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호

2014

2장 개전(開戰)

  • 입력2010-08-23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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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일러스트 · 박용인

    2014년 7월24일 15시40분. 백령도.

    해병 제7사단 직할 수색대대 상황실. 수색대대장 강규식 중령이 직접 지휘봉을 들고 벽에 걸린 지도 앞에 서있다. 주위에는 대대본부 참모와 4개 중대장, 그리고 이동일까지 이번 작전에 참가하는 장교가 다 둘러앉았다.

    “우리는 분계선을 따라 서쪽으로 날아가다가 공해상에서 돌아온다.”

    강규식이 지휘봉으로 지도 위에 그은 선은 사흘 전에 KF-24가 비행했던 코스와 같다. 지휘봉으로 공해상의 한 점을 짚은 채 강규식이 말을 잇는다.

    “가상 상륙 목표는 옹진반도 남쪽이지만 우린 이 지점에서 돌아올 예정이야. 하지만 적은 비상대기 상황이 될 테니까 긴장하도록.”



    그러나 강규식은 물론 둘러앉은 장교들의 표정에서 긴장감은 드러나지 않았다. 지휘봉을 지도에서 뗀 강규식의 시선이 이동일을 스치고 지나갔다. 강규식도 이동일과 아는 사이였는데도 처음 만난 것처럼 딱딱하게 굴고 있다. 훈련에 사령관 부관이 감시자로 끼어드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강규식이 장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질문 사항 있나?”

    그때 중대장 하나가 손을 들었다.

    “대대장님, 적이 사흘 전처럼 미사일을 쏘면 어떻게 합니까?”

    “네가 할 일은 없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쏘아붙인 강규식이 눈을 치켜떴다.

    “그냥 바닷속으로 쑤셔 박히는 수밖에, 그러니 네가 탄 헬기만 맞지 말라고 푸닥거리라도 해라.”

    둘러앉은 장교들 사이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났고 분위기가 조금 더 가벼워졌다.

    “이번 E-3 훈련의 중심은 우리 수색대대다.”

    강규식이 다시 정색했으므로 장교들은 긴장했다.

    “그리고 헬기 150대가 한꺼번에 뜨는 건 처음이야. AH-253은 공해상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도 할 테니 귀관들은 멋진 구경을 하게 되겠다.”

    그러면서 몸을 돌리던 강규식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16시부터 외부 통신 차단이다. 보안을 지키도록.”

    7월24일 16시10분. 서울. 지하철 안.

    ‘한민족민주연합’ 사무총장 조경구와 조직부장 정수남이 지하철 3호선 객차 안에서 나란히 서 있다. 빈자리가 있었지만 둘은 곧 내릴 것처럼 출입구 쪽에 자리 잡고 창밖을 본다.

    “내일의 E-3 훈련은 한반도에 전쟁위협을 증폭하려는 박성훈 정권의 공작이라고 밀어붙여야 돼.”

    조경구가 한마디씩 낮고 또렷하게 말하는 것은 ‘지시사항’이기 때문이다. 이 지시사항은 곧 점조직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각 단체, 언론 매체, 그리고 인터넷과 트위터로까지 빗발처럼 확산될 것이었다. 정수남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천천히 머리만 끄덕였을 때 조경구가 말을 잇는다.

    “어뢰정은 방향타가 고장 난 상태였으며 KF-24기 격추는 영해를 2마일이나 침범했기 때문이라고 말야. 러시아 위성이 찍은 증거사진이 있다고 퍼뜨려.”

    “알았습니다.”

    각진 턱을 끄덕이던 정수남이 문득 머리를 들고 조경구를 보았다.

    “오늘밤 대학생연대의 촛불집회 때 단체들을 더 모아야 되겠는데요.”

    “가능한 한 많이.”

    주위를 둘러본 조경구가 말을 이었다.

    “박성훈이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전쟁위협이 고조되면 웰빙 보수들은 분열해. 쫌만 길게 빼면 박성훈이 꼬랑지를 내린다고. E-3가 전쟁 도발용 작전이라고 몰아붙여.

    “알겠습니다.”

    위기가 기회인 것이다. 노인네가 주력인 보수층에 비하면 이쪽은 수적으로 열세지만 젊은데다 단결력이 강하다. 3% 조직으로 97%의 무기력한 대중을 이끌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7월24일 17시25분. 소공동.

    망원경을 눈에 붙인 허성만이 남창빌딩의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수남이 돌아왔습니다.”

    정수남은 막 빌딩 현관으로 들어서는 중이다.

    “저놈은 빌딩에 감시장치가 부착되어 있는 걸 알아요, 개자식.”

    허성만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귀에 이어폰을 붙이고 있던 백기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야 견제용 아닌가? 저놈들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알 거야.”

    그들은 조금 전에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조경구와 정수남이 헤어진 것을 보고받은 것이다. 허성만이 망원경을 눈에서 떼고 손끝으로 눈을 문질렀다. 소공동의 남창빌딩은 3층 건물로 낡아서 주위 건물에서 다 내려다보였다. 그 남창빌딩의 3층이 ‘한민족민주연합’ 사무실이다. 한민족민주연합은 남북교류, 인도적 지원, 평화통일을 목표로 하는 시민단체로 회원 수는 1000여 명이다. 그러나 지금 사무실로 들어간 조직부장 정수남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번에 걸쳐 5년형을 살았고 시청역에서 헤어진 사무총장 조경구는 세 번에 8년을 복역했다. 조직의 간부 대부분이 철저한 반미·친북 세력이다. 창가로 다가간 백기준이 이제는 대신 망원경을 눈에 붙였다. 이곳은 길 건너편의 비스듬한 위치에 세워진 빌딩 12층이다. 직선거리는 120m, 망원경을 눈에 붙이면 얼굴의 점까지 보인다.

    “이것들이 어뢰정이 넘어왔을 때부터 바쁘게 나대는데 북에서 지령을 받은 모양이야.”

    망원경으로 3층을 보면서 백기준이 말을 잇는다.

    “한 번만 더 치면 부장이 신문에 보도될 테니까 각오해요.”

    “뭘로? 성폭력?”

    40대 후반의 홍동수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더니 몸을 돌렸다.

    “나 안 서는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기사 낼 거예요?”

    등에 대고 송아현이 묻자 홍동수가 몸을 돌린 채 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기사를 그대로 내겠다는 표시다. 어젯밤 촛불 데모대의 잠입 취재를 끝낸 후에 송아현은 ‘촛불 데모대의 루머 조작’이라는 기사를 써서 데스크에 낸 것이다. 송아현이 20대 여자한테서 들은 내용과 분위기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시발, 클났네.”

    혼잣소리처럼 송아현이 말했을 때 옆자리 김 기자가 큭큭 웃었다. 기사 끝에 취재기자 이름이 실명으로 찍혀 나올 것이다.

    7월25일 09시35분. 서울. 청진동.

    “루머가 먹히고 있어.”

    청진동의 해장국집 ‘안동옥’에서 선지해장국을 떠먹던 이은주가 말했다. 이은주는 대학생 환경연합 선전부장으로 어젯밤에 송아현을 만난 당사자다. 앞쪽에 앉은 한주현이 머리를 들고 말했다.

    “오늘 밤에는 6개 노조 회원들이 참가한다고 했어. 오늘은 2000명쯤 될 거야.”

    한주현은 조직부장으로 둘 다 대학생 조직의 간부급에 든다. 주위를 둘러본 한주현이 말을 이었다.

    “격렬하게 투쟁하라는 지시야. 곧 5급 운동을 공표할 거래.”

    5급이면 7급까지 책정된 투쟁 강도 중에서 올해 들어와 가장 높은 레벨이다. 6급은 남북이 국지전을 할 때이고 7급은 전면전 때 발령되는 것이다. 정색한 이은주가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한국군 훈련이 끝나면 관제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겠지. 그것을 오늘밤의 촛불로 덮어버리자고.”

    7월25일 09시48분. 백령도. 헬기연대본부.

    헬기로 다가가면서 이동일이 자신의 군장을 확인한다. 2012년부터 지급된 K-5소총은 한국형으로 M-16을 모델로 했지만 사정거리가 더 길고 총신은 짧은데다 가볍다. 분당 발사속도는 750발, 실탄은 20발들이 탄창이 6개다. 또한 한국산 베레타 92-F형 권총에 15발 탄창 3개, 방탄 상의를 입었고 철모, 탄띠에는 수류탄 4발이 끼워져 있다. 헬기 옆으로 다가간 이동일이 참모와 서 있는 헬기 연대장 탁경섭 대령을 보았다. 지휘기인 AH-253기는 이미 로우터를 회전시키고 있었으므로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는 중이다.

