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온 밥상에 쑥 천지, 춘분 전에 감자 심고 춘분 지나 홍화 심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입력2004-03-02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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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밥상에 쑥 천지, 춘분 전에 감자 심고 춘분 지나 홍화 심고

    온 가족이 감자를 심고 있다. 남편은 사진 찍느라 빠졌다.

    도시내기인 내게 다가온 자연. 그 느낌을 전하고 싶어 지난해 4월호부터 ‘신동아’에 이십사절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글도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라면, 읽는 이가 떠오르지 않는 독백을 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처음에는, 오랫동안 못 만난 동창에게, 내 사는 이야기하듯 한 줄 한 줄 써내려갔다. 글이 한 번 두 번 이어지면서 여러분이 메일을 보내주셨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신 분 덕에 글에 힘이 붙고 어찌 써야 하나 초점이 잡혀 나갔다. 이번 호로 1년 이십사절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농촌에서 자리잡는 데 얼마?

    우리 동네는 인터넷 전용회선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전화 모뎀으로 인터넷에 연결해야 한다. 가끔 인터넷에 들어가, 메일을 들여다보면 누군가로부터 메일이 와 있다. 이번 호를 쓰기 앞서 그동안 온 메일을 모두 읽어보았다.

    메일 가운데 몇 개를 간추려 들어보자.

    “한국 농촌의 앞날이 많이 걱정스럽게 되어가는 모양인데 장영란씨도 근심되겠지요? 물론 돈 벌러 촌에 들어가시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재화가 필요한 게 사실이니 걱정이 되지 않을까.”(울산에서 정년퇴직 뒤에 시골서 살 준비를 해 가시는 독자)



    “1. 농사일만 하면서 생계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건가요? 글을 읽어보면 자급자족을 하시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농산물을 재배해서 팔기도 하나요?

    2. 처음에 농촌에 가서 집을 구하고(지을 수도 있겠네요) 자리를 잡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얼마 정도를 잡아야 할는지요?”(서울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귀농을 꿈꾸는 독자)

    “나는 초등학교 2, 4학년 두 손녀를 둔 분당에 사는 ***이라고 합니다. 방학 동안에 손녀들을 데리고 한번 찾아뵐까 하는데….”

    돈 이야기, 자녀 교육 이야기를 많이 궁금해하셨다. 돈 이야기는 그동안 미처 쓰지 못했는데, 써야겠구나. 그동안 “뭐 먹고 사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진짜 궁금해서, 때론 걱정이 돼서, 가까운 사람들은 가까운 대로, 낯선 사람은 낯선 대로. 우리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못하면, “요즘 이게 돈 된다더라. 한번 해봐라.” 도움말도 해주신다.

    우리 자신도 돈 문제로 얼마나 끙끙댔나. 입으로는 자급자족하며 살아보겠다 하면서도, 눈으로는 여기저기서 돈 될 거를 찾았다. 생각이 자꾸 그리로 흘러가곤 하는 데야 당해내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대추나무를 심기도 했고, 농사에 맹진해 유기농산물 정부 표시허가를 받고 생협에 납품도 해보았다. 한편으론 천연요양원을 해봐? 자연학교를 해봐? 머릿속에 그려본 계획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농사부터 제대로 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자신을 다독거리며, 들로 산으로 가곤 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며 시골에서 사는 데 자리가 잡히니, 돈에 대해 생각이 바뀐다. 계절이 바뀌듯.

    잠깐 이야기를 둘러가 보자. 처음 귀농한 이웃이, 도시서 걱정하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맑은 공기, 맑은 물, 따사로운 햇살. 여기서 만끽하는 세 가지를 도시서 누리려면 얼마가 들까요? 그만큼 벌고 있습니다.’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입이 이것말고도 많다. 또 여기서는 무엇을 사고 싶어도 마땅히 살 데가 없다. 견물생심과 반대다. 보이지 않으니, 무얼 가지고 싶다는 욕구도 적어진다. 뭔가가 필요한 것 같지만 장에 나가기 귀찮아 미루다 보면 ‘그것’이 꼭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장에 나가보면 ‘그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게 참 많다. 쓸 돈이 굳으니 이게 바로 저축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본다.

