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20)

거리의 철학자 칸트의 웃음

21세기에도 계몽은 진행중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거리의 철학자 칸트의 웃음

2/7
칸트는 ‘이성의 용기’를 가진 탓에 정치적 핍박을 받기도 했다. 1781년 출간된 ‘순수이성비판’은 위험한 무신론자의 책이라는 이유로 빈에서 금서가 됐다. 또 독일 유태인 해방의 아버지이자 독일의 소크라테스라 불린 멘델스존조차 칸트가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그 후로도 그는 여러 차례 검열을 당했다. 물론 칸트는 직접 정치권력을 비판한 적도, 이로 인해 투옥당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이미 40대부터 그의 사상은 반체제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세기가 지난 뒤에도 ‘신칸트학파’의 거점이었던 마르부르크대학에 칸트 강의가 금지됐을 정도였다.

칸트를 흔히 철학의 아버지라 하지만, 철학자라면 칸트부터 비판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칸트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모던, 즉 근대철학의 상징으로 여겨져 이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계몽주의 인간성이나 인간의 해방과 진보, 인류 전체에 미치는 지식과 도덕 등의 보편성, 특히 과학의 객관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칸트는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인간사회가 도덕화되어 참된 행복이 실현된다고 보지 않았고, 도리어 그것을 비판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지만 문제는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상황이 정말 우리 시대에 맞느냐는 물음이다. 어쩌면 ‘프리모던’이라고 부를 정도로 근대 이전의 봉건적 야만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포스트모더니즘이 제기한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이 이 땅에까지 유행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휴대전화나 인터넷 또는 퓨전요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인가.

그러나 막상 그것을 만지고 먹는 우리의 정신은 여전히 프리모던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칸트가 살았던 모던 계몽보다도 더 뒤떨어진 야만이나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 역시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된 책을 번역하고 소개한 적이 있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도리어 우리 현실이나 심성은 프리모던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더욱이 젊은 세대마저 공사의 기본적인 구분도 하지 못하고 이기주의나 가족주의, 나아가 자국중심주의와 사대주의의 묘한 야합에 빠져 있는 것은 너무나도 걱정스럽다.



죽은 철학은 버려야 한다

칸트는 철학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즉 학교 개념으로서의 철학과 세계 개념으로서의 철학이다. 전자는 대학을 비롯한 학교의 철학연구자들이 만드는 철학이고, 후자는 세계 또는 세상의 철학으로 칸트가 말하는 본래의 철학인 ‘지혜’를 뜻한다. 사실 철학은 소크라테스 이래 본래부터 지혜를 뜻했으나 차츰 지식이나 정보로 변했고 지금은 콘텐츠로 표현되기도 한다.

지혜와 지식 또는 정보의 차이는 인간의 주체적 사고에 의한 것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즉 인간이 신이나 교회, 국가나 재산 등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판단하는 자율적인 태도, 자기교육의 태도가 곧 지혜다. 요컨대 자신을 철저히 반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종래의 제도화된 학문인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요구한다. 아니 우리는 이제 그런 죽은 철학을 버려야 한다. 대학의 전유물인 철학을 버리고, 교양이랍시고 외우는 칸트의 이름이나 3대 비판서도 깡그리 잊어버리자.

그런 쓰레기 지식이야 지금 컴퓨터를 켜면 당장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 따라서 지혜야말로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헤매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제나 구속 및 속박 하에 살고 있다. 가정에서 처리해야 할 사적인 문제임에도 불륜, 가정폭력, 아동학대, 노인보호 등 국가의 법과 행정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영역이 너무나 많다.

가장 내면적인 사상의 자유도 여전히 제한되고 있고, 표현의 자유 역시 구속되는가 하면, 포르노와 원리주의의 극성으로 방종을 낳고 있다. 또한 인터넷에 의해 사적인 공간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버 폭력은 언제나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파괴할 수 있다. 이처럼 최소한의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는 프리모던의 영역이 엄연히 존재하고, 동시에 다양한 법과 인권 사이의 충돌도 생겨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구호로 해결될 수 없다. 나아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진행되면서 국가간, 개인간 빈부 차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여기서 이성적 비판과 정보의 윤리, 세계의 평화 등 칸트가 고민한 문제는 우리에게 더욱 더 절실한 것이 되고 있다.

2/7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목록 닫기

거리의 철학자 칸트의 웃음

댓글 창 닫기

2020/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