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색보고

80년대 反美청년회 의장 조혁의 영어정복기

  • 조 혁 < ‘시대정신’ 편집위원 > ilovehope@hotmail.com

80년대 反美청년회 의장 조혁의 영어정복기

2/3
지웅이의 영어 글쓰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으레 초등학교에서는 숙제로 일기를 써오라고 하기 마련인데, 지웅이는 영어로 일기를 써나갔다. 지웅이 선생님이 그것을 인정해 주셨다. 처음에 지웅이 일기는 가관이었다. 한국어 어순대로 쓰는가 하면 어떤 문장은 내가 뜻을 파악할 수 없는 내용도 섞여 있었다. 그런 문장은 영화에서 본 문장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라, 사전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네이티브(Native)의 구어체 문장이다. 스펠링도 엉망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체 손대지 않았다. 손대는 데 자신도 없었지만, 모든 것은 시간이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지웅이의 작문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인터넷 작문강의를 듣게 했다. 에세이를 쓰는 것은 아니고, 문장 패턴을 읽히기 위한 연습이었다. 처음에는 반 정도의 정답률을 기록했는데 회를 거듭하면서 단순한 실수는 해도 문법적 오류는 줄어들었다.

지웅이가 문장 패턴에 익숙해진 이후에는 틈틈이 글쓰기를 한다. 영어 에세이도 영어로 썼다는 것만 다를 뿐 같은 수준의 내용이다. 지웅이는 요즘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못 심각한 제목의 글을 쓴다. 최근의 작문의 제목은 ‘What a war means?’와 ‘Bombing Osama Bin Laden’s head?’다.

최근 들어서는 홈스테이를 하는 호주인이 지웅이에게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를 시키고 있다. CNN기사를 한국어로 옮기게 한 다음, 그것을 다시 영어로 번역해 보게 한다. 그의 의도는 지웅이가 쓰는 문장과 Native가 쓰는 문장을 비교해서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같다. 호주인은 지웅이에게 체스를 가르치고 싶었는지 체스의 경기규칙을 한글로 옮기게 한 다음 영어로 다시 옮기는 것도 시켰다. 지웅이는 영어작문도 교정받고 체스의 경기규칙도 배웠지만 체스는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지웅이는 영어를 위해서 3명의 선생님으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았다. 전화영어는 매일 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시간이 10분밖에 안돼 미진한 느낌이 들어서 처음 전화영어를 가르쳤던 선생님께 개인지도를 요청했다. 시간당 수업료는 3만원으로 정했는데 차도 없이 너무 멀리서 다니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누나는 시간당 4만원을 주었다.



두번째 선생님은 고려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있는 교포대학생이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 같이 양식을 먹으면서 밥 먹는 예절을 가르치거나, 함께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라고 했다. 그 학생이 학업으로 바빠서 지웅이가 서울로 나가 4주간 3시간씩 돌아다녔다. 영어도 늘었지만 그 선생님이 영어타자를 엄청나게 빠르게 치는 것이 부러웠던지 지웅이는 영어타자를 연습해서 1분에 수백 타를 치게 되었다.

지웅이가 마지막으로 개인교습을 받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로 통역대 학생에게서 배웠다. 짧은 토픽을 모아놓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맡겼는데 선생님이 지웅이가 문법적인 기초가 약하다고 지적해서 문법교습으로 학습의 내용을 바꾸었다. 그러나 지웅이가 문법공부에 열의를 보이지 않아서 바로 그만두었다.

투자를 아끼지 말라

이제 누나네의 지웅이에 대한 영어교육비는 줄어들고 있다. 전화영어도 끊었고 개인교습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내가 보던 영자신문을 지웅이가 보면서 그 비용을 누나네가 부담하는 것과 토익과 토플, 인터넷 교습비 정도가 전부다. 인터넷 강의라 강의비가 실제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적게 들 뿐만 아니라 교통비와 용돈을 줘서 보내야 할 필요가 없고 이동하느라고 드는 시간도 없으니 시간과 돈이 많이 절약되는 셈이다. 9과목 168강좌 교재 포함해서 3개월을 듣는데 30만원을 내니 한 달에 10만원이 들어가는 꼴이다.

지웅이의 영어공부는 이제 정규적으로 영어방송을 1시간 보는 것, 인터넷 강의를 틈틈이 듣는 것, 신문 보는 것 등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 말고 또 있는데 그것은 지웅이가 공부라고 여기지 않은 것들이다. 팝송을 몇 시간씩 듣는 것이다. 비틀스 광인 지웅이에게 물으니 비틀스의 100곡 정도 가사를 알고 10여 곡은 완전한 가사로 부를 수 있다고 한다. 비틀스 외에도 자기 맘에 맞는 곡이 있으면 그 곡을 수도 없이 들어서 가사를 외운다.

지웅이가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는 데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고, 누나네 가계에 부담이 될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영어공부에 대한 정형이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의 길인지를 판단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무기로 지웅이의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기도 했다.

지웅이의 영어공부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도 힘들다. 많은 것이 동시에 진행되었고 항간에 떠도는 좋다는 방법은 모두 실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 때문에 지웅이의 실력이 향상되었는지를 검증하기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수개월 동안 진행한 영어성경 테이프 듣기와 따라하기, 백 편 이상의 비디오 보기가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 무익한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문제는 효율이다. 적절한 소설과 영화를 골라 외우게 하는 것이 당초부터 좋았던 것인지 수많은 비디오와 영어소리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시간에 모든 대사를 외울 수 있었던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지웅이의 경우를 통해서 느끼는 외국어 학습방법에 대한 내 기본적인 생각은 짧은 시간에 네이티브처럼 될 수 없다는 거다. 그것은 영어가 제2언어기 때문만이 아니라 모국어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때문이다. 아이가 옹알이에서 출발해서 음마로 그리고 음마에서 엄마로 정확하게 발음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도 짧지 않다.

