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2014

11장 38선(線)

  • 입력2011-05-19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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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그러고 보니 너희들 동갑이다.”

    문득 머리를 든 김정일이 말했으므로 이동일은 먼저 김정은부터 보았다. 식탁에는 셋뿐이었으니 김정은과 자신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스물아홉 살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그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쇠고깃국을 한 모금 떠먹은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하나는 대장이고 또 하나는 대위로군, 하하하.”

    어제 김정일이 묻기에 나이, 집안 내력, 경력까지는 말해주었다. 주위는 조용하다. 오늘은 8월4일 월요일, 오후 12시 반, 개전 11일째가 되는 날. 셋은 주석궁 지하 벙커의 주석용 소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다. 김정일의 초대, 더구나 두 부자만의 식탁에 초대받은 이동일은 잔뜩 굳어 있다. 김정일이 웃음 띤 얼굴로 이동일을 보았다.



    “대위, 어떠냐? 배 아프지 않으냐?”

    “아닙니다, 위원장님.”

    수저를 내려놓은 이동일이 정색했다.

    “그런 생각, 한 적이 없습니다.”

    “남조선에서는 3대 세습이 세계적 웃음거리라고 했어.”

    식사를 마친 참이어서 김정일이 의자에 등을 붙이며 말을 잇는다.

    “그 삐라도 내가 읽어보았어. 나하고 얘를 돼지로 그려놓은 삐라 말야.”

    김정일이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이동일은 등이 으스스했다. 그때 김정일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지도자는 인민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돼. 그러나 인민 비위를 맞추려고 들다가는 그 욕구를 다 채워줄 수가 없어.”

    “… ….”

    “그러면 인민들에게 끌려가게 되는 거야.”

    김정일의 시선이 김정은에 이어서 이동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부터는 일이 힘들어져. 그러니 조금씩 맛을 보여줘야만 해.”

    이동일은 엉덩이가 쑤시는 느낌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옆에 앉은 김정은은 경청하고 있다. 이틀간 전선은 답보상태였지만 가을 땡볕에 오곡이 익어가듯 안에서는 변화가 진행되는 것이었다. 물론 주석궁 상황실에서도 쉴 새 없이 아군의 결속을 확인했고 고무시켰으며 적정(敵情)을 살폈다. 이제 이곳의 적은 김경식 일당과 중국군이 되었다. 머리를 든 김정일이 이동일을 보았다.

    “이 대위, 다시 한 번 방송해주지 않겠나? 이번에는 북남 양쪽을 향해서네.”

    2014년 8월4일 월요일 오후 2시, 개전 11일째. 거대한 상황판에 이동일의 상반신이 드러난 순간 주위는 조용해졌다. 이곳은 오산의 연합사 지휘벙커 안이다. 그때 이동일이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남북한 국민 여러분, 그리고 남북한 장병 여러분.”

    “쟤가 왜 저래?”

    하고 불쑥 나선 것은 한국군 육참총장 조현호. 이동일의 역할을 공수부대나 특전사 장교가 맡았다면 육군의 명예가 대번에 올랐을 것이라고 은근히 시샘하던 참이다. 그때 이동일의 말이 이어진다.

    “저는 평양 주석궁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를 받고 남북한 양국 국민과 장병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어럽쇼.”

    조현호가 다시 거들었을 때 옆에 앉은 합참의장 장세윤이 시선을 주었다. 그 옆쪽의 미군 장성들은 헤드셋을 낀 채 통역해서 듣느라고 정신이 없다. 조현호가 입을 다물었고 이동일의 목소리가 상황실에 울려 퍼졌다.

    “김정일 위원장께서는 2014년 8월4일 오후 3시 정각을 기해 북한 영토에 주둔한 중국군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중국군은 반역 집단과 함께 북한을 중국 영토로 흡수할 공작을 꾸미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군이 5일 후인 8월10일까지 북한 영토에서 철수해줄 것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요구합니다.”

    “잘한다.”

    한국군 장성 두어 명이 소리쳤고 박수 소리까지 들렸다가 곧 조용해졌다. 이동일이 말을 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군이 8월10일 자정까지 철군하지 않을 때는 북한 영토를 침입한 것으로 간주해 그 대가를 받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오늘 방송은 인터뷰 형식이 아닌 성명발표다. 발표를 끝낸 이동일의 영상이 사라지자 상황실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서로 중구난방 떠들던 장성들은 외침소리에 조용해졌다. 참모장 해리슨이다.

    “조용! 간부들은 회의실로!”

    해리슨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소리쳤다.

    “5분 후에 회의 시작이야!”

    “아직도 자기가 북한 통치자라고 믿는 것 같군.”

    화면이 꺼졌을 때 후성궈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헤드셋을 벗은 후성궈가 말을 잇는다.

    “저런 임기응변력을 경제발전에다 응용했다면 남한을 따라잡을 수 있었을 텐데 제 독재정권 연장에만 머리를 썼으니 말야.”

    “사령관, 전화 왔습니다.”

    후성궈가 혼잣소리로 분개하는 동안 전화가 온 것이다. 옆으로 다가선 양훙이 전화기를 내밀고 서 있다. 후성궈의 시선을 받은 양훙이 말했다.

    “주석 동지올시다.”

    시진핑이다. 후성궈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를 받고는 귀에 붙였다.

    “예, 주석 동지. 후성궈입니다.”

    “방금 평양 방송을 보았소.”

    시진핑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으므로 후성궈는 긴장한다.

    “예, 주석동지.”

    “전황(戰況)은 어떻소?”

    “반란군 소부대가 부딪치고는 있지만 큰 타격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로 놔둘 수는 없지 않겠소?”

    시진핑이 불쑥 물었으므로 후성궈는 심호흡을 했다. 그렇다. 187포병여단이 궤멸당한 후에 후성궈는 적극적인 작전을 건의했다. 그것은 ‘평양점령’ 작전이다. 사방에서 평양을 포위하고 대항하는 몇 개 부대만 격퇴하면 사흘 안에 평양을 함락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지도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후성궈가 대답했다.

    “예, 주석 동지. 이대로 시간이 가면 저희들이 불리합니다.”

    더구나 조금 전에 김정일이 중국군 철수를 기한까지 정해놓고 공공연히 요구한 것이다. 망설일 여유가 없다. 그때 시진핑이 말했다.

    “김경식을 시켜 북조선 지도부의 정통성을 공격하시오. 그리고 결전에 대비하시오.”

    2014년 8월4일 월요일 오후 6시, 개전 11일째. 오산 한미연합사 사령부 벙커 안. 상황판을 응시하는 연합사 지휘관들의 표정은 굳어 있다. 거대한 상황판에는 수많은 전등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푸른 등이 한국군이다. 휴전선 근방에서부터 북한 전역은 무수한 등으로 표시되었고 그 하나하나가 단위부대인 것이다. 그런데 북한 영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푸른 불덩이가 시선을 끌고 있다. 바로 105기갑사단이다. 사리원 아래쪽 봉산에 주둔한 105기갑사단은 그 좌우로 820전차군단이 호위하는 형식으로 5개 여단이 배치되어 있는데다 그 아래쪽 고속도로 주변에 14개의 한국군 단위부대가 배치되었다. 105기갑사단을 고립시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북상시킨 기갑부대, 대전차부대, 포병연대, 미사일대대, 그리고 군수지원단 등이다.

    또한 그들을 지원하려고 이미 확보된 고속도로를 통해 서부전선에 주둔했던 2개 사단 병력이 북상하고 있다. 전연지대의 서부지역인 제4군단이 통로를 개방했기 때문에 이제 황해남도는 교전이 끝난 상태였고 황해북도에 한국군이 진루하는 중이다. 이것은 모두 105기갑사단의 전격적인 전진과 북한 820전차군단의 응원 때문에 이루어졌다. 또한 ‘인민혁명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105기갑사단은 전선에서 애를 먹었을 것이다. 상황판을 응시하던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잇사이로 말했다.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군구사령관 후성궈가 보고를 받았을 때는 오후 12시55분. 참모장 양훙에게서다. 점심을 먹다 만 양훙이 붉은 입술로 소리치듯 말했다.

    “115보병사단입니다! 상대는 반란군으로 이미 사단 사령부는 기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이런, 개 같은.”

