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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세기의 戰士여! 부디 영면하소서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존 롤스를 기리며

  • 글: 황경식 서울대 교수·철학 hwangks@conmaul.co.kr

정의로운 세기의 戰士여!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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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세기의 戰士여! 부디 영면하소서

롤스는 20세기 사회철학계의 거목이다. 그가 영향을 받은 17세기 사회 계약론자 존 로크, 18세기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 19세기 공산주의자 칼 마르크스(왼쪽부터).

롤스의 정의론이 갖는 정치철학적 내용의 평가는 그에게서 비롯된 주목할 만한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주의 이론체계에 사회주의적 요구를 통합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롤스가 내세운 정의의 제 1원칙인 ‘평등한 자유(equal liberties)’는 사상, 양심, 언론, 집회의 자유, 선거 및 재산권 등 기본적 자유 보장에 우선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목록들 가운데 뚜렷하게 제외되어 있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적 ‘시장의 자유’라 할 수 있는 생산재의 사유 및 생산물의 점유, 소유물의 상속 및 증여의 자유가 그것이다.

롤스가 기본적인 자유의 목록에서 이같은 자유를 배제한 것은 비일관성이라기보다 오히려 그의 논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로크(John Locke)의 사회계약에 등장하는 인물과는 달리 롤스의 계약 당사자들은 자신의 상대적 재산과 소속된 사회 계층을 모르는 가운데 분배 정의의 원칙을 선택해야 한다. 자신이 자본가인지 노동자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들은 재산 소유자의 이득을 보호하기보다 자신과 후손들이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삶(decent life)을 보장하는 데 더 큰 배려를 한다.

롤스 정의론의 두 번째 원칙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유명한 첫 번째 부분은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으로, 최소 수혜(least advantaged) 시민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줄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평등 분배를 내세우고 있다. 제 2원칙의 두 번째 부분은 모든 이에게 ‘공정한 기회의 균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단지 직업이나 직책의 기회만이 아니라 삶의 기회들까지 평등화하자는 원리이다. 다시 말하면 유사한 능력과 기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유사한 삶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롤스의 정의론은 최소 수혜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자유주의라 할 수 있고 사회주의가 제기한 비판의 도덕적 의미를 충분히 참작한 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공정한 기회 균등은 재능이 있으면 출세할 수 있다는 식의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는 보상적 교육의 실시와 경제적 불평등의 한계를 요구함으로써 사회 모든 부문에 걸쳐 유사한 동기와 자질을 가진 이에게 교양과 성취에서 평등한 전망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정의의 제 1원칙은 평등한 시민의 기본적 자유를 희생시키는 일을 거부하는 롤스 이론의 자유주의적 단면을 보여준다.

더욱 자유롭고 보다 평등하게



두 번째 원칙은 자유주의적 자유가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허한 약속이 되지 않게 하는, 롤스 정의론에 있어 사회주의적 경향을 대변한다. 물론 롤스가 고전적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방식을 제시한 최초의 철학자는 아니다. 롤스는 밀, 그린, 홉하우스, 듀이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철학의 오랜 전통의 연장선 위에서 로크보다 더 평등주의적이고 마르크스보다 더 자유주의적인, 그야말로 자유주의적 평등(liberal equality)의 이념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롤스의 정의관은 자유주의적 이념과 사회주의적 이념을 가장 체계적이고 정합적으로 통합한 것으로, 어떤 이론과도 견주기 어려운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이같은 통합은 두 진영으로부터 많은 동조자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두 진영으로부터의 공격 또한 면하기 어렵다.

우파를 대변하는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 노직(R. Nozick)은 자신의 노동 산물을 점유할 자유가 롤스의 자유 목록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비판하면서, 이는 인간의 개체성을 중요하게 보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한 사회주의자들은 롤스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 및 집단 소유(collective ownership) 간의 선택 문제를 도덕적 논리에 의해 결정하기보다 정치 사회학의 문제로 보고 경험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롤스의 정의론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앞서 살핀 바와 같이 그가 제시한 정의원칙의 실질적 내용과 관련되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이 원칙을 도출하기 위한 방법론적 논의와 관련되어 있다. 롤스는 당시 지배적인 도덕 이론이었던 공리주의를 내용뿐 아니라 그 방법론적 함축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결국 롤스는 공리주의의 대안으로서 ‘권리론’과 자연권 이론의 바탕이 된 계약이론(contract theory)을 일반적인 논변 형식으로 발전시켜, 이를 최근 경제학의 성과 중 하나인 합리적 의사 결정론(rational decision-making theory)과 연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결국 롤스 정의론의 방법론적 특징은 이른바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에 있다. 그는 정의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직접 대답하기보다 공정한 절차에 의해 합의된 것이면 정의로운 것이라는 소위 순수한 절차적 정의관(pure procedural justice)을 내세운다.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고 공정성을 보증해줄 전제들의 집합인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란 개념은 사회계약설의 자연상태(state of nature)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실재하는 역사적 상황이 아닌 정의원칙을 선택하기 위하여 공정한 절차가 될 계약 조건을 통합 구성한, 순수한 가설적 세계이다. 즉, 자유롭고 합리적이며 평등한 계약 당사자가 정의의 원칙에 합의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할 도덕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롤스에 따르면, 원초적 입장을 구성하는 조건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계약 당사자가 인간 사회에 관한 일반적 사실을 알고 있으나, 자신의 자연적 재능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인생 계획 등 특수한 사정을 알 수 없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속에서 정의의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지적 조건이다. 다른 하나는 당사자들이 합리적 존재로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으나, 타인의 이해 관계에 대해서는 상호 무관심(mutually disinterested rationality)하며 시기심(envy)과 동정 같은 관심도 없다는 동기상의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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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경식 서울대 교수·철학 hwangks@conma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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