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꿈과 낭만 깃든 경춘선 폐철로, 녹색관광 숨결로 되살아난다

춘천

  •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

    입력2010-04-02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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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과 낭만 깃든 경춘선 폐철로, 녹색관광 숨결로 되살아난다
    ‘교복을 입은 소년과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세상의 마지막까지 이어질 것만 같은 아득하고도 아름다운 노란 단풍이 깔린 길을 달린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첫사랑의 설렘을 안고….’

    ‘한류 열풍’의 원조가 된 드라마 ‘겨울연가’ 속 한 장면이다.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슬픔과 절망, 기쁨과 환희를 그려낸 드라마 덕에 춘천의 곳곳은 한국을 넘어 일본과 동남아에서 열성 팬들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됐다.

    폐 철로와 간이역 관광자원화

    ‘겨울연가’가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춘천 하면 ‘호반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가장 먼저 물안개 피어오르는 낭만적인 호수 이미지가 떠올랐다. 드라마 ‘겨을연가’의 애달픈 사랑의 추억이 더해지면서 춘천은 사랑과 낭만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가수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처럼 해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이 되면 덜컹거리는 열차에 몸을 싣고, 기타 연주를 반주 삼아 노래 부르며 꿈과 낭만을 찾아 MT를 떠나던 경춘선의 추억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고보니 봄(春)과 강(川)이란 두 글자로 이뤄진 춘천은 도시 이름에 이미 ‘낭만’이 짙게 배어 있다.



    경춘선은 올해 말 완공 목표로 복선 전철화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일부 구간이 새로운 노선으로 만들어지면서 경춘선 몇몇 구간은 폐쇄된다. 정부와 춘천시는 2013년까지 이 구간을 대표적 녹색관광 자원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이무철 춘천시 관광기획팀장은 “호반의 도시 춘천을 중심으로 인근 남이섬과 강촌 등 주요 관광지에 폐 철로를 활용한 관광자원까지 더해지면 한 해 35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폐 철로를 녹색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사업은 남이섬에서부터 경강역과 백양역, 강촌역과 김유정역까지 모두 23㎞ 구간에서 이뤄진다. 이곳은 춘천 도심으로 진입하는 46번 국도와 북한강을 나란히 하고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고 계절에 따른 풍경 또한 변화무쌍한 명소다.

    1999년 영화 ‘편지’의 촬영지인 경강역은 역사 주변을 화단과 꽃길로 가꿔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춘천시는 영화 속에 그려진 이미지와 분위기를 활용해 ‘테마 공간’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역사 부지 면적이 넓은 백양역에는 자연친화적인 소규모 테마 휴게시설을 갖춰 ‘꼬마열차’와 ‘레일바이크’ 등 폐 철로를 활용한 관광 상품의 출발 또는 환승시설로 활용한다.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각광받았던 강촌역은 가족과 연인 단위 체험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휴양레저단지로 개발하고, ‘봄봄’ ‘동백꽃’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 인근에는 김유정문학촌이 확대된다.

    소양강과 북한강을 끼고 있는 춘천시는 이와 함께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강변을 따라 32.9㎞에 달하는 자전거도로를 조성하고 생태공원과 식물원, 생태관찰 데크와 포토아일랜드 등도 조성할 예정이다.

    폐 철로와 역사를 활용해 녹색관광 자원으로 만드는 사업은 이제 밑그림이 그려진 단계다. 앞으로 3년 뒤 한국을 대표하는 녹색관광지로 변모할 춘천 폐 철로와 역사 일원을 타임머신을 타고 미리 가보자.

    꿈과 낭만 깃든 경춘선 폐철로, 녹색관광 숨결로 되살아난다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경춘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 레일바이크 타러 춘천 가요!

    2013년 4월20일 토요일.

    “아빠! 아빠! 빨리 일어나.”

