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호

“노예 없인 못 살아!” 개미 사회의 냉혹한 ‘카스트 제도’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7-03-12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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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 없인 못 살아!” 개미 사회의 냉혹한 ‘카스트 제도’

    주인 개미를 대신해 먹이활동을 하는 불개미(위)와 상대방 군체를 노예로 만들기 위해 싸움을 하는 여왕개미들.

    개미학자 최재천 교수의 책 ‘개미 제국의 발견’에는 개미들의 갖가지 흥미로운 행동이 나와 있다. 개미들은 농사를 짓고, 전쟁을 벌이고, 왕권 강화에 골몰하고, 노예를 부리고, 노동 분업도 하고, 과감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등 인간만이 할 법한 다양한 행동을 보여준다. 인간이 자랑하는 인간다운 특징들을 동물이, 그것도 기어다니는 아주 작은 동물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할 사람도 있을 듯하다. 개미가 우화 한 편의 주인공 역할을 맡는 정도라면 봐줄 만하지만, 그 이상 기어오르면 왠지 주제넘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수많은 연구 결과는 개미 사회를 인간 사회의 모형으로 삼을 만하다고 말한다. 개미들은 인간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든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개미뿐 아니라 벌, 말벌, 흰개미 등 사회성 곤충들에게서 인간 사회에서나 볼 법한 다양한 행동양식을 찾아내고 있다. 아마존 밀림을 뒤지면 인간의 또 다른 행동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개미 종(種)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더 나아가서 인류학자들이 인간 사회의 특징이라고 열거하는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윤리적 요소들이 사실은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좁쌀만한 뇌를 지닌 개미에게서 인간과 유사한 것들을 발견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자랑할 것이라고는 심심찮게 자기 파괴 성향을 드러내는 ‘고도 지능’과 애매한 의사 전달로 불화를 일으키곤 하는 ‘언어’만 남은 꼴이 아닌가.

    그러나 인간과 개미의 유사성은 겉으로만 닮은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사려 깊은 행동과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개미의 행동이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예 제도다.

    처절한 노예 쟁탈전



    개미는 인간의 그것에 못지않은 노예 제도를 발전시켰다. 1975년에 윌슨이 노예제를 택한 개미가 적어도 35종은 될 것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그보다 더 늘어났을 것이다. 노예가 없으면 굶어죽을 정도로 노예제가 필수불가결한 개미 종류가 있는 반면, 노예가 없을 때는 열심히 일하다가 노예를 잡아오면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는 부류도 있다.

    노예를 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남의 개미집을 습격해 애벌레를 강탈해온 뒤 노예로 삼는 종도 있고, 아예 남의 개미집에 들어가서 여왕을 죽이고 대신 여왕 행세를 하는 종도 있다.

    미국의 개미학자 하워드 토포프는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개미의 노예획득 과정을 살펴본 바 있다. 사실 개미 실험은 야외에서 관찰하면서 몇 마리 잡아다가 투명한 통에 넣은 뒤 이렇게저렇게 간섭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유전물질이나 페로몬 같은 미량 화학물질들을 분석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토포프가 살펴본 개미는 아마존개미류와 불개미류다. 아마존개미는 스스로 생계를 꾸릴 능력을 완전히 잃고 노예 노동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노예들이 돌보지 않으면 굶어죽을 것이다. 노예들은 꿀과 죽은 곤충 같은 먹이를 구해오고, 여왕과 새끼를 돌보며, 집을 청소하고 수선하는 등 생명유지를 위한 모든 활동을 도맡는다. 그래서 아마존개미는 정기적으로 근처의 불개미 집을 습격해 여왕과 일개미들을 내쫓고 번데기들을 강탈해온다.

    번데기에서 깨어난 불개미 일꾼들은 주인인 아마존개미를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마존개미의 수가 늘어나서 분가할 필요가 있으면, 다른 곳에 집을 만들고 아마존개미의 여왕과 알, 애벌레, 번데기 등을 정성껏 옮겨주기도 한다.

