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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경쟁력의 문화산업 현장 탐방|④영국의 영어산업

말도 팔고 책도 팔고 문화도 판다

연간 매출 1조 7000억원

  • 이나리 byeme@donga.com

말도 팔고 책도 팔고 문화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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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셀트 회장인 폴 매니스 씨는 50대 후반의 전형적인 영국 신사였다. 인터뷰는 브리티시 카운슬 런던 본부 건물에 입주해 있는 바셀트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바셀트는 앞에서도 설명했듯 영국 내 영어교육기관 중 대학교, 대학, 평생교육원, 직업훈련소 등 공공 성격이 강한 기관들의 연합체다. 나름의 기준에 따른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곳만 가입할 수 있으며, 현재 회원기관 수는 118개다. 학생 수가 증가하여 조만간 200여 개로 늘릴 예정이라고. 영어 산업 육성을 위한 영국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의 핵심은 비자 규제 완화입니다. 입·출국 편의를 증대시키고 체류 기간 연장도 쉽게 해주는 거죠. 연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취업 비자 발급도 더욱 늘릴 예정입니다. 특히 정보통신 분야 기술을 가진 학생들의 경우, 영국에 남아 일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학이나 취업·학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영국은 미국보다 진입장벽이 낮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일련의 정책을 통해, 외국 학생 수를 지금의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영국이 이처럼 영어 종주국임을 담보로 하여 외국 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니스 씨는 “문화적 영향력 향상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한다.



“영어 연수나 유학을 오는 이들은 머지 않아 자국 사회의 중추가 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영국 문화에 익숙해진다면, 또 영국 물건을 사 쓰는 데 거부감이 없어지고 영국 사회에 호감을 갖게 된다면 우리로선 그보다 더 큰 이득이 없습니다. 당장 수입이 얼마가 늘고 줄고를 떠나, 미래를 위해 가장 가치 있는 보험을 들어놓는 셈이지요.”

영국 젊은이들에게 주는 긍정적 영향도 적지 않다.

“각국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절로 세계화가 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국제적인 휴먼 네트워크의 일원이 됨으로써, 향후 자신과 국가의 발전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요.”

대학 또는 대학교가 주 회원인만큼, 바셀트는 자국 학생과 영어 연수생들 간의 화합과 시너지 창출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영국 정부의 목표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바셀트는 영어 교육 외에 소셜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유적 답사, 문화 토론, 친목 모임 등을 적극 유도한다. ‘영어+α’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사실,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습니다. 요즘은 교육 여건이 좋아져 꼭 외국으로 나갈 필요도 없지요. 그런데도 영국을 찾게 하려면 뭔가 다른 소구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영국의 발달한 민주주의, 유서 깊은 문화와 개방적인 사고방식에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바셀트도 나름의 학생 유치 지원책을 실시중이다. 외국 대학과 손잡고 교환학생 제도를 운영하거나 아예 자매결연을 맺기도 한다. 공동 프로젝트 지원에도 나선다. 주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중국이나 라틴아메리카 대학들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영국에 학생을 가장 많이 보낸 나라는 일본이었다. 이어 스페인, 이태리, 중국, 독일, 대만, 한국 순. ‘영국 영어=유럽 영어’라는 인식 때문에 유럽 비영어권 국가에서도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러시아 유학생도 많은 편. 신장세가 가장 두드러진 건 중국이다. 한국의 경우, IMF 구제금융 사태 직전인 4년 전에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영어가 아니라 문화를 판다”

바셀트가 ‘공기업적 성격’을 띤 단체라면, 아렐스는 이윤 추구를 가장 큰 목표로 하는 사립 영어교육기관들의 모임이다. 아렐스 부회장을 맡고 있는 티모시 블래이크 씨의 ‘본업’도 ‘런던영어학교(The London School of English)’라는 유명 영어학원 교장이다.

영국에선 보기 드물게 햇살이 아름답던 10월 마지막주 월요일, 홀랜드 파크의 주택가에 위치한 런던영어학교를 찾았다. 아렐스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 먼저 영국에서 가장 오래 된 영어연수기관이라는 런던영어학교를 둘러보기로 했다.

