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권말기획

21세기 코드로 읽는 三國志 인물학

攻·守·速·遲·勇·德·剛·柔

  • 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21세기 코드로 읽는 三國志 인물학

3/19
그렇다면 명참모의 필수조건이란 어떤 것일까. 전문적인 식견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겠지만, 스스로를 낮추고 정치적 야망을 죽이는 일도 당연히 포함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왕 참모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 시대에도 종종 이야깃거리가 되는 톱(top)과 브레인(brain) 사이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위계질서가 분명한 조직에서 부서장과 브레인이 술집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브레인은 톱에게 일의 맥락(context)을 명료하게 이해시킬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런 분위기를 잘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브레인은 어떻게든 짧은 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톱에게 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톱은 꼭 그 브레인이 아니어도 정보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소스가 많으니 걸림돌이 아주 많다.

요체는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우리 시대의 고민만은 아닌 듯, 이에 대해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세난(說難)’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유세(遊說)의 곤란함은 나의 지식으로써 상대편을 설득시키기가 어렵다는 데 있지 않다. 또 나의 변설로써 상대편에게 나의 의사를 철저히 밝히거나 자기가 말할 바를 종횡무진으로 다 말하기가 어려워서도 아니다. 대체로 설득의 곤란함은 상대편의 심정을 통찰하고 상대편의 심정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맞추어 끼우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게 지나치면, 아니 잘못 이해하면 톱의 비위만 맞춰주는 꼴이 되고 만다. 최고 권력자가 ‘예스맨’들에게 둘러싸이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사태를 제대로 보고하자니 톱을 불편하게 할 것 같고,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내 자신의 무능이나 잘못을 드러내는 꼴이 되기도 하니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를 푸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두 가지는 있다. 하나는 톱이 평소 아랫사람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어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부담감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털어놓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브레인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각색해 톱의 주파수에 맞도록 하는 일이다. 둘 다 결코 쉬운 일일 수는 없다. 유능한 톱이 되는 것이나 브레인이 된다는 것이 모두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조조에게서 번뜩이는 재기와 날카로운 통찰력이 느껴진다면 유비에게서는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를 편안히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비를 일러 흔히 정과 협의 인물이라고도 한다. 그건 물론 장점이다.

장각이 이끄는 황건의 반란군이 유주(幽州·지금의 허베이성 일대) 근방에 이르렀을 때 유주 자사 유언(劉焉)이 의용군을 모집한다는 방을 곳곳에 내걸었다. 신장 7척5촌에다 양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이고, 양 팔을 뻗으면 무릎까지 내려오는 예사롭지 않은 체형을 가진 28세의 젊은이 유비도 한 왕실을 부흥하겠다는 일념에 주저없이 모병에 응했다.

그때 8척 거구에 표범 같은 머리, 번뜩이는 눈, 호랑이 같은 수염에다 우레를 닮은 목소리, 거친 말과 같은 힘을 가진 장비를 만나 의기투합,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수염이 2자나 되는데다 얼굴이 붉고 봉황의 눈에, 누에가 누운 듯한 짙은 눈썹을 가진 9척의 건장한 사나이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관우였다.

이들은 그곳에서 가까운 장비의 집 뒤뜰 도원에서 ‘동년 동월 동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같은 날에 죽기로 약속’하면서 의형제를 맺었다. 키가 제일 작은 유비가 맏형이 됐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어질고 슬기로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인데, 유비에게서는 그때에도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의형제의 뜻을 굳이 따진다면 ‘의미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겠으나, 중국사회에선 아주 흔한 관습이었다. 유비의 조직은 이러한 의협적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어 법치에 기반을 둔 조조의 조직과는 성격이 판이했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비(非)체제 성격이 강한 의협 쪽을 선호했다. 기계적인 제도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덕으로 사회가 운영되기를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금의 중국 무협영화에서도 확인되는 바다.

3/19
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목록 닫기

21세기 코드로 읽는 三國志 인물학

댓글 창 닫기

2023/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