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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 있는 문화 이야기 (5)

‘몸’의 찬미자 미켈란젤로, 신에 귀의하다

  • 박홍규 < 영남대 법대 교수 > sky3203@donga.com

‘몸’의 찬미자 미켈란젤로, 신에 귀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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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의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그는 13세의 미켈란젤로가 스스로 그림을 배우러 가는 것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스승에게 그를 소개한 친구가 미켈란젤로는 벽화를 그렸다고 말하나, 이는 전설에 불과하다. 또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13세가 아닌 14세부터다.

소설에서 미켈란젤로는 스승에게 돈을 내기는커녕 돈을 달라고 한다. 물론 이 점도 허구다. 돈을 달라고 한 것은 아버지가 그림 수업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화가란 천한 직업이었다. 아버지는 그를 법학도로 만들기 위해 7세 때 라틴어학교에 보낸다. 그럼에도 그림에 관심을 갖는 아들을 아버지는 매질한다. 소설에는 13세의 미켈란젤로가 예술의 길을 가겠다며 아버지와의 언쟁에서 이기는 장면을 길게 서술하고 있다. 스턴은 어린 미켈란젤로가 여성의 나체화 등을 그렸다고 하나, 실제로 남아있는 것은 몇 장의 모사 펜화뿐이다.

이듬해 미켈란젤로는 로렌초 데 메디치가가 세운 아카데미에서 조각을 배운다. 소설에서는 이를 ‘정원’이라 표현하고 있으나 터무니없다. 그곳은 아테네에서 비롯된 오늘날의 아카데미와는 전혀 무관한, 지극히 자유로운 학문과 예술의 전당이었다. 미켈란젤로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자기만의 역동적인 조각기법을 연마한다. 그러나 당시에 만든 조각들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다.

1494년, 프랑스군이 이탈리아에 침입하자 피렌체에서는 민중 봉기가 터진다. 로렌초 데 메디치가 죽고 그 뒤를 이은 무능한 아들이 추방되면서 신부 사보나롤라의 근엄한 공화정이 시작된다. 사보나롤라는 물질적 쾌락과 호화생활에 젖은 당시 교황과 로마 교황청을 비난하고 그 타락에 대한 신의 형벌로 인해 이탈리아는 멸망할 것이라 예언했다. 그는 프랑스 군대를 노아의 홍수에 비유하면서 그들이 이탈리아를 무너뜨릴 것이니 피렌체 시민은 이제라도 빨리 새로운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1498년, 교황에 의해 화형당하고 만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미켈란젤로도 그의 사상에 심취해 피렌체에서 사보나롤라 중심의 교회개혁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에 의해 고향마을이 불타는 순간 미켈란젤로는 그로부터 도망치고 만다. 왜?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우선 사보나롤라는 예술마저 부정한 인물이었다는 해석, 또는 미켈란젤로가 겁쟁이였다는 주장, 한편으로는 아카데미에서 배운 이교적 지식과 기독교 사이에서 번민했다는 설 등이다. 나는 그 모두를 수긍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아직 10대 소년이었다는 사실이다.



“난 기적을 믿지 않아”

19세의 미켈란젤로는 베니스, 볼로냐를 거쳐 로마로 갔다. 로마 성베드로 성당의 ‘피에타’가 그에게 최초의 명성을 안겨주었다. 1499년, 그의 나이 불과 24세의 작품이나, 그야말로 걸작 중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쩌면 돌을 흙처럼 주물러 자유자재로 빚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언뜻 보기에도 ‘피에타’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성모가 죽은 청년 예수를 안고 있다. 성모의 실제 나이는 50세가 넘었으련만 얼굴은 10대, 아니 그 밑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앳되기 그지 없다. 이는 사보나롤라를 비롯한 당시 기독교인들이 성모는 무원죄의 영원한 순결 처녀라 말한 것을 따른 결과다.

어린 모습에도 성모의 얼굴은 지엄하기 짝이 없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아들을 안고 있으면서도 눈물은커녕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피에타’를 자애로운 성모상이라 예찬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나는 도무지 그런 견해에 찬성할 수 없다.

1501년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4년간 ‘다비드’ 등 수많은 걸작을 생산한다. 당시 이미 공화주의적 자유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숭상된 ‘다비드’ 상에 대해 최근에는 권력의 과시를 표현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으나, 적어도 당시 피렌체인에게 이 작품은 위기를 맞은 공화국이 지향하는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다비드’상 또한 이상하다면 이상한 구석이 적지 않다. 언뜻 보기에도 신체가 불균형하다. 손은 너무 크고 발은 너무 작아 발보다 손이 더 커 보인다. 팔뚝은 소년인데 가슴은 청년의 그것처럼 떡 벌어져 있다. 눈은 적을 응시하고 있으나, 양팔은 완전히 긴장을 푼 것처럼 매우 부드럽다. 코도 너무 커다란데 당시 피렌체의 지배자가 이를 지적하자 코 위에 돌가루를 뿌리며 이제 됐냐고 반문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미켈란젤로는 왜 이런 상을 만들었을까? 조각가인 그가 신체의 불균형을 몰랐을 리 없다. 여기서 우리는 그 이전에 만들어진 도나텔로의 동명 작품이 골리앗을 물리친 유약한 소년인 것과 달리,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건장한 청년임에 유의해야 한다. 구약성서에는 15세 가량의 어린 소년이 기적을 일으킨 것으로 나오니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도나텔로가 옳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처럼 건장한 근육질이어야만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뜻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가 골리앗을 이긴 것은 기적이 아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 미켈란젤로는 기적을 부정한다. 그에게 기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설사 신의 기적이 있다 해도 이는 정신적인 것에 불과하다. 도리어 초인적인 의지와 지혜, 그리고 체력을 갖춘 ‘인간 다비드’야말로 진실이다. 그러므로 다비드는 가장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로 표현되어야 한다. 아마도 ‘다비드의 강인함’이란 ‘불균형의 균형’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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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 영남대 법대 교수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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