    도시에서는 집안에 가만 있어도 돈이 재깍재깍 나가는 기분이었다. 관리비, 할부금, 화장실 한번 다녀와도 물값, 입에 뭐 하나 들어가도 다 돈이었으니…. 시골서는 돈에서 벗어나 살고자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다. 내가 아는 분은 전기, 전화 없이 산다. 산에 옹달샘 받아먹고, 먹을거리는 자기가 농사한 거 먹고, 땔감 해다가 불 지핀다. 돈에서 자유로운 조건이 아닌가. 이렇게 살아주는 이가 있다는 건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그렇게까지 살지 못하더라도 가능성은 있으니까.

    시골서 돈 벌어, 도시 수준으로 쓰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병원비, 아이들 학비, 백화점 쇼핑…. 시골과 도시는 아예 화폐가치가 한 자리쯤은 다른 세계다. 그렇지만 병원에 안 가고, 아이들 학비 안 들면, 소소한 생활비로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얼마 안 되는 이 돈 마련이 그리 쉽지 않은 것도 농촌 현실이다. 그러나 이 돈이 없어 못 살고 떠나지는 않는다.

    귀농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다르다. ‘귀농’이라는 한마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농사를 크게 벌여 일년 소득을 거뜬히 몇 천씩 하는 귀농이 있다면, 텃밭 정도를 가꾸면서 살아가는 귀농도 있다. 일년 내내 땅에 코 박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일에 파묻혀 밭에 풀이 자라는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다 자기 형편대로 자기 모습대로 살아간다.

    돈도 그렇다. 사람마다 한달 생활비가 다 다르다. 일년에 몇십만 원만 있으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일년에 몇천만 원이 있어야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자녀를 도시로 내보내 공부시키려면 돈이 많이 들지 않겠나. 귀농자금도 그렇다. 우리 이웃에는 시골 빈집 빌려 살고, 논밭도 빌려서 농사하는 집이 있다. 산골 빈집은 거저 살지. 농사를 열심히 한다면, 그래서 먹을거리 자급자족한다면 도시 한두 달 생활비로 일년을 산다. 한 집은 맨손으로 시작해 땅도 사고 번듯한 집도 지었다. 유기농산물을 생산해 세상에 좋은 일을 한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우리 이야기를 해보겠다. 우리 부부는 삼십대 후반인 1996년에 시골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큰애 책가방, 작은애 기저귀가방 들고 몸만 내려왔지만, 얼마 뒤 서울 생활을 정리해 목돈을 마련해서 우리가 자리잡고 살 터를 찾았다. 남편은 평당 만원대 땅을 찾았고, 시골로 내려온 지 이 년 만에, 이곳에 마련했다. 논 천평, 밭 천평. 그리고 남는 돈으로 집을 지었다. 자려고 누워서 생각해본다. 없는 게 없는 부자가 바로 나구나. 시골로 오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우리 집에는 아이들까지 일꾼이 넷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 있으니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돈은 별로 없다. 작은애가 용돈을 달라기에 얼마를 바라느냐고 물으니, 한달에 천원을 달란다. 인사는 우리 농산물로 한다. 조카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고추장을 담그고, 형부 육순에 황톳물 들인 베개를 만들어 드렸다. 가을에 오리 잡아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보약 해 드리고, 식구 생일에는 정성껏 음식 만들어 잔치를 한다. 소소하게 들어가는 생활비는 그때 형편에 따라 마련해왔다. 쌀과 고추 농사해서 마련하기도 하고, 지난해는 원고료 덕에 지냈다.

    앞으로는? 앞날은 앞질러 생각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 그때는 나름대로 길이 있겠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만족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자기 물음이다. 돌이켜보면 도시서 살 때는 의지로 살았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어떻게든 밀어붙이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이렇게. 자연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되나. 머리만 앞서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날 눈떠 그날 날씨에 맞춰 하루 일을 정하듯, ‘지금 여기에’ 살려 한다.

    내 안에 숨어 있던 가능성이……

    ‘지금 여기에’ 사는 이야기를 해보자. 이 이야기는 아이들 교육과 이어진다. 시골로 내려오고 학교를 그만두니, 우리 아이들은 우리 부부만의 아이들이 아니다. 많은 분이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신다. 때로는 자기 아이보다 더.

