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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⑪|댓재에서 삽당령까지

벌거벗고 신음하는 대간마루, 동해 푸른 파도가 달래주나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벌거벗고 신음하는 대간마루, 동해 푸른 파도가 달래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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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행 열차는 평소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피서객들로 가득 찬 열차에서 소음은 어쩔 수 없다지만 이번엔 정도가 심했다. 좌석번호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이에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객차 안은 시장바닥처럼 변했다. 한바탕 실랑이가 끝나자 이번엔 단체관광객들이 술잔을 돌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예전에는 의자를 돌려놓고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까지 있었는데, 요즘엔 철도청 공무원들의 강력한 단속으로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필자처럼 주변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잠을 잘 잔다면 몰라도, 잠자리에 민감한 사람은 강릉행 밤 기차가 고달플 수도 있겠다.

구름으로 뒤덮인 두타산

8월14일 새벽 3시. 기차는 강원도 정선 땅을 지나고 있다. 강원도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씨가 절절하게 배어난다는 정선아리랑의 고향은 증산역에서 왼편으로 꺾어지고, 기차는 이곳에서 곧장 달려 사북과 고한을 지나 태백으로 향한다. 사북과 고한의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매스컴에 무수히 오르내린 강원랜드의 정선카지노가 있다. 석탄산업의 사양화에 대비하고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꾀한다며 강원도 땅에 들어선 정선카지노. 과연 정선카지노는 설립목적에 충실하고 있을까. 백두대간에서 만난 강원도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했다.

새벽 4시, 태백이다. 1981년 삼척시 장성읍과 황지읍을 통합해서 만들어진 태백시는 한때 전국 석탄생산량의 3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하지만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조치 이후 급격하게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50여곳에 달하던 탄광도 하나둘씩 문을 닫아 겨우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탄광도시 태백의 옛 모습을 살펴보려면 태백산 입구 당골광장의 석탄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택시를 타고 댓재로 향했다. 삼척시 하장면의 댓재에 이르자 실비가 뿌리고 있었다. 랜턴을 비추며 천천히 대간으로 붙자 산길이 무척 미끄러웠다. 아마도 밤새 비가 내렸나보다. 아침 일찍 비를 맞으며 산길을 걷다 보면 갈증은 덜하지만 빨리 지치고 체온관리에 애를 먹는다. 그래서 일단은 땀이 날 때까지 빨리 걷는 게 좋다. 다행히도 두타산(1353m)까지는 넓은 길이 나 있어 내칠 수 있었다.



두타산(頭陀山)의 ‘頭陀’는 불가에서 ‘모든 걸림으로부터 벗어나 산천을 떠도는 스님’이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두타산을 걸으며 오른편의 무릉계곡을 굽어보면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고려 충렬왕 때의 이승휴는 임금의 뜻을 거슬러 파직당하자 이곳에 은거하며 스스로 두타산거사라 이름 지었고, 조선시대의 서예가 양사언을 비롯, 수많은 문인이 무릉계곡에 들어와 자연과 벗하며 호방한 문장을 남겼다.

두타산 정상은 온통 구름 천지다. 정상 표지석 밑에서 다람쥐 두 마리가 뛰놀고 있었다. 필자는 한입 베어 문 사과를 다람쥐에게 던져주고 주변을 둘러보다 수풀 사이로 눈길을 끄는 표지판을 보았다. ‘뉴밀레니엄을 맞아 1000명이 모여 1000년을 산다는 주목 1000그루를 강원도 지역의 1000m가 넘는 봉우리에 심었다’는 기록이다. 밀레니엄 이벤트 치고는 꽤 의미 있는 작업이라 여기며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랐다.

두타산은 삼척과 동해의 경계지점이다.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는 청옥산과 두타산의 지명이 바뀌었는데,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두타산에서 청옥산(1403m)으로 가는 도중 비구름이 몰려왔다. 쏟아붓다가 잠시 쉬고 다시 쏟아붓는 게릴라성 호우였다. 오른쪽 무릉계곡 쪽으로 탈출할까 생각했지만, 빗길에 계곡으로 내려서는 것보다는 부지런히 대간을 걷는 게 낫겠다 싶어 속도를 높였다.

우중산행 뒤의 환희와 슬픔

빗줄기가 굵어졌다. 청옥산에서 망군대를 지나 고적대(1353m)로 올라서는 동안 부서진 바위부스러기가 빗물에 흘러내려 아찔한 순간을 맞았다. 발밑으로 떨어지는 바위부스러기를 내려다보니 깎아지른 절벽이다. 나무줄기와 밧줄에 의지해 가까스로 고적대 정상에 올라서자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혔다. 불과 10분 새에 흰 구름은 푸른 신록의 아래편으로 가라앉았다. 필자는 고적대 바위에 기대어 구름을 뚫고 솟구친 백두대간의 자태를 감상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멀리 동해바다의 풍광도 바라다보였다.

고적대를 떠나기 무섭게 또다시 빗줄기가 들이닥쳤다. 갈미봉(1260m)을 지나 이기령으로 가는 동안에는 지도의 코스와 실제 길이 달라 애를 먹었다. 이기령부터 상월산(980m)까지는 완만한 오르막. 필자는 이 구간에서 체력이 떨어져 곤욕을 치렀다. 장시간의 우중산행으로 힘이 빠진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무릎 통증까지 재발했다. 한 걸음씩 발을 옮길 때마다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리를 주무르는데 천만다행으로 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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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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