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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의 성인 숨결 어린 아시시(Assisi)

르네상스 도래 알린 이탈리아 미술 聖地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청빈의 성인 숨결 어린 아시시(Ass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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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의 성인 숨결 어린 아시시(Assisi)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총본산인 성 프란체스코 성당 상원(上院). 1253년 헌당됐다.

프란체스코는 포목상으로 큰돈을 번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와 프랑스 프로방스 출신의 어머니 피카 사이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 프랑스까지 판로를 개척해 장사를 해서인지, 아니면 프랑스인 부인을 지극히 사랑해서였는지(‘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는 몰라도 피에트로는 이 아들을 프란체스코라 불렀다. 프란체스코는 이탈리아어는 물론 프랑스어, 라틴어까지 배웠고, 음악과 시도 공부했으며, 아버지를 이어 장사에 종사할 것에 대비, 계산법도 익혔다.

그는 이렇듯 배우는 데 열심이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데도 빠지지 않았다. 어울린다기보다는 보스 흉내를 내고 싶었다고 해야 할 정도로 그는 친구들에게 한턱 ‘쏘기’를 즐겨했다. 용돈의 규모가 자연 늘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더구나 이 점에선 어머니가 아버지를 앞섰다. 정말 그는 행운아였다.

“가서 너의 집을 고쳐라”

그러던 그에게 삶의 전기가 찾아왔다. 18세 되던 해 아시시와 이웃 도시 페루자 사이에 전쟁이 터지자 참전했다가 아시시가 패하는 바람에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던 것. 그러다 중병에 걸려 1년 만에 풀려나 고향에 돌아왔는데, 그 어려웠던 시간이 그를 변화시켰다. 육체적으로 괴롭힌 병고와 수용소 생활이 그에게 정신적 개안(開眼)의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그때껏 자신이 매달리고 탐닉해온 것들이 갑자기 의미를 잃고 그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깊은 회의에 빠져들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다시 교황의 군대에 들어가 남부로 원정의 길을 떠났다가 또다시 병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 그를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마태복음 19:21)는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그 말을 따라 길에서 만난 나병 환자에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는 등 적선을 베풀며 살던 어느 날 그는 아시시 교외의 다 허물어진 작은 성(聖) 다미아노 성당을 지나다가 문득 어떤 충동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성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그때 그의 귓가에 이런 말씀이 들려왔다. “프란체스코야, 가서 너의 집을 고쳐라. 이렇게 쓰러져가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느냐?”



그는 가진 것 모두를 바쳐 성당을 손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프란체스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뒀다간 가산을 탕진할 것 같아 아들을 찾아 교회로 달려갔다. 이 소식을 들은 프란체스코는 우선 아버지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비밀동굴에 몸을 숨기고는 하느님께 박해자로부터 자신을 구해달라며 기도했다.

그러나 곧 자신이 비겁자라는 것을 깨닫고 동굴에서 나와 마을로 향했다. 아버지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야위고 초췌한 모습을 보고 미쳤다며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으나 그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쇠사슬로 묶어 가둬버렸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에 고무되는 계기만 만들어줬다. 게다가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가 그를 풀어줘 자유의 몸이 됐다.

집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안 피에트로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달래볼 생각으로 교회로 갔으나,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신변을 책임진 관구(管區) 주교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향해 “이제까지 나는 당신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는 거리낌없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를 것입니다”라며 육신의 아버지와 결별 선언을 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요구대로 그가 가진 물질적 재산을 ‘아버지’에게 모두 되돌려줬다. 스물네 살 때(1206년)의 이 ‘출가’로 그는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이 되면서 수도사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성 다미아노 성당에 이어 성 베드로 성당,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 포르치운콜라 성당 등을 차례로 수리했다. 특히 포르치운콜라 성당은 후일 프란체스코가 수도회 운동을 시작한 곳으로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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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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