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서양 근현대사 흥미롭게 깊이 읽기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 글: 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서양사상사 hocho@knue.ac.kr

    입력2004-10-28 10:5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양 근현대사 흥미롭게 깊이 읽기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윌리엄 랭어 엮음/박상익 옮김/푸른역사/796쪽/3만1000원

    이번역서의 원본은 ‘서양 문명의 전망’ 제2권이다. 제1권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바 있다. 제목이 말해주듯 1권이 서양의 고대와 중세 역사에서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택해 심도 있게 서술했다면 2권은 서양 근현대사의 기억할 만한 사건과 인물을 선정해 이에 대한 ‘깊이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의 편집자인 윌리엄 랭어는 하버드대 교수로 1,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외교사의 전문가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 정보부에 근무했고 종전 후에는 국무성 장관의 보좌관으로 재직했다.

    그가 우리에게 친숙하게 여겨지는 것은 여러 이유에서다. 앞에서 살펴본 경력 외에도 1958년 미국 역사학회 회장으로서 그는 ‘다음의 과제’라는 연설을 통해 역사 연구에 정신분석학의 성과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유수의 역사가들이 당시로선 새로운 학문이던 정신분석학을 경멸하며 그 수용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과 달리 그는 역사학이 정신분석학의 개념 도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는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심리적 요인에 대한 천착

    그러나 정작 그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즉 그가 미국의 명망 높은 하퍼 출판사에서 간행된 총서 ‘현대 유럽의 성장’의 책임 편집자였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근대의 맹아가 싹텄던 13세기 중엽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역사의 굵직한 줄기와 결정적인 전환점에 대해 당대 최고의 역사가들이 한 권씩 집필해 이뤄진 총서다. 필자가 대학원생이던 1970년대 후반은 외국 서적의 원서는 물론 관련 정보조차 구하기 어려운 때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윌리엄 랭어 총서에 들어 있다면 반드시 구해야 할 중요한 책으로 여겨졌다. 그 총서는 역사적 지식뿐 아니라 장중하고 감동적인 서술의 필치 때문에 역사학도라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었던 것이다.

    책의 저자도 아닌 편집자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단지 그의 현학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경력에서 그가 이 책의 주제를 선정한 의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학사와 사상사, 기술사와 전쟁사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근현대라 불리는 막연하게 긴 시기를 주제로 선택한 것은 ‘현대 유럽의 성장’ 총서의 책임 편집자로서 윌리엄 랭어의 방대한 역량을 상기시켜준다.

    한편 계몽주의와 루소, 로만주의(옮긴이는 로맨티시즘을 음역해 번역한 일본 학자들의 한문 표기법을 우리의 발음대로 읽은 낭만주의를 로만주의로 대체하자고 제안한다. 필자 역시 올바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와 ‘아동의 역사’에서 심리적 요인에 천착한 부분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그의 긍정적 자세를 보여준다.

    표트르 대제나 나일강 해전, 서양 근대사 최고의 엔지니어였던 브루넬 및 영국의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서술에서 나타나는 기술자들과 행정 실무자들에 대한 관심은 행정관리로서 그의 경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트로츠키나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부분은 외교사 전문가로서 2차대전 종전 이후 세계가 냉전체제로 흐르는 데 무관심할 수 없었던 그의 처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주제를 선정했다 할지라도 직접 집필한 것은 아니기에 이 책에 실린 글들 사이에는 기묘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17세기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네덜란드의 번영에 대한 서술이나 ‘저개발국가’에 속했던 러시아에 유럽 문화를 흡수하여 근대화를 추구한 표트르 대제의 유럽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서양사 개설서에는 네덜란드가 스페인과 오랜 기간에 걸쳐 종교적 투쟁을 벌인 일이나 유럽의 선진 문명을 직접 배우려 한 표트르 대체의 치적이 비교적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 개요에 대단히 풍부한 내용을 덧붙였다. 당시 스페인과 맞서 싸운 네덜란드가 상업과 문학, 예술 분야에서도 엄청난 활력을 확보했던 사실이나,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에 의해 아시아로 ‘추방’되었던 러시아가 다시 ‘유럽화’하려는 과정에서 묘사된 표트르 대제의 면모는 추상에 머물던 우리의 세계사 지식을 구체적인 것으로 바꾸어주기에 충분하다.

