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다양성, 오해와 편견의 역사’

다양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 최영일 (사)사이버문화연구소 이사 woody01@lycos.co.kr

    입력2005-08-16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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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성, 오해와 편견의 역사’

    ‘다양성, 오해와 편견의 역사’ 피터 우드 지음/김진석 옮김/ 해바라기/496쪽/2만2000원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이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는 분명 정치적 민주화와 관계가 있다. 획일적이고 강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강제되던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변화하는 가운데 그동안 인정받지 못하던 다양성이 주목받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 각 분야의 학문적 관심이 다양성에 모아지기 시작한 것도 다양성을 주요 주제로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자연과학에서 중심에 놓인 물리학과 사회과학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던 경제학이 정형화하고 단순한 ‘완전 모델’을 지향하는 데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험을 시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지배자의 관점이 아닌 다양한 하위 계급의 문화로 관심의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고와 자원 및 분야가 상생하고 교류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즉 학제적 결합이 필요한 단계로 진입했다고 보는 게 옳다. 20세기 중반부터 급격히 대두한 ‘복잡성 과학’과 ‘다양성 연구’의 사례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또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전자 네트워크를 보면서 우리는 이미 전통적 시공간을 뛰어넘어 광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젠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확실히 바뀌었다. 공급자 중심의 획일화에서 소비자 중심의 다양화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산업사회에서 양성평등의 사회 활동이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대도시 중심의 인프라 집중에서 벗어나 국가 균형발전이 이야기되며, 교육현장에서도 성적표가 사라지고 다양한 개인의 개성을 적성대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모든 변화의 근간에 ‘다양성은 아름다운 것’ 혹은 ‘다양성은 자연의 본질’이라는 사고가 깔려 있다. 이런 패러다임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지구상에 현존하는 국가 중 가장 민주화되고 다양성이 인정된다고 여겨지는 미국이 이제는 가장 보수적이고 지구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충돌을 일으키는 폭압적인 ‘제국’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시점에 미국의 지성인으로 보스턴대 인류학 교수인 피터 우드가 다양성의 사회적 인식 과정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비판한 저서를 읽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다양성

    피터 우드는 다양성을 예찬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한 시각으로 무분별한 ‘다양성 예찬론자’를 강력히 비판한다. 제레미 리프킨 식으로 하면 ‘다양성의 종말’이라는 표제를 붙였을지도 모를 정도다. 따라서 다양성에 대해 폭넓은 식견으로 꼼꼼히 따져 나가는 이 책을 대충 읽으면 오독(誤讀)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일부만 발췌해서 인용할 경우 다양성 지지자와 비판자에게 모두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피터 우드의 주요 분석 대상은 자연의 다양성이 아닌 사회적 다양성이다. 목표를 다시 한 번 좁히면 현실의 다양성이 아닌, 다양성이라는 ‘이데올로기’ 비판이다. 피터 우드는 미국인들이 마치 사실인 양 이야기하는 사회적 다양성은 대부분 실제 역사에서 존재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다양성은 미국식 상업자본주의가 활용하는 프로파간다인 광고에나 존재하며, 다양성 자체가 사람들의 상식적 정서에 부응하기 위한 ‘브랜드’이자 소비되는 ‘상품’ 자체로 전락했다고 이야기한다. 다양성은 학생들에게 학습되고, 정치적으로 옹호되며, 학자들에 의해 인용되고, 대중에겐 강요되며, 기업에 이용되어, 궁극적으로 소비되는 무엇이다.

    이런 다양성은 자연적 상태로서의 다양성, 즉 본질적 다양성이 아니라 다양성의 ‘담론’일 뿐이고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저자는 결코 다양성 자체를 부인하거나 “다양성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이라는 자연의 본질을 인위적으로 재단하고 이용하는 ‘다양성 예찬’을 일축한다.

    저자는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라는 작품을 인용한다.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에 의해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영화의 원전 시나리오로도 쓰인 이 작품은 “인간은 자연의 다양성과 조우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고 말한다. 진정한 다양성은 인간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도, 써먹을 수도 없는 경이롭고 막강한 자연의 야성적 힘이라는 것. 이는 불확정적이고 불확실성을 내포한 급격하고 거대한 변화 그 자체다.

