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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중국기행

2000년 도교문명의 뿌리 칭청산(靑城山)

香煙 그윽한 푸르름 속, 天師의 자취를 좇다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2000년 도교문명의 뿌리 칭청산(靑城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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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도교문명의 뿌리 칭청산(靑城山)

민강의 거센 물살이 순하게 바뀌는 바오핑커우 일대

그날 택한 코스는 월성호를 낀 동쪽 루트였다. 자연석으로 쌓은 돌계단 위로 가마꾼들이 다녔다. 길다란 대나무 두 가닥에 천을 깔아 만든 가마를 이곳에선 ‘화간(滑竿)’이라 불렀는데, 사람들이 이용하기 쉽게 곳곳에 거리별 요금표를 세워뒀다. 산문에서 천사동까지는 80위안, 천사동에서 상청궁까지는 70위안, 산 전체를 둘러보는 데는 220위안이었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월성호는 그리 크지 않았다. 계곡 속에 생긴 작은 호수라 그런지 물살이 없어 수면은 거울처럼 잔잔했다. 그 위로 모터선 한 척이 다니면서 사람들을 실어날랐다. 배에서 내리자 곧바로 2인승 리프트가 나타났다. 앞을 쳐다보니 경사가 무척 급하다. 케이블카가 아니라 로프웨이가 운행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내 옆자리엔 오랫동안 상하이(上海)에 있는 항공사에서 일하면서 부산과 인천을 한 차례 다녀간 적이 있다는 60대의 중국인이 앉았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심하게 요동치는 리프트에서 두 손이 자유롭지 않아 필담을 나눌 처지가 아니었기에 영어와 몇 마디 중국어를 섞어가며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일본에 대한 한국의 자세가 중국의 그것보다 더 당당하다”며 “중국 지도자들은 그 점에서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뜻밖이었다. 그는 단호했다. 중국이 왜 일본군으로부터 당한 민간인의 피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칭청산의 本殿 상청궁



그러는 사이 상청궁 역에 닿았다. 몇 사람은 거기서부터는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며 일행과 헤어졌다. 우리는 가파른 길을 따라 곧장 상청궁으로 향했다. 칭청산의 그 많은 도관들 가운데 ‘궁(宮)’이란 말이 들어간 곳으로는 상청궁이 유일한데, 그것은 이곳이 본전(本殿)임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그래서인지 규모가 꽤 컸다. 비탈을 이용해 세운 것이라 입체적이기까지 했다.

입구의 담벼락에는 ‘큰 도는 인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의 ‘대도무위(大道無爲)’란 네 글자를 새겨 이곳이 도교의 공간임을 알렸다. 초월적인 신의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인간의 노력을 중히 여기는 도교에서 ‘무위’를 강조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이 말하는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절제를 뜻하는 것 같다. 절제란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도교는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게 아닐까.

상청궁 안의 제단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그것은 향을 태우면서 나는 것이었다. 향연(香煙) 사이로 희미하게 신상이 드러났다. 신상은 특이한 관을 쓰고 붉은 색이 주조를 이루되 여러 가지 색이 들어간 의복을 걸친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셔터를 누르려는데, 어디선가 “노!”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촬영이 금지돼 있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칭청산 그 어디에서도 신상의 촬영은 허락되지 않았다.

진나라 때 건립됐다는 상청궁에는 목각 노자상, 도가의 의술을 베푸는 방, 도교 식당 등이 있었다. 상청궁은 높은 곳인 데다 동향이라 장엄한 일출 장면을 즐길 수도 있다고 설명한 안내원은 우리를 담장 밖으로 데리고 가서는 다짜고짜로 우물을 보여줬다. 우물은 두 개였다. 하나는 네모지고 다른 하나는 둥근데, 샘 안쪽에서 서로 연결돼 있다 하여 ‘원앙정(鴛鴦井)’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녀는 그걸 본 우리의 눈이 휘둥그래지기를 바랐을 것이나 일행의 대부분은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상청궁 관람이 투어의 마지막 코스라 원앙정을 구경한 사람들은 천천히 경내를 거닐면서 20세기 중국 화가 장대천(張大千)이 선묘로만 그린 선녀화도 구경했다.

투어가 끝나자 나는 일행과 헤어지겠다고 했다. 장도릉이 수행했고, 지금도 여전히 도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천사동이 투어 코스에 포함돼 있지 않아 혼자서라도 그곳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덩양은 그런 나를 위해 천사동으로 가는 길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잘 다녀가라는 인사와 함께. 지도를 지니고 있어 불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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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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