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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콩티 vs 페트뤼스

부르고뉴 벨벳 여인 vs 보르도 성골 백작

  • 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로마네콩티 vs 페트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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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콩티 vs 페트뤼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의 와인숍 에노데카를 찾은 고객들이 샤토 페트뤼스(1945년산)와 샤토 무통 로쉴드(1945년)를 구경하고 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로마네콩티 구하기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돈만 있다면. 그러나 이젠 돈이 있다고 해도 구할 수 없다. 선견지명이 있는 애호가들로 이미 구입 예약자 명단이 꽉 찼다. 그들은 로마네콩티 한 병을 얻기 위해 다른 종류의 와인 열한 병을 부담 없이 함께 구입한다.

포도밭의 구분이 그리 분명하지 않은 부르고뉴에서 로마네콩티 찾기는 식은 죽 먹기다. 본-로마네 마을 뒷산으로 이어지는 경사길을 조금만 걸으면 십자가를 만난다. 높이 솟아 있어 멀리서도 보인다. 그 십자가 왼편이 로마네콩티다. 비 오는 날에도 그 근처엔 항상 여행자들이 몰려 있다. 십자가 주변에 서서 포도밭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각양각색의 여행자들은 자유복장으로 길을 떠난 순례자 같다. 그들은 성지에 온 양 조용히 속삭이며 예순을 바라보는 나무와 땅을 마냥 바라보고 있다.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 부르고뉴와 보르도는 각기 다른 역사와 전통에 기반을 둔 특징적인 와인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로마네콩티가 부르고뉴를 대표한다면 페트뤼스(Chateau Petrus)는 보르도를 대표한다. 수도사들에 의해 맛의 원천이 밝혀진 이후 오늘날 와인 심미주의자들의 식탁에까지 오른 로마네콩티는 어떠한 불황에도 끄떡하지 않는 와인이다. 페트뤼스는 유서 깊은 보르도에서도 역사나 전통이 전혀 받쳐주지 않는 무명 샤토였으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양조장 관리인에 의해 오늘날 성대한 잔치의 주인공 와인이 되었다. 특히 1945년에 생산된 페트뤼스는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97~100점을 준 와인으로 가치 및 희소성이 더욱 높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혼사에 등장해 갈채를 받은 페트뤼스는 케네디 가문의 행사에도 자주 쓰여 대서양을 넘나들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945년 이전까지는 무명의 양조장이었던 페트뤼스는 이제 보르도에서 최고로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가 됐다.

보르도의 제왕, 페트뤼스



흥미롭게도 페트뤼스는 보르도 와인이지만 보르도답지 않다. 즉 여느 보르도 와인처럼 여러 품종을 혼합해 만드는 전통적인 양조방법을 쓰지 않고 대신 부르고뉴처럼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페트뤼스는 보르도 양조 특성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보르도를 대표하는 역설적인 와인이다. 메를로만으로 양조했는데도 어찌 그리 와인이 힘찬지 마시는 사람마다 놀란다. 특히 빈티지가 좋은 경우의 페트뤼스는 수십년 이상을 숙성하면서 올곧은 질감 속에 감추어진 단단한 속을 드러내며 애호가들의 마음을 흔들어댄다.

길을 나서 샤토 페트뤼스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르도의 젖줄기 지롱드 강의 오른편에 자리잡은 마을인 포므롤에서 비교적 쉽게 눈에 띈다. 흰색 바탕의 건축물인데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이름을 크게 새겼기 때문이다. 강 오른편 출신이란 뜻을 지닌 무엑스(Moueix)를 성(姓)으로 쓰는 일가가 현재 페트뤼스를 경영하고 있다. 보르도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원산지인 포므롤은 바로 이 페트뤼스 때문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작은 거인’이다.

이곳 주인인 장 피에르 무엑스는 부지런한 세일즈맨이었다. 페트뤼스를 실은 수레를 끌고 이 마을 저 마을, 더 멀리는 보르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와인을 팔았다. 그는 성실함과 완벽한 품질을 추구한 덕분에 훗날 샤토의 지분을 거머쥐었다. 그가 세상을 뜨고는 페트뤼스의 생산과 유통은 두 아들이 맡았다. 전세계를 돌면서 페트뤼스의 이름을 알리고 있는 크리스티앙은 유통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크리스티앙의 아들 에두아르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로마네콩티 가족은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페트뤼스 가족은 여러 차례 방한했다.