    “노예 없인 못 살아!” 개미 사회의 냉혹한 ‘카스트 제도’
    그런데 막 짝짓기를 끝내고 새로 일가(一家)를 창시해야 하는 아마존개미 여왕은 노예를 어떻게 구할까. 토포프는 속이 보이는 투명한 통을 여러 개 준비한 다음, 각 통에 불개미 여왕 한 마리에 일개미와 번데기 15마리씩을 넣었다. 그런 다음 막 짝짓기를 끝낸 아마존개미 여왕을 굴 근처에 풀어놨다. 그러자 아마존개미 여왕은 금세 굴 입구를 찾아내어 들어갔다. 일개미들이 그 무단 침입자에게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했지만, 여왕개미는 무지막지하게 밀쳐내면서 불개미 여왕에게로 향했다. 침입자는 불개미 여왕을 움켜쥐고는 25분 동안 머리, 가슴, 배를 무자비하게 물어뜯었다. 물어뜯으면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체액을 핥아먹었다. 그동안 일개미들은 계속 달려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불개미 여왕이 숨을 거두자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불개미 일꾼들은 유순하게 침입자에게 다가가 몸단장을 시키기 시작했다. 침입자를 새 여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토포프는 일개미들이 그렇게 쉽게 굴복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침입자가 불개미 여왕을 살해하면서 체액을 핥아먹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했다. 일개미들이 그 체액에 든 화학물질을 감지해 자기 여왕인 줄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토포프 연구진은 불개미 여왕을 얼려 죽인 뒤 해동시켜놓았다. 아마존개미 여왕은 상대가 죽은 줄 모르고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그러면서 체액을 핥았고 결국 일개미들은 그 침입자를 여왕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불개미 여왕을 아예 다른 곳으로 치우자 상황이 달라졌다. 침입한 아마존개미 여왕은 일개미들의 공격에 시달리다 죽고 말았다.

    저항하는 노예 개미도 있다

    토포프가 연구한 불개미는 한 집에 여러 여왕개미가 살기도 한다. 그래서 토포프는 여왕개미가 여럿 있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살펴보기로 했다. 그는 각 통에 여왕개미를 2마리에서 25마리까지 넣고 살펴보았다. 아마존개미 여왕은 침입하여 불개미 여왕 한 마리를 살해했다. 그렇게 일단 여왕의 자리를 획득하자, 서두르지 않고 남은 여왕들을 한 마리씩 찾아내 죽였다. 불개미 여왕을 다 죽이는 데 몇 주가 걸리기도 했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다. 불개미 여왕 주위에 강한 일개미들이 버티고 있으면 오히려 공격을 받아 죽기도 했다. 아마존개미 침입자는 여왕 자리를 찬탈하고 나면 알을 낳아 자기 자손들과 노예로 이뤄진 군체를 형성한다.

    노예 획득이 반드시 이렇게 유혈 정복을 통해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프레드 레이그니어와 에드워드 윌슨은 아세테이트의 일종인 화학물질을 이용해 상대방을 정복하는 불개미류를 발견했다. 그 종은 노예획득을 위한 공격을 하면서 저항하는 개미들에게 화학물질을 뿌린다. 화학물질은 같은 종의 공격자를 더 많이 끌어들이는 기능을 하는 동시에, 저항하는 개미들을 혼란 상태로 몰아넣는 역할을 한다. 원래 아세테이트는 개미들이 경고 신호를 보낼 때 쓰는 아주 강력하고 효과가 오래 가는 ‘불온선전’ 물질이다.

    한편 호리가슴개미류에 속한 미국의 한 종은 마치 멀리서 온 친척인 양 숙주로 기생할 종의 군체를 찾아가서는 그냥 눌러앉는다. 남의 나라 여왕 옆에 빌붙어서 그 나라 국민을 제 종인 양 부리는 셈. 아시아와 유럽에 사는 이빨개미류의 한 종도 같은 방식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종은 진화 과정에서 일개미 계급을 잃었다. 즉 일개미를 낳지 못한다. 일개미가 있어야 유혈 정복에 나설 텐데 그렇지 못하니 빌붙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노예제라고 부르기가 애매할 수도 있다.

    개미 노예제 진화의 수수께끼

    개미의 노예제는 노예가 없어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을 받지 않는 종부터 노예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극단적인 종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개미의 노예제는 어떻게 진화한 것일까. 개미의 노예제는 기생체와 숙주가 상호 작용을 하면서 기생 관계가 유지되는 사회적 기생이다. 개미의 기생 양상은 1909년 이탈리아 개미학자 카를로 에메리가 말한 규칙에 잘 들어맞는 듯하다. 그는 기생하는 개미 종이 숙주가 되는 개미 종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척 관계라고 했다. 실제 개미의 노예제는 주로 가까운 종들 사이에서 일어나며, 그것은 노예제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알려줄 단서가 될 수 있다.

    찰스 다윈은 노예제가 단순한 포식 관계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 어떤 종의 개미가 비슷한 종을 공격해 알이나 애벌레, 번데기를 약탈해서 먹기 위해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일부가 가까스로 먹이 신세를 피해서 깨어났다. 깨어난 일개미들은 갓 깨어난 오리 새끼가 처음 본 사람을 자기 어미인 양 졸졸 따라다니듯, 주위에 있는 여왕개미, 일개미, 알 등을 자기 동족으로 착각하고 열심히 봉사했을 것이다. 그 일개미들의 봉사를 받는 쪽이 그들을 먹이로 먹는 쪽보다 더 강했다면, 포식에서 노예제로 진화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다윈은 생각했다.