    잇사이로 말한 후성궈가 상황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었다. 스크린을 볼 것도 없다. 지금 자신의 귀에 폭음이 들리고 있다. 땅이 흔들리는 진동음도 느껴진다. 115사단 사령부와 자신이 위치한 집단군구 사령부와는 4㎞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머리를 든 후성궈가 양훙에게 소리쳐 지시했다.

    “평양으로 진격해!”

    2014년 8월5일 오후 1시05분. 한국 공군의 KF-24전폭기 8개 편대가 쏜 공대지미사일 수십 발이 2군단 지역을 폭격했다. 그로부터 3분 후에 동부전선으로 다가간 10개 편대는 1군단 지역을 폐허로 만들었다. 동시에 연합사 소속의 미 공군 전폭기 편대가 다가왔다. 이번 2014년 전쟁에서 처음으로 미 공군 전폭기 편대가 등장한 것이다.

    전쟁 발발 12일째가 된 현재. 한미방위조약의 효력이 살아 있는 터라 한미연합사 전력은 다 갖춰진 상태다. 다만 2개 군단 전력의 지상군은 대기상태이나 해군의 5개 항모전투단은 서해에 4개, 동해에 1개로 나뉘어 그야말로 한반도 양면의 바다를 꽉 채운 것처럼 보인다. 1개 항공모함 전단이 4, 5척의 이지스함과 7, 8척의 구축함으로 편성돼 있어 서해에는 4척의 항공모함에 이지스함만 20척 가까이 떠 있는 셈이다. 4척의 항모에 실린 전폭기는 330여 대, 그중 3함대 소속의 항모 존 스테니스에서 발진한 슈퍼호넷 F/A-18E/F 60여 대가 이번 폭격을 맡았다.

    “젠10과 젠3이야.”

    조나산 스코트가 스테니스의 상황실에서 레이더 화면을 보면서 말했다. 그는 헤드셋을 쓰고 있는데 지금 12명의 편대장을 향해 말하는 것이다.

    “그놈들은 모두 평양 쪽으로 달려온다. 너희들하고 1분 거리야.”

    1분 거리란 공대공미사일 사이드와인더 AIM-9SS의 사정거리 120㎞ 안에 중국 공군기가 1분 후에 닿는다는 말이다.

    “자, 목표를 부숴라!”

    하고 스코트가 소리쳤을 때 63대의 F/A-18E/F 슈퍼호넷은 일제히 목표를 향해 공대지미사일 AGM-99를 두 발씩 발사했다. 전장 2.5㎞, 중량 250㎏, 사정거리 110㎞인 AGM-99의 정확도는 98%, 120㎞ 밖의 적 전차를 겨냥하면 100대 중 98대를 맞힐 수 있는 것이다.

    “젠이 미사일 발사 장치를 풀었어!”

    하고 헤드셋을 울린 목소리의 주인은 편대사령관 리 헤이든 대령이다.

    “빌어먹을. 놈들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고 말야!”

    다시 헤이든이 소리쳤을 때 스코트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38선을 넘지 말고 선회해!”

    “갓뎀.”

    했지만 12개 편대 63대의 슈퍼호넷은 일제히 기수를 돌렸다.

    “명중!”

    위성 스크린을 응시하던 참모 두어 명이 환성을 질렀으므로 스코트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상을 비춘 화면이다. 슈퍼호넷이 폭격한 제2군단의 포병대, 미사일부대, 사단본부, 포병진지, 통신대, 자재창고까지 폭발하고 있다. 2분쯤 먼저 출격한 한국군 10개 편대가 폭격하고 남은 곳, 덜 부서진 곳이 이번에는 철저하게 폭파되었다.

    “저런!”

    하고 탄성이 울렸으므로 스코트가 긴장했다. 위성 상황 스크린에 비친 위쪽이 폭격을 당하고 있다. 눈을 치켜뜬 스코트가 숨을 삼켰다. 중국 공군기는 평양 부근을 폭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쪽도 공대지미사일만 쏘았다.

    2014년 8월5일 오후 3시10분, 개전 12일. 발사 버튼을 누른 정국 대령은 레이더 화면을 보았다. 중국 공군기와의 거리는 180㎞, 공대공미사일 버튼을 누르려면 10초쯤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때 헤드셋에서 조기경보기 통제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쪽은 연합사 소속의 통제관이 지시를 한다.

    “38선 넘지 말고 선회!”

    영어 지시였지만 정국이 지휘하는 8개 편대 42기의 KF/A-24편대 조종사들은 다 알아듣는다. 정국은 기체를 선회하면서 기어이 입 밖으로 말을 뱉었다.

    “지기미, 시발. 차라리 후장을 주고 말지.”

    지금 중국 공군 앞에서 엉덩이를 보이며 돌아선 제 꼴을 한탄한 셈이다. 한국말이어서 통제관은 알아듣지 못한 모양으로 가만히 있었지만 곧 한국말이 울렸다. 대구기지 사령관 이철식 소장이다.

    “명중이다! 다 맞혔다!”

    지금 정국은 전연지대의 1군단을 폭격한 것이다. 42기의 KF/A-24편대는 이번 전쟁에서 최대의 공습을 감행해 1군단의 기지를 분쇄했다. 그때 이철식이 다시 소리쳤다.

    “저놈들도 쏘았다!”

    놀란 정국이 레이더를 보았지만 미사일은 잡히지 않았다. 그때 통제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젠12 편대는 평양 동쪽 인민혁명군부대와 평방사 소속 부대를 공격하는 중이야.”

    정국은 숨을 들이쉬었다. 중국군의 목표는 김정일 군이었던 것이다.

    강릉시에 떨어진 다연장포 포탄은 24발이었는데 시내 중심부에서 폭발했기 때문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불길이 번지면서 주유소까지 폭발했고 10층 빌딩이 무너진 데다 아파트 한 동은 폭삭 가라앉았다. 사거리 복판에도 포탄이 떨어져 차량 10여 대가 뒤엉켜 불타는 중이었고 시장 안에도 한 발이 떨어져 지옥이 되었다. 20여 발의 포탄으로 강릉 시내가 마비되었다. 시민들이 시외로 쏟아져 나가는 바람에 도로는 막혔고 곳곳에서 약탈과 강탈사건이 일어났지만 아직 군경은 손을 대지 못한다. 그 장면이 TV로 보도되었으므로 전 국민은 경악했다. 전쟁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 지 12일. 처음으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셈이었다. 계엄군과 정부 쪽에서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방송의 추측 보도는 과열되고 있었다.

    “사망 725명, 부상 2245명, 실종 324명.”

    단정하듯이 국제방송에서 첫 보도를 하자 질세라 대한방송이 각 현장을 카메라로 비추면서 병원 수용자와 매몰자까지 예상한 숫자를 내놓았다.

    “사망 1225명, 부상 3427명, 실종 725명.”

    그러면서 정부와 군의 우유부단한 대응이 이 참상을 불러일으켰다고 비난했다. 그때 2군단에서 포격한 연천 근처의 마을 한 곳이 처참하게 폭파된 장면을 TV로 보도하면서 국민의 불안감은 더 증폭되었다.

    2014년 8월5일 오후 1시35분 개전 12일. 대한민국 내부가 폭격의 피해로 공황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한미연합군 공군과 지상군의 북폭은 성공했다. 이쪽 화력이 더 강했던 것이다. 북한군 1군단이 강릉시를 포격한 것은 약 7분 동안이었다. 그러고는 목표를 바꿔 속초, 인제, 양양까지 몇 발씩 떨어뜨렸다가 한미연합사 측의 대대적인 반격을 받고 간격이 멀어지더니 20분이 지난 현재 침묵했다. 동해상에 떠 있던 미 항모 조지 워싱턴의 함재기 50여 대가 출격해서 강원도 회양의 1군단 사령부를 집중 폭격하고 난 후였다.

    “전쟁 양상이 바뀌었군.”

    상황 스크린에 표시된 시간을 보면서 해병대사령관 정용우가 말했다.

    “이것 참, 묘하게 비틀리는구먼.”

    혼잣소리여서 대꾸하는 사람은 없다. 랴오닝성 군구와 해방군 북해함대 소속의 공군기들은 평양 주변의 김정일 친위군단과 인민혁명군 부대, 그리고 일부 중립군 부대를 폭격하고 돌아간 것이다. 한미연합사 공군기들과 미사일부대, 포병대는 전연지대에 배치된 김경식 군을 폭격했으니 중국군과 연합사의 미군은 서로 대결하지 않고 비껴나갔다. 상황실 안은 소란하다. 그러나 제각기 맡은 일은 해내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모두 적응해가고 있는 것이다. 옆으로 육참총장 조현호가 다가와 섰으므로 정용우가 시선을 주었다.

