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국제분쟁전문가의 전선 리포트

  •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gkahng@mju.ac.kr

    입력2006-01-16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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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흔히 20세기는 문명과 야만이 극단적으로 교차한 세기라고들 한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전쟁과 학살이라는 인간의 광기(狂氣)도 본격적으로 드러난 세기이기 때문이다. 냉전이 끝났을 때 평화가 눈앞에 왔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으나 냉전 이후 시기(post-Cold War period)도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구(舊) 유고슬라비아에서 터진 20세기 최후의 비극인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내전이 인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21세기도 20세기와 달리 평화가 자리잡으리란 보장은 전혀 없다. 21세기 도입부에 터진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그리고 포괄적 의미의 테러와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분쟁전문기자로서 8년여 동안 지구촌 분쟁지역을 취재한 김재명은 코소보, 보스니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동티모르, 시에라리온, 그리고 페루 등지를 돌아본 경험을 살려 나름의 전쟁론과 평화론을 이 책에서 설파한다. 저자는 특히 보스니아와 코소보를 네 차례 취재하면서 목격한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라는 명목의 학살과 잔혹행위, 그리고 조직적 강간을 통해 전쟁이 인간의 의식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는지를 느꼈고, ‘인간이 과연 선한 동물인가’라는 데 대해 깊은 의문을 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세계 여러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얻은 일차적인 경험을 기초로 쓴 에피소드 모음집의 경향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전쟁과 폭력의 참상을 보여준다는 1차 목표는 달성했다. 저자는 ‘영구 평화’가 불가능하다면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허울 좋은 명분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며 자신들의 거대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대량학살과 조직적인 강간도 서슴지 않는 세력에 대항해 아득한 절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약자, 못 가진 자들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쪽을 택하겠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상호 학살적 경향’



    그러나 어떤 분쟁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쾌도난마식으로 나누는 것은 자칫 분쟁의 원인을 단순화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지목하듯 이러한 분쟁을 필요 이상으로 악화시킨 라이베리아의 전 독재자 찰스 테일러, 러시아 마피아와 손잡고 동유럽국가에서 아프리카 내전지역으로 무기를 공급하는 이른바 “죽음의 상인”이라고 부르는 소형무기거래상, 그리고 세르비아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악’으로 규정하는 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분쟁에서는 이러한 단순 이분법이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예를 들어 이라크를 설명하는 장에서 “이라크인 대부분이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을 거부하며 무장저항을 이어간다”는 대목이 나온다. 대다수 이라크인이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빨리 끝나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 점령정책을 거부하고 무장저항을 이어 나간다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이라크에서 계속되고 있는 무장저항은 수니파 후세인 추종자들과 외부 세력이 감행하는 것이지, 대다수 이라크인의 행동은 아니기 때문이다.

    1988년 쿠르드족 학살이 “사실은 이란의 소행인데, 미국이 후세인 일파의 소행으로 덧씌웠다”는 주장도 무리가 있다. 저자가 인용하는 스테판 펠리티르의 주장은 이미 타당성을 잃은 내용이며, 압도적인 증거에 따르면 사담 후세인과 북부 이라크의 절대 통치자이던 알리 하산 알 마지드(일명 ‘케미컬 알리’)가 이란에 동조하는 쿠르드족에 대한 보복으로 자행한 학살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아울러 보스니아 내전에서 세르비아계는 가해자이고 보스니아의 이슬람인과 크로아티아인은 피해자라고 보는 것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세르비아계의 학살 규모와 정도가 더 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보스니아의 비극은 동시에 자행된 상호 학살적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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