    “어, 왔나?”

    이동일의 경례를 받은 탁경섭이 소리치더니 곧 쓴웃음을 지었다.

    “자. 드라이브하고 오자고. 해병.”

    헬기연대는 전략기동군으로서의 해병대 임무에 맞도록 2012년에 창설되었는데 모두 해병대 소속이며 독립연대다.

    이동일은 탁경섭을 따라 지휘기 안으로 들어섰다. 탑승 인원은 조종사와 부조종사, 사격통제 준사관, 그리고 탁경섭에다 참모 둘, 이동일까지 7명이다. 헬기 안에서 헤드셋으로 바꿔 쓴 탁경섭이 손목시계를 보고나서 말했다.

    “10시 정각에 출동 시각 맞춰.”

    “예, 10시 정각에 출동.”

    동승한 작전참모가 복창하더니 각 부대에 지시했고 보고 소리가 헬기 안을 울리고 있다. 이동일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09시54분. 6분 전이다. 참모에게 출동지시를 맡긴 탁경섭이 헤드셋의 버튼을 눌러 외부통신을 끄더니 이동일에게 말했다.

    “이봐, 감시 나온 거냐?”

    “네?”

    못 들은 척 이동일이 눈을 끔벅이며 되묻자 탁경섭이 입술을 비틀고 웃는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이건 기무사 놈들도 파악하지 못했을 건데 내가 귀관한테만 알려주지.”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탁경섭이 말을 잇는다.

    “윤재복이 마누라 이름이 민세희다. 미인이지.”

    이동일은 잠깐 윤재복이 누군가 생각했다가 숨을 삼켰다. 이틀 전에 격추된 KF-24기 편대장이다. 그때 탁경섭이 말했다.

    “내 마누라가 윤재복이한테 민세희를 소개시켜줬어, 민세희는 내 마누라 친구의 동생이야.”

    그러고는 탁경섭이 손을 뻗어 이동일의 어깨를 툭 쳤다.

    “내가 대구호 함장 놈처럼 어물거릴 것 같으냐? 넌 내가 오버나 하지 말도록 감시해야 될 거다.”

    그때 AH-253이 불끈 떠올랐으므로 이동일은 창밖을 보았다. 헬기장을 가득 메웠던 헬기들이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새들의 부양 같았다. 엄청난 소음과 함께 거대한 동체의 헬기 100여 대가 동시에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7월25일 10시15분. 이지스 순양함 광주호.

    이지스함 광주호의 함장 문영수 대령은 이번 E-3 훈련의 함대 지휘관임과 동시에 해상 작전의 책임자였다. 따라서 광주호의 함교에는 지휘관제 시스템이 모여 있었는데 작전, 화력조정, 항공관제, 상륙정관제, 통신감시관제를 모두 이곳에서 하는 것이다. 10시 정각에 E-3가 발령되었을 때 광주호는 구축함 4척과 초계함 6척, 그리고 참수리 8개 편대 16척을 거느리고 백령도 동남쪽을 항진 중이었다.

    “강릉호가 선두에 섰습니다.”

    부함장 오재길 중령이 망원경을 내리면서 보고하자 문영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헬기연대가 지나갈 때가 되었는데….”

    그때 헬기의 폭음이 들리더니 백령도 쪽의 상공에서 3대의 헬기가 다가왔다.

    “정찰기가 옵니다.”

    오재길이 브리지의 창을 통해 맨눈으로 그쪽을 보면서 말했다.

    “대공미사일에다 로켓포까지 잔뜩 실었군요.”

    바로 이지스함 앞쪽으로 지나가는 헬기 3대는 AH-253 정찰편대였다. 헬기연대에서 최선두로 내보낸 정찰대인 것이다.

    “그 자식들, 되게 시끄럽군.”

    오재길이 투덜거렸을 때 이번에는 10여 대의 AH-253 편대가 다가왔다. 그래서 귀가 더 먹먹해졌다.

    “항로를 좌표 0-21로.”

    문영수가 지시했고 오재길이 복창한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폭음이 울리면서 이번에는 동남쪽 상공에서 KF-24기 2개 편대가 나타났다.

    “딱 맞춰서 오는군.”

    만족한 듯 문영수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앞쪽 레이더 화면을 보았다. 같은 방향에서 2개 편대의 KF-24가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7월25일 10시18분, 옹진반도 제23대공미사일전대. 통제실.

    “전투기 4개 편대 16기입니다.”

    레이더 감시병이 소리치자 책임군관 양택수 상위는 옆에 놓인 전화기를 들었다.

    “시속 850km로 접근 중.”

    감시병의 목소리가 다시 통제실에 울렸을 때 귀에 붙인 전화기의 수화구에서 이광천 대좌가 묻는다.

    “뭔가?”

    “남조선 전투기 4개 편대 16기가 시속 850km의 속도로 분계선에 접근 중입니다.”

    “백령도에서는?”

    “헬리콥터는 150대 정도, 분계선과 3km 거리를 두고 동진 중, 해상에는 상륙함 3척, 보조함 5척, 그 남쪽에 순양함 1척, 구축함 4척, 초계함 6척, 참수리는 현재까지 8개 편대가 파악되었습니다.”

    양택수가 외우고 있던 대수를 술술 보고하자 이광천이 짧게 웃고 나서 말했다.

    “내가 내려가야겠다.”

    통화가 끊겼을 때 감시병이 다시 소리쳤다.

    “선두 전투기와의 거리는 125km.”

    머리를 돌린 양택수가 레이더를 보았다. 지름이 2m가 넘는 레이더 화면 남쪽에서 4개씩 한 덩어리가 된 점들이 북상해오고 있다. 그리고 서쪽에 하얗게 퍼진 점들은 헬기연대다.

    “저것들이 한 대 떨어졌다고 야단법석을 떠는구먼.”

    쓴웃음을 지은 양택수가 일부러 크게 말한 것은 통제실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규모의 한국군 상륙전 연습은 양택수가 제7방공여단 23대공미사일전대에 배속된 지 3년이 되었지만 처음이다.

    “선두 전투기와의 거리 85km.”

    감시병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배어 있다. 양택수는 벽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20분이 되어가고 있다. 남조선군 전투기 한 대를 떨어뜨린 지 만 이틀이 되어가고 있다. 아까부터 옆쪽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지만 양택수는 모른 척했다. 발사반원들인 것이다. 이틀 전에도 책임군관이었던 양택수는 발사명령을 내렸다. 유효 사거리 120km인 북한산 지대공미사일 승리3호는 한국군이 자랑하던 신형 전투기 중 1기만 명중시켰지만 KF-24기가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시켰다. 훌륭한 성과인 것이다.

    “거리 70km.”

    다시 레이더 감시병이 말했을 때 양택수는 머리를 들고 처음으로 발사반 쪽을 보았다. 발사반의 앞쪽 전자상황판에는 140여 개의 붉은 등이 켜져 있었는데 위쪽의 100개는 지대공미사일 피바다25였고 아래쪽 40개는 지대지미사일 노동5호였다. 피바다25는 전장 5m, 직경 30cm에 중량이 145kg 사정거리 160km에다 속력은 마하6이며 자신이 지닌 레이더를 이용해 표적에 돌입하는 능동적 방식의 미사일인 것이다. 또한 노동 5호는 전장 5.5m, 직경 55cm에 중량 650kg의 대함, 대지용 미사일로 사정거리는 300km, 속력은 마하 3.5이며 역시 능동추적 방식의 미사일이다.

    “거리 57km.”

    다소 지친 목소리로 감시병이 말했을 때 옆쪽 문이 열리면서 전대장 이광천 대좌가 통제실 안으로 들어섰다.

    “놈들은 이쪽으로 오고 있지?”

    이광천이 다가오며 물었으므로 양택수는 부동자세로 섰다.

    “그렇습니다. 전대장 동지.”

    “놈들은 영해를 침범하지 않을 거다.”

    레이더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으면서 이광천이 말했다.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비상경계다.”

    “예, 전대장 동지.”

    긴장이 풀린 양택수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7월25일 10시22분. 수송헬기 AH-39 3번기 안.

    수색대대장 강규식이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소리쳤다.

    “이 부근에서 KF-24가 당했어.”