    처음에는 우리도 아이들 교육으로 조마조마했다. 큰애가 전교생 여섯 명인 분교를 다닐 때. 그때는 그때대로. 나중에 면소재지 초등학교로 옮겨왔을 때는 또 그대로. 너무 외롭지 않을까. 아이한테 환경변화가 너무 큰 게 아닐까. 학교를 차례차례 그만둘 때도 마음이 뒤집어지곤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도 한동안 학과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냈지.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어오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이 자기대로 우뚝 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아이들은 함께 밥 먹는 식구, 나와 대등한 인격이다. 내가 뭐를 해줘야 할 것도 없고, 아이들도 내게 바라는 것은 함께 살아주는 정도다.

    온 밥상에 쑥 천지, 춘분 전에 감자 심고 춘분 지나 홍화 심고

    필자의 집 창문에서 바라본, 봄비에 산이 깨어나는 풍경.

    큰애는 학교 그만두고 일년을 나와 공부를 했다. 한데 작은애는 삼일 만에 “혼자 공부하면 안 돼요?” 그래서 나는 ‘해고’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내가 심심할 때 놀아주고, 내가 힘들 때 감싸준다. 이제 내 할일은 내 자신이 잘 살아가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이리 자랐나? 부모가 무어 해준 게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게 아닌데.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는 답을 찾는 일은 우리 삶이 자리를 잡는 일이고, 다른 이한테도 도움이 되는 일이리라. 큰애는 자신을 표현할 나이가 되었으니, 내가 나설 일은 아니다. 그래 작은애 살아가는 모습에 눈을 맞추었다. 서울서 태어나, 젖먹이 때 시골로 내려와 자란 작은애. 작은애 자라는 이야기는, 자연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가정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지난해 입춘부터 작은애 일기를 대신 쓰기 시작했다. 절기마다. 그러니까 한달에 두어 번. 일기답게 아이가 하루를 보낸 이야기를 쓰되, 아이가 몸 움직여 무슨 일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이들도 자기 힘만큼 일할 때 몸과 마음이 자란다’는 느낌이 있어 시작하면서도 한편으론 작은애가 무슨 일을 하랴 싶기도 했다. 한데 써내려가면서 놀랐다. 아홉 살짜리 그 작은 몸이 꼼지락꼼지락, 아이가 하는 일이 참 많았다. 농사일도, 집안일도, 때로는 톱질까지 해나간다. 벼 타작하는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 먹을거리 마련하는 아이에게 ‘파브르 곤충기’는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일을 해내는 만큼 몸과 마음이 자라고, 삶에서 우러나오는 호기심으로 공부를 한다. 내 자랄 때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몇 번 ‘힘을 얻는다’는 말을 썼다. 힘을 얻는다면 도대체 무슨 힘을 얻는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스스로에게 대답해본다. 전에는 오리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머리를 썼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일을 하도록 또 머리를 썼지. 한데 이제는 오리장이 필요하면 머리와 몸이 하나가 되어 뚝딱뚝딱 만들어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해낼 때 그 뿌듯함. 그 순간 자신감이 뻗어난다. 농사해 먹을거리 해내니 먹고살 자신이 생긴다. 톱질, 지게질 하듯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도 생긴다. 해마다 다른 자연, 그 자연에서 얻은 걸로 새로운 요리를 할 때 창조하는 힘이 자라나고, 산을 오르내리며 평화를 배운다.

    낮에는 바깥일을 하여 자급자족을 하고, 해지면 지난 1년 아이 대신 쓴 일기를 식구들과 함께 읽으며 고쳐 써본다. 글에서 주인공인 작은애가 일을 하며 자기 몸과 마음을 키워나가듯, 글쓰기는 내 안에 숨어 있는 가능성을 풀어내 준다. 어디 발표하기로 약속한 글이 아니니 글쓰기가 자유롭고 창조적일 수 있다. 나이 들어 메말라 없어졌을 거라 생각한 창조하는 힘이 봄 오듯 꼬물꼬물 살아나려는가!

    자기 행복을 찾는 선택

    한마디로 말하면 귀농은 선택이다. 자기 행복을 찾는 선택. 퇴직금 들고 외국으로 배낭여행 가는 이가 있다지. 자기 전재산을 털어 외국에 가듯, 자신의 행복이 시골에 있다고 생각하면 시골로 내려올 수도 있다.

    도시에서는 할일 없어 빈둥대던 사람도 시골로 오면 하루가 바쁘다. 내 손길을 기다려주는 일이 있다. 그 일은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면서 또 이 세상에도 쓸모 있는 일이다. 자기 손으로 농사한 걸 거둬 밥 해 먹는 일에서부터, 집 안팎 손질하며 내게 이런 능력이 있던가! 새롭게 느끼며….

