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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⑦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숲길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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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숲길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영시암.

젊은 시절, 철마다 내설악을 들락거릴 당시엔 ‘영시암 터’라는 팻말만 있었을 뿐, 영시암의 실체가 없었다. 대신에 영시암 터 옆 평지에 며칠씩 야영할 수 있는 멋진 전나무 숲이 펼쳐져 있었다. 국립공원의 철저한 관리 덕분인지는 몰라도, 옛날의 그 전나무 숲은 한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울창하게 변해 있었고, 함부로 출입할 수 없음을 알리는 출입금지 표시판이 버티고 있었다.

영시암은 6·25전쟁으로 소실된 터에 지금도 불사가 계속되고 있다. 백담사 주지로 있던 설봉 스님이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의 후손인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과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 서예가 형제의 도움을 받아 1992년부터 복원 사업을 시작해, 옛 명맥을 이어가고자 당우를 건립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영시암의 복원에 얽힌 사연을 조사하면서 영시암의 옛 주인이 삼연 김창흡이며, 삼연이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함께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먼저 세상에 널리 알린 인물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삼연과 영시암, 또 삼연과 설악산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가계(家系)부터 살펴봐야 한다. 삼연의 증조부는 김상헌(金尙憲)이다. 지난 3월호에 통도사 들머리 숲길의 바위에 새겨진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김상헌과 그의 형 김상용(金尙容)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형 김상용은 병자호란 당시 비빈(妃嬪)을 호종(護從)하다가 강화도가 함락되자 자결한 충신이고, 아우 김상헌은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다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시조를 남긴 충신이다. 삼연의 형제들 역시 증조부나 아버지 못지않게 일세에 이름을 떨쳤다. 장남 김창집(金昌集)은 숙종 때 영의정을 지냈고, 둘째 김창협(金昌協)은 대제학을, 그리고 삼남인 삼연 김창흡과 넷째 김창업(金昌業)은 당대에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우리 역사에서 부자 양대(兩代)가 영의정을 지냈으며, 양대가 사사(賜死)된 가문은 이들이 유일하다.

삼연은 1689년(숙종 15년)에 부친 김수항이 장희빈 소생의 세자 책봉을 반대(己巳禍變)해 죽임을 당하자 1705년 백담사로 들어온 후, 4년 뒤에 내설악 깊은 곳에 정사(精舍)를 세우고 은거한다. 그는 은거지의 이름을 처음에는 삼연정사라 부르다가, 뒤에 영시암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1711년 어느 날 선생의 식비(食婢)가 영시암 뒤에 있는 골짜기에서 범에게 물려 죽는 변을 당하자 이곳을 떠나 지금의 화천군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삼연이 남긴 시 ‘영시암’은 부친의 죽음 뒤에 설악산에 입산하게 된 연유와 당시의 심경을 전하고 있다.

영시암(永矢庵)



내 삶은 괴로워 즐거움이 없고/ 세상 모든 일이 견디기 어려워라

늙어 설악 산중에 들어와/ 여기 영시암을 지었네.



노산 이은상이 1933년에 쓴 기행문 ‘설악행각’에는 영시암에서 삼연의 유적비를 읽고 그 소회를 밝히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6·25전쟁 통에 그 유적비는 사라졌다. 삼연을 매월당과 함께 설악을 세상에 알린 인물로 꼽는 것은 그의 학덕을 숭상한 많은 선비가 영시암에 머물고 있는 그를 찾아 설악을 들락거리면서 설악의 비경을 시문으로 지어 세상에 널리 알렸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내용은 ‘영시암기(永矢庵記)’에 기록된 ‘혹 휴양하려는 사람이 먼 곳에서 다투어 몰려왔고, 혹 기를 기르려는 선비들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或息心之人萬里爭趨 或養氣之士六合雲會)’라는 구절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매월당과 삼연으로 인해 설악산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흔적은 조선시대 여러 사대부가 남긴 시문에서도 확인된다. 조선 후기 문신 김종후가 남긴 시는 삼연과 매월당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영시암에서 자고 오세암을 찾아

동봉(김시습)의 마음은 곧 선비 같고/ 삼연의 자취는 부처님일세.

훌륭하다. 이 산속에/ 천년을 한집에서 함께하세.

우뚝 솟아 엄숙하며 존엄한 천개의 봉우리요/ 요란한 소리로 달리고 격렬하게 흐르는 만 갈래 물일레/ 살 곳을 가려 여기 머물면/ 어찌 그 덕을 본받지 않으리오.

산수가 여운을 간직하듯/ 내가 지내왔던 일 어제와 같네.

판자 감상은 허술하게 만들었어도/ 기와 처마 아래 비석은 읽을 수 있네.

가까운 것을 사랑하고 먼 것을 잊으라니/ 누가 이 의문을 해설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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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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