    옆쪽에 앉은 참모들이 제각기 창밖을 내려다본다. AH-39는 육중한 동체를 기울이며 날아가고 있다. 완전무장한 병력 20명을 태울 수 있는데다 공대공미사일과 대전차미사일, 거기에다 게틀링포까지 장치된 AH-39는 위압적이다. 그때 작전참모 박성우 대위가 소리치듯 말했다.

    “주경리까지 20분 거리입니다.”

    가상 상륙 목표는 주경리다. 주경리란 어디인가? 바로 KF-24기를 격추시킨 북한군의 제23대공미사일 전대가 위치한 곳이다.

    7월25일 10시25분. 서해 상공. 좌표 0275지점.

    “대단하군 그래.”

    KF-24 편대의 지휘관 안재성 중령이 캐노피 아래를 굽어보면서 말했다.

    “헬기연대의 위용을 봐라. 폼 난다.”

    “멋집니다.”

    뒤를 따르는 2편대장 주명열 소령의 목소리가 헤드셋에서 울렸다.

    “모두 150대는 되겠는데요?”

    “제법 편대 비행이 잘되는구먼.”

    안재성이 힐끗 상황판을 보고는 조종간을 고정시켰다. 현재 위치는 분계선 남쪽 3km 지점에서 동진 중이다. 왼쪽으로 창진도가 보였고 그 뒤쪽의 육지가 옹진반도였다. 그때였다. 헤드셋에서 관제관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북방에서 미확인 비행체가 대량으로 접근 중, 아직 미사일인지 비행기인지 판별이 안 된다.”

    그와 동시에 상황판에 비행체의 데이터가 입력되면서 공대공미사일 알람이 자동적으로 발사대기 상태로 전환되었다.

    “고도를 2만으로.”

    편대원에게 지시한 안재성이 기체를 급상승시켰다. 이미 편대기 모두는 조기 경보기로부터 동시에 정보를 들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기수를 남쪽으로 돌릴 수는 없다. 아래쪽에 대규모 헬기연대가 지나고 있으니만큼 위에 떠 있어야만 한다. 그때 관제관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판별되었다. MIG31 5개 편대. 거리는 260km, 시속 900km로 남진 중.”

    “알았다. 로저.”

    금방 고도 2만에 닿았고 상황판 옆쪽 레이더 화면에 MIG31편대가 점으로 나타났다. 거리계에는 23km, 북동쪽에서 접근해오고 있다.

    “대대장님.”

    헤드셋에서 3편대장 김승옥 대위의 목소리가 울렸다. 김승옥은 다음달에 소령으로 진급하는 고참 대위다.

    “뭐야?”

    “이번에도 회피운동만 합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저쪽에서 쏘면 윤소령처럼 피하기만 하다가 당하는 건 아니겠지요?”

    “인마, 오늘은 아냐.”

    지금 이 대화는 위쪽의 조기경보기는 물론이고 제2함대사령부, 방공사령부, 그리고 합참 지하벙커의 관제실, 북한의 공군, 해군의 지휘부에다 중국과 일본, 미국이 위성을 통해서 다 듣고 있을 것이었다. 안재성이 이제는 모두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오늘은 진짜 가만두지 않을 거다.”

    이제 MIG31이 장착한, 러시아제 AA-6형을 변형한 공대공미사일의 사정거리는 약 50km였고 양쪽의 진행속도를 계산하면 3분쯤 후에는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올 것이었다.

    7월25일 10시27분. 헬기연대 지휘기 안.

    무전기의 푸른 신호등이 번쩍였으므로 이동일이 스위치를 켰다. 무전기를 귀에 붙였을 때 앞쪽에 앉은 탁경섭이 힐끗 시선을 주었다.

    “예, 대위 이동일입니다.”

    이동일이 응답했을 때 수화구에서 작전참모 최재창의 목소리가 울렸다.

    “북한 전투기가 출현했다. 알고 있지?”

    “예, 압니다.”

    “공격을 받으면 즉시 옹진반도로 돌입한다. 상륙 목표는 남해. 알았나?”

    “예.”

    이동일이 대답했을 때 최재창의 목소리가 굵고 높아졌다. 모두 들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공격을 받고 바다 위로 떨어질 수는 없다.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연대장 바꿔.”

    “예.”

    하고는 이동일이 무전기를 지금도 시선을 주고 있는 탁경섭에게 내밀었다.

    “사령부 작전참모입니다.”

    7월25일 10시29분. 상륙함 강릉호의 함교.

    해병 7사단장 고달호 소장은 부관이 넘겨주는 무선전화기를 받는다.

    “예, 사령관입니다.”

    “나야.”

    사령관 정용우다. 정용우는 고달호와 꽤 인연이 깊은 편이다. 8년 전에 정용우가 포항 사단장이었을 때 고달호는 1연대장이었다. 그전에 정용우가 백령도에서 대대장을 할 때는 고달호가 대대 참모였다. 그러나 고달호는 시치미를 뚝 떼고 묻는다.

    “무슨 일이십니까?”

    “놈들 전투기가 덮쳐왔구먼.”

    역시 정용우도 시치미를 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래서 조금 전에 작전참모 시켜서 헬기 연대장한테 지시했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안심인데.”

    “증거를 남기실 작정인가 본데 말씀하시지요. 지금 여러 곳에서 듣고 있을 테니까요.”

    “너, 사단장 되더니 말이 많아졌다?”

    “바쁩니다.”

    “그럼 읊지.”

    하고나서 정용우가 헛기침을 했다.

    “적이 공격하면 즉시 옹진반도로 상륙해라. 해병을 바다에서 몰살시킬 수는 없다. 알았나?”

    “예, 사령관님.”

    “할 말이 있나?”

    “듣고 있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는데요.”

    그러고는 고달호도 헛기침을 했다.

    “만일 이틀 전과 같은 일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달호의 단호한 목소리가 끝났을 때 정용우는 말없이 통신을 끊었다.

    7월25일 10시34분. 평양시 남쪽 27km지점.

    제55호위대 지하벙커 안에서 합동 참모회의가 열리고 있다. 원탁에 둘러앉은 장성들이 방금 벽 쪽에 붙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남조선군 해병 7사단장 고달호 소장의 말을 들었다.

    “무력시위일 뿐입니다.”

    무력부 총정치국장 조재규 대장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들으셨겠지만 우리가 가만두면 놈들은 돌아갑니다. 이틀 전 격추된 전투기 때문에 강경파 놈들을 다독거려줄 필요가 있었단 말입니다.”

    “듣고 있을 여러분께 말씀드린다니.”

    무력부 부부장 심철 상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우리도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말씀 올리는 것 같구먼 그래.”

    그는 호위총국 산하의 평양지구대장을 지내다가 당 서열이 뛰어올라 무력부 부부장 겸 호위대장을 맡았다. 호위대장도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 경호를 전담하는 최정예부대였으니 심철의 위세는 나는 새도 눈짓으로 떨어뜨릴 만했다. 그때 무력부장 성종구가 입을 열었다. 그가 오늘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남조선 대통령이 지도자 동지께 양해까지 얻었으니까 무력시위라고 볼 수도 없지. 그냥 연습이요.”

    성종구가 늘어진 눈시울을 올려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군의 일부 강경파가 해병 상륙훈련을 주도했겠지만 온건파의 견제를 받고 있을 것이오.”

    그때 잠자코 있던 총참모장 김형기 대장이 입을 열었다.

    “지놈들이 우리 영공을 침입해놓고 억지소리를 하다가 다시 무력시위를 하는 걸 보면 도발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김형기가 가늘게 뜬 눈으로 성종구를 보았다. 60대 초반의 김형기는 역시 인민군의 출세코스인 호위총국 평양지구대장을 거쳐 호위총국장이 되었고 지금은 인민군의 총수인 총장참모장이다. 물론 총정치국장과 같은 서열이지만 김형기의 기세가 약간 강하다. 장군들의 시선을 받은 김형기가 말을 이었다.

    “헬기 기동타격 연대와 상륙함이 옹진 앞바다로 몰려오는 상황을 그저 연습이라고 놔두는 습성이 들면 인민군 전사들의 긴장감이 풀어집니다. 나중에는 허를 찔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성종구가 나섰을 때 김형기는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은 고대나 현대나 마찬가지로 기세 싸움입니다.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말씀입니다. 남조선은 지금 대규모 상륙 훈련으로 기세를 올려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도발이라고 했지 않소?”

    입맛을 다신 성종구가 머리를 기울이며 김형기를 보았다.