    “105기갑사단은 건드리지 않았는데요. 바로 위쪽 평방사 소속 기갑연대를 폭격했는데도 말입니다.”

    조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재 북한 영공에 떠 있던 중국 공군기는 다 돌아갔다. 연합사 공군기도 38선 남쪽 상공을 선회할 뿐 폭격은 하지 않는다. 한바탕 소나기 같은 양국군의 공습과 포격전이 벌어졌다가 뚝 그친 상황이다. 왼쪽 북한 영공의 레이더는 깨끗하다.

    “평원을 치려던 북한 28해상저격여단은 흩어졌고 응원하려던 인민혁명군 부대들도 궤멸된 것 같습니다.”

    정용우가 말하자 조현호는 스크린에 시선을 준 채 대답했다.

    “이것들이 사정거리 안에 있는데도 서로 못 본 척하고 돌아간단 말야. 그러고는 각각 김정일과 김경식 일당의 기지는 화장실까지 찾아내 폭격을 했어.”

    “한국 공군은 중국군 부대 쪽으로 가지도 못했습니다.”

    앞쪽을 향해 주고받던 둘이 동시에 서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정용우가 먼저 말했다.

    “미중 양쪽이 뭔가 말을 맞춘 것 같습니다.”

    “서로 공격하는 일은 없기로 하자고 말이지?”

    “가능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지금 기분이 좆같다는 거야.”

    “전폭기는 38선을 넘어가면 안 된다고 지시를 받았답니다.”

    “시발 놈의 38선.”

    그러자 정용우가 눈으로 스크린을 가리켰다. 평양 북쪽에서 중국군이 남하하고 있다. 모두 6개 부대. 그 뒤로도 10여 개 부대가 이어져 있었는데 김정일의 친위부대는 이번 폭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저렇게 길을 만들어주려고 폭격할 겁니다.”

    “이건 미중 연합군이야. 개새끼들. 우릴 뭐로 보고.”

    그러고는 조현호가 머리를 들고 스크린을 보았다.

    “평양에서도 우릴 의식하고 있겠지?”

    조현호가 뻔한 말을 물었으므로 정용우는 긴장했다. 대장쯤 되면 꼬리가 다섯 개 달린 여우로 봐야 한다. 단순한 인간은 절대로 대장이 못 된다.

    2014년 8월5일 오후 2시10분 개전 12일. 호위총국 소속의 1개 기갑여단과 1개 기계화여단이 재기불능의 피해를 보고 주저앉았으며 평양방어사령부 소속의 1개 경보병 여단이 궤멸했다. 중국 공군의 폭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군은 주석궁에도 10여 발의 미사일을 쏘았지만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김정일은 격노했다. 처음에는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소리쳤지만 이제 차분한 표정이 되어서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주위에 찬바람이 일었다. 낮고 억양이 없어진 말이 칼날처럼 날아오는 것 같다. 그 김정일이 이동일에게 말했다.

    “이 대위, 중국군이 평양을 쉽게 점령하지는 못할 거다.”

    역시 주석궁의 상황 스크린에도 영공의 중국 공군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평양 북방의 중국군은 남하하는 중이다. 테이블 앞에 서 있는 이동일이 잠자코 김정일을 보았다. 이동일 옆쪽에 벽에 김정은이 붙어 서 있었는데 조금 불안한 표정이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김정일이 말을 이었다.

    “이번 연합군의 공격으로 1군단과 2군단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김정일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대위, 저기, 38선을 보라우.”

    이동일은 김정일의 손끝이 동부전선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곳이 비었어, 대위.”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이동일이 다시 시선만 주었다.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중국군과 미군은 서로 건드리지 않았어. 그러고는 나만 없애려고 했다. 그럼 이북에는 중국군만 남기 때문이지.”

    “… ….”

    “이미 김경식이는 없는 놈이나 같다. 이제 저를 따르는 군단까지 없어졌으니 그놈은 중국 놈에 붙은 거머리로 보면 된다.”

    “… ….”

    “한국군이 38선 위로 올라와야 돼. 그래서 한국군과 중국군이 부딪쳐야 된단 말이다. 미군에 맡기면 안 돼.”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인가? 북한이 밤낮으로 외쳤던 구호가 ‘미제’를 타도하자는 것 아니었던가? 전황이 몇 번이나 뒤집힌 후에 이런 결과가 되었지만 이동일의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이것은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 7500만 남북한 인민의 바람이 아니었던가? 38선을 돌파한다는 것은 남북한 통일을 의미한다. 1945년 나누어졌던 38선이 2014년, 69년 만에 깨뜨려질 것인가?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한국군 지휘부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 대위.”

    “응, 나야.”

    하고 수화구를 울리는 목소리에 임민희는 기절초풍을 했다. 박기천, 아직도 살아 있었단 말인가? 더구나 이런 때 날 찾다니, 혹시 잡혀서 날 끌어들이려는 것인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오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그때 박기천이 묻는다.

    “지금 거기에 있지?”

    계엄군에 잡혀 날 끌고 가려는 것이 맞는가보다. 살려주는 조건으로 날 불었구나. 지도자의 연락총책 박기천도 별수 없는 놈이다. 임민희가 이를 악물었을 때 박기천의 말이 이어졌다.

    “시간이 급하니까 얼른 나갈 준비를 해. 이걸 전해야 할 테니까 말야.”

    “뭐 말입니까?”

    겨우 임민희가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을 때 박기천이 말을 잇는다.

    “특급우편이 당신한테 온 거야.”

    특급우편이라니, 더구나 이 상황에,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던 임민희는 서둘러 종이와 펜을 집는다. 어쩔 수 없다. 특급우편이라면 지도자 동지의 지시를 말하는 것이다.

    그 시간에 선양군구 사령관이며 진주군 사령관 후성궈 상장은 순천의 사령부 상황실에서 보고를 받는다.

    “제16집단군은 대동군으로 남하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6시까지는 대동과 증산을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대동과 증산은 평양특별시 서쪽 요지다. 남포직할시 북방이기도 해서 김정일이 제28 해상저격여단을 북상시켜 지켜내려고 했던 지역이다. 머리를 끄덕이는 후성궈에게 참모장 양훙이 말을 잇는다.

    “제40집단군의 5장갑여단이 강동을 돌아 평양 동부지역 접경을 돌파했습니다. 그 뒤를 보병여단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미 상황 스크린에 부대 위치가 떠 있는 터라 실감이 난다. 후성궈가 말했다.

    “공군기를 띄우면 한미연합사 측에서 과민 반응을 하게 되는 터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 육군으로 밀고 나가야 돼. 평양만 함락하면 이 전쟁은 끝나는 거야, 동무.”

    “5일이면 됩니다.”

    이미 작전계획에도 2014년 8월11일로 적혀 있다. 양훙이 상황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면서 말을 잇는다.

    “특별한 일은 일어날 리 없습니다.”

    김정일은 이미 새장에 갇힌 새와 같다. 인민혁명군이라고 치켜세워준 반란군은 이번 중국 공군기의 무차별 공습에 산산조각이 나면서 약점을 천하에 드러냈다. 공군기의 미사일 한 발에 혁명군 부대 하나가 날아간 것이다. 이번 공습으로 40여 개의 부대가 전멸했고 50여 개는 흩어졌다. 지도자가 없는 무리, 애국심이 결여된 부대는 마치 마른 모래를 쌓아놓은 것이나 같은 것이다. 머리를 든 후성궈가 양훙을 보았다.

    “김경식 일행은 지금 뭐 하나?”

    “옆쪽 대기실에 모여 있습니다.”

    후성궈의 시선을 받은 양훙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1군단과 2군단이 궤멸된 후부터 전황을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2014년 8월5일 오후 3시40분, 개전 12일.

    “무슨 일이야?”

    이맛살을 찌푸린 조현호가 박기춘 중장을 보았다. 특전사령관 박기춘은 서울지역 계엄사령관을 맡고 있었는데 계엄군 병력이 후방 사단병력으로 대체되면서 지금은 파주 근방으로 사령부가 옮겨져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특전사는 싸워야 하는 것이다. 계엄군으로 방어하는 부대가 아니다. 그 박기춘이 오산까지 헬기로 날아와 조현호를 찾았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둘은 연합사령부 지휘벙커 옆쪽 참모 대기실에서 마주 보고 섰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합참의장 장세윤이 들어섰다. 장세윤의 안색도 좋지가 않다. 서둘러 다가선 장세윤도 묻는다.

