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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 20주기

기자 시절 데스크가 말하는 기형도

“기쁨을 찾기 위해 고통스럽게 시를 썼던 완벽주의자”

  • 정규웅│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자 시절 데스크가 말하는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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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시절 데스크가  말하는 기형도
“자네와 통화한 사람, 혹시 K 아닌가?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그래. 그래야 사랑으로 발전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말이야. K, 좋은 여성임엔 틀림없지만 자네와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해. 여자가 남자보다 열 살이나 위라면 누가 봐도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

기형도의 옆얼굴이 금세 홍조를 띠는 듯 보였다. 그는 이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항의하듯 말했다.

“열 살은 무슨 열 살, 아홉 살 차이밖에 안 되는데…”

나는 ‘밖에’라는 말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K가 1951년생, 기형도가 1960년생이므로 그들의 나이 차이가 아홉 살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나이 차이가 심하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한 살 늘려 말한 것뿐인데 나무랄 수 없는 그의 항의에 부닥친 것이다. 그것은 완벽주의자이고자 했던 그의 결벽증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글과 삶에 결벽증을 가진 완벽주의자



그런데 그런 결벽증이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문화부의 문학기자를 단명으로 그치게 했으니 결국 그것도 기형도의 운명이었을까. 경위는 이렇다. 나는 그의 결벽증을 일찍부터 눈치 채고 있었으므로 그가 넘긴 기사를 손질할 때면 그를 불러 의견을 묻곤 했다. 대개는 수긍했으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때도 간혹 있었다. 그때마다 절충안을 내놓아 그럭저럭 넘어가곤 했는데 그의 기사로 말썽이 생겨 내가 곤욕을 치르게 되면 진심으로 안쓰러워하는 순수함을 보이기도 했다.

1988년 1월 신문사 내의 불협화음으로 나는 문화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박해현이 새로 창간되는 신문에서 나와 함께 일하게 됐으므로 기형도는 박해현이 맡았던 방송담당 기자 일을 다시 떠맡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했던 방송사들의 파행은 기형도의 펜 끝 아래서 다시 난도질당하기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해 5월 어느 날이었다. 기형도의 날카로운 방송비판 기사가 데스크에 의해 톤다운(tone down)돼 출고됐는데 기형도가 공무국으로 가서 제 기사가 만신창이가 된 것을 확인하고 직원들의 협조로 그 기사를 본래의 기사로 원상 복원시켜놓은 것이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신문이 나오자 편집국은 발칵 뒤집혔다. 원인 규명을 위해 기사 원고를 찾아보니 데스크가 고쳐 쓴 것을 기형도 자신이 본래의 기사로 환원시킨 것으로 판명됐다.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이 일로 해서 기형도는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때의 일이 기형도의 죽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후 줄곧 상심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기형도가 세상을 등지기까지 4~5년간의 과정을 살펴보면 잘 짜인 어떤 다큐멘터리의 시나리오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가 완성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시인 박정만이요, 다른 한 사람은 서울대 교수를 지낸 문학평론가 김현이다. 박정만은 기형도보다 약 5개월 먼저, 김현은 기형도보다 약 1년3개월 후에 각각 세상을 떠났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형도의 시는 ‘현재형’이다.

사진은 지난 2006년 기형도 시비 건립 기념 세미나 광경.

중앙일보 기자 시절 신문사 동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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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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