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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소설 명인열전 ③

‘新무협’ 선구자 용대운

평범한 로맨티시스트들이 축조하는 비범의 美學

  • 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junaura@snu.ac.kr

‘新무협’ 선구자 용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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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문의 창시자 위지독고(慰遲獨孤)는 전대의 천하제일고수였다. 그러나 그의 무공을 유일하게 계승한 현재의 태극문 문주 냉북두(冷北斗)는 삼류 무공밖에 알지 못한다. 냉북두가 배운 것은 육합권, 복호장법, 산화수, 원앙각, 비응십팔조, 유운지, 포천삼, 용협십이로, 대좌골, 복마검법 등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삼류 무공 열 가지뿐이다. 그렇다고 위지독고가 자신의 무공을 다 가르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열 가지가 실제로 위지독고 무공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위지독고는 그 무공으로 천하제일고수가 되었으나 냉북두는 그러지 못했다.

그것은 재질(才質)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말하자면 위지독고는 평범 속의 비범을 성취할 재질이 있었으나 냉북두는 재질이 부족해 평범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 평범 속의 비범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그것은 ‘완전해지기’를 통해 성취된다. 평범한 무공도 그 자체로 완전해지면 이미 평범이 아니라 비범이 된다는 것, 무도의 완성이 가능할 정도의 비범이 된다는 것(이 발상은 다분히 도가적이다)이 ‘태극문’의 가장 핵심적인 전제다.

그러나 다섯 명 중 끝까지 태극문의 무공을 배우는 것은 조자건 한 명뿐이다. 다른 네 명은 평범의 반복을 견디지 못해 결국 하나씩 다른 길로 떠난다. 모용수는 천기노인(天機老人)을 따라가고, 번우량은 소림사의 속가제자가 되고, 위지혼은 일본도를 배우러 떠난다. 섭보옥만이 무공이 아니라 감정 문제로 떠나는데, 그것은 섭보옥이 여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완성을 이루는 것은 끝까지 태극문의 무공을 배워서 그것을 완전하게 만들어 평범 속의 비범을 성취하는 조자건 뿐이다.

낭만주의적 자아 추구

물론 완성을 이루기까지 조자건은 무수한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 비무행(比武行), 화군악에의 도전권이 걸린 영웅대회, 친구 동생들의 배신, 거듭되는 구호당(九號黨)의 음모, 최고수들과의 대결…. 이를 통해 조자건은 자신의 무공이 가진 허점을 발견하고 이를 하나씩 없앤다. 허점을 모두 없앤 조자건은 자신의 무공을 완성하고 검도의 최고 경지라는 화군악의 무형검(無形劍)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다.



‘태극문’은 한 자아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이런 관점이라면 조자건의 무도 완성은 곧 자아 완성을 뜻한다. 조자건의 경쟁자들은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상관없이 그가 자아의 완성을 이루는 데 필수적인 존재이다. 가령 모용수나 위지혼, 번우량, 섭보옥 같은 우호적 경쟁자들은 조자건에게 중요한 도움을 준다. 섭보옥은 위불군의 치명적 공격을 막아주고, 위지혼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통해 화군악의 무공을 알려주며, 모용수는 조자건의 마지막 허점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들은 조자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자신의 무공을 상실하거나(섭보옥),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위지혼과 모용수).

어쩌면 이들은 조자건과 별개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조자건이라는 한 자아의 여러 다른 측면이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과자옥 같은 적대적 경쟁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련이 필요하듯, 적대적 경쟁자들로 인해 시련을 겪고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자아 완성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또한 적대적 경쟁자들은 자아의 다른 측면, 즉 부정되거나 배제되거나 억압되어야 하는 측면일 수도 있다. 자아의 완성은 통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통합은 하나의 헤게모니하에 한 편의 측면을 포섭하고, 또 다른 편의 측면은 배제한다.

그렇다면 화군악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화군악은 절대적인 타자이다. 절대적으로 강하고 스스로 완벽한 자아인 화군악을 물리친다는 것은 독립적인 완전한 자아 성립의 징표인 것이다. 이러한 자아 성립 이야기는 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무협소설에 나타나는데, ‘태극문’은 그 농도가 유난히 짙은 경우다.

좀더 생각해보자. 가령 대만 작가 워룽성(臥龍生)의 작품 속 자아는 주어진 질서에 대한 무반성적 순응을 통해 형성되는 데 비해, ‘태극문’의 자아는 주어진 질서의 정당성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탐색하며 스스로 새롭게 형성해나간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조자건은 “자신이 추구하는 최고의 무도를 위해서 자신도 모르는 새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라고 자문할 줄 안다. 또한 조자건에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진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게 있어 그건 분명 진실이오”라고 말할 수 있는 강한 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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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junaur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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