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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요리사의 세계

‘스타 요리사’ 5인의 천태만상 요리인생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스타 요리사’ 5인의 천태만상 요리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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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특급호텔과 해외 유학을 동시에 경험한 요리사다. 최고급 승용차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키네마 극장 건너편 바(Bar)거리. 이곳에는 매일 저녁 6시 열명 안팎의 손님만을 위해 문을 여는 간판 없는 식당이 있다. 프랑스 유명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 출신 서승호씨(35)가 운영하는 정통 프랑스 식당 ‘라미띠에’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탁자 서너개를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손님을 맞는데, 예약으로만 손님을 받는다. 이 식당의 요리사는 서씨를 포함하여 모두 5명. 따로 웨이터를 두지 않고 요리사들이 홀에서 서빙도 하는데, 요리사 1명이 1.6명꼴로 손님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처음 음식을 대하는 손님에게는 그가 직접 음식 재료와 조리 과정을 설명한다.

이곳에는, 대여섯명이 함께 와서 한 사람이 주문하면 줄줄이 똑같은 것을 시키는 우리네 식당문화는 발을 붙일 수가 없다. 대신 서로의 기호에 맞는 음식을 최대한 편안하게 먹으며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식사법을 배울 수 있다. 식사 시간은 짧으면 1시간30분에서 길게는 4시간까지 이른다. 이 식사 시간은 서승호씨를 비롯한 요리사들이 조절한다.

‘라미띠에’의 요리는 그야말로 ‘느린 음식(slow food)’다. 이는 프랑스의 레스토랑 문화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프랑스 음식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먹는 사람이 여유가 있고 ▲맛있게 음식을 먹고 ▲웨이터도 음식을 빨리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에게 레스토랑은 지친 일상에서 회복하고 삶의 에너지를 찾는 공간이다. 그들은 일하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서 일한다. 적어도 저녁만큼은 그렇게 먹는다. 이 식당의 음식이 느린 만큼 서씨도 느리다. 그는 출퇴근은 물론이고 음식재료를 구입하러 백화점에 갈 때도 자전거만 탄다. 자동차는 아예 없다. 1994년 조선호텔에서 일할 때부터 그랬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간판도 없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그는 어떻게 요리사가 되었을까? 그는 한마디로 운명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요리에 끌려서 요리 관련 서적을 많이 보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리사가 되지 못하고 공무원이 되었다. 하지만 요리사 꿈을 버리지 못한 그는 퇴근 뒤 요리학원에 다녔다. 그러더니 결국 1992년 1년 과정인 경주 호텔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85년 당시에도 이 학교에 진학하려 했는데, 부모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직장도 다니고 군복무도 마친 뒤인 7년 만에 결국 자신이 원하던 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현재는 요리사를 보는 인식이 많이 나아졌으나, 15년 전 당시만 해도 그리 좋지 않았다.

경주호텔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1992년 겨울, 조선호텔에 입사했다. 이후 조선호텔 양식당 조리사로 근무하던 그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공부하기 위해 1996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비용은 5년간 호텔에서 일하며 저축한 것을 모두 털었다.



그가 들어간 학교는 외국인을 위한 프랑스 전통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 이 학교에는 ‘바즈(기본 과정)’과 엥떼르미디에(중급), 슈페리에(고급) 과정이 있다. 바즈 과정은 기초와 가정요리를, 엥떼르미디에 과정은 가정요리와 지방요리, 슈페리에 과정은 레스토랑 음식을 가르친다. 그는 이 학교에서 엥떼르미디에 과정까지 마치고 IMF가 터지는 바람에 귀국했다.

5년간의 요리사 생활 뒤 프랑스로 간 그는 “한국에서 보낸 5년간의 요리사 생활보다 파리에서 하루 동안 배운 것이 나았다”고 회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어깨 너머로 배우느라 몇 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당연한 것으로 친다. 그만큼 선배들이 요리 기술을 공개하지 않고 폐쇄적으로 유지한다. 한국에서는 경력이 요리사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로 통한다. 시간이 지나야 실력이 붙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시키지 않는 프랑스

그러나 프랑스는 누구나 물어오면 가르쳐주기 때문에,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노력했느냐가 관건이었다. 프랑스의 교육방식은 교육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해할 때까지 시키는 것이다. 식재료를 예로 들면 ‘아스파라가스’라는 채소를 한국에서는 그냥 껍질을 까서 삶으라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자라는 곳, 생장 조건, 영양학적 특성, 다른 음식과의 조화, 화이트 아스파라가스와 그린 아스파라가스의 차이 등을 조목조목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 채소를 삶을 때 물 1ℓ에 소금 30g을 넣으라고 하면서도, 조리 시간을 줄이고, 섬유질에 탄력을 주고, 색의 선명도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과 어떤 소스가 어울린다는 설명은 기본이다.

또 한국과 다른 점은 아무리 신참 요리사라 할지라도 설거지를 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는 설거지만 따로 하는 사람이 있고, 요리사에게는 이 일을 시키지 않는다. 요리사는 전문영역이기 때문에 이 일을 소화하기도 벅차다는 인식이 상식으로 통한다.

대부분의 유학생이 그렇듯 서씨도 2년간의 파리 유학을 힘겹게 보냈다. 경제적인 빈곤과 육체적인 피로 등 모든 것이 어려웠다. 계속 서서 일하기 때문에 무릎 아래에 걷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왔는데, 병원이 모두 예약제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던 적도 많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그는 다시 조선호텔에 들어갔다. 이후 계속해서 조선호텔의 ‘나인스 게이트 키친’에서 근무하다 1999년 3월 그만두고, 1999년 4월4일 ‘라미띠에’를 개업했다. 개업 뒤 처음 4개월 동안은 손님이 하나도 없는 날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손님 한 명이 어떻게 찾아왔고, 그 손님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왔다. 나중에는 이 식당이 문 닫는 것을 막기 위해, 처음 찾아왔던 손님들이 일부러 와서 자리를 지켰다. 이 손님들은 지금도 “예약이 펑크나면 언제든지 나에게 전화해라. 가서 먹어주겠다”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서씨는 라미띠에에서 단순히 음식만 팔지 않고 프랑스 음식문화를 퍼뜨리기 위해 일반인을 상대로 프랑스 요리 강좌를 하고 있다. 대상인원은 그야말로 소수다. 일주일에 4번 정도 하는데 한번 수업할 때 3명을 가르친다.

여기서 그는 프랑스에서 배운 요리를 쉽게 축약해서 6개월 코스로 가르친다. 스탁(국물), 수프, 전채, 생선, 육류, 가금류 손질, 뼈, 디저트 등 순서대로 하는데,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습을 같이 한다. 본인이 혼자 해도 할 수 있게끔 가르치기 위해서다. 수업 인원을 3명으로 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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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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