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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우리 문학을 위한 하소연

우리 문학을 위한 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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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창비 사장 김윤수 선생은 뜻밖에도 내게 창비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창비에서 일하게 된 나는 여러문인을 만났다. 이메일은커녕 팩스도 없던 때라 문인들은 원고를 직접 들고 회사를 찾아왔다. 원고료도 직접 수령해갔다. 그러다 보니 술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었고, 술자리에서는 언제나 진지한 토론이 이뤄졌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문학이 곧 언론의 역할을 자임하던 시절이라 술자리에서는 언제나 울분과 우국충정이 토로되었다. 따라서 책 광고니 판매부수니 하는 이야기가 술자리에서 나왔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 즈음 나는 지방의 문학 동인들로부터 함께 활동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고, 어느 문학잡지로부터는 등단시켜주겠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모두 거부했다. 문인이란 타이틀이 평생 출판 종사자로 일하다 정년 퇴직하겠다는 나의 오랜 꿈에 부담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내내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창비의 사정은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1990년 펴낸 ‘소설 동의보감’이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살림이 트이기 시작했다. 이후 창비는 해마다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키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면서 창비는 세상으로부터 ‘상업 출판’이라는 혐의를 얻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출판의 논리’로 자신을 변명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문학의 미래를 위해 유망 신진작가에 대한 배려가 필요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창비를 퇴사하고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매년 조사한 출판통계를 통해 본 문학시장은 정말 한심했다. 문학시장은 나날이 ‘죽어가고’ 있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작가들은 ‘계약금’이란 이름으로 출판사에 작품을 입도선매한 다음 질 낮은 작품을 써냈다. 출판사는 그렇게 생산된 작품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대대적으로 광고를 해댔다. 평론가들은 장사에 도움을 주는 ‘주례사 비평’을 써내기 바빴고, 그것은 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일부 문학출판사들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갈수록 거침없는 모습을 보였다. 광고문구도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문학은 점차 ‘말기암’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이러한 출판사의 행태에 대해 심하게 비판했다가 한 문학출판사의 고발로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일은 어설픈 타협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좀처럼 마음을 삭일 수 없었다. 그래서 몇몇 문학평론가들에게 요구해 2001년에는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김명인 외)란 책을 직접 펴내기도 했다.



반성을 모르던 문학시장은 결국 여기에 이른 셈이다. ‘출판계 10대 뉴스’를 접하고 내게 항의한 사람에게 나는 ‘앞으로 애정을 갖고 문학을 열심히 살펴보겠노라’고 다짐하고는 최근 언론에 크게 다뤄진 한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았다. 1990년대 초반 공격적 페미니즘 소설로 재미를 보았던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소설을 읽는 일은 내겐 고문과도 같았다. 구조와 스토리가 조금 바뀌었지만, 그야말로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나중에 한 문학담당 기자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또한 요즈음의 문학작품을 읽는 일이 너무도 힘들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언론은 ‘일방적 찬사’를 늘어놓는 데 급급하기만 하다.



이런 소설을 읽은 독자가 다시 소설을 찾을까? 이 악순환이 소설 시장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문학은 비타민과 같아 문학 없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고 말해왔고, 문학으로 세계관을 형성했고, 우국충정과 울분을 가슴에 품은 문인들의 아픔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아무나 붙잡고 한없이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이다.

신동아 200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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