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강유정의 ‘영화 속 위기의 사랑’ 4

파괴, 흔들림, 환상… 상처 받은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

  • 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파괴, 흔들림, 환상… 상처 받은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

3/4
결코 이뤄질 수 없는 달콤한 꿈

파괴, 흔들림, 환상… 상처 받은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

행복

‘달콤한 인생’은 남자의 흔들림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 뜻을 세우고 이름을 알리고 가정을 만들고 삶을 경제하는 남자의 삶, 그중 가장 절정의 나이라고 할 수 있을 40은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한다. 불혹은 무엇인가? 미혹(迷惑)되지 말 것, 그러니까 흔들리지 말라는 뜻이다.

40이 불혹인 것은 흔들릴 이유가 없어 흔들림에 가장 약한 나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도, 가정도, 재정도 모두 안정적일 때 흔들림은 유혹으로 다가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흔들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던 나무의 대답이었듯이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 바람은 바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남자, 아직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조직의 2인자이자 가꾸고 견디어야 할 것이 즐길 것보다 더 많은 남자, 30대의 선우는 유혹에 눈을 감아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흔들려서는 안 될 가장 위험한 순간 바람과 마주하게 된다. 그의 보스이자 1인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것이다.

영화는 선우가 여자에게 흔들리는 순간 ‘바람’에 의해 뿌리가 뽑혀버린 나무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여자가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인 채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막연히 그녀를 바라보던 선우는 어느 순간 갑자기 그녀에게 사로잡혀버린다. 이유는 없다. 평소의 그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닐뿐더러 철없고 제 마음대로인 그녀는 골칫덩어리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그녀의 그 철없음이 순간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달콤한 인생’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선우가 그녀에게 마음을 품었다는 것만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는 점이다. 보스는 그의 잘못된 행실이 아니라 그릇된 선택, 흔들림 자체를 추궁하고 단죄하고자 한다. 보스는 그를 땅에 파묻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흔들림’ 자체라는 듯 혹독한 형벌을 준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거울을 보며 하루를 정돈하는 남자의 삶, 그 차갑고 단정한 삶에 끼어든 여자로 인해 선우의 삶은 엉망진창이 된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본 적도, 가까이서 그녀의 체취를 맡아본 일도 없다.

하지만 그는 그녀로 인해 기꺼이 삶의 방향을 전환한다. 그렇지 않을까.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친 노인의 사랑은 무엇일까. 다만 그녀로 인해 삶의 진로가 잠시 달라진 것이 아닐까. 흔들림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지리멸렬할까. 영화의 에필로그는, 그런 점에서 한 편의 시임에 분명하다.

“제자는 깊은 잠을 자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럼, 왜 울었느냐? 그 꿈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연애하는 ‘남자’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 가지 않은 길 때문에 인생은 달콤해진다. 선우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다기보다 무엇인가에 매료당할 어떤 순간을 기다렸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선우가 반한 그녀가 특별히 아름답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선우는 보스의 애인에게 반하지만 그 이유가 선명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선우는 그 감정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가 반한 것은 ‘흔들린다는 것’, 그 자체인 셈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언젠가 드라마 작가 노희경은 이 영화를 두고 소년의 사랑이라 말한 바 있다. 허진호 감독의 작품 ‘봄날은 간다’는 ‘한 여자’를 이해할 수 없었던 소년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사랑’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실패담이라는 편이 옳다. 소년은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 소녀가 남자를 이해할 수 없듯이.

‘봄날은 간다’는 그 이해할 수 없음의 매력과 치명성에 대해 읊조린다. 라면을 먹자며 먼저 유혹하는 여자, 침대 밑 깊숙한 곳에 결혼사진을 버려둔 여자, 갑작스레 마음이 바뀌어 이별을 선언하는 여자, 그 여자는 의문투성이다.

어떤 남자에게든 한 여자가 미스터리로 다가갈 때가 있다. 바로 그녀를 사랑할 때. 사랑할 때 그녀는 커다란 물음표처럼 위험하고 어렵다. 대답을 구하는 자에게 사랑은 상처로 남는다. 사랑은 불균형한 인간관계라서 순진한 쪽이 상처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3/4
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목록 닫기

파괴, 흔들림, 환상… 상처 받은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

댓글 창 닫기

2022/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