    “그런데 기세네 기선하고 무시기 상관이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한 말이었지만 장군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75세의 성종구가 20년 전 군사령관이었을 때 김형기는 예하부대의 대대장을 지낸 인면이 있다. 그러나 김형기의 기세는 호위총국의 평양지구대장이 되었을 때부터 살아나 10년쯤 전부터 성종구를 똑바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다. 김형기가 성종구를 똑바로 보면서 말한다.

    “놈들은 인민군의 기세를 죽이려고 도발해온 것이란 말씀입니다. 무력부장동지.”

    “그렇군.”

    성종구가 표정 없는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인민군의 기세만 죽지 않으면 놈들의 도발은 무용지물이 되겠군.”

    7월25일 10시37분. 서해 상공. 좌표 0275 지점.

    안재성 중령의 KF-24기가 같은 지점을 네 번째 지나고 있다. 그러나 캐노피 밖으로 보이는 아래쪽 바다에는 이미 헬기연대가 지난 후여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만 보인다.

    “놈들도 돌아옵니다.”

    2편대장 주명열 소령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울렸다. MIG31기 편대를 말하는 것이다. MIG31기 편대도 북쪽 영해에서 선회 비행을 하는 중이라 지금 세 번째로 스쳐 지나가게 될 것이었다. 안재성이 레이더에 흰 점으로 표시된 헬기연대를 보면서 말했다.

    “저기, 잠자리 떼가 돌아올 때가 되었군.”

    헬기연대는 선회지점인 주경리 상공까지 대략 3분 거리로 다가가 있었다.

    7월25일 10시38분. 서해 상공. 헬기연대의 지휘기 AH-253기 안.

    “목표 상공 도착 3분 20초 전.”

    지휘기 조종사 조민철 대위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울렸으므로 이동일은 창밖을 보았다. 왼쪽으로 북한령 옹진반도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육안으로 봐도 드문드문 박힌 흰 점은 건물이다.

    “저쪽이 제23대공미사일전대야.”

    옆에 앉아 있던 헬기연대의 정보참모 왕덕근 소령이 손끝으로 유리창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쪽 산 밑 어딘가에 있어.”

    그때 시야를 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MIG31 편대가 좌에서 우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도 위협기동 같다. 제트엔진의 폭음이 이곳까지 들렸으므로 이동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래쪽에서 보면 장관이겠군요.”

    그럴 것이다. 헬기연대의 벌떼 같은 위용도 볼만하겠지만 좌우로 MIG31기와 KF편대가 번갈아 스쳐 지나간다. 아래쪽에서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살벌한 기운이 덮이고 있을 것이다.

    7월25일 10시39분. 제23대공미사일전대. 통제실.

    눈썹을 모은 양택수 상위가 손끝으로 테이블 위를 무의식중에 두드리고 있다. 양택수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은 앞쪽 레이더 화면, 통제실 안은 조용했고 기계음만 울리고 있다. 삐.삐. 철걱. 철걱. 뚜. 뚜. 웅웅웅. 이제 2분 후면 헬기의 선두 편대가 순위도 남쪽 해상에 닿는다. 헬기연대의 뒤쪽으로 함정을 표시하는 노란 점들이 떠 있었는데 지금 2m의 레이더 화면에 남조선군 헬기와 전투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놈들은 경계선은 침범하지 않았다. 2km 거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양택수는 주머니에서 말보로를 꺼내 쥐고는 시선을 레이더에 준 채로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때 다시 기수를 돌린 남조선군 전투기 편대가 동쪽으로 직진해나가면서 북조선의 MIG31 편대와 엇갈렸다. 그러나 이제 보고는 하지 않는다. 지금은 바짝 다가온 헬기연대가 위협적이다. 그래서 통제실 안의 분위기는 위축되어 있는 것이다.

    “개자식들.”

    담배연기를 길게 뱉고 난 양택수가 잇새로 말하고는 다시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옆쪽 문이 열리더니 전대장 이광천 대좌가 들어섰다. 오늘 오전에만 두 번째다. 양택수가 황급히 담배를 감춰 껐으나 이광천의 시선은 레이더 화면으로 옮겨져 있다. 레이더 앞에 선 이광천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대공 미사일 발사준비!”

    발사반원은 물론이고 통제실 안의 모든 시선이 이광천에게로 모아졌다. 그때 이광천이 목소리를 높였다.

    “목표는 선두 헬기편대! 피바다 25기 1번에서 8번까지를 발사한다.”

    “피바다 25기 1번에서 8번!”

    저도 모르게 양택수가 복창했고 통제실 안은 엄청난 긴장감으로 덮였다.

    “발사준비 완료.”

    발사반장 임택성 중위가 소리쳤을 때 이광천이 직접 명령했다.

    “발사!”

    그때 양택수가 벽시계를 보았다. 10시39분32초다.

    7월25일 10시39분35초. 서해상. KF-24 편대장기 안.

    “아앗!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조기경보기 B-2C의 관제관이 버럭 소리쳤을 때 안재성도 거의 동시에 레이더 화면에 떠오른 미사일을 보았다. 8기. 거리는 27km. 자동으로 미사일 발사장치 알람에 불이 켜지면서 공대공미사일 KAAM-220 4기가 발사준비 상태로 전환되었다.

    “대대장님! 선두 헬기가 목표입니다.”

    2편대장 주명열 소령이 버럭 소리친 순간 안재성은 헬멧 밑의 머리칼이 쭈뼛 솟아오른 느낌을 받고는 이를 악물었다. 헬기연대와 미사일과의 거리는 10여 ㎞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 MIG31 편대가 또다시 이쪽과 엇갈려 서쪽으로 빠져나갔다. 그쪽에는 이지스 함대가 있다.

    “K편대는 H편대를 지원하라!”

    다시 관제관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울린 순간 안재성은 기체를 미사일 쪽으로 횡전시켰다. 레이더에 떠오른 미사일은 이제 5개. 나머지 3개는 어떻게 되었는가? 안재성이 미사일을 향해 기체를 돌진시키면서 소리쳤다.

    “먼저 저놈들을 떨어뜨려라!”

    7월25일 10시39분38초. 서해상. 기동함대 기함인 광주호의 함교 안.

    “발사!”

    함장 문영수 대령이 소리치자 화력 조정관 이병천 소령이 복창했다.

    “발사!”

    그 순간 선체가 흔들리는 것 같더니 전방의 수직발사기 MK41에서 미사일이 흰 가스를 품으면서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고는 1초 간격으로 미사일이 쏘아올려졌다. 그야말로 빗발처럼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는 것이다. MK41 1기에는 미사일이 61발 장착되어 있다. 광주호는 3기의 MK41기를 전, 후, 중앙부에 1기씩 장비하고 있으니 총 183기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날아오르는 미사일은 토마호크급 대지공격용 미사일을 개량한 KC-780형. 사정거리 500km, 마하 3의 속도로 난다. 그때 뒤쪽의 구축함 두 척에서 쏘아올린 미사일이 흰 가스를 품으면서 푸른 하늘위로 떠올랐다. 목표는 북한 미사일이 발사된 제23대공미사일기지. 총 120발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발사 완료.”

    이병천이 보고했을 때 문영수는 앞쪽 전광시계를 보았다. 발사 지시 후 15초가 지났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포착한 후부터 21초. 지금 시각은 10시39분58초다.

    7월25일 10시40분03초. 서해상. 헬기연대 선두.

    “3호기 피격됨!”

    5호기 조종사 이성환 중위는 외침과 동시에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헬기 동체의 양쪽에 2기씩 장착된 KAMM-220 미사일 4기 중 2기가 동시에 발사되었다. 흰 가스를 뿜으며 미사일은 마하 6의 속도로 북한의 지대공 미사일 1기를 향해 날아갔다.

    “두 놈이 밖에서 만난 건 오늘밤 촛불집회 상의를 한 거야.”

    “걍 잡아서 토해낼 때까지 고문을 해야 되는데.”

    뒤쪽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만들던 허성만이 투덜거렸다.

    “대한민국처럼 간첩이 활개 치는 나라가 없을 겁니다. 이런 게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에요.”

    그러나 고참인 백기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10년쯤 전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간첩을 눈앞에 보면서도 못 잡았다. 그 간첩들이 고위층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7월24일 17시50분. 소공동 국제신문 빌딩 안.

    송아현은 회사 복도에 서서 진동으로 떠는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다. 발신자 번호가 영 낯설다. 지역번호도 경기도가 찍혀진 일반 전화다. 마침내 송아현은 휴대전화 덮개를 열고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나야.”

