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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詩 완벽주의자’ 정현종

“시인은 자기 삶 견디며 남의 삶 견디게 하는 존재”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詩 완벽주의자’ 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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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완벽주의자’ 정현종
아마도, 나는 그 친구와 선배의 아슬아슬한 관계의 거미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나 보다.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리고 누군가가 미워질 때 나는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을 중얼거리곤 한다. 그래서 친구와 칼국수를 훌훌 먹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친구의 외투에서 자라고 있는 오리와 거위의 털을 나는 보았다. 그 따뜻함은 오리와 거위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친구의 선배는 이제 그 오리털처럼 친구 마음의 외투에 자리 잡았다. 겨울 외투에 숨어 있는 오리와 거위털은 한겨울에 그냥 있지 않는다. ‘막무가내’로 막 자란다.

하얀 호랑이

선생은 연구실 거실에서 맞아줬다.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역광을 받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정신 깊은 사찰 초입에 서 있는 사천왕상과 흡사하다. 간혹 술자리 말석에서 선생의 빈 술잔을 채우던 내가 독대를 한다니 우선 기분이 좋았다. 인터뷰를 별로 내켜 하지 않는 선생이 다정하게 이야기 자리를 허락해줬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선생을 마주했다. 약간 비스듬히 선 자세로 나를 자세히 보는 것 같았다. 형형한 눈동자와 백발의 노시인은 하얀 호랑이처럼 나를 보았다. 순간, 이제부터 뭘 물어보나 하는 생각에 아득했다.



나의 주특기인 ‘신변잡기 이야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텅 비었다. 이제 어떡하나. 몇 가지 물어볼 요량으로 적어온 노트는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대신 새로 준비한 하얀 노트를 펼쳤다.

선생과의 이야기를 정리하기 전에 우선 2005년 모교인 연세대 국문과를 정년퇴임하기까지의 이력을 살펴보자. 많이 알려진 분들의 이력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의 시에 함몰되어 정년퇴임한 것까지 잊곤 한다. 아직도 연세대 교정에 가면 선생이 걸어가실 것 같은 기분이다.

선생은 1939년 12월17일 아버지 정재도씨와 어머니 방은련씨의 3남1녀 중 셋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경기도 화전(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으로 이사 가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 시절에 당연히 시인으로서 몸과 마음이 다듬어졌을 것이다. 선생은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젠 너무 아득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선생은 필자의 대광고교 대선배다. 선생의 산문과 기사에 자주 등장한 레퍼토리이기도 한 중·고교시절 문학과 음악, 철학, 발레에 대한 심취는 유명한 이야기다. 인간의 정신과 춤이라는 육체에 대한 발견은 소년을 예술가로 성장시켰다.

1959년 연세대 철학과에 입학한 선생은 대학 시절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박두진 시인의 맘에 들어 1964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이후 황동규, 박이도,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만들어 절차탁마의 시기를 거친다. ‘사계’ 동인은 우리 문학의 별자리이기도 하다. 이름만으로도 울림이 깊고 넓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태양사, 동서춘추, 서울신문사 문화부,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1974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이때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한 모양이다.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아이오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경험이 참 좋았다’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이 여행을 기점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는데 모두 시와 시인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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