    시골, 더 깊이 산골로 들어갈수록 마을 인심이 남아 있다. 빈집이 있으면 거저 살 수 있다. 이웃 할머니가 어찌 알고 신 김치야 된장이야 들고 오신다. 농사를 제대로 못해도 가을 타작 철에 콤바인을 따라다녀 일년 양식을 마련하는 걸 본다. 힘쓰는 일 해주면 인정받고 돈도 받는다. 여기도 사람 사회라 임시직 일거리는 있다. 면사무소 일, 산불 감시원…. 그러면서 차츰차츰 심어먹는 재미 들이고. 집 짓는 재미 들여 자리잡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막막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많다. 전국귀농운동본부(www.refa rm.org 742-8726)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전국 대도시에서 저녁 시간에 귀농학교가 열린다. 실상사 장기 귀농학교가 있으니 몇 달 농사일을 체험해보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풀무전공부나 녹색대학이 열려 정규학교도 있다. 귀농 카페에서 정보나 도움말을 얻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전국에 내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깨닫고, 놀라웠다. 저 강원도 산골짜기부터 남쪽 바다 끝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귀농한 이들이 많다. 귀농은 이제 몇몇 사람이 하는 별난 선택이 아니라, 도시문명에서 벗어나 자연 가까이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흐름이 되고 있는가!

    쑥 먹고 아이들이 쑥쑥

    경칩 하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떠오른다. 2월 말이면 양지바른 곳에서 개구리가 깨어나기 시작해 이맘때면, 한낮에도 개구리 울음소리 들린다. 물웅덩이에는 개구리 알도 있지만 도롱뇽 알도 많다. 도롱뇽 알은 투명한 관 속에 들어있고 개구리 알은 뭉텅뭉텅 뭉쳐져 있다. 이 알이 몸에 좋다고 먹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오리에게 떠다 준다. 오리는 개구리 알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 알을 한 양동이씩 떠다 주면, 다음날 굵은 알을 낳는다.

    잠자리, 나비, 벌도 하나 둘 눈에 띄고 암탉은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깐다. 꽃다지, 광대나물엔 벌써 꽃봉오리 맺히고, 온 산천에 봄기운이 자라난다. 온 세상이 얼어붙을 때도 한여름 뙤약볕에도 일년 내내 끄떡없는 별꽃은 막 뻗어가겠지. 벌금자리는 어떨까? 이맘때는 무슨 풀이 뻗어가고, 싹 틔우고, 사그라지는가. 들을 다니며 풀만 봐도 심심하지 않다.

    겨우내 숙제처럼 남겨두었던 논밭 정리를 마무리해야 한다. 무성한 풀을 한번에 없애기 위해 논둑 밭둑에 불을 놓고 싶은 유혹이 든다. 봄에 산골에서는 불똥이 언제 어떻게 튈지 모른다. 아주 위험하다. 자칫하면 불을 내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불이 나면 온 동네 비상이다. 뛰어나와 일단은 불부터 끄고 본다. 미우나 고우나 같은 산자락 아래 깃들여 살아가는 공동체다.

    봄인가 싶지만, 어디선가 눈보라가 세차게 몰려온다. 또 꽃샘바람이 세차게 불어 모든 걸 날려버릴 태세다. 비닐집을 치고 모종을 기르려면 이런 날씨에 대비해야 한다. 온도를 가늠하여 씨를 넣어야 하고, 비닐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든든히 고정해야 한다. 고추를 시작으로 가지, 토마토, 그 다음이 완두, 양배추, 봄배추…. 줄줄이 씨를 넣고. 바깥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게 되면, 씨로 쓰려 보관해둔 고구마를 묻는다. 앞당겨 기르려니 온도를 맞추려고, 비닐집 속에 다시 덮어준다. 그러니 아침이면 열어주고 저녁이면 여며주며 문안인사를 한다.