    이동일이다. 50%쯤의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계산하긴 했다. 그러나 막상 목소리를 들었더니 짜증과 아쉬움, 외로움까지 섞인 감정으로 말문이 막혔다.

    “아현아, 미안해.”

    이동일이 말했다. 그렇다. 어제 오후 7시쯤 같이 밥 먹으러 가자면서 일어섰다가 전화를 받더니 황망히 사라졌다. 그러고는 종무소식. 오늘 오전 9시 반쯤 되었나? 박기성의 전화를 받고나서 연락을 해보았더니 응답하지 않았다. 마치 전사나 한 것처럼, 군인이면 전사지.

    “안 죽었어?”

    하고 기분 그대로 뱉었더니 이동일이 여전히 정중한 억양으로 말했다.

    “미안해. 다음 기회에 꼭.”

    “우리 지키려고 그러는 건 아는데.”

    억제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입 밖으로는 저절로 그렇게 말이 뱉어진다.

    “군인은 애시당초 연애나, 결혼, 그런 거 포기하고 일 해야 되는 거 아냐?”

    이제 이동일은 가만있었지만 송아현은 내친김이다.

    “일도 벅찬데 너무 욕심 부리는 거 아니냐고?”

    “미안하다. 이번 작전 끝나고.”

    “아, 됐어.”

    “개인통신이 금지되어서 내가 부대 밖으로 나와 전화하는 거야.”

    “거봐.”

    해놓고 더 뒤집으려다가 송아현은 어금니를 물고 참았다. 그때 이동일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 빌어먹을!”

    옆에 앉은 부조종사 박기수 중위가 비명 같은 외침을 뱉었다. 그의 앞쪽 캐노피에 피뭉치가 떨어진 것이다. 위쪽에서 격추된 3호기의 승무원 잔해다.

    “회피! 회피!”

    갑자기 뒤쪽에서 안상철 중사가 소리쳤으므로 이성환은 헬기를 급강하시키면서 레이더를 보았다. 붉은 점이 푸른 중심선에 바짝 다가와 있다. 붉은 점은 미사일이었고 중심선은 바로 이 헬기인 것이다.

    7월25일 10시40분11초. 서해상. 헬기연대의 지휘기 안.

    “5호기가 방금 격추되었습니다!”

    지휘기 안의 레이더 탐지관이 소리쳤을 때 탁경섭도 이를 악물었다. 선두에서 날던 AH-253형 헬기 중 4대가 격추된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3기는 KF-24 편대의 요격을 받아 공중 폭파되었다.

    머리를 든 탁경섭이 앞쪽에 앉은 작전참모 민봉구에게 말했다.

    “기수를 북으로! 목표는 좌표19. 남해다!”

    “기수를 북으로. 목표는 좌표19!”

    민봉구가 버럭 소리치더니 무전기의 스위치를 켰다. 헬기 전체에 명령을 전달하려는 것이다. 그 순간 이동일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긴 숨을 뱉었다. 문득 시선을 들었더니 탁경섭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기수를 북으로! 목표는 좌표19다!”

    그때 민봉구가 악을 쓰듯 명령을 전달했다.

    7월25일 10시40분18초. 상륙함 강릉호의 함교.

    레이더에서 시선을 뗀 해병 7사단장 고달호가 참모장 김길중 준장에게 말했다.

    “상륙정 탑승준비.”

    “상륙정 탑승준비!”

    복창한 김길중이 몸을 돌리더니 소리쳤다.

    “각 부대 상륙정 탑승 준비시켜라!”

    그러고는 고달호에게로 돌아서자 뒤쪽에서 수라장이 일어났다. 제각기 단위 부대를 찾고 지시하는 바람에 함교는 떠나갈 것 같다. 강릉호는 와락 속력을 내었으므로 고달호가 옆쪽 의자를 쥐면서 묻는다.

    “놈들이 미사일을 발사한 지 얼마나 지났어?”

    “39분38초에 통보를 받았으니까 지금이 40분25초군요.”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김길중이 말을 잇는다.

    “57초 지났습니다. 사단장님.”

    “그동안 호위함대에서 미사일을 쏘았고 즉시로 헬기연대와 상륙함대는 기수를 돌려 북진하고 있다. 꾸물거린 건 없지?”

    “전혀 없습니다.”

    머리까지 저은 김길중이 쓴웃음을 짓는다.

    “지금 꾸물거렸는지 아닌지를 따지시다니 사단장님 여유가 있으시군요.”

    “그러게 말야.”

    따라 웃은 고달호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난 헬기연대가 북으로 기수를 돌리기를 기다렸어. 내가 명령하지 않아도 먼저 그러기를 기다린 거야.”

    “잘하셨습니다.”

    “이제 시간이 되었는데.”

    “미사일이 놈들의 대공미사일전대에 떨어질 시간 말씀입니까?”

    “아니. 사령관이나 합참에서 연락이 올 시간 말야.”

    해사 1년 후배인 김길중과 허물없는 사이였으므로 고달호는 다시 쓴웃음을 짓는다. 그때 장교 하나가 다가와 보고했다.

    “헬기연대가 북한령 5km 안까지 진입했습니다.”

    고달호와 김길중의 시선이 동시에 옆쪽 레이더 화면으로 옮겨졌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은 MIG기 편대다.

    “저놈들이 옆으로 비껴 지나가는데.”

    약 10㎞의 거리를 두고 MIG 편대가 비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때 고달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옳지. 저놈들이 당황했군. 손발이 맞지 않은 거야.”

    7월25일 10시41분35초. 제55호위대 지하 벙커 안.

    “어떻게 된 거야!”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친 성종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에 부착된 대형 레이더에는 제23대공미사일전대를 향해 날아오는 100여 개의 미사일이 찍혀 있다. 흰점이 한 덩어리가 되어 다가오고 있었는데 소리가 없는 것이 더 소름 끼치는 광경이다.

    “누가 발사 지시를 한 거야!”

    다시 성종구가 소리쳤을 때였다. 김형기가 머리를 들고 말했다.

    “자위수단이었습니다.”

    성종구와 시선이 마주친 김형기가 눈도 깜박이지 않고 한마디씩 힘주어 말을 잇는다.

    “제23대공미사일 전대장이 다가오는 남조선군 집단을 보고 자위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그럼 전대장 그놈이 혼자 했단 말이오?”

    성종구가 질책하듯 묻자 김형기는 눈을 치켜떴다.

    “그렇습니다. 부장동지. 그러니 어서 공격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지금 1초가 급하단 말입니다.”

    “지도자 동지께서 아직 지시하지 않으셨소.”

    말을 자른 성종구가 김형기를 쏘아보았다. 얼굴이 벽돌처럼 굳어 있다.

    “만일 전대장한테 명령한 자가 밝혀지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이틀 전 한국군의 KF-24기 편대를 향해 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린 것은 김형기였다. 발사 명령을 하고나서 바로 주석궁을 찾아가 김정일을 만나고 온 터라 아무도 추궁하기는커녕 묻지도 못했지만 오늘은 다르다. 한국군의 의도적인 강습훈련에 대비해서 이쪽도 성종구의 지휘하에 군 지휘관이 모여 대응하는 중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의 도발은 한국군이 아무리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위험한 것이다.

    “아앗!”

    그때 누군가가 짧게 소리쳤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레이더 화면으로 옮겨졌다.

    갑자기 미사일이 다 없어져버렸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7월25일 10시41분55초. 옹진반도 부근 상공. 헬기연대장기 안.

    헬기 연대장 탁경섭이 소리쳐 지시한다.

    “선제공격! 모든 화력을 쏟아 부어 상륙군의 교두보를 확보한다!”

    작전참모가 복창했다. 이제 헬기연대는 공격 대형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는데 최고 속력을 내고 있다. 이동일은 머리를 들고 다가오는 산천을 본다. 이제 이곳은 북한령 옹진반도다.

    “주경리 적미사일 기지가 격파되었습니다.”

    부조종사가 외쳤을 때 헬기 안에서 짧은 탄성이 터졌다.

    같은 시각.

    헬기연대의 후미를 따르는 수송 헬기 안에서 수색대대장 강규식이 소리쳐 지시했다.

    “좋아. 전투준비! 각 중대는 교두보를 확보하도록!”

    같은 시각. 상륙함 강릉호의 함교.

    고달호가 무전기를 귀에 붙였을 때 사령관 정용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디야?”