페트뤼스는 영어 피터(Peter)에 해당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와 같은 이름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수제자로 꼽히는 베드로가 이 와인의 라벨에서 오른손으로 열쇠를 쥐고 있다. 그 열쇠는 천국의 열쇠를 상징한다. 노란 바탕에 붉은 글씨로 쓰인 페트뤼스는 그 안에 최고 와인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페트뤼스의 비밀은 기실 포도밭에 있다. 마을 대부분이 자갈이나 모래 토양인 데 반해, 페트뤼스는 진흙으로 된 단춧구멍 같은 표토층이 특징이며, 그 아래에 자갈 토양이 자리 잡고 있다. 또 그 아래에는 철분이 풍부한 토양층이 형성되어 있다. 총체적으로 배수에 능한 구조다. 철분 함유량이 높은 토양이라 색이 검어 자갈과 모래가 표면을 이룬 인근 포도밭과 구별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와인

페트뤼스 포도밭도 유서 깊다. 어떤 카베르네프랑의 수령은 80년이 넘는다. 1956년 포므롤을 휩쓴 냉해로 많은 포도밭에서 포도나무가 뽑혀나갔지만, 페트뤼스 포도밭에서는 추위를 이겨낸 나무들을 남겨두었다. 이것이 오늘날 깊게 뿌리박은 메를로의 맛을 잉태했다. 포도밭 면적은 10.9헥타르인데, 이는 로마네콩티의 5배에 해당한다. 부르고뉴 기준으로는 넓을지 몰라도, 보르도에서는 아담한 양조장이다.

포도밭의 95% 면적에는 메를로가 자라고 있고, 나머지는 카베르네프랑이다. 그러나 카베르네프랑은 1960년대 이후 양조에 잘 쓰이지 않는다. 포도나무가 기력이 쇠하면 나무 대 나무로 교체하는 방식이 있고, 일정 구역의 힘 빠진 나무를 모두 한꺼번에 바꾸는 방식이 있는데, 페트뤼스에서는 후자를 택하고 있다.

페트뤼스 양조장의 특징을 한마디로 하자면 완벽주의일 것이다. 면적당 수확량이 적어 여느 양조장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크리스티앙이 책임을 맡은 후부터 소출량 통제에 더 힘을 썼다. 튼실한 포도알을 얻기 위해 미리 송이 크기를 제한하는 방법이다. 여름에 포도가 여물기 전에 송이의 일부를 잘라내며, 가을에 익어가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포도밭을 오가며 송이 크기를 살핀다. 빈티지가 좋은 경우라면 좀 다르지만, 빈티지가 좋지 않다면 소출 제한은 품질 확보의 유일한 방법이다.

포도가 골고루 다 잘 익지 못하는 결과를 빈티지가 좋지 않다고 말한다. 빈티지가 좋지 못할 때 생산량은 줄어든다. 잘 익은 걸로만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2002년이 그랬다. 일조량이 충분하지 못해 품질이 좀 떨어졌다. 빈티지가 좋으면 5만병 정도 생산하는데 그해에는 2만병 정도밖에는 병에 담지 못했다. 포도의 품질이 극히 나빴던 1991년에는 아예 페트뤼스를 생산하지 않았다. 포도 품질에 대한 완벽주의의 한 예다.

페트뤼스는 단번에 확 사로잡는 입맛이 단연 일품이다. 영화 ‘머큐리’에서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가 페트뤼스 병을 들고 나발을 불며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역시 확실하고 강력한 입맛을 잘 표현한 것 아닐까. 단단한 타닌의 구조가 어찌 그리 강한지 모르겠다. 아주 남성적이며 힘찬 기상이 느껴진다. 하지만 향기 속에 감춰진 묘한 나무 냄새는 페트뤼스만의 개성이라 하겠다. 이런 방향은 로마네콩티에서도 풍긴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삼림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나무 냄새 같은 식물성 향기가 있다. 그것이 강하지는 않아 청초하고 우아한 동양란을 연상하게 만든다. 순결하고 단아한, 자연스러운 향내는 100% 순종만이 잉태할 수 있는 성질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와인이다.

신동아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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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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