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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의 시대’를 사는 법|문화

經藝不二, 기업·시장·문화의 상생 방정식

  • 권삼윤 < 문명비평가 > tumida@hanmail.net

經藝不二, 기업·시장·문화의 상생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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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A&B는 ‘크리에이티브 포럼(Creative Forum)’을 탄생시켰다. 기업인과 예술가로 구성된 지적 토론의 광장이었다. 그와 함께 ‘Arts@Work’라는 인터넷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A&B는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 창의력임을 깨닫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창의력에 죽고 사는 예술가들과 만나게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끝에 그런 마당을 마련했다.

대개 공학이나 경영학 등을 전공한 탓에 예술에는 무지한 신세대 경영자들을 예술가들과 만나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A&B가 오랫동안 예술지원 활동을 해왔으나 기업 간부 중에는 그런 지원을 낭비로 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A&B는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냈다.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에 그들이 목말라하는 것이 바로 창의력임을 발견한 것이다. 창의력은 마케팅부서나 연구개발부서 직원뿐만 아니라 직원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때부터 A&B는 회원사 간부들을 만나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예술이야말로 창의력의 소산이고, 예술가는 논리적 사고를 하는 직장인과는 달리 비선형적(非線形的) 사고를 하고 상상력이 뛰어나므로 직원들이 그들과 자주 만나고 예술작품을 가까이 하면 창의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B는 이런 논리를 주입하기 위해 저명한 기업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어네스트 홀 경의 말을 동원했다.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에게서 영감, 창의력, 상상력, 책임감, 모험심, 야망 등의 자질을 찾아내 기업을 위해 쓰게 함으로써 이득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주효했는지 곧 미술품 수집에 나선 회사가 생겼고, 사무실에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공간을 마련해주는 회사도 나타났으며, 공연단체를 불러다 직원들에게 감상 기회를 제공하는 회사도 있었다. 런던의 법률회사 미숀 데 레야 같은 곳에선 시인을 초청해 아름답고 다양한 언어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말과 글을 도구로 삼는 소속 변호사들에게 언어의 중요성과 함께 활용법을 일깨웠다.

그중에서도 A&B가 가장 만족스러워 하는 것은 예술가들이 주도하는 기업 연수 프로그램이다. 이는 기업이 예술가들을 직원 연수 프로그램 강사로 활용하는 것으로, 그 목적은 직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어떤 회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예술가들에게 팀워크, 시나리오 작업, 변화 관리, 커뮤니케이션 강좌 등을 맡긴다. 강사는 왕립극단, 왕립 셰익스피어극단, 세계적인 마임극단인 ‘트레슬’ 등의 연기자들이며, 그 수혜기업에는 바클레이스 은행과 시그램 등 영국 유수의 기업이 망라돼 있다.

좌뇌·우뇌를 함께 활용하라

콜린 트위디 A&B 사무총장은 이러한 활동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직업 훈련을 넘어 다른 분야와도 관계를 맺고 그들이 수행하는 모든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고 믿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기 능력의 극히 작은 부분, 아마도 좌뇌만을 그들의 일터에서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우뇌와 거기서 나오는 가치와 정서, 그리고 직관력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술이 하는 일은 우리 각자의 타고난 특성을 인간성에 접목하는 일이다.”

그는 그것을 역사적 상황과 연관해 우리 시대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100년 동안 예술세계와 기업세계는 양극단에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상업과 예술과 과학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상호 의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관념은 크게 바뀌지 않은 채 19세기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1914년 이후 서구 문명은 개인의 특성을 과학적이거나 아니면 예술적인 것으로 양분하고 말았다.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들 중 하나로 분류됐다면 그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자신의 과학적 소질과 예술적 소질을 조화시켰는지 보라. 세계은행 총재인 올펜슨도 은행가이면서 성공한 음악가다.

역사에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제 예술가와 기업인은 재능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음을 안다. 그 두 개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대단히 의미있는 것으로 이해하며, 새 천년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신(新)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콜린 트위디 A&B 사무총장의 얘기를 들으면 현대 경영의 핵심은 사업계획서 검토, 시장분석, 신제품 개발, 주식 평가 같은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작업이거나 신화를 창조해내는 작업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웬만한 작업은 컴퓨터나 자동화 기계에 맡기면 된다. 그러나 내부 고객이건 외부 고객이건 인간을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 사물을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고, 기업에서 그것을 최종 결정하는 사람은 CEO다. 그런데 그가 단지 좌뇌의 활동 분야에만 능통하고 우뇌 소관 분야에는 무지하다면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그러고도 유능한 CEO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경영이 예술과 만나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는 그 자체가 가치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도 문화다. 따라서 문화를 모르고는 기업을 경영할 수 없다. 불교적 표현을 빌린다면 ‘경예불이(經藝不二)’라고나 할까.

인문학을 살려라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인문학의 위기 또는 고사(枯死)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경영학이나 법학·의학·공학 같은, 당장 돈벌이가 되는 분야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책도 잘 팔리지만, 인간의 내면이나 사회의 구조 및 변동과정 등을 연구하는 인문학 분야는 파리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A&B의 사례에서 보듯 인문학을 괄시하는 것은 우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행위임에 틀림없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해 납득할 만한 처방이 나오지 않아 안타깝다.

왜 우리 사회는 인문학을 멀리하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가 우리 사회에는 정보화, 지식기반 사회에서 인문학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해주는, 다시 말해 A&B와 같은 기구가 없다는 것이다. 경영학 법학 의학 공학 같은 학문과 그에 따른 기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분명 필요한 것이긴 하나 그것만으로 우리 삶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금과 같이 상상력을 동원해 얘깃거리를 만들어내고 그리하여 인간을 감동시키려는 시대에 그것들은 그다지 유효한 수단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 기업에선 인문학은 물론 예술까지 동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예술을 가까이 하기는커녕 인문학마저 멀리하고 있으니 어떻게 그들과 경쟁할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인문학의 현실이다. 지금 우리 인문학의 수준이나 내용이 우리 사회, 나아가 세계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회의 틀이 바뀌고 인간이 추구하는 바가 과거와 판이해졌는데도 우리 지식인들에겐 이렇다 할 분발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문제를 찾아내지도 않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도 게을렀으며, 그나마 내놓은 것도 대개는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서구에서 학문을 배운 사람 중에는 한국의 현실이 자신이 배운 이론과 맞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가 문제투성이라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었다. 본말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된 것이다. 이런 마당에 인문학이 괄시받는다고 해서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는 인문학을 살려내야 한다. 인문학 종사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서. 서구의 석학이란 사람들이 지식기반 사회의 도래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공학적·경영학적 지식이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이고 예술적 소양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곳곳에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자연공원 같은 문화시설을 세우는 것이다.

이왕 기업이란 곳에 들렀으니 기업문화도 살펴보기로 하자. 문화라는 말이 워낙 다의적이라 기업문화도 쓰는 사람마다 뜻하는 바가 조금씩 다른데, 대개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 일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방식 정도로 이해된다. 최근 들어 기업문화가 중요하게 부각된 것은 경영에서 문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서인데, 이 분야에서도 우리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말이 아니라 실천적인 차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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