    6시를 갓 넘겼을 뿐인데, 본준이가 벌써부터 성화다. 사흘 전 10번째 생일을 맞은 본준이에게 한 약속 때문이었다. 반 친구 다영이가 2주 전에 갔다 와서는 자랑을 늘어놓은 레일바이크를 타러간다는 약속을 본준이에게 생일선물로 한 뒤 본준이는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아침저녁으로 레일바이크 타령을 하더니만 오늘은 아예 새벽같이 일어나 조른다. ‘아! 피곤하다.’ ‘그래도 어쩌랴. 약속은 약속인 것을.’ 둘째 본경이도 어느새 옷을 차려입고 기다리고 있다. ‘이 녀석들이…. 엄청 가고 싶었던 모양이군.’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수도권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길은 참 좋아졌다. 2009년 7월,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100㎞ 이상 떨어진 경기도 서쪽 끝 파주에서조차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게 됐다. 자유로를 타고 서울 쪽으로 내려오다 외곽순환도로를 따라 서울을 크게 반 바퀴 돈 뒤 상일IC를 통해 서울-춘천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20분쯤 달렸을까. 벌써 강촌IC다.

    서울 강남에 회사를 둔 직장인들이 춘천에 거주하면서 출퇴근한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충분히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뿐 아니라 2010년 완공된 복선 전철을 타면 서울 강북에서도 1시간이면 춘천에 도착한다.

    레일바이크가 출발하는 강촌역에 들어서자 가족, 연인 단위의 관광객들이 줄을 서 레일바이크 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를 끊고 인근 ‘먹자촌’에서 감자전 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는데도 시간이 남아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강변 하이킹에 나섰다. 따사로운 봄볕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민간자본을 유치해 폐 철로와 역사를 녹색관광지로 개발한 정부와 춘천시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체험관광을 할 수 있도록 자전거 하이킹이나 레일바이크 등 사람의 힘만으로 이동하면서 주변 경관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여럿 개발해놓았다.

    올해 열 살이 된 본준이는 혼자서도 자전거를 제법 잘 탄다. 일곱 살 난 본경이는 아직 혼자 타기는 일러 아동용 카트를 빌려 자전거 뒤에 달고 달렸다.

    “야호! 아빠, 강바람이 참 시원해요.”

    집을 나선 뒤로 본준이과 본경이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렇게 좋아?” “네.”

    두 녀석이 합창이라도 하듯 동시에 답한다.

    #김유정문학촌

    1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이렇게 풍광 좋은 체험 관광지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탄소 배출까지 최소화하는 친환경 녹색관광이 아니던가. 다음에 올 때는 전철을 이용해서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우리 당대보다 후세들을 위해 적극 대처해야 하는 문제.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노력은 지금 우리 세대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촌역으로 돌아오니 레일바이크를 탈 차례가 곧 돌아왔다.

    “출발!”

    페달을 돌릴 만큼 키가 크지 않아 앞자리에 앉았으면서도 본준이는 기관사를 자처하며 출발 신호를 보냈다. 강촌역에서 김유정역까지는 8.2㎞. 기차에 올라 철로를 달리는 것과 페달을 돌리며 철로 위를 달리는 느낌은 천양지차다. 기차여행이 주마간산 격이라면, 레일바이크는 철로와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속도는 느리고 힘은 조금 들지만 보람은 더 컸다.

    철로 주변 산에는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신록의 나무들이 싱그러운 느낌을 줬다. 그뿐인가. 유유히 흐르는 강을 굽어보며 페달을 밟는 느낌은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있다 보니 어느새 김유정역에 가까워졌다.

    김유정역은 한국 철도 사상 최초로 역명에 사람 이름을 붙인 역이다. 개통 당시인 1914년부터 지명을 딴 ‘신남역’으로 부르다 2004년 12월1일 ‘김유정역’으로 바꿨다. 김유정역에서 금병산 쪽으로 조금 들어가자 김유정문학촌이 나왔다. 작가의 유품이 한 점도 없어 ‘문학관’이 되지 못하고 ‘문학촌’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아빠, 김유정이 누구야?”

    작가 김유정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이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다. 자연스레 대화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이곳 춘천 실레마을에 ‘봄봄’ ‘동백꽃’ 같은 좋은 소설을 쓴 김유정이라는 작가가 태어나 살았는데….”

    알아듣는지 어쩌는지 모르지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못 진지하게 듣는다.

    “아빠가 집에 가서 김유정 작가가 쓴 책을 구해줄 테니 한번 읽어볼래?” “네.”

    김유정의 작품이 서정적이고 문체가 유려해 읽는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애들이 보기에는 이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좀 야한 대목도 있었던 것 같은데….

