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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상락의 인도네시아 파푸아 요절복통 여행기

“돼지 두 마리 주면 처녀 하나 줄게”

  • 이상락 소설가 writersr@hanmail.net

소설가 이상락의 인도네시아 파푸아 요절복통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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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첫 번째 관광 대상으로 삼은 곳은 ‘꼬데까’로 유명한 다니족의 전통마을. 일정액의 기부금을 지급해야 그 마을에 갈 수 있다 하니 그들의 전통생활 양식이 관광상품이 된 셈이다. 사타구니에 성기 가리개인 꼬데까를 차고 저마다 죽창 등의 무기를 챙긴 남자 전사들이 벌판으로 나선다. 손님이 왔으니 공연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군사들이 양편으로 나뉘더니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매복-공격-방어’로 구성된 전쟁 상황극을 구경꾼들 앞에서 연출해 보인다. 초원을 무대로 한 ‘공연’이다. 어떤 전사는 창을 들고 금방이라도 찌를 듯이 우리 앞으로 돌격하며 겁주는 시늉을 하는데 그마저 너무 작위의 냄새가 나서 실감은커녕 서글픈 느낌이 든다.

남자들의 경우 항문 쪽에 기다란 헝겊 조각을 마치 꼬리처럼 매달고 있었는데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대변을 보고 씻지 않아서 항문에 파리가 꼬이기 때문에 그 헝겊 꼬리를 나풀거려서 파리를 쫓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여자들은 상체는 벗었으나 아래쪽에는 털실로 짠 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헝겊의 올을 세로로 늘어뜨려 직조한 것은 살리(salli)라 하는데 처녀의 치마이고, 가로로 된 것은 요카르(yokar)라 부르고 기혼녀의 그것이라 했다. 우리가 만난 다니족 여자들 중에서는 손가락 마디를 잘라내버린 여자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부모나 남편, 자식이 먼저 죽을 때마다 손가락 마디 하나씩을 잘라서 함께 묻는 풍습 때문이라 했다. 고대의 순장(殉葬)이 바로 그 단지(斷指) 풍습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중요 부위를 가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벌거벗고 지낸다. 대신에 돼지기름을 온몸에 발라 추위를 이겨낸다고 했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을 보면 읍루족 역시 돼지기름을 몸에 발라서 추위를 견뎌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돼지기름이 방한용으로 쓰인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보편적인 지혜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돼지를 굉장히 소중하게 여겼다.

추장 격인 노인을 만나서 “내가 다니족의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돼지 두 마리만 바치면 처녀를 짝으로 줄 수 있다”는 대답이 건너왔다. 그 노인은 또 한 가지 보여줄 것이 있노라면서 우리 일행을 자기 집 안마당으로 데려가더니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은 형상의 미라를 가지고 나와 보여주었다. 그는 그 미라의 주인공을 자기 부족을 이끌던 장군이라고 했다. 365년이나 살다가 죽었다는데 죽으면서 그 자신을 그런 형상의 미라로 만들어주도록 유언했다고 설명한다.

다니족은 일부다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했다. 그들은 남녀가 한방에서 자는 법이 없고 따로 모여서 잔다. 그렇다면 자녀 생산을 위한 행사는 어떻게 할까? 낮 시간에 남자와 여자가 언제 어디서 만날 것인지 미리 약속해둔다. 약속 장소에서 만나면, 우선 흰 천을 나뭇가지에 걸어놓는다. 지금 아주 중요하고도 신성한 행사를 거행하고 있으니 아무도 범접 말라는 표시이다. 여자가 나무를 잡고 서고 남자가 여자의 뒤로 다가가 교접한다. 와메나의 박물관이나 기념품 판매점에 가니 남녀가 그런 체위로 교접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목공예품이 무수히 많았다.



와메나 공항 근방의 공원에는 후꾸미야렉이라는 전설적인 추장의 동상이 서 있는데 그는 아내를 무려 73명이나 거느렸다고 한다. 그 추장이 미국의 여성 인류학자 한 사람도 첩으로 거느렸다는 얘기도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그건 호사가들이 꾸며낸 이야기이고, 후꾸미야렉이라는 추장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 마침 그곳을 방문 중이던 미국의 여류학자가 신부 복장으로 꾸미고서 기념촬영을 했던 것이 와전됐다고 한다. 그 소문이 진짜인지 그 소문에 대한 해명이 진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와메나에는 비행기 이외에는 외부로 통하는 어떤 교통수단도 없다. 심지어는 건축용 불도저도 군용 화물수송기로 공수해왔다고 했다. 그러니 물가가 비싼 것은 당연지사. 빈땅이라는 캔맥주 하나에 자카르타 식당에서 1만5000루피아를 받는데, 와메나의 상점에서 7만루피아를 받았다. 그렇다고 의지의 한국인들이 술을 굶을 수 있나. 김문태 상무가 가방에서 양주병을 꺼냈고, 우리는 그날 밤 와메나의 허름한 호텔에서 폭탄주로 건배를 했다.

오몽 꼬송? 바구스!

와메나에서 1박을 한 일행은 다음날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 파푸아의 주도(州都)인 자야푸라에 도착했다. 호텔방에 들자마자 이원우 전무가 보여줄 게 있다면서 나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거울 앞에 있는 탁자 서랍을 열어보였다.

“이게 뭔지 아세요?”

“KIBLAT? 모르겠는데요.”

서랍 밑바닥에 붙어 있는 화살표 모양의 스티커에 ‘끼블랏’이라 씌어 있었다.

“모슬렘 투숙객들을 위해서 붙여놓은 겁니다. 인도네시아 말로 ‘메카의 방향’ 혹은 메카 쪽이라는 의미지요.”

“아, 그쪽을 향해서 기도하라는 뜻이로군요. 어느 호텔에서는 천장 귀퉁이에 화살표가 있던데…. 왜 잘 보이는 현관문 같은 데에다 표시하지 않고 이렇게 귀퉁이에 숨겨놨을까요?”

“투숙객 중에는 모슬렘 아닌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아, 그렇구나. 그럼 종교가 따로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딜 향해서 기도해야 하나. 그런데 지도를 펴놓고 서랍 밑바닥의 화살표 방향을 이러저리 가늠해보니 대한민국의 방향과 거의 일치했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소설가 이상락의 인도네시아 파푸아 요절복통 여행기
이상락

1954년 전남 완도 출생

1985년 장편 ‘난지도의 딸’로 데뷔

KBS 제1라디오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 집필 중

저서 : 창작집 ‘도양치 별’, 장편 ‘누더기 시인의 사랑’ ‘고강동 사람들’ ‘차표 한 장’ 등


자카르타로 돌아와 이틀을 지낸 뒤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배웅 나온 김문태 상무가 물었다.

“이번 여행 어땠어요?”

나는 여행 중에 그에게서 배운 인도네시아 말로 대답했다.

“오몽 꼬송!(Omong kosong)”

“뭐라고요?”

그가 두 눈동자를 동그랗게 키우고는 놀라는 표정을 했다.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실수였다. 오몽 꼬송은 “빈 말이야” 혹은 “뻥이야” 그런 뜻이고, 정작 내가 하려던 말은 ‘좋았다’는 의미의 “바구스(Bagus)!”였는데…. 이 여행기가 적어도 ‘오몽 꼬송’은 아니지만 재미가 덜하다는 핀잔을 들을지 자못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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