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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별곡─한국의 碑銘문학 8

민족대표 33인 한용운과 박희도

“독립의 영(榮), 변절의 욕(辱), 모두 산 자들의 짐인 것을…”

  • 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민족대표 33인 한용운과 박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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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에 대한 또 다른 시각

시인 고은은 ‘한용운 평전’에서 만해에 대한 일방적 신격화를 저어하며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는 근대 민족사 또는 근대 문화사에 관련된 인간론이 늘 변절과 고절의 극단으로 분류해서 민족의 편에 서 있는 자를 신격화하고 그렇지 못한 자를 폄훼하는 경향이 농후한 사회에서 살아왔다. 이런 사회에서는 한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310쪽)

‘한용운 평전’은 여러 대목에서 만해에 대한 무조건적 추앙을 비판하고 그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면면을 드러낸다. 연설에 뛰어나고 지조가 강하며 지도자적 능력을 갖추었음은 인정한 반면, 수시로 파계를 한 승려답지 않은 행동, 첫 번째 처와 아들에 대한 무정함, 문학적으로 자기보다 앞선 최남선에 대한 시기심, 그를 숭모해 찾아온 청년들에 대한 냉정한 대응 등에 대해서는 일체의 수식 없이 그대로 전하고 있다. 이런 내용에 대해 많은 이가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평생 대처하지 않고 수행에 정진해온 승려들의 입장에선 만해가 아무리 위인이라 한들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을 터이다. 고은은 이 책에서 “위인의 무조건적인 신격화 또한 우리의 눈을 가리는 행위”라고 일갈한다.

만해의 묘비(뒷면 약전(略傳))를 통해 본 그의 일생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4212년(1879)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한응준의 차남으로 출생. 본관은 청주. 모는 온양 방씨. 4220년(1887) 향숙에서 경사를 수학. 4244년(1911) 만주에 망명 독립운동. 4246년(1913)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행. 4247년(1914) 불교대전을 발행. 4250년(1917) 정선강의채근담을 발행. 4250년(1917) 12월 오세암에서 선정중 오도(悟道). 4251년(1918) 월간교양잡지 유심을 창간. 4252년(1919) 3·1 운동을 선도하고 행동강령으로 공약 3장을 공표. 옥중에서 독립의 소신을 장문으로 발표 3년형을 받음. 4256년(1923)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지원. 4257년(1924)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직하고 총재에 취임. 4259년(1926) 십현담주해 및 님의침묵을 발행. 4260년(1927)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및 경성지회장에 피선. 4262년(1929) 광주학생의거시 민중대회를 발기. 4264년(1931) 불교지를 인수 편집발행인 취임. 4266년(1933) 성북동에 심우장을 건축하고 흑풍 등의 소설과 다수의 문장을 발표. 4276년(1943) 조선인학병지원을 반대. 4277년(1944) 6월 29일 심우장에서 입적 세수 66 법랍 39. 4295년(1962)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여. 만해사상연구회 識 안동 김응현 書”

여기서 세수(世壽)는 세속의 나이, 법랍(法臘)은 중이 된 후로부터의 나이를 말한다. 대한민국장은 건국훈장 중에서 가장 훈격이 높다. 참고로 대한민국장 수여자는 총 30명(그중 5명은 중국인)이고 다음으로 대통령장 93명(중국인 10명, 영국인 베델 1명), 독립장 788명, 애국장 3258명, 애족장 3868명, 건국포장 557명의 순이다(민족정기선양센터. 2008년 6월 19일 현재). 도산 안창호가 1973년 도산공원으로 이장되면서 망우리공원에 묻힌 인사 중 현재 대한민국장 수여자는 만해가 유일하다. 묘비에 쓰인 글자 중 ‘識’은 ‘식’이 아니라 표지(標識)처럼 ‘지’로 읽어야 한다. 만해사상연구회가 글을 짓고 현대 서예의 대가 김응현(1927~2007)이 묘비문을 썼다.

민족대표 33인 한용운과 박희도

1932년 ‘개벽사’의 잡지 ‘제일선’에 실린 만해 한용운 합성사진과 촌평.

혼자 살던 만해는 55세 때 신도의 소개로 간호부인 노처녀 유씨와 결혼하고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 등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심우장을 지어 살았는데, 심우장은 총독부가 보이지 않도록 북향으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우장의 편액은 위창 오세창이 쓴 것이다. 심우장에서 ‘심우(尋牛)’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선종(禪宗)의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 즉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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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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