    “급한 일이라니? 누가 사고라도 쳤어?”

    “아닙니다, 그게….”

    눈을 치켜뜬 박기춘이 두 대장을 번갈아 보았다.

    “아, 시발. 뭐야?”

    육사 3년 선배인 조현호가 마침내 버럭 소리쳤다. 박기춘은 행동은 빠르지만 말이 느리다. 그래서 육사 다닐 때 조현호가 몇 번 팬 적도 있다. 그때 박기춘이 말했다.

    “임민희가 절 찾아왔습니다.”

    “누구?”

    하고 조현호가 묻자 박기춘이 입맛을 다셨다. 이제는 박기춘이 성난 얼굴이다.

    “아, 민중당 의원 말요, 국회의원.”

    “아, 그 빨갱이, 안 잡혔나?”

    “안 잡았습니다, 근데.”

    “왜 안 잡아?”

    “아 잠깐 내 말부터 듣고 말하시라니깐!”

    박기춘이 버럭 소리치자 조현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박기춘이 말을 잇는다.

    “임민희가 숨어 있다가 날 찾아왔는데 지도자 동지의 밀서를 갖고 왔다는 겁니다. 암호 전문을 받았다는 거요.”

    “전문이라니?”

    이번에는 장세윤이 물었고 박기춘이 대답한다.

    “김정일이 암호 전문을 보냈다는데 바로 이겁니다.”

    그러고는 박기춘이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한국군 최고 지휘관에게 보이라는 겁니다. 연합사한테는 보이지 말고요.”

    두 대장이 이마를 맞대고 쪽지 전문을 읽는 동안 박기춘의 말이 이어졌다.

    “임민희는 쪽지 건네고 자수했습니다. 지가 무슨 유관순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더만요, 그래서 잡아놓았습니다.”

    이윽고 두 대장은 쪽지에서 시선을 떼고는 박기춘을 보았다. 그러나 둘은 눈을 치켜뜬 채 한동안 입을 열지 않는다.

    “너, 괜찮나?”

    하고 차금성이 묻자 대위는 잇사이로 대답했다.

    “예, 견딜 만합니다.”

    대위의 어깨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흙까지 묻어서 치료가 급하다. 입맛을 다신 차금성이 대위에게 말했다.

    “대위, 넌 이곳에 남아 치료해라, 난 남은 병력을 데리고 떠난다.”

    “여단장님.”

    대위가 다급하게 불렀지만 차금성은 몸을 돌렸다. 여단에서 살아남은 병력은 200여 명, 그중 군관은 6명이다. 그러나 해상저격여단은 인민군의 최정예로 한명이 열 명 몫을 하는 것이다. 차금성은 병력의 90%를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차금성이 산기슭의 바위 밑으로 다가가자 흩어져 있던 군관들이 다가와 섰다. 복장은 제각각이고 맨머리인 군관도 있었지만 모두 눈빛이 강하다.

    “출동준비 되었습니다.”

    가장 선임인 중좌 하병준이 보고했다.

    “모두 5개 소대로 재편성을 했고 여단장 동지께선 1소대장을 겸하십니다.”

    “알았다.”

    머리를 끄덕인 차금성이 군관 여섯 명을 차례로 둘러보며 웃었다.

    “우리는 지도자 동지의 특명을 받은 결사대다. 우리 목표는.”

    헛기침을 한 차금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적의 총사령관이다.”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고 차금성이 말을 잇는다.

    “이곳은 우리 땅이야. 사방에 인민군 동지들이 퍼져 있다. 우린 풀이 되고 흙이 되어서 적 총사령부로 접근, 총사령관놈과 함께 죽는다.”

    그러고는 어깨를 폈다.

    “군인으로서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나는 지도자 동지께서 우리의 죽음을 듣고 감동하시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만세!”

    군관 하나가 번쩍 손을 들고 소리치자 다른 군관들도 따라 외친다.

    “지도자 동지 만세!”

    2014년 8월5일 오후 4시30분, 개전 12일. 한미연합사 참모장이며 8군 참모장이기도 한 모건 해리슨 중장이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 앞으로 다가섰다. 오산의 한미연합사 사령부 벙커 안은 다시 긴장감으로 덮여 있다. 개전 이후 가장 긴장한 것 같다.

    “장군, 중국군이 움직이는 걸 막을 수는 없어요, 잘 아시겠지만….”

    그때 해리슨의 말을 장세윤이 잘랐다.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미중 간의 전쟁을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요. 세계 초강대국 간의 전쟁이니까.”

    “한미 동맹은 편리한 쪽으로만 써먹을 작정이요? 난 지금 연합사 측에 묻고 있는 거요, 장군.”

    장세윤이 한마디씩 정확하게 발음했을 때 해리슨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바짝 다가가 섰다.

    “장군, 수백만의 시민이 죽습니다. 강릉시의 참상은 만분지일도 안 될 것이라고요. 만일 우리가 중국군을 막는다면 말입니다.”

    “잘 모르시나 본데 지금 한국 여론은 북진이요. 저 빌어먹을 38선을 밀고 올라가자는 겁니다. 이것이 69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라는 거요.”

    그러자 해리슨이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해리슨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나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장군.”

    목소리를 낮춘 해리슨이 말을 잇는다.

    “중국군이 김경식 군을 불쏘시개로 만들고 나서 전면전으로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저놈들은 기어코 북한을 흡수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북한을 중국령으로 넘겨주면 세계평화가 유지되겠군요.”

    “… ….”

    “북한이 없어지면 한국 국민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할 줄 아신 것 같군.”

    “… ….”

    “그러니까 저, 38선….”

    말을 그친 장세윤이 몸을 돌렸다.

    2014년 8월5일 오후 5시30분, 개전 12일. 벙커 안이어서 24시간 전등을 켜놓은 터라 지금이 아침인지 밤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지금 이동일이 그렇다. 30분쯤 잠을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았더니 이른 아침 같았다.

    “일어났습니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이동일은 몸을 돌렸다. 김정은이 다가와 앞쪽 소파에 앉는다. 이곳은 상황실 옆쪽 보좌관 휴게실이다. 김정일이 이곳을 이동일과 안성욱의 방으로 지정해준 터라 드나드는 사람은 김씨 부자와 연락관 정도다. 이동일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고르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아침인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모든 인민군 부대에 중국군과 싸우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대뜸 말한 김정은이 이동일을 보았다.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김정은이 말을 잇는다.

    “중국군을 몰아내고 북남 조선이 통일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 ….”

    “지금 계속해서 방송이 나갑니다.” 이동일은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지금 통일의 기회가 왔다는 감개가 일어나지 않는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이 이렇게 통일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궁지에 몰린 끝에 잡는 것 같은 처신 때문이 아니다. 상황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중국군은 이미 평양특별시에 진입해 격렬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사방에서 인민혁명군이 지원해주지만 아래쪽에 있는 한국군 105기갑사단은 말할 것도 없고 인민군 4, 12군단 또는 820이나 815군단도 북상해오지 못한다. 또다시 벌어질 중국군의 대규모 공습이 두렵기 때문이다. 4시간 전의 중국군 공습에서 중국 공군은 전폭기 250여 대를 동원했다. 한미연합사 공군 측도 거의 비슷한 260여 대의 전폭기를 출격시켰으므로 북한 영토는 처참하게 폭격을 당했다. 평양특별시는 이미 반 이상이 폐허가 되었으며 인민군 1군단과 2군단은 궤멸되었다. 김정은의 시선을 받은 이동일이 불쑥 물었다.

    “김 대장께서는 전쟁이 끝나면 뭘 하실 생각입니까?”

    “나요?”

    했다가 김정은이 쓴웃음을 짓는다.

    “전쟁이 끝났을 때 내가 살아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지요, 하지만.”

    머리를 든 김정은이 똑바로 이동일을 보았다.

    “일이 잘 끝난다면 건축 공부를 좀 해갖고 집을 짓고 싶네요.”

    “… ….”

    “거, 큰 건물은 말고 산속에 짓는 집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한국 잡지를 좀 보았는데, 옳지, 전원주택이라고 합디다.”

    김정은이 생기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시멘트나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겁니다….”

