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미국의 정통 블루스는 한국인의 정서와 잘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구구절절 슬프게 읊조리는 특유의 분위기는 분명 우리에게 와 닿는 요소가 있어요. 특히 대중적으로 변형된 곡들이 그렇죠. 울먹이는 기타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 가운데 하나니까요.”(엄인호)
끊어진 계보
다시 요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아이돌 그룹이 대중음악의 판도를 장악하는 것은 분명 세계적인 추세다. 왈가왈부가 무의미한 거대한 흐름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아이돌 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음악에도 공간을 허락해주었으면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일주일 내내 비슷한 장르, 똑같은 가수들만 나오는 TV 음악 프로그램의 획일성과 선정성이 과연 납득이 가느냐는 반문이다. 공산품 찍어내듯 뚝딱 만들어지는 쇼, 그 와중에 소외되는 ‘다른 취향의 대중’을 잊어버린 방송매체들의 한계에 대해, 할말이 많은 듯했다.
“요즘 음악들도 나름 열심히 하는 거니까 좋은 것도 많죠. 실력 있는 친구도 많고…. 다만 우리 때는 인간적인 정감이랄까, 그런 모티브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게…. 요즘 음악은 기본적으로 기획자의 작품이다보니 상업성을 가장 우선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음악마다 스타일이 다른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기획이나 제작을 하는 이들이 실력 있는 뮤지션을 발굴해 대중에게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시대는 끝나지 않았나 싶어요.” (주찬권)
한때 한국의 대중음악은 신중현을 시초로 하는 일종의 계보 혹은 흐름을 분명 갖고 있었다. 그러나 80년대와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 맥은 끊겼고, 이전 세대의 유산을 기반으로 더욱 진보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이들은 잘라 말한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떠오른 유행이나 장르, 무대 매너까지 그대로 수입해 펼쳐 보이는 작업만이 끊임없이 반복됐고, 프로페셔널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작곡·연주 실력의 음악인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언더그라운드가 있었다면, 요즘에는 홍대 앞의 인디 밴드들이 있다. 그들에게 아이돌 그룹보다 인디 밴드들과의 거리가 가까운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최근 젊은 밴드들이 보여주는 태도에도 비판받을 부분은 있다고 엄인호씨는 말한다. 지나치게 가벼운 혹은 선정적인 가사나 퍼포먼스를 남발하는 것은 염려스럽다는 것. 평생을 두고 음악을 할 것이라는 자세보다는 순간의 인기에 연연하는 듯 보인다는 이야기다. “원래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못마땅하고,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못마땅한 법”이라며 최이철씨가 시원스레 웃어 보였다.
자 그렇다면 다시 한번!

마지막 질문으로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엄인호씨가 두 번 생각도 않고 “같이 술 마실 때, 단칼에 녹음을 해치우고 스튜디오 옆 가게에서 막걸리 마실 때”라고 답하자, 내내 과묵하던 주찬권씨가 “옳소!”를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 사람 좋은 얼굴 위로 피어오른 함박웃음이 시커먼 선글라스를 뚫고 나왔다. 그들은 그렇듯 여전히 함께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그것은, 또 다른 30년이 지난대도 사라지지 않을 행복일 듯했다. 문득 “이것이 생(生)이었더냐, 자, 그렇다면 다시 한번!”이라는 니체의 명언이 환청처럼 겹쳐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