    양지에서 쑥이 자라니 쑥철 돌아왔다. 어린 쑥은 칼로 도려 맛으로 먹는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 나중에는 온 밥상에 쑥 천지다. 쑥밥, 쑥된장, 쑥달걀찜, 쑥지짐, 쑥미숫가루, 쑥버무리, 쑥덕쑥덕…. 봄 쑥 먹고 아이들이 쑥쑥 자란다. 그 가운데 가장 즐기는 것은 봄 막장 국이다. 음력 정월에 장을 담그며 메주 한 덩이 따로 담근다. 소금물을 자작자작하게 풀어넣고 담갔다 이맘때 꺼내면 풋풋한 봄 막장이다. 햇쑥 넣고 끓여먹는 그 맛이란.

    돈 주고 사오는 건 쓰레기를 남긴다

    농사철 돌아오기 전에 집 안팎 대청소를 한다. 비 올 때 집안 치우고, 날 좋을 때 집 뒤란부터, 하수도 치고, 마당, 광을 치운다. 사람 사는 데 무어 필요한 게 많은지. 살림살이가 지천이니 쓰레기도 많다. 도시에서 살 때는 분리수거를 하면 되었다. 똥 누고 물 내리면 끝이듯,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면 누군가가 치워주었지. 여기서는 똥 누면 그걸 받아 모아 거름으로 써 거기서 난 것을 다시 먹는다. 쓰레기도 어찌 하는 수가 없을까?

    도시서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오겠지만, 시골에서도 쓰레기로 골치가 아프다. 어디나 지방자치단체가 쓰레기 수거를 하는 방법은 같다. 그러니 거기 따라 버리면 된다. 다만 쓰레기를 걷으러 동네까지 와주지 않으니, 쓰레기 싣고 면사무소 옆 분리수거장까지 날라야 한다. 한데 쓰레기를 돈 주고 어딘가로 보내는 일이 자꾸 망설여지는 거다.

    마을 어른들은 어떻게 하나? 쓰레기가 나오면 ‘쳐 낸다.’ 한데 모아 태워버리는 거지. 아니면 강이나 계곡에 던져 버린다. 오래 전, 그러니까 비닐이나 깡통이 나오기 전부터 이어오는 습관이리라. 하나 이제는 농약병, 밭에서 나오는 비닐, 깡통, 소주병. 버린 냉장고…. 쓰레기가 이리 바뀌었다. 그래서 이런 게 계곡에 처박혀 있고, 비가 많이 올 때 강물에 떠내려온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돈 주고 사오는 건 모두 쓰레기를 남긴다. 자연에서 내가 몸 움직여 얻은 거는 쓰레기가 없다. 논밭에서 난 것 중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은 짐승 모이를 하거나 거름이 되지. 나무, 흙, 돌로 만든 물건은 다시 돌려놓으면 된다. 한데 밖에서 들어오는 건 하다못해 포장지라도 남긴다.

    쓰레기를 보면 내 살아가는 꼴이 숨김없이 보인다. 과자봉지, 술병, 형광등, 욕심으로 챙겼다가 입지도 않고 버리는 옷가지까지…. 가게에서 비닐봉지 하나라도 안 받아오려 하지만, 우리 집 곳곳에 비닐은 넘쳐나고. 플라스틱 그릇은 얼마나 나뒹구는지. 하나하나 줄여나가자고, 빗자루 하나라도 사지 않으려 댑싸리를 키워 쓴다. 이러면서도 다음 장에 나가면 비닐봉지에 뭔가를 주렁주렁 사가지고 올지 모른다.

    종이는 아궁이에서 불쏘시개 겸 태우지만, 다른 쓰레기는 태울 수 없다. 굴뚝 물을 받아 써야 하고 또 독가스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터 한쪽에 묻어보기도 했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렵다. 또 햇볕에 자연 분해되라고 놔둬보았다.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게 몇 년 하다 결국 쓰레기 봉지를 사서 거기 담아, 싣고 나가버린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부끄럽다. 그래 생태니 환경이니 하며 취재하자는 소리가 나오면 손사래를 친다. 쓰레기를 치우며 쓰레기 안 나오는 삶이 무언가 곱씹어본다.

    봄은 논밭에서 꿈꾸는 때

    쉬엄쉬엄 하다 보면 춘분이 다가온다. 낮과 밤이 같아지고 천지를 녹이는 봄비가 소리 없이 온다. 잠든 나무 흔들고 묵은 것을 날리는 꽃샘바람이 불고 또 분다. 꽃샘바람 어찌나 차고 매서운지 옛말에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 했고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했다. 그래도 계절은 쉼 없이 흘러 어느새 개구리 알 깨어나 올챙이가 돌아다닌다. 새벽이면 얼음 얼고 하얀 서리 덮이지만, 서릿발 이겨내고 봄은 오신다.

