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호

프로젝트 밴드 ‘슈퍼세션’ 결성한 엄인호 최이철 주찬권

“상업성과 화려함만 추구하는 음악에 인간적 정감이 있겠나”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0-12-03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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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 밴드 ‘슈퍼세션’ 결성한 엄인호 최이철 주찬권
    잠깐의 튜닝, 그리고 순식간에 맞아들어가는 합(合). 엄인호의 기타가 블루스 스케일 위의 음들을 명징하게 짚어가는 동안, 전열을 가다듬은 최이철의 베이스가 뭉근뭉근 공간을 채운다. 여기에 눈치 챌 찰나도 없이 속삭이듯 따라붙어 사운드를 완성하는 주찬권의 드럼. 음악인생 30년을 가볍게 넘긴 노장들의 즉흥연주는 그렇듯 말 한마디 없이 완성됐다. 날씨가 선뜩해진 11월의 이른 오후, 지하 연습실의 탁한 공기가 어느 때보다도 아련해진 순간이었다.

    언제부턴가 음악 하는 사람들, 특히 대중음악을 하는 이들도 ‘예술가’라는 자명한 사실이 사실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가요는,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는 K-Pop(Korean Pop Music)이라고도 하는 한국의 대중음악은 이제 ‘산업’의 영역에 속한다. 모두들 아이돌 그룹의 해외진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 규모가 얼마인지, 이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제적 이미지가 얼마나 향상됐는지 가늠하기 바쁘다. 아시아를 휩쓰는 신(新) 한류열풍의 비결은 철저한 매니지먼트와 손끝 각도까지 맞춘 완벽한 퍼포먼스의 힘이지, ‘세월의 무게를 이겨낸 작품으로서의 음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시대다.

    엄인호, 최이철, 주찬권. 50대 후반이라는 적잖은 나이에 접어든 세 사람이 모여 ‘슈퍼세션’이라는 이름의 음반을 만들고 공연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1970~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정점을 이끌었던 이들 밴드의 시대는 대중음악가가 예술가임을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비록 권력은 그들의 음악을 반기지 않았고 이들의 모습을 대중매체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았지만,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의 음악은 긴 시간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시간의 왕관을 썼다.

    30년의 세월

    프로젝트 밴드 ‘슈퍼세션’ 결성한 엄인호 최이철 주찬권
    “최근 몇 년간 이 나라를 뜰까 생각하며 미국을 들락거렸어요. 한국에서 음악을 만든다는 게 더 이상 의미 없다고 느껴졌거든요. 마지막으로 뭔가 남겨두자는 의미에서 신촌블루스의 마지막 음반을 준비하던 차에 이번 기획 제안을 받았죠. 문득 내가 너무 성급했구나 싶더군요.” (엄인호)



    1970년대 후반 방송국에서 오가며 스치듯 첫 인연을 맺었다는 이들이 함께 보낸 시간은 어느새 30여 년. 기타리스트 최이철이 키보디스트 김명곤과 함께 한국 최고의 연주밴드라고 칭송받은 밴드 사랑과 평화를 결성한 것이 1977년이었고, 지방에서 DJ를 하던 엄인호가 서울에 올라와 이정선, 이광조와 트리오를 결성한 것이 1978년이었다. 드러머 주찬권은 1981년 데뷔해 5년 뒤 들국화에 정규멤버로 참여해 전성기를 함께했다.

    “한창 활동하던 시절에도 조인트 콘서트를 연 적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한 무대에 선 것은 1990년 김현식이 죽고 그 추모 콘서트를 할 때였죠. 모두들 현식이와는 관계가 깊었으니까. 이번에 다시 같이 판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기획자의 제안이 왔을 때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웃음) 꼭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요즘 같은 아이돌 판에 우리가 끼어들 자리가 있겠나 싶기도 했고…. ”(최이철)

    그러나 오랜 인연은 힘이 센 법이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살아온 이들의 경험은 눈빛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주기 마련. 이들이 함께 모여 10월 하순 완성한 음반 속의 노래와 연주곡이 대부분 한꺼번에 부스에 들어가 동시에 연주하는 방식으로 레코딩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마주 보며 호흡을 일치시켜 문자 그대로 ‘합주’해낸 음악. “한 번에 쫙 뽑아내야 명곡이지 자꾸 다시 꺼내 손보면 짜맞추게 돼서 진짜가 안 나온다”는 말은 관록의 노장들이 아니고서는 쉽게 할 수 없을 터다.

    그 덕분일까. 첫 곡 ‘Again’부터 14번째 마지막 트랙 ‘Feather’에 이르기까지, 음반은 옆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한 현장감으로 가득하다. 악기별로 채널을 쪼개어 한 사람씩 따로 녹음하는 통상의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느낌. 높은 음이 올라가지 않는 가수의 목소리를 컴퓨터로 보정해 가창의 달인으로 만들거나, 복잡한 음향효과로 부실한 연주를 화려하기 짝이 없는 애드리브로 탈바꿈하는 일이 다반사가 돼버린 이 기계음의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 그 자체다.