    불쑥 묻자 고달호도 한마디로 대답한다.

    “남해요.”

    “23미사일전대는 박살냈지만 해안포와 대공포 진지가 여럿이야.”

    “헬기가 때려줘야죠.”

    “잘해.”

    “앞으로 5분이요.”

    5분 후에 헬기연대가 남해에 닿는 것이다. 헬기연대와 수색대대가 교두보를 확보하느냐에 승패가 달려있다. 그때 정용우가 뱉듯이 말했다.

    “해병답게 죽어.”

    고달호는 해병답게 무전을 끊어버렸다.

    7월25일 10시42분17초, 제 55호위대 벙커 안.

    “남해 남방 3km까지 접근했습니다.”

    벙커 벽에는 종합상황판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각 군부대에서 보고한 정보가 담당 군관이 수동으로 조작해 표시되었다. 그러나 현장과의 시차는 10초 미만이다. 상황판 책임군관인 대좌가 소리쳤을 때 무력부장 성종구가 초조한 시선으로 앞에 놓인 전화기를 보았다. 김정일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다.

    “남해에 상륙시키면 안 됩니다.”

    총참모장 김형기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을 때 성종구가 이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공격!”

    성종구의 목소리는 컸지만 떨렸다.

    “공격하도록!”

    7월25일 10시42분22초. 서해상을 날던 KF-24편대의 편대장기.

    “적기에서 미사일 발사!”

    조기경보기 관제관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울렸지만 안재성 중령도 레이더에 나타난 미사일을 보았다. 드디어 놈들이 발사한 것이다. 지금까지 스치고 지난 것만 다섯 차례. 그래서인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발사!”

    이미 훈련이 잘된 부하들이다. 안재성은 한마디로만 지시하고는 레이더에 잡힌 적기를 겨냥했다. 거리는 26km. 지금 적기 5개 편대 20대가 넓게 퍼져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그중 서너 대는 이미 미사일을 발사하고나서 회피하는 중이고 나머지 7, 8대는 미사일을 쏜다. 그리고 나머지는 겨냥하고 있겠지. 안재성은 심호흡을 하고나서 가장 멀리 있는 놈을 겨냥했다. 거리는 급속하게 가까워져서 벌써 17km가 되었다. 표적이 화면에 자리 잡힌 순간 안재성은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기체에 작은 진동이 오면서 KAAM-220 공대공 미사일 2기가 동시에 발사되었다. 안재성은 기체를 횡전시키면서 애프터버너를 가동시켜 최대 속력을 내었다. 그때 이쪽에서 발사한 미사일 수십 기가 흰 가스를 품으며 날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 윤재복이 복수다!”

    안재성이 기어이 한마디했다. 공중전 때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각자 배운 대로 알아서 하면 된다. 레이더를 본 안재성은 꽁무니에 미사일 2기가 따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 이제 급하다.

    7월25일 10시42분24초. 이지스 순양함 광주호의 함교 안.

    “발사 준비!”

    함장 문영수가 지시하자 화력조정관 이병천이 복창했다. 타격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다. 옹진반도의 모든 해안포대, 미사일기지, 대공포진지는 전 함정의 표적으로 입력되어 있는 것이다.

    “발사!”

    문영수가 던지듯이 말하고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바로 3분 전에 MK41기에 든 미사일을 쏘아 올려 주경리의 제23대공미사일전대를 초토화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3분 동안이 문영수에게는 3년만큼 길었다. 웬일인지 북한군이 대응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전에서 3분이면 전세가 결정되고도 남는 시간이다. 적이 대응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문영수는 물론이고 공군도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동안 문영수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적의 모든 표적에 대고 쏘아 붓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가 주경리를 초토화한 것이 잘못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적기가 먼저 미사일을 발사했던 것이다. 문영수에게는 그것이 마치 선물 같았다. 선체가 흔들리면서 다시 미사일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지대공미사일도 날아간다. 아군기를 도와 적기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때 양쪽으로 다가붙은 구축함 안양호와 여수호가 일제히 미사일을 발사했다. 쏘아 올리는 것은 대함 미사일. 두 구축함의 목표는 분계선 북방에 어지럽게 산개되어 있는 북한군 함대다.

    “장관입니다.”

    격정을 참을 수가 없었는지 부함장 오재길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구축함에도 MK41 수직발사기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각각 61발 캐니스터(발사통)가 채워진 1기와 29발짜리 경량형 1기다. 캐니스터 8기가 최소단위이나 3기분 면적을 장전용 크레인이 차지하고 있어서 각각 61발, 29발이 된다. 따라서 구축함에는 29발들이 2개가 장착되어서 58발이다. 문영수가 빗발처럼 발사되는 미사일을 올려다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시발, 이런 게 군인이지 뭐.”

    혼잣말이었지만 오재길은 다 들었다.

    7월25일 10시44분31초. 제55호위대 벙커 안.

    원탁에 둘러앉은 장성들의 얼굴은 굳어 있다. 사방이 시멘트로 막힌 넓은 방안에는 기계음과 군관들의 낮은 대화 소리로 가득 차 있었지만 가라앉은 분위기다. 원탁의 상석에 앉은 무력부장 성종구가 벽시계를 보았다. 10시44분34초. 제23대공미사일전대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지 딱 5분이 되었다. 그 5분 동안에 옹진반도 주변의 2개 해안포대, 5개 대공포진지, 그리고 제23대공미사일전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또 있다. 남조선군 기동훈련을 따르던 대동강급 구축함 2척과 호위함 2척, 오사급과 소홍급 7척, 그리고 어뢰정 12척이 격침되었고 구축함 1척, 호위함 1척, 기타 함정 4척이 반파, 항행불능 상태에 빠졌다. 옹진반도 근처의 해상군은 괴멸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리고 공군은? 성종구는 이를 악물었다. 남조선의 위협기동에 대항하러 날아온 MIG31 5개 편대 20기는 현재 14기가 격추, 6기는 퇴각 중이다. 반면 남조선군 KF-24는 3기가 격추되었을 뿐이다. 패전이다. 그때 대좌 계급장을 붙인 군관이 서둘러 다가오더니 성종구의 옆에 멈춰 섰다. 얼굴이 누렇게 굳어 있다.

    “부장동지, 남조선군이 남해에 상륙했습니다.”

    7월25일 10시47분50초. 산본장의 지하 임시 상황실 안.

    대통령 박성훈이 앞쪽 영상 화면에 나타난 합참의장 장세윤을 본다. 장세윤은 2분 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대통령님, 조금 전에 헬기연대에 탑승한 해병 수색대대 병력이 옹진반도의 남해에 상륙했습니다.”

    장세윤의 보고를 받은 박성훈이 어금니를 물었다. 두 눈도 부릅뜨고 있다. 화면 아래쪽에서 깜박이며 숫자가 찍히고 있다. 2014. 7. 25. 10. 47. 58이다. 북한군이 첫 미사일을 발사한 지 8분23초가 지났을 뿐이다.

    (3장에 계속)

    이원호

    2014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등이 있다.


    “널 생각하면 언제나 힘이 나. 고맙다.”

    송아현이 입을 벌렸다가 닫으면서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었다. 그러고는 덮개를 닫는다. 이동일은 말을 계속하다가 전화가 끊긴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장면을 떠올리자 시원하면서 불쌍했고 다음 순간 이것으로 어젯밤 이후부터 떼어먹힌 돈을 다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발을 떼었다.

    7월24일 18시20분. 이태원.

    이태원의 하원각은 장성들의 단골 요정으로 밤에 불을 켜지 않아도 별이 많아서 대낮같이 환하다는 소문이 난 곳이다. 그러나 간판은 손바닥만한데다 외관이 허름한 단층 한옥이어서 뜨내기손님은 없고 단골들만 찾는다. 오늘, 하원각의 안쪽 밀실에 네 사내가 둘러앉아 있다. 모두 사복 차림이었지만 군인 냄새가 풀풀 난다. 네 사내는 합참의장 장세윤과 육참총장 조현호, 그리고 육본작전참모부장 박진상과 해병대사령관 정용우다. 마담은 술상만 들여놓고 얼씬도 하지 않았으므로 장세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놈들이 미사일을 날린 건 어뢰정 귀순에 대한 내부 단속용이라는 기무사 측 판단이요.”

    어깨를 편 장세윤이 말을 잇는다.

    “오후 5시의 평양 방송에서 놈들은 KF-24가 영해를 2해리나 침범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보도했어요.”

    “난 그 여자만 보면 밥맛이 떨어져서.”