    그러더니 문득 말을 멈추고는 이동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동일은 김정은의 눈동자에서 차츰 초점이 흐려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했다.

    “저도 꼭 보고 싶네요. 그 집을 말입니다.”

    12사단장 변용식 소장은 부관이 건네주는 K-5 소총을 받아 쥐고 장갑차에 오른다. 부관과 작전참모가 뒤를 따라 탔을 때 장갑차는 곧장 출발했다. 2014년 8월5일 오후 8시15분. 긴 여름 햇살이 스러지면서 주위에 어둠이 덮였다. 장갑차가 속력을 내었을 때 작전참모 윤택성 대령이 말했다.

    “수색대대, 2연대는 이미 38선을 12㎞나 돌파했습니다.”

    장갑차의 진동이 심했으므로 손잡이를 쥔 변용식은 눈만 끔벅였고 윤택성의 목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인민해방군 4개 부대가 길을 선도하고 있고 1연대 앞에도 3개 부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38선을 돌파하고 있는 것이다. 12사단 뒤에는 2사단 17연대가 바짝 따르고 있었으니 이 속도라면 한국군 2개 사단이 한 시간 만에 38선을 넘는다. 다시 윤택성이 소리치듯 말했다.

    “수색대대 2중대는 방금 고성을 지났습니다, 사단장님.”

    그러자 변용식이 심호흡을 했다. 잘 풀린다면 오늘밤 안에 목표인 원산을 닿을 수도 있겠다.

    그 시간에 연합사 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가 참모장 해리슨과 작전참모 토드를 앞에 세워놓고 소리쳤다.

    “몇 개 부대야?”

    “중부와 동부전선의 6개 사단입니다.”

    토드가 외면한 채 대답했다. 그러나 작심한 듯 잇사이로 말을 잇는다.

    “미리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6개 사단이 거의 동시에 38선을 돌파했습니다.”

    “시발놈들.”

    “현 상황으로 보면 선발대는 일몰 직후인 19시35분경에 출발했고 사단 사령부까지 다 38선을 넘었습니다.”

    “개새끼들.”

    우드워드의 시선이 잠자코 서 있는 해리슨에게로 옮겨졌다. 이곳은 종합상황실 바로 옆의 사령관실 안이다. 우드워드가 둘을 이곳으로 부른 것은 한국군 지휘부도 섞여 있는 상황실이 거북했기 때문이다.

    “이봐,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군 지휘관 놈들을 다 체포해야 되는 건가? 아니면 연합사 해체하겠다고 오바마한테 건의할까?”

    또 있다. 지휘 책임을 물어 무능한 사령관을 갈아치우는 방법이다. 해리슨과 토드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우드워드가 이런 식으로 말할 때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같이 끌어안고 동반자살을 하는 성품이다.

    “사령관, 이 전쟁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겁니다. 그리고 그 책임도 북쪽한테 있습니다.”

    해리슨이 차분하게 말했지만 우드워드는 눈을 부릅떴다.

    “말 똑바로 해. 북쪽하고 남쪽, 둘이야.”

    “한국군 해병의 기동훈련을 말씀하는 겁니까?”

    “그놈들은 그때부터 계획적이었어.”

    “그렇게 안 한다면 군인이 아니죠.”

    했다가 해리슨이 헛기침을 하고나서 서둘러 말을 잇는다.

    “이번 한국군의 38선 북상은 김정일과 연합한 작전 같습니다.”

    우드워드가 눈만 껌벅이는 것은 예상하고 있다는 표시다. 그때 해리슨의 눈짓을 받은 토드가 입을 열었다.

    “사령관, 백악관에서 중국 지도자에게 연락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함으로써 중국군과 한국군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라고 해.”

    했지만 우드워드는 외면하고 있다. 토드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되면 우린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말려들게 됩니다. 아마 가만있다가는 이곳에서 당하게 될지도 모르니깐요.”

    하고 토드가 방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을 때 우드워드의 화가 폭발했다.

    “닥쳐! 풋내기 자식아!”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친 우드워드가 손가락을 권총처럼 만들어 해리슨과 토드를 번갈아 가리켰다.

    “너희 둘은 그것도 예상하고 있었을 거다. 그걸 내가 모를 줄 알았니?”

    그러더니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좋아, 이제 또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단 말이지?”

    평양과 강동군의 경계 지역인 개울가 바위에 12군단 소속의 강성일 중좌가 기대 앉아 있다. 2014년 8월5일 오후 8시35분, 주위는 어두웠고 보름 가까이 비가 오지 않아서 마른 개울의 바위를 돌아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강성일이 감았던 눈을 뜨고 앞에 앉은 오기봉 중사를 보았다.

    “날 그냥 이곳에 놔둬라.”

    오기봉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지만 입은 열지 않는다. 강성일이 말을 이었다.

    “곧 비가 올 테니 그땐 떠내려가겠지.”

    “… ….”

    “가다가 물속에 묻히든지 대동강까지 흘러갈 수도 있겠다.”

    강성일은 중국 공군기의 폭격으로 창자가 터져서 지금 죽어가는 중이다. 가쁘게 숨을 뱉던 강성일이 허리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중좌 동지.”

    12군단에서부터 수행해온 오기봉이 불렀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강성일이 권총 총구를 옆머리에 붙이고 말했다.

    “자, 넌 가라.”

    “중좌 동지, 가족에게 남기실 말씀은.”

    “없다.”

    그러고는 강성일이 시선을 들어 오기봉 머리 위쪽 밤하늘을 보았다.

    “말해서 뭐 하겠냐?”

    “중좌 동지, 잘 가시라요.”

    “돌아서.”

    오기봉이 돌아서자 밤하늘에 낮은 총성이 울렸다. 총성이 낮게 깔리는걸 보면 비가 오실 것 같다.

    (12장에 계속)

    이원호

    2014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등이 있다.


    “더 이상의 북상은 안 돼.”

    머리를 든 우드워드가 지휘관들을 둘러보았다. 눈을 치켜뜨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와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105사단이 다시 움직이면 안 돼. 명령 불복종으로 처리할 테니까.”

    우드워드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105사단 지원도 2개 보병사단 이동으로 끝낼 것, 이상이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자 참모장 해리슨의 시선이 한국군 장성들에게로 옮겨졌다. 기둥 옆에 서있던 합참의장 장세윤이 해리슨의 시선을 받더니 눈으로 옆쪽을 가리켰다. 옆방을 가리킨 것이다.

    상황실 옆방은 참모 대기실이었는데 미리 한국군 참모들이 방을 비워놓았기 때문에 해리슨은 장세윤과 항상 붙어 있는 육참총장 조현호, 거기에다 연합사 작전참모 마이클 토드 소장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해리슨이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사령관을 납득시켰지만 더 이상은 무리요. 사령관은 백악관으로부터 압박을 당하고 있어요.”

    장세윤과 조현호는 잠자코 시선만 준다. 105기갑사단의 지원부대를 일사불란하게 보낸 것은 해리슨과 토드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길게 숨을 뱉은 해리슨이 말을 이었다.

    “이것으로 황해남북도는 석권한 셈이 되었으니 서둘지 맙시다. 중국군이 움직이면 세계대전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알겠소, 해리슨.”

    두 명의 대장은 영어가 유창했으므로 장세윤이 먼저 말했다.

    “당신들의 협조에 한국군을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아니, 사령관도 그렇게 지시했을 겁니다.”

    쓴웃음을 지은 해리슨이 토드를 힐끗 보고나서 말을 잇는다.

    “우리가 작전계획을 조금 일찍 만들어놓았던 것이죠.”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연합사 소속의 대령이 들어섰다. 대령이 해리슨과 토드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사령관께서 찾으십니다.”

    “빌어먹을.”

    자리에서 일어선 해리슨이 입맛을 다셨다.

    “작전계획서 때문이군.”

    연합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이 자신의 방에서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 작전참모 마이클 토드 소장과 셋이 둘러앉아 있다. 우드워드 앞에는 위스키 병이 놓여 있고 이미 두 잔을 마셨지만 둘에게는 권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표시다. 머리를 든 우드워드가 토드를 쏘아보았다.

    “이봐, 장군. 중국군의 공격 시에 연합사가 움직이자는 건가?”

    우드워드가 손끝으로 술잔 옆에 놓인 서류를 두드렸다. 토드가 작성한 ‘작전계획’이다. 전시였지만 종이에 찍은 ‘작전계획서’다. 같은 사무실 안에 있는 터라 컴퓨터가 오히려 더 불편한 것이다.