    프로젝트 밴드 ‘슈퍼세션’ 결성한 엄인호 최이철 주찬권
    사실 세 사람의 음악적 배경은 약간씩 차이가 있다. 엄씨가 오랜 시간 블루스에 천착했다면 최씨는 펑키에 기반을 둔 리듬을 구사해왔고, 주씨는 포크 성향이 강했던 들국화에 록 리듬을 수혈한 인물이다. 그러나 누구도 딱 잘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프로젝트 작업에서 70년대 분위기의 올드 록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건 시작부터 이심전심 알고 있었다는 것. 곡을 만들고 함께 연주하는 과정에서 음악적 성향 때문에 빚어진 몇 번의 툭탁거림이 있었다며 장난스레 웃음 짓지만, 일필휘지 써 내려간 그들의 곡은 분명 그 무렵 블루스에 기반을 둔 올드 록의 정수를 고스란히 재현해내고 있다.

    “사실 미국의 정통 블루스는 한국인의 정서와 잘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구구절절 슬프게 읊조리는 특유의 분위기는 분명 우리에게 와 닿는 요소가 있어요. 특히 대중적으로 변형된 곡들이 그렇죠. 울먹이는 기타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 가운데 하나니까요.”(엄인호)

    끊어진 계보

    다시 요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아이돌 그룹이 대중음악의 판도를 장악하는 것은 분명 세계적인 추세다. 왈가왈부가 무의미한 거대한 흐름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아이돌 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음악에도 공간을 허락해주었으면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일주일 내내 비슷한 장르, 똑같은 가수들만 나오는 TV 음악 프로그램의 획일성과 선정성이 과연 납득이 가느냐는 반문이다. 공산품 찍어내듯 뚝딱 만들어지는 쇼, 그 와중에 소외되는 ‘다른 취향의 대중’을 잊어버린 방송매체들의 한계에 대해, 할말이 많은 듯했다.

    “요즘 음악들도 나름 열심히 하는 거니까 좋은 것도 많죠. 실력 있는 친구도 많고…. 다만 우리 때는 인간적인 정감이랄까, 그런 모티브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게…. 요즘 음악은 기본적으로 기획자의 작품이다보니 상업성을 가장 우선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음악마다 스타일이 다른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기획이나 제작을 하는 이들이 실력 있는 뮤지션을 발굴해 대중에게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시대는 끝나지 않았나 싶어요.” (주찬권)

    한때 한국의 대중음악은 신중현을 시초로 하는 일종의 계보 혹은 흐름을 분명 갖고 있었다. 그러나 80년대와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 맥은 끊겼고, 이전 세대의 유산을 기반으로 더욱 진보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이들은 잘라 말한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떠오른 유행이나 장르, 무대 매너까지 그대로 수입해 펼쳐 보이는 작업만이 끊임없이 반복됐고, 프로페셔널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작곡·연주 실력의 음악인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언더그라운드가 있었다면, 요즘에는 홍대 앞의 인디 밴드들이 있다. 그들에게 아이돌 그룹보다 인디 밴드들과의 거리가 가까운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최근 젊은 밴드들이 보여주는 태도에도 비판받을 부분은 있다고 엄인호씨는 말한다. 지나치게 가벼운 혹은 선정적인 가사나 퍼포먼스를 남발하는 것은 염려스럽다는 것. 평생을 두고 음악을 할 것이라는 자세보다는 순간의 인기에 연연하는 듯 보인다는 이야기다. “원래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못마땅하고,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못마땅한 법”이라며 최이철씨가 시원스레 웃어 보였다.

    자 그렇다면 다시 한번!

    프로젝트 밴드 ‘슈퍼세션’ 결성한 엄인호 최이철 주찬권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그러나 흥미롭게도 12월10일과 11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리는 이들의 공연에는 2세들이 함께 무대에 선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타 연주자로 활동하는 엄인호씨와 최이철씨의 아들, 직업 음악인은 아니지만 워낙 음악을 좋아해 함께 노래하기로 했다는 주찬권씨의 두 딸이다. “딸들이 무대에 처음 서는 것이어서 어떨까 싶지만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다”(주찬권)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팀으로 활동하는 것이 싫은지 자꾸 독립군 노릇만 하려고 든다”(엄인호)는 걱정이 겹친다. 그렇게, 어제의 반항아들은 오늘 아버지가 되었고, 세월의 파도를 가족과 함께 넘어야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의 회귀인 셈이다.

    마지막 질문으로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엄인호씨가 두 번 생각도 않고 “같이 술 마실 때, 단칼에 녹음을 해치우고 스튜디오 옆 가게에서 막걸리 마실 때”라고 답하자, 내내 과묵하던 주찬권씨가 “옳소!”를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 사람 좋은 얼굴 위로 피어오른 함박웃음이 시커먼 선글라스를 뚫고 나왔다. 그들은 그렇듯 여전히 함께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그것은, 또 다른 30년이 지난대도 사라지지 않을 행복일 듯했다. 문득 “이것이 생(生)이었더냐, 자, 그렇다면 다시 한번!”이라는 니체의 명언이 환청처럼 겹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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