    “노예 없인 못 살아!” 개미 사회의 냉혹한 ‘카스트 제도’

    개미의 노예제가 단순한 포식관계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한 찰스 다윈.

    윌슨은 다른 가설을 제시한다. 먹이보다는 세력권 방어가 노예제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그는 호리가슴개미류의 종들이 자연 상태에 있을 때는 노예 노동에 의존하지 않지만, 다른 군체들을 가까이 몰아넣을수록 큰 군체가 작은 군체를 공격해 여왕과 일개미들을 몰아내거나 죽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 다음 공격자들은 번데기를 들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약탈해온 번데기에서 일개미가 깨어났을 때, 같은 종의 개체들이면 살려둔 채 일손을 돕도록 했고, 다른 종의 개체들이면 죽였다. 따라서 사로잡힌 개체들이 공격자와 가까운 종일수록 살아남아 그 군체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윌슨은 미국 오하이오 근처에서만 발견되는 한 호리가슴개미류 종이 막 노예제라는 문턱을 넘어섰다고 추정한다. 그 종은 일개미들은 노예 획득에 알맞게 모습이 약간 변형되어 있고 공격과 싸움에 능숙하다. 다른 종의 군체를 가까이에 놓자 그 종은 공격에 나서서 번데기를 전부 약탈했다. 그 종은 일상적인 일들은 거의 다 포로들에게 맡기고 지낸다.

    윌슨은 그 군체에서 노예들을 제거해 봤다. 그러자 게으름을 피우던 일개미들이 즉시 부산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어설펐다. 애벌레에게 제때 먹이를 주지 않았고, 청소도 엉망이었다. 군체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일인 죽은 곤충이나 먹이를 가져오는 일조차 제대로 못했다. 먹이가 있어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윌슨은 그들이 굶어죽기 직전에 다시 노예 개미들을 넣어봤다. 그러자 집안일이 제대로 돌아갔고 주인들은 다시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독일의 부싱거는 여왕개미와 굴이 여럿 있는 군체에서 애벌레나 번데기를 이리저리 옮기는 행동이 다른 군체나 종에게까지 확장되면서 노예화가 이뤄졌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최근의 학자들은 DNA를 분석해 진화 과정을 추론함으로써 어느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불안정 체제 vs 유전적 적응

    그렇다면 개미의 노예제는 인간의 노예제와 얼마나 비슷할까? 이에 대해 윌슨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을 강조한다. 개미 사회에서 노예들은 원래 자유생활을 하는 다른 종이며, 인간 사회는 더 이상 노예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예 개미는 사실 가축에 가깝다. 노예에게 번식이 허용되지 않고, 노예의 사회조직이 주인의 것과 대등하거나 우월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윌슨은 인간의 노예제는 대다수 사회의 도덕체계에 반하는 불안정한 사회체제인 반면 개미의 노예제는 특정한 종들에게서 나타나는 유전적 적응 양상으로, 그런 적응을 거친 종들이 노예제를 채택하지 않은 종들에 비해 더 성공했는지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개미의 노예제를 토대로 정치적, 도덕적 교훈을 얻으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같은 종의 군체끼리 충돌해 노예를 삼는 사례가 발견됐다. 꿀단지개미는 양 군체의 개체들이 마주보고 쭉 늘어서서 상대의 병력을 가늠한다. 병력 차이가 크면 한쪽이 다른 쪽의 애벌레를 약탈해 노예로 삼기도 한다. 꿀단지개미 군체의 충돌은 유혈 전쟁이 아니라 마치 경기를 벌이는 듯하지만, 아무튼 그들의 행동은 주인과 노예가 같은 종이냐 다른 종이냐가 개미와 인간의 노예제를 구분하는 핵심 요소가 아님을 시사한다. 개미들의 노예 제도가 종별로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인간의 노예제와 비슷한 제도를 채택한 종도 언젠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윌슨의 생각과 반대로 개미의 노예제 진화 과정을 고스란히 인간 사회에 적용하려한 사람도 있었다. 소설가이자 사회 비평가인 허버트 웰스다. 그의 저서 ‘타임머신’이 출간된 연도는 1895년. 비록 웰스는 개미의 노예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기 훨씬 이전에 ‘타임머신’을 썼지만 그래도 그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거기에 실린 개미의 노예제 진화 과정을 통해 미래 인간의 노예제를 추론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 책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먼 미래로 간 주인공은 인간이 두 종으로 분화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하나는 지상에 사는 연약하고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에 사는 추악하게 생긴 인간이었다. 폐허가 된 옛 도시 건물에서 살아가는 지상 종족을 보면서 인류 문화의 쇠퇴를 안타까워하던 주인공은 나중에 그 지상 종족이 지하 종족의 먹이로 사육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주인공은 지상과 지하 종족이 분화한 과정을 추측해본다. 먼 옛날 지상 종족은 귀족이었고, 지하 종족은 그들의 하인이었을 것이라고.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친 끝에 전자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종족으로 퇴보했고, 후자는 햇빛을 못 본 채 세대를 거치면서 지하 생활을 하다 결국 지상에서 살 수 없는 존재가 됐다고 봤다. 지하 종족은 오랜 습성 탓에 지상 종족에게 필요한 옷가지나 물품을 제공했지만, 세월이 더 흐르자 둘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됐다. 먹이 부족에 시달리던 지하 종족이 어느 순간 옛 선조들의 식인 습성을 다시 갖게 된 것이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타임머신’의 주인공이 추측한 미래 인류의 진화 과정은 개미 노예제의 기원 가설을 뒤집은 듯 보인다. 개미 노예제에서 기생체와 숙주는 원래 한 종이었을 수도 있다. 그랬다가 우월한 군체가 약한 군체를 공격해 종으로 삼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한쪽은 주인으로, 한쪽은 노예로 진화했다. 그 중에는 아마존개미처럼 극단적으로 분화해 노예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부류도 생겨났다.