    들에는 노란 꽃다지꽃, 하얀 냉이꽃이 차례로 피고지고 들판에 별꽃, 논둑에 머위꽃이 나비를 부른다. 산에는 생강나무에 노란 꽃, 개암나무에 연두 꽃이 핀다. 원추리, 돌, 달래, 냉이, 망초 나물이 한창이고, 아이들은 신맛을 찾아 수영을 뜯어 먹는다. 샘가에 가면 미나리, 논둑에 머위 잎이 입맛을 돋운다. 틈틈이 나물 해다 밥상에 봄 잔치를 차린다.

    춘분 지나면 밭에 씨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감자가 첫째로 들어간다. 감자는 서늘한 기운을 좋아해, 봄과 가을 두 번 기를 수 있다. 봄 감자는 3월 말에 심어 하지에 거둔다. 지난해에도 감자 가운데 씨감자를 골라 겨우내 저장했다. 그걸 꺼내 심기는 하는데, 집의 씨로 해서 잘된 적이 없다. 그래서 올해도 씨감자를 한 상자 신청해놓았다. 우리 씨감자로 한 줄, 사온 씨감자로 한 줄. 이렇게 심으며 우리 씨로 농사할 날을 기다린다. 올해는 생명력이 강하다는 돼지감자도 심으려 한다.

    그 다음이 홍화다. 꽃잎도 먹고, 씨도 먹는 홍화. 홍화도 찬 기운을 좋아해 된서리에도 동그란 떡잎이 파랗게 올라온다. 지난해 홍화가 여물 때 비가 어찌나 많이 왔는지! 그래서 씨가 물에 모두 뜬다. 이 씨가 제대로 생명을 담고 있는지. 조마조마하다. 씨를 제대로 받기가 쉽지 않구나. 올해는 춘분이 그믐이다. 그러니 달이 기우는 춘분 전에 감자 심고, 춘분 지나 달이 차오를 때 홍화를 심어야겠다.

    산림경제를 보면 ‘2월 춘분에 모든 채소를 심는다’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날이 차다. 그러니 비닐집 속에다 심는다. 봄배추, 양배추, 양상추. 이때 심으면 봄나물이 끝나서 먹을거리 궁한 보릿고개에 먹을 수 있다. 아직까지 미뤄둔 모종도 씨를 넣는다. 지금 심으면 5월 초에 서리가 걷힐 때까지 사십일. 밭으로 나가기 딱 좋다. 토마토, 수박, 오이, 참외, 대파, 수세미, 호박….

    농사일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논밭은 비어 있다. 논과 밭 둘러보며 밭 정리하고 나물하고 있으면, 올해 여기다 무얼 심을까 계획이 떠오른다. 저녁밥 먹으며, 식구마다 자기 농사 계획을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무슨 곡식이 알맞고. 그건 어렵고, 배수로를 다시 파야 하고….

    올해는 논밭에 무얼 채울까. 지난해와 같은 것도 있고, 돌려가며 짓는 곡식도 많다. 물 차서 다른 게 안 되는 곳엔 올해도 들깨, 콩나물 콩. 밀과 보리 마늘 밭엔 뒷그루로 팥이나 김장거리. 땅 살 좋은 밭에 고구마 땅콩 당근 생강 같은 뿌리를. 고추 토마토 가지 수박은 거름진 땅에 심어야 하지만 지난해 심은 자리는 피해야 하는데 어디가 좋을까? 밭마다 북쪽으로는 옥수수를 심어야지. 참깨는 물 빠짐이 좋은 밭에 심어야 하고, 너른 콩밭 사이사이 수수와 기장. 산밭에는 토끼가 안 먹는 메밀과 조. 밭둑 위로는 호박, 밭둑 아래 길로는 동부 콩. 심고 거두는 차례도 생각해 한살이가 긴 작물은 밭 안쪽, 잔손질 많은 작물은 길 좋은 데로. 땅 사정, 곡식 사정, 사람 사정 헤아려 계획을 세운다. 지난해 아쉬웠던 곡식을 넉넉히 농사해 나눠먹을 야무진 계획도 잡는다. 봄은 논밭에서 꿈꾸는 때다.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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