1912년 설립된 이 학교는 런던의 두 지역에 센터를 두고 있다. 첫 방문지인 홀랜드 파크 센터는 비즈니스와 직업적 목적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 과정을 운영한다. 수강생의 성격에 따라 8개 코스가 마련돼 있다. 같은 변호사라도 기업전문변호사를 위한 집중 과정과 신참을 위한 3주 집중 과정이 따로 준비돼 있을 만큼 전문적이다. 비즈니스 분야의 경우, 대개 기업측의 의뢰에 따라 강의가 이루어진다. 컴퓨터실 등이 갖춰져 있어 학원에서 회사 업무를 볼 수도 있다.

이곳을 둘러본 후 차로 10분쯤 거리에 떨어져 있는 웨스트코프트 스퀘어 센터로 갔다. 대학생 등 청소년이나 젊은 층을 대상으로 일반 영어를 가르치는 곳이다. 일반영어 집중과정, 영국 내에서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각종 시험대비 과정, 장기 연수자 대상 과정 등이 마련돼 있었다.

두 곳 다 조용하고 고급스런 주택가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 100년이 넘은 고풍스런 건물의 내부를 뜯어고쳐 비즈니스 센터, 랩실, 식당, 강의실 등으로 꾸며 놓았다.

물론 사립 연수 기관들이 모두 런던영어학교 수준의 교육 환경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브리티시 카운슬이 인정한 기관이라면, 다양한 프로그램, 오랜 교육 경험, 비교

적 조용하고 안정적인 주변 환경 등은 공통적인 장점이라 할만 하다. 오랜 역사, 식민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외국인 교육 경험, 안정된 정치·사회 상황이 어우러진 결과다. 현재 브리티시 카운슬이 인증한 아렐스 소속 연수 기관은 모두 220개다. 블래이크 씨는 “세심한 관리와 분화된 교육 과정이 아렐스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사립 연수 기관은 공립에 비해 규모가 작고 분위기도 가족적입니다. 보통 한 학원당 5~7개의 코스가 있으며, 각 과정도 수준에 따라 상(upper)·중(intermedi- ate)·하(elementary)로 나뉘어 운영되죠. 일 대 일 수업을 실시하는 곳도 있고요. 사정이 이런 만큼 영어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학생이나, 전문적인 학습을 요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합니다. 퍼스널 케어가 가능하니까요.”



‘향수병’까지 달래주는 학원

영어 학교들은 연수생의 학업 성취 외에 ‘향수병’을 어루만지고 숙소를 잡아주는 역할까지 한다. 학교 전화를 24시간 개방해 위급한 상황이 생길 경우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들의 호감을 사기 위한 풀 서비스 작전이다. 동석한 아렐스의 수석대변인 사이먼 프리먼 씨는 “아렐스 소속 기관들은 학생들의 어떤 요구라도 수용할 수 있는 전천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의 차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왕 배울 거라면 미국식으로 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 사실. 영어 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영국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일까, 취재중에 만난 인사들은 대부분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특정 국가,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이 영국보다 미국을 선호하는 건 유용성 때문이라기보다 양국간의 정치·문화적 친밀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혹자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한 까닭’이라 풀이하기도 했다.

프리먼 씨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없는 차이를 과장하는 것”이라 단언했다. “단어나 발음이 조금씩 다르지만 소통에 영향을 줄 만한 수준은 아니다. 영어는 글로벌 랭귀지다. 모든 사람이 네이티브 스피커와 똑같이 말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건 아니다. 한국인이 인도인이나 중국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영어 아니냐”는 설명이다.

블래이크 씨는 이색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국 영어는 아카데믹한 성격이 강하고, 영국 영어는 실용적 표현이 풍부합니다. 미국 영어에 오히려 구태의연한 측면이 많다는 뜻이죠. 아울러 미국식 영어 교육은 외국인을 ‘미국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 즉 이민자를 위한 교육이라면, 영국식 교수법은 말 그대로 ‘외국인이 외국어로서 사용하는 영어’라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만큼 덜 권위적이고 개방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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