    쓴웃음을 지은 조현호가 물잔의 물을 국그릇에 비우더니 소주를 채우면서 말을 잇는다.

    “정말 애도 속여 넘기지 못할 거짓말을 늘어놓는걸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그걸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게 문제 아닙니까?”

    박진상이 조심스럽게 거들었다. 만일 두 명 대장이 없었다면 걸진 욕설이 앞뒤에 붙었을 것이다. 그러자 조현호가 물잔을 걷어가면서 뱉듯이 말했다.

    “우리도 내부 단속용으로 한 발 날리고 싶구만.”

    모두 입을 다물었고 조현호의 물잔 비우기 작업이 계속되었다. 박진상이 소주병을 건네주면서 거든다. 그때 장세윤의 시선이 정용우에게로 옮겨졌다.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도 주시하고 있을 테니까 긴장해야 될 거요.”

    “예, 의장님.”

    정용우가 조현호가 건네주는 술잔을 받으면서 말했다. 물잔에 소주를 부었다.

    “도발적인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내일 해병의 E-3 훈련이 시작되는 두 시간 전인 08시 정각에 합참 벙커에는 전군 지휘관들이 모일 것이었다. 데프콘2 상황하의 E-3 훈련이기 때문에 비상소집이 된 것이다. 장세윤의 시선이 박진상에게로 옮겨졌다. 작참부장 박진상이 비상 벙커 운영의 실무 책임자다.

    “E-3 훈련이 끝나는 14시 정각에 비상을 해제한다.”

    “예, 의장님.”

    박진상이 술잔을 든 채 대답했다.

    7월24일 19시10분. 시청 앞 광장.

    “전쟁 놀음 중지하라!”

    하고 사내 하나가 소리치자 수백 명이 따라 외치며 촛불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모여 앉은 남녀의 표정은 차분하다.

    “어뢰정을 돌려보내라!”

    사내가 다시 소리쳤을 때 따라 외치는 소리는 조금 줄었다. 군중의 70% 정도는 20대, 나머지가 30대에서 50대까지였지만 노인은 없다.

    “영해를 넘어간 KF-24는 무인 비행기였다는군요. 미끼로 특별 제작된 거래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옆에 있으면서 말했으므로 송아현은 머리를 들었다. 취재차 촛불 시위대 사이에 끼어든 것인데 여러 번 해본 터여서 익숙했다. 눈만 크게 뜬 송아현에게 여자가 말을 잇는다.

    “한국에서 보여준 자료는 조작된 거예요. 그 조작에 항의했던 군인 두 명이 실종되었대요.”

    “세상에.”

    송아현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렸다.

    “그럼 트위터로 퍼뜨려야겠네요.”

    “그래야 돼요. 이미 퍼지고 있을 걸요?”

    그러더니 여자가 몸을 일으켜 뒤쪽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평화 공존을 원한다.”

    이제는 다른 사내가 소리쳤으므로 송아현은 따라 외쳤다. 행동에 조심해야만 하는 것이다. 도처에 감시자가 있어서 수상하면 끌려 나가 신분 확인을 당하고 나서 불확실하면 린치를 당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끈질기게 괴롭힘을 당한다. 법보다 주먹이 빠르다는 옛말이 지금 다시 적용되고 있다.

    “해병 훈련을 중지하라!”

    다시 사내가 소리쳤고 송아현은 서둘러 따른다.

    2014년 7월25일 07시35분. 산본장의 소식당.

    대통령 박성훈이 국방장관 임기태, 합참의장 장세윤, 기무사령관 배광우와 안보수석 주명성과 원탁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박성훈은 격식을 차리지 않는 성품이어서 꼭 필요한 사람만 부르는 버릇이 있다. 비서실장 한창환을 쉬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안보수석 주명성은 국방연구원으로 15년을 근무한 예비역 대령이다. 지난 10여 년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주명성은 박성훈 정권이 들어선 후에 2년째 안보수석을 맡고 있다. 박성훈의 “적이 왼쪽 뺨을 치면 즉시 오른쪽 뺨을 치고 나서 발길로 배를 한번 차라”는 명언(?)도 주명성 작품이라는 소문이 있다. 주명성은 박성훈의 상호실용주의 정책에 부합하는 인물인 것이다. 주명성이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김정일한테 연락을 해주시지요. 정상 간 통화를 하신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런가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던 박성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취임식 때 한 번 하고 만 것이다. 머리를 든 박성훈이 임기태와 장세윤, 배광우의 얼굴을 차례로 보면서 말했다.

    “하긴 내 전화를 중국 측도 듣겠군.”

    “언론에도 발표하겠습니다.”

    하고 주명성이 말을 받았을 때 임기태가 머리를 들었다.

    “E-3 훈련이 끝날 때까지 전군 지휘관은 합참 벙커에 모입니다. 그곳에도 격려전화를 부탁드립니다.”

    “그거야 당연하죠.”

    이제는 박성훈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러자 배광우가 끼어들었다.

    “군의 사기는 이번 E-3 훈련으로 고무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같은 시각. 합참 건물의 오른쪽 골목 끝에 해장국 전문식당 전주집이 있다.

    지금 식당 구석자리에 앉아 육참총장 조현호가 작참부장 박진상과 함께 콩나물 해장국을 먹는 중이다.

    “지금쯤 산본장의 아침식사는 끝났겠다.”

    수저를 내려놓은 조현호가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제 임무들은 제대로 하고 있겠지.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콩나물을 씹어 삼킨 박진상이 말을 잇는다.

    “기무사령관은 군의 사기가 이번 훈련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했을 겁니다.”

    “안보수석은 김정일이한테 전화 한방 때려서 긴장하고 있는 중국놈들까지 듣도록 하라고 했겠지.”

    그러고는 조현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가자.”

    합참의 비상 벙커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박진상이 수저로 국밥을 뜨려다가 허둥지둥 따라 일어섰다. 조현호는 언제나 남보다 빨리 먹는다.

    7월25일 08시 정각. 백령도 수색대대 연병장.

    이동일은 수색대대장 강규식과 함께 연병장에서 1중대의 출동장비를 검열한다. 수색대대는 4개 중대와 3개 직할소대로 구성되었고 병력은 약 800명이다.

    또한 1개 중대는 4개 소대로 나누어졌으며 병력은 170명, 2012년부터 새로운 편제와 화력을 갖춘 단위부대의 전투능력은 크게 상승했다. 해병 소대는 4개 분대 40명인데 분대마다 휴대용 대공 미사일과 대전차 미사일 발사기를 갖추고 있다. 또한 중대 단위의 제4소대는 미사일 소대로서 각 5문씩의 휴대용 대공, 대지, 대전차 미사일 발사기로 무장하고 있어서 구체제의 1개 포병중대 화력과 비슷했다. 부동자세로 선 해병들의 눈빛은 또렷했고 장비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으므로 강규식은 중대장을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멋지게 바다 위를 날고 돌아오자.”

    중대장 뒤쪽에 긴장한 채 서 있는 해병들이 들으라고 한 말이다.

    “수색대대는 해병의 최첨병이며 최강이다. 명성에 흠이 가면 안 된다.”

    부동자세로 서 있던 중대장은 물론이고 그 뒤쪽의 소대장, 해병들의 얼굴이 자부심으로 굳어졌다. 검열을 마친 강규식이 뒤를 따르는 이동일을 눈짓으로 불렀다. 이동일이 옆으로 붙었을 때 강규식이 정색하고 묻는다.

    “너, 헬기 연대장기에 탄다면서?”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왜 내 옆에 안 타?”

    “하늘에 떠 있을 때는 헬기 연대장이 지휘관 아닙니까?”

    “그게 무슨 말야?”

    걸음을 늦춘 강규식이 미간을 좁히고는 이동일을 보았다. 강규식의 시선을 받은 이동일이 3초쯤 망설이다가 결정했다.

    강규식과는 한몸이 되어야만 한다.

    “대구호 사건을 말씀하시더군요.”

    목소리를 낮춘 이동일이 말하자 퍼뜩 눈을 치켜떴던 강규식이 시선만 주었다. 절반쯤 짐작한 것 같다. 심호흡을 한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죠.”

    “당연하지.”

    어깨를 편 강규식이 앞쪽을 응시한 채 말했다.

    “이제 알았다. 이 대위.”

    강규식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7월25일 08시25분. 백령도. 해병 7사단본부.

