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이미지 또는 그림은 현실을 대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근거가 없는 것이란 회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에게 그림이라는 일루전(illusion)의 세계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런 회화의 허구성을 사실적인 경향의 작품을 통해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에게 이런 그림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것은 당시 대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홍명섭, 김홍주, 엄태홍 등의 영향이 컸다.
공주에서 태어나 전파상을 하던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김동유는 어릴 적부터 남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있는 시간에 공책에 교과서의 삽화를 따라 끼적이던 시골소년은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술대학에 진학한다. 그는 미술대학에 가려거든 손 내밀지 말라는 부모님의 호령에 서울 유학을 접고 장학금을 준다는 고향의 대학에 진학했다.
망점의 구성물
대학을 다니면서는 여느 미술대학생과 마찬가지로 입시생을 지도하는 홍명섭의 화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기서 그는 학교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현대예술사조들을 접할 수 있었다. 라캉, 퐁티, 현상학, 언어학, 기표와 같은 단어들을 입시생을 지도하면서 들었다. 이렇게 귀동냥을 통해 얻은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은 전통적이고 고루한 상태에 머물러 있던, 그의 미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의 작품은 당시 대전에서는 매우 독특한 편이었다. 현대미술에서 먹히는 ‘독특하다’는 덕목이 고루한 지역사회에서는 이상한, 괴상한, 삐딱한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일루전을 바탕으로 한 회화에 대한 회의는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이즈음 그에게 나비는 대상을 살려내는 주체이자 허구적 사실인 그림에 아름다움이라는 존재감을 더해주는 장치였다.
이와 함께 그는 새로운 실험을 하기 시작한다. 로이 리히텐스타인이 주목한 회화적 수단인 망점이다. 그는 인쇄된 만화의 이미지 한 부분을 크게 확대함으로써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인쇄물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망점을 크게 확대해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인식하는 그림 속 대상은 사물이 아닌 망점의 구성물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었다. 하지만 김동유는 망점 그 자체에 주목한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망점이 어떤 시지각의 작용을 통해 환영을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시도는 안중근 의사가 일경에게 취조받는 역사적인 보도사진을 2.4×3.9m에 이르는 대형화폭에 그대로 망점으로 재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위에 사진관에서 흑백사진을 컬러사진처럼 만들던 기법을 차용해서 더욱 사진같이 보이도록 장치를 한다. 거기에 예의 나비를 그려 넣음으로써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현실과 실재, 허구와 현실이 혼재된 일루전의 세계가 갖는 모순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사비나미술관에서 2007년 열린 개인전 ‘The Face’ 전시 광경.
그와 함께 여전히 병행하는 작업은 나비 시리즈다. 나비들이 뜬금없이 등장하던 1990년대 작품들과는 달리 2003년경의 작업은 나비들이 날아들어 불상을 이루기도 하고 반가사유상이 되기도 한다. 이미지의 허구성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나비들이 이룬 형상은 나비들이 날아가고 나면 부질없는 허상만 남는다는 생각이다. 보이는 것에 대한 존재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회화의 본질
마치 장자(莊子)의 꿈처럼 부질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경향의 작품들은 그의 사유와 근성 그리고 동아시아적인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초상보다 오히려 더 높이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