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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놀란 ‘대단한 실험’

놀라워라, 생명의 의외성

옥수수 색깔도, 암세포와 HIV도 ‘전이인자’의 장난?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놀라워라, 생명의 의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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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획기적인 개념이 등장함으로써 유전자의 활동이 조절되는 양상이 어렴풋이 이해되기 시작했을 때 매클린톡은 오페론 체계와 자신의 억제자-돌연변이 유발인자 조절체계를 비교한 논문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오페론은 기본적인 조절체계였고, 매클린톡의 체계는 오페론체계를 토대로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진 뒤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 성과는 1970년대 초가 돼서야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진핵생물의 복잡한 유전자 조절기작이 서서히 밝혀지고 염색체를 옮겨다닐 수 있는 전이인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였다. 매클린톡이 말한 Ds와 Ac는 전이인자였다. 즉 그는 분자생물학이 약 20년에 걸쳐 급속히 발전한 끝에 알게 된 내용을 그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파악했던 것이다.

1980년대 초에 Ac와 Ds의 염기 서열이 밝혀졌다. 전이인자는 자신을 분리시켜서 옮길 수 있는 트랜스포사아제라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Ac는 그 효소 유전자를 온전하게 지닌 반면, Ds는 그 유전자의 염기 서열이 일부 없어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변이체였다. 그래서 Ds는 Ac가 없으면 제 기능을 못했던 것이다.

매클린톡은 장수한 덕에 약 30년이 지난 뒤인 1983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DNA 대부분은 ‘잡동사니’



전이인자는 도약 유전자, 트랜스포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있던 곳에서 오려내어 다른 곳에 갖다 붙이는 식으로 이동하는 종류와, 원본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 사본을 만들어 다른 곳에 끼워 넣는 종류가 있다. 전자는 DNA 트랜스포존이라고 하며, 인간 유전체의 약 3%를 차지한다. 매클린톡의 Ds와 Ac도 DNA 트랜스포존이었다. 후자는 레트로트랜스포존이라고 하며 RNA를 만든 뒤 그 RNA로 다시 DNA를 만들어 염색체에 끼워 넣는다. 레트로트랜스포존은 적어도 인간 유전체의 약 40%를 차지한다. 전이인자의 특성을 이용하면 원하는 유전자를 염색체에 끼워 넣을 수 있다. 즉 필요한 유전자를 전이인자에 삽입한 뒤 염색체에 통합시킴으로써, 연구와 유용한 물질생산 등에 쓰일 유전자 변형 생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전이인자는 또 다른 측면으로도 관심대상이다. 우리의 염색체에 전이인자가 있어서 여기저기 마구 옮겨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전이인자가 유전자 중간에 삽입되면 적어도 그 유전자의 기능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또 유전자를 조절하는 부위에 삽입되어 다양한 유전자에 동시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아니면 매클린톡이 관찰했듯이, 염색체 중간을 뚝 끊어서 다른 염색체에 갖다 붙이거나 뒤집어 붙일 수도 있다. 그러면 상당히 심각한 결과가 빚어지지 않을까? 실제로 전이인자는 혈우병, 포르피린증, 암 등 여러 질병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전이인자는 유전체에 잡다한 흔적을 남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 복잡한 진핵생물의 유전체를 보면, 유전체 전체에서 유전자가 차지하는 부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DNA 중 대부분은 제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아닌 잡동사니들이며, 그중에 상당수는 전이인자의 흔적이다. 특히 일정한 염기서열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부위가 그렇다.

한 예로, 결함이 있어서 스스로 옮겨다니지 못하는 전이인자인 Alu라는 짧은 반복 서열은 인간의 유전체에서 사본이 100만개 이상 존재하며, 인간 유전체의 약 11%를 차지한다. 유전자처럼 제 기능을 하는 부위는 약 5%에 불과한 데 반해 말이다. 전이인자나 그 잔해들이 인간 유전체의 거의 45%, 생쥐 유전체의 약 38%, 개 유전체의 약 41%, 옥수수 유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이 일찍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 매클린톡의 개념이 일찍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아스럽게 느껴질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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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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