    해병 7사단장 고달호 소장이 사단 본부로 들어선다. 제1연대가 주둔한 진촌 부근의 바닷가에 나가 출동준비 상황을 검열하고 돌아온 것이다. 강릉호는 2만7000t, 길이 200m에 폭이 32m이며 약 1600명의 강습 해병 2개 대대와 장비 일체를 실을 수 있다. 또한 강릉호의 자매함인 거제호와 진도호는 각각 1만8000t급으로 1개 대대와 장비를 실을 수 있어서 제1연대 전 병력이 상륙함에 승선할 예정이었다. 거기에다 상륙함에는 헬기연대에서 배속된 공격용 헬기 AH-253이 각각 3대씩 배치되어 있는데다 정찰용 헬기와 AH-39, 그리고 상륙정인 LNU와 LCM이 각각 5척씩 따른다. 고달호는 한 시간 동안 3척의 상륙함에 탑재된 전차중대와 수륙양용차 중대, 포병대대까지 검열을 했다.

    “서둘러, 출동 30분 전까지 사단 본부를 강릉호로 옮겨놓도록.”

    사단장실로 들어선 고달호가 참모장 김길중 준장에게 말했다.

    “1연대 군기가 잡혔어.”

    이것은 고달호의 최상급 칭찬이다. 고달호는 해사 시절 럭비선수로 명성을 얻었는데 그가 재학하던 4년 동안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에서 세운 4년 전승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해병사령관 정용우의 2년 후배인 고달호는 과묵한 성품이었다. 그래서 해병 장교들이 부르는 별명이 ‘백령도 돌부처’였고 가끔 암호 전문도 그렇게 왔다. 부관이 들어와 고달호에게 방탄조끼를 건네주었을 때 김길중이 보고했다.

    “상륙함 호위로 오던 구축함 한 척이 엔진고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호위함대는 지휘함 광주호와 구축함 4척이 주력입니다.”

    고달호는 방탄조끼를 입으면서 머리만 끄덕였다. 광주호는 한국 해군이 보유한 이지스함 6척 중 하나다. 현재 4척이 더 건조되고 있다. 이지스함은 미사일 지휘장치 4개를 갖추고 있어서 복수목표 처리 능력이 18개가 된다. 즉 18개의 목표를 동시에 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단장님.”

    부관이 나갔기 때문에 사단장실 안에는 둘뿐이었지만 김길중이 목소리를 낮췄다.

    “훈련이니까 가상 상륙목표가 어느 곳이건 상관없습니다만 사령부에서 옹진반도로 결정한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고달호는 눈만 끔벅였고 김길중이 말을 이었다.

    “미포리와 현전을 제쳐두고 엉뚱하게 옹진반도의 주경리라니요? 사령부에서는 상륙전 계획안을 보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미포리와 현전은 장연 서쪽의 항구로 백령도와 가장 가까운데다 해변이 길고 넓어서 상륙작전에 적합한 곳이었다. 그래서 사령부와 7사단은 오래전부터 미포리와 현전을 목표로 상륙작전 도상연습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사령부는 이번 E-3 기동연습의 상륙목표를 난데없이 옹진반도의 주경리로 결정했다. 주경리는 북한군 제23대공미사일전대가 주둔한 곳이며 지난번 KF-24기를 격추한 미사일도 이곳에서 날아온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경리는 해안이 좁은데다 암초가 많아서 상륙정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때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고달호가 말했다.

    “평양이면 어때? 어차피 바다 위를 빙빙 돌다가 돌아올 텐데 말야.”

    7월25일 09시 정각. 과천. 산본장.

    대통령 박성훈이 전화기를 귀에 붙였다. 산본장의 대통령 집무실 안이다. 옆에는 비서실장 한창환이 서 있을 뿐이다.

    “여보세요.”

    박성훈이 부르자 곧 수화구에서 낮지만 억양이 강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예, 김정일입니다.”

    문득 박성훈은 김정일이 직책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대면서 통화를 하는 상대가 몇이나 있을지 궁금해졌다. 1942년생인 김정일의 나이는 올해로 73세, 박성훈보다 10년 연상이다. 심호흡을 하고 난 박성훈이 입을 열었다.

    “위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요즘은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곧 서늘해지겠지요.”

    김정일도 부드럽게 응답한다. 요즘은 날씨가 남북한 양쪽이 다 덥다. 비도 내리지 않고 있다. 그때 박성훈이 말했다.

    “제가 위원장님께 알려드릴 일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오늘 말씀입니다. 백령도 주둔 해병 사단이 상륙훈련을 합니다. 그저 단순한 훈련인데 요즘 상황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미리 전화를 드리는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오해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 각하.”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 위원장님.”

    “예, 안녕히.”

    박성훈이 전화기를 귀에서 떼고는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차분했던 목소리와는 달리 굳어진 얼굴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대통령님.”

    옆에 서 있던 비서실장 한창환이 말하자 박성훈이 생각에서 깨어난 표정이 되었다.

    “저 사람은 어떻게 견딜까?”

    박성훈이 불쑥 묻자 한창환은 눈썹을 모았다.

    “뭘 말씀입니까?”

    “저 사람 몇 년간이나 통치하고 있지?”

    “1974년에 핵심 권력기구인 당 중앙위 정치위원회 위원이 되면서 공식 후계자가 되었지요.”

    “그러면 올해로 40년이군.”

    쓴웃음을 지은 박성훈이 머리를 젓는다.

    “나는 3년째인데도 말라 죽을 것 같은데 과연 대단한 사람이군.”

    한창환이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얼토당토않은 비교를 하는 바람에 말문이 막힌 것이다.

    7월25일 09시15분. 경기도 일산.

    일산 호수공원 건너편에 위치한 24시간 설렁탕집 ‘대호식당’ 안이다. 파리채를 쥐고 앉은 주인 김대호씨가 TV를 노려보고 있다. 지금 TV는 백령도 주둔 해병사단의 상륙훈련을 뉴스로 보도하는 중이다.

    “헬기연대의 공격용 헬기 150여 대가 동원되는 강습 상륙훈련인 것입니다.”

    남자 아나운서가 열기 띤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이것으로 정부는 강력한 대응 의지를 북한 당국에 과시하는 한편으로 군의 사기를 높일 의도인 것 같습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마침내 김대호의 입에서 욕설이 터졌다. 60대 후반의 김대호는 육군 병장 출신으로 월남에도 파병되었던 역전의 용사다. 파리채로 식당의 비닐장판을 힘껏 두드린 김대호가 욕설을 잇는다.

    “백날 훈련 혀봐라. 시발놈들아, 그놈들이 눈 한번 깜박 허는가.”

    “아이고 시끄럽소.”

    주방에서 파를 썰고 있던 김대호의 처 박미옥이 버럭 소리치자 주방 아줌마 파주댁이 큭큭 웃는다. 박미옥이 눈을 흘기며 말을 잇는다.

    “지치지도 않는감? 비행기 떨어졌을 때부터 맨날 TV 보고 욕질이여.”

    “아, 파나 썰고 입 닥쳐.”

    마침 손님은 한 사람도 없는 터라 김대호도 맞받아 소리쳤다.

    “만날 유엔에 제소헌다. 개성공단 문 닫는다. 미군 끌고 와 훈련헌다. 그 지랄허다가 꼬랑지 탁 내리는 기 한두 번이여? 그 꼴을 본 중국놈들이 우리를 얼매나 우습게 보겠어?”

    “우습게 보거나 말거나 설렁탕이나 많이 팔면 되여.”

    “에라이, 무식헌 여편네 같으니.”

    “머셔?”

    하고 식칼을 쥔 박미옥이 눈을 부릅떴을 때 손님 둘이 들어왔다. 근처 룸살롱 웨이터들로 단골이다. 파리채를 던진 김대호가 쟁반에 물잔을 담았고 박미옥은 다시 파를 썬다.

    7월25일 09시30분. 서울 소공동. 국제신문빌딩.

    국제신문 사회부장 홍동수가 송아현의 책상 앞으로 가다와 섰다.

    “루머의 근원을 찾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걍 내일 기사로 내자고.”

    “무인 비행기라든지 군인 두 명이 실종되었다는 루머를 더 확산시키게 되지 않을까요?”

    “앗따, 걱정은.”

    이맛살을 찌푸린 홍동수가 송아현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

    “아야.”

    송아현이 조금 과장된 표정을 짓고 홍동수를 노려보았다. 본인은 친근감의 표현이라지만 송아현은 짜증이 난다. 남자끼리라면 몰라도 이쪽은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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