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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와인 ②

무통 vs 라피트

치열하게 따낸 1등급 vs 우아하게 유지된 1등급

  • 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무통 vs 라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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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 vs 라피트

샤토 라피트 로쉴드 건물.

1945년 무통은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완벽한 와인’이라는 평과 함께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았다. ‘디캔터’가 얼마 전 선정한 ‘죽기 전에 마셔볼 와인명세’에도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와인 선물거래, ‘엉 프리메르’

무통을 방문하면 체계화된 홍보와 마케팅 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응대를 위한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오랜 세월 그 분야에 종사해온 담당자의 안내를 받는다. 예술에 대한 애호로 가득한 박물관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다양한 컬렉션을 관람할 수 있다. 별로 꾸미지 않은 라피트와 대조적이다. 1등급의 여유와 2등급의 분발로 이해해야 할까.

필립이 의욕적으로 조직한 ‘오인회’가 1953년에 깨지고 말았다. 라피트 주인장이 무통의 1등급 야망을 더는 지켜보고 싶지 않아 무통을 단체에서 빼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사촌으로부터 배척당한 무통은 등급 향상의 야망을 더욱 뜨겁게 불태웠다.

무통과 라피트의 경쟁은 사실 품질에 대한 경쟁보다 출시 가격 경쟁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여기서 보르도 시장의 특이한 거래 방식인 ‘엉 프리메르(En Primeur)’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르도 특급 와인은 통 숙성을 보통 18개월 이상 한다. 포도를 짜서 발효시키고 숙성한 다음 병에 담아 소비자에게 판매하기까지 어림잡아 2년 이상 소요된다. 그러니 샤토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판매대금이 빨리 결제돼야 양조장 운영이 순조로울 테니 말이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보르도 와인은 미리 팔렸다. 대금을 미리 받고, 와인을 나중에 주는 것이다. 일종의 선물거래인 셈. 상인이 배추 값을 봄에 치르고, 가을에야 수확해가는 거나 마찬가지 방식이다. 농사꾼은 돈을 미리 받아 좋고, 상인은 싸게 살 수 있으니 좋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이다.



이듬해 봄이 되면 직전 빈티지의 출시 가격이 나온다. 샤토와 중개상들이 의논해 결정하는데, 라피트와 무통은 상대의 가격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무통은 2등급이면서도 늘 라피트와 비슷하게 때로는 더 비싸게 출시하려고 애썼으며, 라피트는 무통을 따돌릴 방책을 고민했다. 빈티지에 따라 품질이 결정되지만, 빈티지는 광활한 지역에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무통과 라피트의 빈티지는 해마다 다른 결과를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로버트 파커의 평가점수를 빈티지별로 비교해보면, 파커는 대체로 라피트의 손을 들어줬다. 1등급의 야망을 불태우는 무통과, 이를 막으려는 라피트 사이의 갈등은 계속됐다. 그러다 1961년에 잠깐 휴전하기도 했다. 현재 무통의 주인장인 필리핀 드 로쉴드가 시집가는 날이었다. 그리고 1973년 마침내 라피트가 반대를 철회함에 따라 무통의 등급 상향이 결정됐다. 자신이 가문에서 막내라는 데 착안해 ‘무통 카데(Cadet·둘째 혹은 막내)’라는 이름의 브랜드 와인을 만들기도 한 필립은 1등급이 결정되자 이런 시를 읊었다. ‘나는 1등급이다/나는 2등급이었지/무통은 변하지 않는다!’ 그의 할아버지가 읊조렸던 실망의 시와 구별되는 자신감 넘치는 시다.

젊음의 비결, 라피트

무통과 라피트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일꾼들이 대를 이어 일한다는 사실이다. 라피트 중에는 5대째 일하는 가족도 있다. 특히 라피트는 매년 성탄절이면 직원들에게 성탄절 보너스를 지급한다. 가족당 6병의 라피트를 부상으로 주는 것. 지난해에는 2005년 빈티지 3병과 1997년 빈티지 3병을 선사했다. 우리 돈으로 치면 1000만원을 웃도는 고가(高價)다.

라피트는 ‘라 피트(La fite)’를 붙여 쓴 것으로, 피트(fite)는 영어의 마운드(mound), 솟아오른 언덕을 뜻한다. 포이약에서도 가장 높이 솟아 있기 때문이다. 평지가 대부분인 메독에서 해발고도 27m는 상당하다. 실제로 메독의 와인도로 D2를 차로 달리다 보면 단조로운 평지가 이어지는데 라피트 주위로 오르막이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무통 vs 라피트

무통의 주인장 필리핀(왼쪽)과 라피트의 주인장 에릭.

1755년 리슐리외공이 프랑스 지엔 지방을 통치하고 파리에 돌아왔을 때 60세였다. 그의 알현을 받은 루이 15세는 리슐리외공의 놀라운 젊음이 ‘라피트’ 와인 덕분이라는 보고를 받고, 라피트를 왕실 와인으로 선택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라피트의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에 반한 독일 장군의 욕심도 이 와인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2년에 히틀러의 충복이던 괴링 원수는 라피트를 무척 애호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후계자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유대인 소유지인 샤토 라피트 로쉴드를 빼앗으려고 했다. 이 사실을 알아챈 프랑스 정부는 해당 전 재산을 국유화했다. 이로 인해 히틀러는 유대인 재산이라는 명분으로 라피트를 강탈할 수 없었다.

라피트 로쉴드의 라벨은 작고 단순하며 우아하다. 와인 맛 또한 대체로 가볍고 부드럽고 섬세하다. 이런 특징은 무통과 견줄 때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나, 긴 와인 수명은 라피트의 독보적인 자랑이다.

자갈 토양으로 유명한 라피트는 더운 날에 진가를 발휘한다. 2003년 타오르던 해에도 최상의 와인을 생산한 것만 봐도 그렇다. 라피트는 무통보다 훨씬 나긋나긋하고 유순하다. 질감면에서는 포이약의 무통이나 라투르보다 두텁다고 할 수 없지만, 사실 두터움은 라피트가 추구하는 성질이 아니다. 미세함, 섬세함, 우아함을 중요시할 뿐이다.

예술 애호는 공히 즐긴다. 라피트 역시 예술을 후원한다. 주로 색감 좋은 페인팅을 라벨로 차용한 무통과 달리 라피트는 흑백사진을 애호한다. 양조장 직원들의 노동을 근엄한 톤으로 표현한 미국 사진가 리처드 애브동의 작품들이 샤토 곳곳에 걸려 있다.

경쟁은 계속된다

1973년 이후로 사촌 모두 1등급이 되고부터 등급 전쟁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경쟁이 끝난 건 아니다. 출시가격 경쟁이 계속됐고, 글로벌 경쟁으로 이어졌다. 비로소 품질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칠레 등 새로운 산지에 양산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두 양조장은 품질 경쟁에 박차를 가한다. 미국에는 무통이 먼저 진출했지만, 칠레에서는 라피트가 앞섰다.

1999년 12월31일 밤에 무통의 주인장 필리핀이 라피트의 주인장 에릭을 초대해 1899년을 대접했다. 바로 다음날 에릭이 필리핀을 초대해서는 1799년을 대접했다. 여전히 팽팽하게 경쟁하는 라이벌인가? 언론에서 취재한 내용을 보면 로쉴드 가족의 세찬 경쟁이야말로 그들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는 원동력이라고 지적하는 내용을 접할 수 있다. 갈등이 힘을 만들고 그 힘이 성공을 불러오는 모양이다.

신동아 200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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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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