    미국의 다양성 논쟁

    이러한 진정한 다양성과 이데올로기적 다양성을 구분하기 위해 피터 우드는 ‘다양성 I’과 ‘다양성 II’로 나눈다. 전자는 실존하는 다양성이고, 후자는 인간이 개념화한 허구적 다양성, 즉 다양성을 둘러싼 담론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저자는 ‘다양성 II’에 집중해 이를 분석하고 이런 현상의 우매함을 통렬히 비판한다. 또 다양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적용은 인간사에서 오랫동안 보편적 가치로 여겨온 ‘평등’사상과 배치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러한 오류는 미국 사회에서 이미 꽤 오래 존재해왔다.

    대표적인 예는 1978년 ‘캘리포니아 의과대학 평의회 대 바키 사건’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내린 판결이다. 이 사건은 앨런 바키라는 학생이 캘리포니아 의과대학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서 시작됐다. 바키는 입학이 허가된 학생들의 평균치보다 성적이 높았다. 대학측은 그의 탈락은 ‘적극행동정책’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는 소수인종 학생들을 안배하여 선발하기 위한 특례입학제도다. 바키는 이것이 백인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주법원에서 바키측이 승소했고 이에 대학측은 연방대법원에 항소한다. 연방대법원은 9명의 판사로 구성돼 있는데, 바키측과 대학측을 지지하는 입장이 4대 4로 갈리게 됐다. 결정권은 루이스 파월 판사에게 주어졌다.

    이로부터 미국 사회에서 다양성에 대한 지난한 논쟁의 씨앗이 발아된다. 파월 판사는 바키측과 대학 측을 줄타기하듯 오락가락하면서 다양성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더니 결국 바키측의 손을 들어준다. 파월 판사의 다양성에 대한 애매모호한 언급은 당시에는 지엽적인 논의에 불과했으나 이후 유사한 판결에 빠짐없이 인용되면서 ‘인종에 대한 할당정책이 다양성에 도움이 되는가, 그 반대인가’에 대한 논쟁을 전국적으로 불러일으켰고, 이는 오히려 ‘적극행동정책’ 지지자의 입지를 약화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저자는 이 사건과 이후 미국 사회에 일어난 변화를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동원된 학술적, 법적 사례를 인용하면서 이 판결이 문화적 인식과 법적 판단 사이에서 하나의 잘못된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다양성 사회로 접어든 한국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다양성이 한 사회의 주요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을 때 그야말로 ‘다양한’ 견해와 관점 사이에서 왜곡되고 불합리한 결과가 수없이 도출될 수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 사회는 광복 이후 정치권력의 필요에 의해 ‘다양성의 문화’가 50년 가까이 억압돼온 특수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제 짧은 민주화 역사 이후 다양성 논쟁이 시작됐다. 민주화가 곧 다양화는 아니다. 권위주의가 해체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향한 아노미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치적 과정은 그간 역사적,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평등 지향적 성격이 강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성이 양성평등과 지역균형이라는 평등주의적 제도화의 하위개념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양성은 주요한 자연의 본질 중 하나다. 저자가 지적하듯 다양성이란 인간이 통제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흐름이다. 그렇다면 조만간 우리 사회도 다양성을 둘러싼 다양한 주장으로 복잡한 논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부(富)가 국가권력에 의해 제도적으로 통제돼야 하는가, 아니면 적자생존이라는 생물학적 진화론을 주장하는 시장주의에 맡겨둬야 하는가. 여기에 다양성의 개념이 어떻게 접목되는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다양성을 제도화할 것인가. 다양성은 자유의 편인가, 평등의 편인가. 또 누구를 위한 자유이고 평등이며 다양성인가.

    이럴 때 미국의 사례이긴 하지만 다양성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분석한 저자의 방대한 저서는 이미 시작된, 앞으로 우리가 겪어야 할 다양성 사회를 직시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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