    “한국군과 김정일 군이 연합한 상황이니 우리가 김정일 군을 도와야 한다는 말인가? 이런 빌어먹을.”

    말을 잇지 못한 우드워드가 술잔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토드의 작전계획서는 이동일의 ‘방송’이 있기 전에 합성되어 참모장을 거쳐 우드워드에게 전달되었다.

    ‘중국군이 김정일을 공격하면 한미연합사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고 나서 조금 전에 시진핑과 후성궈의 전화 내용이 감청된 것이다. 그때 해리슨은 말했다.

    “사령관, 이건 백악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우리 코앞에서 일어날 전쟁이니까요. 그리고….”

    해리슨이 말을 멈춘 것은 다음 내용에 폭발력을 더 증가시키기 위해서다. 심호흡을 하고난 해리슨이 말을 잇는다.

    “지금 105기갑사단이 사리원 남쪽에까지 진출한 상태입니다. 중국군이 평양을 공격하면 자연스럽게 105기갑사단, 820전차군단, 815기계화군단이 김정일 친위대와 연합하게 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말을 멈춘 해리슨이 우드워드를 보았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중국군과의 전면전이 된다. 중국군의 상대는 김정일 친위대만이 아니다. 한국군과 중립군인 인민군군단, 그리고 인민해방군 연합이다. 거기에다 한미연합사의 미군이 참여한다면? 또 뜸을 들였더니 우드워드의 뇌도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었다. 어금니를 물었다가 푼 우드워드가 잇사이로 말했다.

    “이거, 중국 놈들이 또 일을 일으키겠다.”

    2014년 8월4일 월요일 오후 7시 반. 대한민국 대통령 박성훈이 산본장의 지하 벙커에 앉아 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다. 박성훈의 옆에는 비서실장 한창환, 안보수석 주명성, 그리고 국방장관 임기태와 합참의장 장세윤까지 나란히 앉아 스크린에 떠 있는 북한군 제2군단장 김경식 대장을 본다. 김경식은 북한군 대장 계급장을 붙였지만 상의에 훈장을 한 개도 붙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가슴 전체에도 모자라 배에까지 주렁주렁 붙여놓았던 그 이상한 쇠붙이가 한 개도 없다. 그때 김경식이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북조선인민공화국 인민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김씨 일가의 학정에서 벗어나 새 세상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남조선 괴뢰는 미군과 연합해 북조선 인민들의 씨를 말리려고 합니다. 인민 여러분, 인민군 여러분. 우리가 남조선 놈들의 종이 되어야 합니까? 미군의 지시를 받는 남조선군은 우리 인민군을 모조리 처형하고 북조선을 강탈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때 박성훈이 머리를 돌려 한 사람 건너편에 앉은 합참의장 장세윤을 보았다.

    “저 선동에 인민군이 넘어갈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장세윤이 바로 대답했다. 박성훈의 시선을 받은 장세윤이 말을 잇는다.

    “김경식이 이렇게 김정일의 권위를 흔들어놓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입니다. 인민군은 당분간 공황상태에 빠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 뒤쪽의 비서관이 버튼을 누르자 다시 김경식의 입술이 움직였다. 30분 전인 7시에 김경식이 TV에 나와 연설을 한 장면을 녹화해놓은 것이다.

    “인민군 여러분, 우리의 혈맹 중국군과 함께 새 조선을 건설합시다. 인민 여러분, 우리 북조선은 이제 김씨 일족의 독재에서 벗어나 중국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고 잘살게 됩니다. 남조선 괴뢰들의 무시와 구역질나는 동정을 받으며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북조선은 중국이 밀어주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금방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남조선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립합시다!”

    박성훈의 손짓을 받은 비서관이 다시 버튼을 눌렀으므로 김경식이 입을 딱 벌린 채 굳어졌다. 그 순간 안보수석 주명성이 말했다.

    “중국군이 개입할 명분을 만들고 있습니다. 뻔한 수작이지만 이유는 충분하지요.”

    황해남도 해주에 전연지대 서부지역 방어를 맡은 인민군 제4군단의 사령부가 있다. 4군단장 우장선 대장은 12군단장 이기준과 연합함으로써 한국군의 진입을 도운 셈이 되었다. 물론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위치한 820기계화군단까지 모두 중립군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한국군의 황해남북도 석권이 가능했던 것이다.

    “김경식의 선동에 동요하는 장병은 없습니다.”

    참모장 박명호가 우장선에게 보고했다.

    “적어도 황해남북도는 우리가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란 인민군과 한국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장선 앞에 펼쳐진 상황판에도 황해남북도의 전황이 펼쳐져 있다. 인민군 정예 4개 군단 외에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 주변에 10여 개의 한국군 부대, 그리고 사리원 아래쪽 봉산과 은파 부근까지 105기갑사단이 배치되었다. 거기에다 개성 북방으로 한국군의 2개 보병사단이 전개해오고 있는 것이다. 우장선의 시선이 상황판 아래쪽으로 옮겨졌다. 옹진반도 쪽이다.

    “한국군 해병은?”

    “태탄에 1사단 사령부가 설치되었고 한국군 해군과 함께 용연, 옹진, 강령을 장악했습니다.”

    이제 서해상에 인민군 해군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기지에 들어가 스스로 무장해제 상태로 있는 것이다. 옹진군 사곶리의 기지는 개전과 동시에 폐허가 되었고 과일군 초도 기지는 온전했지만 배는 모두 버려둔 채 해군은 기지에서 대기 중이다. 역시 과일군 비파곶의 기지는 노농적위대의 공격을 받아 공작창과 창고가 파괴된 채 전투함과 잠수함이 버려져 있다. 바다로 나와도 도움이 안 되는 터라 지금 주석궁 벙커에 들어가 있는 해군 수뇌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을 것이었다. 우장선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황해남북도가 북남의 완충지 노릇을 할 수 있겠어. 중립지대가 된단 말야.”

    12군단장 이기준의 반발로 시작되었다가 2군단, 820, 815군단의 가세로 강력한 세력이 구축된 것이다. 그리고 4개 군단이 모두 황해남북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한국군의 교두보 확보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우장선이 말을 잇는다.

    “개성 공단지역까지 포함하면 이곳은 한반도의 중심지역이야.”

    “거기에다 평양특별시까지 흡수되면 핵심이 되지요.”

    박명호의 말에 우장선의 시선이 상황판의 위쪽 평양으로 옮겨졌다.

    “그렇군.”

    우장선이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

    “내가 평양을 잠깐 잊고 있었군.”

    평양이란 곧 김정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김정일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간다는 말이었다.

    “핵은 다시 확인했지요?”

    하고 오바마가 묻자 합참의장 마크 핸슨이 대답했다.

    “평양 김정일의 통제를 받는 곳은 연구소 두 곳뿐입니다.”

    핸슨이 테이블 위에 펴놓은 북한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무수단리 미사일기지 등 10여 곳은 김경식 일당이 장악했다가 지금은 중국군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핵을 잡았다니 다행이오.”

    혼잣소리처럼 말한 오바마가 머리를 들고 국무장관 빌 스튜어트를 보았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안이다. 오후 3시여서 나른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한반도의 전쟁 브리핑이 열흘 가깝게 계속되고 있는 터라 사내들의 얼굴은 지쳐 보였다.

    “빌, 이 시점에서 정전할 수는 없을까요? 평양까지 한국 쪽에 넘겨주고 말이오.”

    오바마가 묻자 빌 스튜어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머지는 중국령으로 하고 말이지요?”

    “한국이나 북한 측도 불만이 없을 텐데, 나머지 땅은 불모지 아니면 수용소뿐이지 않소?”

    “그렇죠. 핵시설만 놓고 가면 됩니다.”

    하고 비서실장 패트릭 어윈이 말을 받는다.

    “백 개 있거나 백한 개 있거나 마찬가지니까 핵을 중국이 가져가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평양과 황해남북도만 남한에 통합되는 반쪽 통일이 된다. 거기에다 핵시설과 핵무기는 모두 중국 소유가 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오바마가 지쳐 보이는 얼굴을 들고 스튜어트와 핸슨, 어윈과 국방장관 제임스 코넬까지를 둘러보았다.

    “한국군이 더 이상 날뛰기 전에 이 선에서 정전을 합시다, 이의 없지요?”