    그러한 분화는 생물의 상호 의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진화의 막다른 골목이 될 수도 있다. 숙주에 심하게 의존하기에 숙주 종의 개체수가 줄어들거나 숙주가 강력한 방어 수단을 진화시키는 순간 몰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숙주 쪽이 방어 수단을 갖춤으로써 노예화가 용이하지 않게 된 사례들도 있다. 그 방어 수단이 기생체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없을까. ‘타임머신’에서처럼 지상 종족과 지하 종족의 관계가 역전될 가능성은?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멸종한 동물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강력한 살상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자신을 위협하는 포식자를 말살시키고, 이제는 감기 바이러스 같은 또 다른 위협 요인까지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그런 한편으로 기생 관계에서는 이른바 ‘붉은 여왕’ 개념이 적용되는 사례가 많다. 붉은 여왕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말로, 주위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제자리에 있으려면 계속 뛰어야 한다는 의미다. 즉 모든 진화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개념이다.

    숙주가 진화하면 기생하는 종도 대응해 진화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기생생물을 물리칠 전략이 진화했다면 숙주에게는 진보다. 하지만 기생생물에게서 그에 맞서 새로운 기생 전략이 진화한다면, 숙주와 기생생물의 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붉은 여왕 개념이다. 하지만 숙주와 기생생물의 물고 물리는 싸움은 쳇바퀴 돌기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 약점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경쟁에 들어가는 비용이 과도해지면 종이 몰락하기도 하지만.

    시·청각과 화학감각

    개미의 노예제는 개미 사회가 보여주는 수많은 측면 중 하나이며, 개미 사회의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한 요인이다. 기생은 숙주가 될 종이 진화한 뒤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관련 생물들의 진화가 복잡한 양상을 띤다는 한 증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노예제를 폐지했다. 노예제는 개미를 비롯한 사회성 곤충들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에게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노예제를 사회의 한 속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반면에 인간이 노예제를 폐지했으며 그것이 사회 발전의 한 증표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노예제가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속성은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노예제는 협동보다는 갈등의 요소가 더 많은 제도이므로 노예제 폐지는 인류 역사에서 협동과 갈등의 균형추가 협동 쪽으로 크게 이동했음을 뜻한다.

    이렇게 보면 개미와 인간의 사회는 크게 다른 듯도 하다. 감각기관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 사회는 시각과 청각을, 개미 사회는 화학감각을 토대로 한다. 그것이 두 사회의 계급 구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노예 없인 못 살아!” 개미 사회의 냉혹한 ‘카스트 제도’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등


    과거에는 개미 사회의 구성원들이 획일적으로 여왕에게 봉사한다고 여겨졌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왕이 아닌 일개미들도 때로 자기 알을 낳으려고 시도하며, 여왕을 추종하는 다른 일개미들은 그런 알을 먹어치우거나 알을 낳으려는 낌새를 보이는 일개미를 처벌하는 치안 활동을 벌인다. 그렇게 보면 역시 개미는 인간을 닮은 듯도 하다.

    과연 개미의 노예제는 그들의 자의식적 사회성에서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본능적 진화의 산물일까. 아직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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