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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와인 ⑨

말보로 vs 스티리아

여름 저녁 만찬을 위한 최고의 와인

  • 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말보로 vs 스티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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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로 vs 스티리아

뉴질랜드 말보로에서 생산되는 소비뇽 블랑의 우수성을 알린 클라우디 베이.

오스트리아의 와인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오스트리아 와인마케팅 보드’(Austrian Wine Marketing Board, 이하 AWMB)의 대표 빌리 클링거(Willi Klinger)는 모국의 와인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데 대해 그리 실망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와인 생산은 전세계의 1% 수준이고, 그중 75%를 내수 판매하니, 실제 수출은 0.25%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지만, 오스트리아 와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무명의 오스트리아 명산지 중에서 외래 품종 소비뇽 블랑에 천착하는 지방이 스티리아다. 지난 30여 년 동안 오스트리아 와인을 지켜보고 있다는 와인평론가 스티븐 브룩(Stephen Brook)은 ‘디캔터’ 기고문에서 스티리아 소비뇽 블랑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와인의 강점은 토착 품종으로 와인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에 외래 품종은 발붙이질 못한다. 그럼에도 스티리아에서는 소비뇽 블랑이 성공했다.”스티리아의 소비뇽 블랑은 천편일률적인 맛을 낸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말보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탈리아 중심에 위치한 토스카나의 풍광이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듯, 스티리아의 경관 역시 빼어나다. 오스트리아의 남단에 위치한 스티리아는 슬로베니아와 접경을 이룬다. 스티리아는 북쪽에 위치한 다른 와인 산지들과는 달리 대부분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데, 이런 경향 역시 슬로베니아와 흡사하다. 나라 전체 경작지의 5% 정도에 불과하지만 품종이나 스타일은 다채롭다. 특히 개성 강한 소비뇽 블랑과 샤르도네는 오스트리아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스티리아의 주도는 그라츠다. 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여주인공이 숨어들어갔던 도시이기도 하다. 그라츠는 수도 빈 다음가는 도시이지만 인구는 25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라츠는 오스트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2003년에는 유럽연합이 매년 지정하는 ‘올해의 유럽 문화수도’에 선정되었고, 구(舊)시가는 유네스코 자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보디빌더이자 배우, 그리고 현재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그라츠 출신이다.

스티리아는 우리로 치면 지리산 일대의 전남이나 경남에 해당하는 산악지대다. 해발 600m의 봉우리에 조성된 차도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데, 길가에는 깔끔한 호텔, 양조장, 레스토랑들이 늘어서서 관광객을 부른다. 유럽인들에게 이런 스티리아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1순위로 꼽힌다. 울창한 삼림을 산책하고, 맛난 화이트 와인을 마음껏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멋진 나무숲을 병풍 삼아 가파른 언덕에 조성된 스티리아의 포도밭은 오늘날 다뉴브 강가의 포도밭과 더불어 오스트리아의 고품질 화이트 와인을 끌고 가는 쌍두마차다.



2009년 6월, 슬로베니아와 접경을 이루는 지역에 포도밭을 두고 있는 양조장 테멘트(Tement)를 방문했다. 지역 최고로 꼽히는 테멘트의 양조장 건물은 포도밭 치렉(Zieregg) 바로 위에 조성돼 경관도 뛰어났다. 마주 보이는 높고 낮은 산등성이는 바로 슬로베니아 산야다. 최고의 양조장은 쉴 틈이 없는 것일까. 일꾼들은 하루 종일 밭에 무언가를 뿌리느라 분주했다. 이곳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맡고 있는 아르노 베르글러(Arno Bergler)는 “지금 뿌리는 약은 파스폴리어(Pasfoliar)다. 이곳은 고온에다 습도가 높아 비가 오기만 하면 금세 흰가루병(Mildew)이 번진다. 그래서 미리 파스폴리어를 뿌려 병충해에 대비한다”라고 설명해주었다.

두 와인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역만리 떨어진 말보로와 스티리아의 공통점은 둘 다 서늘한 기후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후는 화이트 와인 양조에 유리하다. 새콤한 청포도를 서서히 익힐 수 있는 기후는 고품질 화이트 와인 제조의 필수 조건이다. 남반구에 위치한 말보로는 남위 40도 부근에 있다. 적도를 기준으로 상하대칭을 해 보면 북한 신의주에 해당한다. 스티리아는 북위 47도에 위치한다. 말보로와 스티리아 둘 다 농작물 한계선에 육박하는 위도에 있기 때문에 포도 완숙을 쉽게 장담하기는 어렵다.

전통주의자들은 스티리아와 말보로의 차이를 테루아(terroir)와 기술의 차이로 설명하려 한다. 스티리아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서 와인을 생산하므로 그들의 터전인 땅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이전할 수 없는 대지를 자산으로 가족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스티리아라면, 말보로는 이와 판이하다. 말보로의 와인 양조는 이제 한 세대를 지났을 뿐이다. 말보로의 양조장은 생활이 아니라 기업이자 프로젝트다. 거기서 일상생활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산업화하고 규모화한 대량 생산체제로서의 양조장 운영이 지고의 목표이기 때문에 와인 한 병에서도 문화적 가치를 따지는 스티리아와 다를 수밖에 없다.

말보로의 소비뇽 블랑 경작지는 1만㏊를 넘지만, 스티리아는 겨우 400㏊이다. 개별 양조장의 규모 역시 차이가 크다. 몬태나는 자체 포도원과 수매하는 포도원의 면적을 합하면 1000㏊를 넘는다. 그러나 스티리아 지역에서 대규모로 알려진 테멘트는 겨우 수십㏊ 수준이다. 스티리아와 말보로는 다윗과 골리앗에 견줄 수 있다. 말보로의 4% 남짓한 스티리아의 규모는 정말 하찮은 수준이다. 하지만 테루아와 가업정신으로 똘똘 뭉친 스티리아는 개성 강한 와인으로 점점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1995년 유럽연합 가입 이후에 스티리아 양조장들은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팔 수 있는 수량은 말보로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소비뇽 블랑의 신데렐라, 클라우디 베이

말보로를 단숨에 소비뇽 블랑의 중심지로 등극시킨 클라우디 베이 브랜드는 동명의 하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로 Cloudy Bay라는 이름답게 자주 구름이 끼는 지역이다. 클라우디 베이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호주 서부에서 와인을 만들던 데이비드 호넌(David Hohnen)이 뉴질랜드 출장 때 우연히 소비뇽 블랑을 얻어 마시고 그 품질에 반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클라우디 베이의 풍광에 반한 그는 와인 이름을 클라우디 베이로 짓고 말보로에서 양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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