    18세기 유럽 귀족층 자제를 교육하기 위한 방편으로 수행되었던 ‘유럽 그랜드 투어’에 대한 묘사는 매우 흥미진진하다. 문화적 유산이 빈약했던 북·동유럽 국가에선 귀족의 자제들을 대학에 보내기보다는 파리를 거쳐 이탈리아로 보내 여행하면서 견문을 쌓도록 했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 이 교육 방식을 통해 당시 각국 귀족계급들 사이에 공통의 행동 규범과 연대 의식이 생겨났다. 이 그랜드 투어를 통해 귀족 자제들은 예술에 대한 안목과 감식력을 높이고 교양과 지식을 넓혔다.

    이 같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번영과 표트르 대제의 여행, 귀족층 자제의 유럽 그랜드 투어에 대한 설명은 보통의 개설서에서는 간략하게 소개되거나 혹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 내용이다.

    반면 웬만한 역사서라면 자세하게 다뤘을 주제인 계몽주의와 로만주의에 대한 설명은 의외로 간단하다. 구체적인 한 인물이나 개별 사건이 계몽주의나 로만주의 같은 거대한 사상적 조류와 함께 주제로 선정된 것부터 불균형적이지만 그 서술의 심도에서는 더 큰 불균형이 나타난 것이다.

    70년대 유럽 지성계 풍토 엿보기

    이 책의 다른 면에서도 불균형이 감지된다. 예컨대 과학사의 거목인 뉴턴과 다윈에 대한 서술은 두 위인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룩한 업적을 충실하게 압축 표현한다. 만유인력의 발견과 ‘프린키피아’ 출판의 의미는 뉴턴이 살던 시대의 업적이지만 그 중요성은 결코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진화와 관련된 이론을 확립시킨 다윈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글들은 통시대적인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반면 “우리 시대에 계몽주의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한 장절의 제목이 시사하듯 계몽주의와 트로츠키, 조지 오웰을 다룬 부분이 실린 것은 이 책의 원본이 출판된 시기에 그 인물들과 사상이 새롭게 부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장절을 읽으며 계몽주의와 트로츠키, 조지 오웰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은 물론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던 1970년대 초반의 지적 풍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시 씌어진다. 시대마다 역사로부터 요구하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정하는 주제가 바뀌기도 하고, 주제에 접근하고 서술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책을 출판할 때는 초판의 출판 시기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번역본에서 몇 년도에 발간된 판본을 이용했는지 밝히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다. 독자는 이 책의 원본이 최근에 발간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며 17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서양사의 드라마에 감명받음과 동시에 1970년대 초반 유럽 지성계의 흐름을 추측해보는 이중적인 즐거움을 차단당하게 된다.

    ‘서양 문명의 전망’이라는 원제는 다소 거창한 측면이 있지만 다양하고 방대한 주제에 대한 흥미로운 서술이 제목을 어느 정도 정당화해준다. 하지만 지금의 역사학계는 이 책이 다룬 여러 주제에 대해 세부적으로 더 많은 연구 성과를 축적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느 정도 ‘오래된’ 전망이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이 책이 제공하는 정보보다 더 새로운 정보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방대한 주제, 흥미로운 서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중요성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 출간될 당시, 즉 지금보다 한 세대 이전에는 더 깊고 더 넓게 역사와 문명을 내다보는 대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사학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었지만 일반 대중이 역사학에서 진정 원하는 것은 세분화보다는 대가에게서 얻을 수 있는 광범위한 안목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각 장 끝에는 독자가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상세한 주를 달았다. 옮긴이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은 몇몇 같은 지명이나 인명이 장마다 다르게 표기된 것이다. 예컨대 ‘튜린’과 ‘토리노’, ‘사보이’와 ‘사브’ 표기가 공존하고 있다. 재판(再版)에서는 더욱 꼼꼼한 편집 작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