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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⑤

돌려차기의 명수, 태권황제 챠리 셸

긴 다리와 우수에 찬 눈동자로 태권영화 전성시대를 이끌다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돌려차기의 명수, 태권황제 챠리 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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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찍어내듯이…’

영화 ‘용호대련’은 이탈리아 웨스턴의 피를 공급받은 한국의 만주 웨스턴과 홍콩 권격 영화, 그리고 태권도의 화려한 발차기가 잡탕처럼 범벅이 된 영화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잡탕 짝퉁이라고 무시하기에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특히 홍콩 권격 영화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화려하고 호쾌한 발차기가 그렇다. 도대체 당시 어떤 영화에서 발차기로 상대방의 뺨을 스무 번 이상 가격하는 액션을 볼 수 있었겠는가? 이소룡의 절도 있고 아름다운 발차기와 세련된 무술 연출에 비해 대단히 거칠고, 조악하지만, 챠리 셸의 발에는 독특한 힘이 있었다. 이탈리아 웨스턴이 할리우드 웨스턴을 표절해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한국의 태권도 영화는 홍콩 권격 영화와 이탈리아 웨스턴을 표절해 만주 벌판에서 총 대신 발차기로 겨루는 사내들의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용호대련’은 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다. 이두용 감독은 챠리 셸을 기용해 두 번째 영화를 찍는다. ‘죽엄의 다리’. ‘용호대련’이 개봉한 지 불과 두 달 후의 일이다. ‘용호대련’이 만주 웨스턴이었다면, ‘죽엄의 다리’는 이소룡의 ‘정무문’과 닮았다. ‘죽엄의 다리’ 라스트 신은 챠리 셀이 일본군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집 밖을 향해 뛰쳐나가며 발차기를 하고, 일본군이 그를 향해 총을 쏘는 것이다. 이 장면이 정지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초등학생 시절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본 나는 속으로 “에이, 정무문 라스트를 흉내 냈잖아”라고 투덜거리면서 “뭐, 그래도 멋있으니 용서해주지” 했다. 그리고 7월 이두용, 챠리 셸의 태권도 영화 3탄 ‘돌아온 외다리’가 개봉된다.

자, 이쯤에서 말이 많아진다. 무슨 연탄 찍어내듯이 영화를 찍나? 물론 세 편의 영화 모두 흥행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돌아온 외다리’를 촬영 중인 이두용 감독의 숙소로 영화사 사장이 전화를 건다. 지방 배급업자들이 돈 보따리를 싸들고 서울로 올라와 빨리 다음 편을 계약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두용 감독이 “아니 아직 영화를 다 찍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음 편이라니, 시나리오도 없는데 어쩌라는 말이냐”고 했지만 영화사 사장은 지방 배급업자들과 벌써 영화 제목까지 정했으니 알아서 이번 것 빨리 찍고 다음 편 또 찍으라는 것이었다. 영화사 사장과 지방 배급업자들이 급조한 이두용, 챠리 셸의 태권영화 4탄은 ‘분노의 왼발’이었다. ‘분노의 왼발’이 9월에 개봉하고 같은 달 말일에 5탄 ‘배신자’가 개봉한다. 하하하. 진짜 연탄 찍어내듯이 1, 2주 만에 영화가 완성된 것이다. 3탄 ‘돌아온 외다리’와 5탄 ‘배신자’ 사이에 만든 ‘분노의 왼발’은 엉성한 시나리오로 급조된 영화였다. 심지어 이전에 찍은 액션 장면을 짜깁기해 넣은 것까지 보인다.

훅! 하는 입바람



돌려차기의 명수, 태권황제  챠리 셸

챠리 셸은 1974년 2월 ‘용호대련’의 성공 이후 7개월 사이에 ‘죽엄의 다리’ ‘돌아온 외다리’ ‘분노의 왼발’ ‘배신자’ 등 4편의 영화를 몰아 찍는다.

‘배신자’는 내가 챠리 셸을 처음 만난 영화다. 마포 한 극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스크린에 어두컴컴한 골목이 보였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골목길을 걸어간다. 골목길 중앙에 딱 버티고 선 까까머리의 남자. 쌍라이트 조춘이다. 사내가 조춘에게 두목이 전해주라고 한 편지를 건넨다. 조춘이 편지를 펴는 순간, 핀트 나간 클로즈업으로 내용이 화면에 가득 찬다. “죽여라” 조춘은 다짜고짜 사내에게 덤벼들고 사내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와 싸운다. 조춘을 골목 구석에 있는 드럼통에 거꾸로 쑤셔 넣고는 발을 들어 드럼통을 난타한다. 마치 드러머가 드럼을 치듯 왼발을 들어 1초에 20회 이상 두드린다. 조춘을 해치운 사내가 고개를 든다. 사내는 두목이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 여수진을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것을 알게 되고, 아내 여수진이 두목에게 강간당한 후 자결한 사실도 알게 되면서 복수를 감행한다. 예전에는 동료였지만 이제는 원수가 된 친구들을 차례로 제거해나가던 사내는 또 다른 친구를 죽이기 위해 접근한다. 우연히 그의 집 창문에서 그의 말을 엿듣는 사내. 친구는 자신의 아내에게 고백한다. 친구를 배신하고, 그의 아내를 겁탈했으며 그가 자신을 죽이러 오고 있다…. 이 고백을 다 들은 사내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훅하고 입바람으로 머리카락을 넘기고는 자리를 뜬다. 죄를 고백한 친구를 용서한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조잡하고 막가는 한국 태권도 영화와 한·홍 합작 권격 영화와는 구별되는 어떤 지점이 ‘배신자’에 있었다. 그리고 아! 그가 바로 챠리 셸이었다. 이쯤에서 챠리 셸은 한국 태권도 영화 유일의 히어로가 된다.

1969년 홍콩의 무협 영화배우 왕우는 시대극 분장이 귀찮고 힘들어 분장 좀 안하고 영화 찍을 수 없나 궁리하다가 자신의 첫 감독·주연작인 ‘용호의 결투’로 본격적인 권격 영화를 만들었다. 할리우드에서 몇 편의 액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분을 삼키던 이소룡은 홍콩으로 돌아와 왕우의 ‘용호의 결투’를 보다가 ‘왕우는 왜 다리를 안 쓰는가? 나라면 다리를 쓰겠다’며 절치부심, ‘당산대형’과 ‘정무문’으로 홍콩 영화를 평정했다. 한국에서는 그들의 영화를 보고 ‘태권도의 발차기를 멋지게 표현하면 뭔가 만들겠군’ 했다. 그렇게 나온 영화가 1년도 안 돼 한국 액션영화의 왕좌를 차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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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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