2400시간 훈련이 필요조건

사회적 거리감을 빨리 좁힐 수 있는 어린아이들이 영어권으로 이주해서 완전히 영어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하루에 8시간씩만 치더라도 2400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영어 한마디 듣기 힘들고,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란 더더욱 적은 한국의 언어현실에서 특별한 학습법에 의해서 몇 개월만 하면 원어민처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욕심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환경적 악조건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영어에 사전 노출되어 있지 않은 초보자가 2400시간을 채우려면 하루에 영어훈련을 3시간씩 하더라도 800일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도 체계적인 영어 교습법이 준비돼 있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니 불가피한 시행착오를 더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 일인지는 자명해진다.

흔히 우리 세대가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배웠는데도 영어 한마디 못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많은 시간 같지만 연간 150시간을 배웠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900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많은 학생들 속에서 자신이 실제로 영어를 듣고 말하는 훈련시간은 50분 수업시간에서 단 몇 분도 되지 않는다. 일대일로 하는 전화영어 10분보다도 질적으로 뒤진다고 할 수 있다. 학원교육은 그 보다는 형편이 좋다고 하지만 정도 차이지 질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학원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가르치려면 상당한 교육비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또 의사소통에 중심을 둔 영어교육을 하려면 작은 규모로 개인들을 충분히 배려해서 가르쳐야 한다. 그러려면 학습단위가 실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소규모 단위로 구성되어야 한다.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수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이것은 학원측에 엄청난 인건비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고, 그것은 교육비가 되어서 학부모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되어 있다. 실제로 이것은 이미 일정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영어로 교육하는 유치원의 1년 교육비가 1000만원 내외라고 하니 말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반적이 되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와 아울러, 랭귀지 디바이드(language divide) 가 나타날 것이다. 지난 시대 빈곤의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낮은 교육수준이었다면 앞으로는 지식정보를 습득하는 유력한 수단인 영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의 하층에 놓일 것은 자명하다.

일년에 1000만원을 들여서 유치원을 다니고 방학을 이용해서 수백만원의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개인교습에 가까운 다양한 영어과외를 받는 아이와 질 낮은 학교와 학원에서 영어교육을 받는 아이가 같은 선상에서 경쟁이 가능할까?

늦어도 정복할 수 있다

지웅이가 영어훈련을 시작한 것보다 약간 뒤늦게 나도 영어공부에 돌입했다. 나는 북한인권운동단체의 대표와 ‘시대정신’이란 격월간지의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시대정신’은 창간호(1998.11-12)에서 ‘영어공용화론’을 제기한 바 있다. 복거일씨의 ‘영어공용화론’ 제기로 촉발된 논쟁에 대하여 시대정신은 복씨의 문제제기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논쟁의 한 주체가 되었다.

1999년에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NKNET)란 단체가 결성되어 대표를 맡게 되면서 북한의 인권문제로 국제회의에 참가하고 있고, 외국의 인권단체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내 경험으로 국제회의에 참가해서 통역을 통해 말한다는 것은 불편한 문제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했다. 외국에서 진행되는 국제회의의 토론에 참가하면 한국어가 공용어가 아닌 관계로 동시통역을 이용하는 것이 우선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통역을 이용해야 하는데 인사말 정도가 아니라 순발력이 필요한 토론에서 통역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토론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회의가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에서 외국인과 만나는 일도 통역과 늘 동행한다는 게 어렵고 또 유능한 통역자라 할지라도 본인이 아닌 이상 말의 취지는 전달할 수 있을지라도 내 절실한 감정을 전달하기가 어렵거니와 완곡하게 의사를 전달할 경우에도 통역이 내 감정을 살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말해 놓고 통역자가 내 말을 전달해 주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한심하게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인데도 저걸 못해서 통역을 써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한 말을 통역자가 영어의 특성을 잘 살려서 짧고 명쾌하게, 내가 실제 한 말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면 통쾌하겠지만 같은 말이라도 내가 한 말의 어감과 차이가 나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고칠 수 있는 능력범위를 벗어난다면 어떻게 해볼 재간이 없다. 결국 사회활동 속에서의 절실한 필요가 오랜 세월 접어두었던 영어를 다시 붙들게 했다.

나의 영어실력은 대학입시 시험문제를 고3 초에 50문제 중 40개 정도 맞출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제2외국어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독일어로 시험을 봤다. 내 영어실력은 고3 때의 실력보다도 많은 부분 퇴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영어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우선 원상복구라도 한다는 기분으로 학원에 등록해서 중급 수준의 독해 강의를 들었다. 내가 다닌 학원은 직독직해를 가르친다고 해서 영어문장의 뒤로 가서 앞으로 더듬어오는 식의 해석 방법을 지양하고 의미단위로 끊어 읽게 했고, 영어가 가진 고유한 리듬을 살린다고 해서 영어단어에 스트레스(액센트)를 넣어서 박자 맞춰 읽는 연습을 많이 시켰다. 1분에 단어 150개를 소화할 수 있어야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해서 속독연습도 병행했다. 3개월 정도 학원에 다니면서 영어공부에 재미가 붙었고 내가 가지고 있던 실력 정도는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3
조 혁 < ‘시대정신’ 편집위원 > ilovehope@hotmail.com
목록 닫기

80년대 反美청년회 의장 조혁의 영어정복기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