    평양특별시는 남포직할시와 인접해 있었는데 남포에는 서해함대 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다. 2014년 8월5일 화요일 오전 10시, 개전 12일째. 남포 북방 오신에 주둔한 제28해상저격여단의 여단장실 안이다. 여단장 차금성 중장은 참모가 건네주는 전화기를 받아 귀에 붙였다.

    “예, 차금성 중장입니다.”

    “동무, 내 지시를 받겠나?”

    수화구에서 울린 목소리는 김정일이다.

    “예, 지도자 동지.”

    차렷 자세로 선 차금성이 벽에 붙은 김정일의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전에 김정일과 통화한 적이 두 번 있었지만 이렇게 묻은 적은 없다. 그것을 깨달은 차금성의 코끝에 시큼한 느낌이 왔다.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동무, 반역자의 방송을 들었을 것이다. 그 반역자가 지금 중국 놈에게 공화국을 팔아넘기려고 한다.”

    차금성은 숨을 죽였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동무에게 평원에 주둔한 중국 제40집단군 119보병여단을 격퇴할 것을 명령한다. 명령에 따르겠는가?”

    “예, 지도자 동지.”

    차금성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즉시 출동하겠습니다.”

    “평원을 막고 있으면 남포 북방과 평양 서쪽이 위협을 받는다.”

    “예, 평원을 탈취하고 지키겠습니다.”

    “부탁한다, 차금성 동무.”

    그러고는 통화가 끊겼으므로 차금성은 심호흡을 했다. 두 눈이 어느새 붉게 충혈돼 있다.

    “그렇다면 북한군과 중국군의 첫 전투가 됩니다.”

    상황 스크린 앞쪽 테이블에 둘러앉은 지휘관들을 둘러보면서 연합사 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방금 김정일과 차금성의 통화 내용을 스피커로 생생하게 들은 것이다. 둘의 통화가 끝난 지 5분도 안되었다. 우드워드가 말을 이었다.

    “평원 탈환이 김정일에게는 대단히 중요해요. 그곳만 확보하면 평양과 남포 사이의 지역을 확보하게 되고 서해와 접할 수가 있거든.”

    손을 들어 상황 스크린을 가리키자 참모 하나가 재빠르게 평원 아래쪽의 평원군, 대동군, 증산군 지역을 레이저로 가리켰다. 그때 한국군 육참총장 조현호가 물었다.

    “119보병여단 위쪽 숙천에 40집단군의 제5장갑여단과 118보병여단이 있어요. 그들이 내려오면 28저격여단은 끝장납니다, 그런데.”

    입맛을 다신 조현호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김정일은 그 대비책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왜 그랬을까요?”

    둘러앉은 지휘관의 절반가량이 미군이었으므로 조현호는 영어를 썼다. 그러자 참모사 참모장 해리슨이 대답했다.

    “김정일은 우리가 이렇게 녹음을 듣고 회의를 할 것도 예상하고 있었을 겁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해리슨이 쓴웃음을 짓는다.

    “중국군 또한 다 들었겠지요. 아마 지금쯤 평원에 장갑여단과 보병여단을 남하시킬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회의를 하고 있을 줄도 중국군이 예상하고 있을 것 아니겠소?”

    하고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이 묻자 대답은 우드워드가 했다.

    “김정일도 예상하고 있겠지요.”

    그러고는 우드워드가 두리번거리며 누구를 찾는 시늉을 했다. 이윽고 끝 쪽에 앉아 있던 해병대사령관 정용우를 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김정일과의 통로가 필요한 때가 되었군요.”

    2014년 8월5일 화요일 오전 11시30분, 개전 12일째. 평원 동북방 어파에 집결한 인민혁명군 부대는 모두 5개에 병력은 1500명 가까이 되었다. 그리고 6개 부대가 3시간 안에 도착할 것이었고 내일 정오까지는 모두 18개 부대 2만명의 병력이 모일 것이었다. 18개 부대는 노농적위대, 교도사단, 붉은청년근위대도 있지만 정규군단인 3군단 소속도 있는데다 425기계화군단에서 빠져나온 보병대대도 포함되었다. 어파는 인구가 2000명 남짓한 소도시지만 평양시에 가까운 농산물 공급지 역할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도로가 잘 닦여졌고 세상 물정에 빠르다.

    “자, 작전계획을 봅시다.”

    하고 소리친 사내는 3군단 소속 제77교도사단의 제2연대장 주장온 대좌다. 현역 대좌여서 권위도 있지만 성격도 강해서 좌중을 압도하고 있다.

    “내일 오전 8시까지는 28해상저격여단이 바닷가로 북진해서 이곳에 닿을 거요.”

    주장온의 손끝이 탁자 위에 놓인 지도의 한곳을 짚었다. 바닷가 길로 화진 북방이다. 평원 남쪽에 포진한 제119부대와는 41㎞ 거리가 된다. 주장온의 손가락이 평원 위쪽을 짚었다.

    “이곳의 118여단과 제5전차여단이 출동준비를 하고 있다니 내일 오전 8시 이전에 평원 남쪽에 보강될 겁니다.”

    “전쟁이군.”

    나이 든 지휘관 하나가 말했다. 50대 후반인 것을 보면 노농적위대 지휘관이다. 그러나 가슴에 147이라는, 비닐로 싸인 붉은색 숫자를 달았으니 ‘인민혁명군’ 제147부대장이다. 주장온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쟁이오. 이제는 중국군과 인민군의 본격적인 전쟁입니다.”

    “인민혁명군이오, 대장동지.”

    하고 ‘208’이란 숫자를 붙인 지휘관이 커다랗게 말하자 주장온이 입맛을 다셨다.

    “이거, 나도 비밀 표지를 붙이고 다녀야 큰소리를 칠 수 있겠구먼.”

    협동창고 사무실에 둘러선 지휘관은 복장도 각양각색이었고 나이도 제각각이다. 40대 후반인 주장온은 5개 부대장 중 어린 편이다. 주장온이 말했다.

    “28해상저격여단은 정예요. 장비도 좋아서 중국 놈들 여단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습니다.”

    “우린 중국군 지원군을 맡는 것 아니오?”

    하고 누가 물었으므로 주장온이 목소리를 낮췄다.

    “아니오. 28여단을 지원하는 척하다가 우리 주력은 순천으로 갑니다.”

    그 순간 모두 긴장한 채 입을 다문다. 순천은 중국군 총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해상저격여단이란 북한군 UDT와 SEAL, 해병특수수색대를 결합한 해군 소속의 최정예 부대를 말한다. 28저격여단은 6개의 해상저격대대를 주력으로 하고 공병중대, 박격포중대, 파괴중대 등을 지원부대로 두었지만 이번 임무는 육상의 중국군 여단이다. 여단장 차금성 중장은 육로로 북상하는 중이다. 2014년 8월5일 화요일, 오후 1시20분, 개전 12일째.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지 3시간20분이 지난 현재 차금성은 여단 병력을 이끌고 남포직할시 관내의 용강을 지나고 있다.

    “대동에서 지원군 3개 부대가 합류하겠다고 하는데요.”

    지휘차에 탄 차금성에게 뒤쪽에 앉아 있던 참모가 소리쳐 보고했다.

    “제3군단 직할 경보대대와 직위대 2개 부대입니다.”

    머리를 돌린 차금성의 시선을 받은 참모가 덧붙였다.

    “주석궁의 연락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원에는 이미 5개 부대가 집결되어 있는 것이다. 빠르다. 차금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대동에서 만나자고 연락해.”

    더 북상해 갈수록 지원부대가 늘어날 것이다.

    2014년 8월5일 화요일 오후 12시05분, 개전 12일째.

    중부전선 철원 동북방 한국군 제3697부대 제1연대 2대대 3중대의 GOP. 전시 상황이어서 중대장 김진호 대위는 지금 12일째 비상근무 중이다. 이곳은 DMZ 지역이어서 중대 GOP에서도 북한군 초소가 육안으로 보인다. 거치된 초소 망원경에 눈을 붙이면 북한군의 계급장까지 선명하게 구분된다.

    “평양 쪽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

    망원경에서 눈을 뗀 김진호가 옆에 선 제3소대장 백선우 소위에게 말했다. 백선우는 부임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임 소대장이다.

    “저희들끼리 전쟁이지. 김정일 직속 부대와 중국군이야.”

    손등으로 눈을 비빈 김진호가 다시 망원경에 눈을 붙이면서 말을 잇는다.

