다. 필자 가운데는 쉼표 하나에도 개성을 담는 이가 있는데 이런 이들은 곧 그 삶의 태도가 그 속에 스며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상호 텍스트성에 기대면 인용조차 자신의 독창적인 글쓰기의 연장임을 우리는 추측해볼 수 있다. 어느 비평가의 ‘인용만으로 된 글짓기를 해보고 싶다’는 토로는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생각의 독창성보다는 사고의 편이성 때문에 남의 생각을 베끼는 글짓기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모든 것이 글쓰기 이전으로 환원되고 마는 것이다.

3. 쓰는 것이 삶이 되면 불행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쓰는 것이고 삶을 쓰는 것은 삶을 부단히 애쓰며 산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쓰기와 삶쓰기는 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동시에 문학적인 언어에서는 위반해야 할 그 무엇도 된다. 삶의 불행은 문학의 축복이 된다. 물론 모든 불운했던 삶이 위대한 문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시를 쓰는 눈으로 바라보는 삶, 문학을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그 전과는 다른 시각을 갖는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불행이 뜨게 하는 눈은 문학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 위대한 시인, 작가들의 삶을 한번 들여다보라. 삶의 불행을 담보로 하지 않은 작가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그런 삶의 제한적인 의미가, 제한적인 또 다른 삶에서만 공감을 주는 희소성의 시대, 순응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많은 기능적인 글쓰기가 난무하는 시대, 그런 시대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새로운 글쓰기의 진경시대를 열어갈 것임을 나는 희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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