    #춘천 시티투어는 ‘덤’

    경춘선 폐 철로 관광코스는 남이섬에서 시작해 경강역과 백양역을 거쳐 강촌역과 김유정역까지 이어져 있다.

    ‘겨울연가’ 촬영지로 잘 알려진 남이섬은 드라마가 방영된 지 10년도 더 됐지만 여전히 연인과 드라마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영화 ‘편지’의 촬영지인 경강역에는 화사한 봄꽃으로 장식된 ‘꽃동산’이 조성돼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고, 백양역은 다양한 체험시설이 들어서 가족 단위 관광객의 발길을 붙든다.

    레일바이크 체험을 마친 우리는 김유정역에서 춘천 시티투어를 하기로 했다. 시티투어는 춘천시가 수도권 관광객을 겨냥해 일찌감치 준비해온 프로그램으로 짧은 시간에 춘천의 명소를 알차게 둘러볼 수 있도록 일정이 잘 짜여 있었다.

    김유정문학촌에서 투어 버스를 탄 뒤 소양강 처녀상과 노래비를 둘러보고 막국수체험박물관을 거쳐 소양댐과 물문화관을 둘러보는 코스를 택했다. 이어 춘천의 명물 닭갈비로 점심을 먹고 강원도립화목원과 애니메이션박물관을 거쳐 다시 김유정문학촌으로 돌아왔다.

    복선 전철이 완공된 2010년 말부터 수도권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이 온천욕으로 몸을 풀고, 닭갈비와 막국수로 식사를 하고, 시티투어를 하고 돌아가는 ‘실버코스’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춘천 시티투어를 마치고 김유정역에서 다시 강촌역으로 돌아오자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자전거 하이킹에 레일바이크, 김유정문학촌과 시티투어까지 하루 종일 여러 체험을 하며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던지 차에 오르자마자 두 아이는 잠에 바로 빠져들었다.

    강촌역 주차장을 막 빠져나오는데 플래카드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레일바이크 타고 프러포즈를! 꽃다발+기념촬영 포함 이벤트 비용 5만원’

    요즘 연인들은 산과 강, 철도가 어우러진 레일바이크를 타면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 유행인 모양이구나. 부럽군! 참, 좋을 때다.

    인터뷰 | 이광준 춘천시장

    “전통문화체험시설 늘릴 것”


    경춘선 폐철로와 구 역사를 활용한 녹색관광자원화 사업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밑그림을 그리고, 민간자본을 유치해 추진할 방침이다. 이광준 춘천시장은 “전통문화체험시설 등을 확충해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체험을 통해 관광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꿈과 낭만 깃든 경춘선 폐철로, 녹색관광 숨결로 되살아난다
    -녹색관광의 새 모델로 경춘선의 폐철로와 역사를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 확정됐는데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요.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진입로를 개선하고, 외연을 넓혀 다양한 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레일바이크와 꼬마관광열차 등 폐철로를 이용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늘려나가고요. 김유정문학촌 주변에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유치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고,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김유정교실 등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복선전철이 완공되면 춘천으로 오는 시간은 단축되겠지만, 과거 경춘선에서 맛봤던 낭만은 줄지 않을까요.

    “과거 경춘선이 연인이나 친구들이 도심을 벗어나 산과 강이 있는 곳으로 휴식을 취하러 왔다면, 복선 전철은 속도가 빨라진 만큼 추억을 만들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겠지요. 장작불로 한 밥과 가스불에 한 밥은 맛에 차이가 있지 않겠어요. 폐철로와 역사를 관광자원화할 때 그런 점을 감안해 추억과 낭만을 다시금 느낄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춘천으로 오는 시간이 단축되면서 좋은 점도 있지요. 아름다운 춘천송암스포츠타운에서 테니스를 치거나, 축구와 야구, 인라인스케이트와 보드, 익스트림 스포츠을 맘껏 즐기기 위해 수도권에서 많은 동호인이 찾고 있습니다.”

    -녹색관광지로서 춘천이 갖고 있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전국에서 강을 따라 도로와 철도가 길게 이어진 곳은 많지 않습니다. 산과 강이 철도와 도로 가까이에 연결돼 이동하면서 수려한 경치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춘천 인근에는 강촌과 남이섬, 소양강 등 가볼 만한 곳이 많습니다. 막국수와 닭갈비 등 춘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가운데 하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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