    “김정일 직속 군에다 중립군, 인민혁명군까지 연합해서 중국군을 까는 거야.”

    앞쪽 북한군 진지는 조용하다. 이곳은 반란군으로 불리는 김경식 대장의 2군단 지역으로 정예군이다. 서해안 쪽 4군단 지역이 뚫려 한국군이 치고 올라갔지만 이곳은 아직도 철통같다. 김경식에게 충성하는 부대인 것이다.

    “이제 이쪽 방어선도 허물어지게 되어 있어. 중국군이 깨지면 저놈들도 매달릴 곳이 없을 테니까 말야.”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김진호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었다. 그 순간이다.

    “꽈광!”

    폭음과 함께 콘크리트 참호가 흔들리면서 천장에서 부스러기들이 떨어졌다.

    “아앗!”

    놀란 백선우가 외침을 뱉었을 때 이번에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마치 하늘을 쇳조각으로 찢는 것 같다.

    “꽝, 꽝, 꽝.”

    김진호는 엄청난 폭발음을 들으면서 눈을 부릅떴다.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무전병을 부르려고 입을 벌린 김진호는 참호가 폭발하는 바람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비스듬히 날아온 포탄이 안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전쟁입니다.”

    대통령 박성훈에게 합참의장 장세윤이 소리쳐 보고했다. 장세윤은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 말을 잇는다.

    “중부전선 철원 근처의 한국군 부대가 적의 포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군도 대응 포격을 하는 중인데 벌써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아니, 이쪽은 왜?”

    했다가 박성훈이 정신을 가다듬더니 다시 묻는다.

    “확전될 것 같습니까?”

    지난 정권 때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하자 대통령이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가 죽을 고생을 했다. 전쟁을 피하고 보자는 비겁자로까지 매도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가장 먼저 확전 걱정부터 해야만 옳다. 그러고 나서 정황을 분석한 군의 보고를 듣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때 장세윤이 말했다.

    “현재 포격전은 점점 증가되고 있습니다. 아군은 3개 포병단과 3개 미사일 기지에서 북한 2군단 지역 전체를 포격하는 중이고 북한도 2군단의 모든 화력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 ….”

    “피폭 지역이 확대되고 있어서 민간인 피해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이다. 개전 12일 만에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것 같다. 온몸을 굳힌 박성훈의 귀에 다시 장세윤의 목소리가 울렸다.

    “곧 폭격 정보가 나갈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도 피신하십시오!”

    산본장 응접실 벽시계가 오후 12시15분을 가리키고 있다.

    2014년 8월5일 오후 12시25분, 오산 한미연합사 벙커에서 다시 외침 소리가 울렸다.

    “1군단 지역에서 미사일 발사!”

    한 줄기 외침이 330㎡(100평)도 넘는 종합상황실 벙커 안을 잠깐 정적 속으로 빠뜨렸다. 깊은 정적, 그리고 순식간에 조금 전의 소란함보다 두 배쯤 더 큰 소음으로 묻혔다.

    “274, 575 지점이야! 27부대 미사일로!”

    “102포병을!”

    “712부대가 당했어!”

    “공군은 왜 늦는 거야!”

    작전계획이 있는데도 실제 상황이 되면 시간차와 전력의 차질이 발생하고 실수까지 겹칠 수가 있다. 동해안 지역의 인민군 제1군단은 지금까지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김경식 일파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전선은 서부지역에 형성돼서 동부지역은 관심 밖의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1군단이 전 화력을 동원해 한국군 진지와 그 후방 지역을 무차별 포격한다.

    “강릉 시내가 포격을 당하고 있어!”

    하고 누군가가 소리쳤을 때 다시 상황실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가 더 떠들썩해졌다.

    “김경식, 이 새끼.”

    눈에 초점을 잃은 한국군 소장 하나가 서둘러 상황실 안을 헤치고 오면서 혼잣소리로 욕을 했다. 아마 연합사 소속의 장군 같다.

    “좋아! 공군에서 미사일을 쐈어!”

    누군가가 소리쳤고 이번에는 미군이 영어로 소리쳤다.

    “오키나와에서 공군기가 떴어!”

    연합사의 미공군기다. 이제 전면전이다.

    “어? 랴오닝성의 중국군 제1사단, 제11사단 공군기가 떴다!”

    하고 위성 스크린을 응시하던 장교가 소리쳤을 때 상황실의 긴장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로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는 지금 백악관의 오바마에게 상황을 보고하는 중이었다. 지금 워싱턴 시각은 밤 10시 반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다른 장교가 소리쳤다.

    “전투기 15개 편대 60기, 전투기 10개 편대 40기… ….”

    “제21사단에서도 발진 중!”

    하고 장교 하나가 소리쳤을 때 이번에는 해리슨의 우렁찬 목소리가 상황실을 압도했다.

    “공군, 출격이다!”

    그때 누군가가 ‘갓뎀’ 했지만 상황실 안은 다시 소음에 묻혔다. 미 공군 전투폭격기 편대가 다 출격하면 30개 대대가 넘는다. 더구나 그중에는 스텔스 대대도 끼어 있다.

    “출격!”

    한국어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는 한국 공군기의 출격을 명령하는 것이다. 심호흡을 한 우드워드가 오바마에게 말을 잇는다.

    “갑자기 전면전이 되어갑니다. 이제 포격전에서 공중 폭격과 공중전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 각하.”

    “중국 공군이란 말입니까?”

    오바마의 목소리는 억양이 없다. 긴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대통령 각하. 하지만.”

    상황 스크린에 힐끗 시선을 준 우드워드가 말을 잇는다.

    “이미 그 경우에 대비한 대책을 세워놓았기 때문에 우리도 즉각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우드워드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분단 60년. 그동안 수백 번 전쟁 대비 연습을 했고 수백 가지 경우를 예측한 터라 이 경우도 그중 하나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라는 설명을 해주려다 만 것이다. 물론 시간차, 작동 실수, 물량 차이는 존재한다. 그때 오바마의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다.

    “장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러자 우드워드가 입맛을 다셨다. 역시 대통령은 바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정치인은 다 그렇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좋아하는 대답을 해주는 수밖에 엇다.

    “각하께선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기다리고 계시면 다시 보고드리지요.”

    2014년 8월5일 오후 12시5분. 순안남도 순천 서북방 21㎞ 지점에 위치한 제115 보병사단 사령부 외곽의 경비초소, 초소장인 인민해방군 중위 전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 언덕을 보았다. 바위투성이의 언덕 위에 북한 남녀 20여 명이 움직이고 있다.

    “뭘 하는 게야?”

    전윤이 묻자 옆에 나란히 서 있던 부하들이 제각기 대답했다.

    “조금 전에 보니까 풀을 뜯고 있습니다.”

    “땅을 파는 것이 쥐를 잡는 것 같던데.”

    “어쨌든 먹을 걸 찾는 것 같소.”

    모두 남루한 차림의 남녀였고 아이도 서너 명 섞여 있다.

    “거지 같은 놈들.”

    혀를 찬 전윤이 머리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맑다.

    “곧 우리 해방군 공군기들이 지나갈 것이야.”

    하늘에 시선을 준 채 전윤이 말을 잇는다.

    “이번에 싹 쓸어버리는 것이지.”

    “평양을 깝니까?”

    부하 하나가 묻자 전윤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곳이 독사 머리가 있는 곳이야. 머리만 없애면 이번 전쟁은 끝난다고.”

    “그럼 우린 총 한 발 안 쏘고 전쟁하고 돌아왔다고 하게 되겠소.”

    정색한 부하 하나가 말했으므로 몇 명이 웃었다. 전윤이 다시 언덕 위를 보았다. 언덕과의 거리는 150m 정도. 이젠 북한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총이라도 몇 방 쏠 기회를 줄 테니까 걱정 마라.”

    하고 전윤이 말했을 때였다.

    “아앗!”

    놀란 외침소리가 옆에서 울렸으므로 전윤이 머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눈을 치켜뜨면서 입을 딱 벌렸다. 입 밖으로 소리가 뱉어지지 않는다. 흰 가스가 이쪽으로 달려들고 있다. 그것도 대여섯 개. 아직 소리도 없다. 로켓포다.

    “앗!”

    누군가가 다시 외마디 외침을 뱉었지만 다음 순간 전윤은 자신의 몸이 푸른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엄청난 폭음을 듣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의식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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