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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유럽기행

태양과 정열의 땅 스페인 안달루시아

가톨릭 주춧돌 위에 펼쳐진 이슬람 문명의 기적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태양과 정열의 땅 스페인 안달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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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정열의 땅 스페인 안달루시아

알바이신 언덕에서 바라본 알함브라 궁전.

메스키타의 한 쪽에는 무려 2만5000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는 성당이 있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5세가 부하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치형 기둥의 일부를 헐고 그 자리에 고딕 양식으로 지은 것이다.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그런 식으로 표출하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왕은 성당이 완공되자 이곳을 둘러보고는 실망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고칠 줄 알았다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을. 그대가 만든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대가 파괴한 것은 이곳에만 존재했던 특별한 것(something unique)이었다.”

손용진 사장은 필자 일행을 ‘꽃의 골목’으로 안내했다. 골목 양편에 늘어선 집집마다 좁은 골목을 향해 난 창틀에 제라늄 등 붉은 화분을 내걸었다. 압두르라만 1세가 유대인에게 회계관리나 행정업무를 맡기는 등 우대 정책을 펴자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살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고 손 사장이 말해줬다.

그곳에서 ‘메리얀(Meryan)’이란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넓어졌고 파티오(안뜰) 곳곳이 조각과 꽃으로 장식돼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인상 좋은 60대의 주인은 작품(?) 몇 개를 골라 설명하고는 작업과정까지 재현해 보였다. 하나하나가 대단한 수작이라 모두 합하면 엄청난 재산이 될 것 같은데도 주인은 세 아들과 함께 가게 일에서 손을 놓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필자의 뇌리에 톨레도의 어느 금속 공예점에서 만난 다마스키나도가 스쳐지나갔다. ‘다마스키나도’란 다마스쿠스 출신의 장인을 일컫는 말이다. 우마이야 왕조는 그들이 있어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다마스키나도는 그 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던 셈이다.



코르도바는 300년의 영화를 누리고 쇠망의 길을 걸었다. 그 후 스페인은 군소 이슬람 왕족이 난립하는 이른바 ‘타리파 시대’를 맞았다. 그때 힘깨나 쓰던 소국이 그라나다, 세비야, 말라가, 발렌시아, 사라고사 등이다. 영화로도 유명한 엘 시드 장군이 나타나 스페인군이 용맹을 떨친 것도 다름아닌 이때다. 스페인 기독교도들이 자기네 땅에서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겠다고 나선 게 ‘레콘키스타’, 즉 국토회복운동이었는데 엘 시드는 그 서장을 장식한 인물인 것.

타리파 시대의 대표적 도시인 그라나다로 가는 길도 올리브 밭의 연속이다. 한 시간을 달렸을까, 저 멀리서 흰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준봉이 시야에 들어왔다. 첫눈에 영화 ‘닥터 지바고’의 로케 장소이자 유럽의 스키어들이 꿈에 그리곤 한다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라나다는 그런 산들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룬다. 시에라네바다의 눈 녹은 물이 사시사철 땅을 적시고 그게 방벽 역할까지 해준다.

기독교도들에게 쫓겨 반도의 북·중부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코르도바, 세비야마저 잃은 무어족이 그라나다에서 250여년(1236∼1492)이나 버텨낸 것은 오로지 이처럼 특이한 지형 때문이었다. 석류라는 뜻을 가진 그라나다는 8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던 이슬람 세력의 ‘최후의 보루’였다.

태양의 언덕에 선 알함브라 궁전

석류는 올리브와 마찬가지로 사막에서도 잘 자란다. 같은 수종으로는 무화과와 사이프러스(삼나무) 등이 있다. 그라나다는 인구 20만의 도시인 데도 넓어 보였다. 곳곳에 높다란 골리앗 크레인이 서 있어 관광도시라기보다는 신흥 산업도시라는 느낌을 준다. 관광수입을 밑천 삼아 새롭게 발전하는 도시라서 그런 것 같았다.

필자 일행은 타고 온 차를 호텔에 세워두고 택시를 탔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아랍인 마을 알바이신으로 오르기 위해서였다. 그곳 역시 여느 이슬람지구와 마찬가지로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거주자가 아니면 택시나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게 손 사장의 설명이다.

차는 다로(Darro) 개울을 따라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다 목적지인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멈췄다. 그러자 숲속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알함브라 궁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러 개의 적황색 건물로 이루어진 궁전은 넓은 정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멋진 정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셔터를 누르는 사람, 스케치북에 옮겨 그리는 사람, 이들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팔거나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로 전망대는 활기가 넘쳤다.

무어 왕조가 기독교도들에 쫓겨 그라나다까지 밀리자 왕실을 따라 장인과 상인, 관료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최고의 번영기를 맞았던 알바이신은 지금도 아랍 특유의 하얀 집들로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가옥이 모두 흰색 벽에 연한 황토색 기와 지붕인 것은 태양이 눈부신 지역이라 실내온도를 낮추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마당이 있는 집엔 어김없이 포도나 무화과, 사이프러스 등이 자라고 있었다. 전망이 좋은 때문인지 작은 옥외 카페와 스페인 또는 아랍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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